요리단상

9월 30일, 이번주를 마지막으로 직장을 그만두었다. 요리와 음식의 세계에 올인하기 위해서.

미쳤냐는 소리, 듣기도 했고 듣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잘나가는 글로벌 IT 대기업. 안정적인 생활과 월급. 공짜점심과 수십가지 혜택들. 직장 이름만 대면 끄덕대며 길을 내주는 사회. 이미 이 분야에 투자한 3년여. 

그러다 어느날, 한 모임에 참석해서 한참 서로 소개를 하고 있는 와중, 누가 물어왔다. "그럼 구글에선 어떤 일을 하세요?" 여러가지 잡다한 프로젝트,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어떤 한가지도 내가 이런일에 전문가다, 이런 일을 맡아서 하고 있다라고 정확히 말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대충 종합해서 얼버무리니 아, 참 좋은 회사 다니시네요. 좋으시겠어요. 대단하시네요. 공부 되게 잘하셨나봐요. 쏟아지는 찬사(?)들. 그렇지만 난 먹먹하고 답답했다. 

그러나 급격히 저하되는 내 열정과 집중력에도 불구하고 일이 손에 익어서 그런지 매니저와 주변동료들의 피드백은 한결같이 좋았다. 이번 분기에도 아주 훌륭한 성과를 올렸다던지, 역시 우리 팀에 꼭 필요한 메이트라던지. 그렇지만 그런 피드백이 반복될수록 나는 더 괴리감을 느끼고, 내 노력과 열정과는 전혀 비례하지 않는 것을 깨달으며 점점 태만해져갔다. 

하지만 요리는 달랐다. 마침 양식자격증 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그 때 절실히 깨달은 것은 접시에 담긴 완성물은 내 실력과 내 노력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대변한다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자만하거나 1초라도 집중력을 놓치면 반드시 그 티가 났다. 반대로 내 자신을 매순간 채찍질해가면서 백프로를 투자한 날은 항상 선생님의 긍정적인 코멘트를 받을 수 있었다. 바로 그렇게 내 자신을 끝없이 돌아보게 하는, 한없이 겸손해지게 하는 요리의 정직함이 너무 좋았다. 

그 매력에 빠져들어 점점 요리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던 와중, 샌프란시스코로 출장 기회가 생겼다. 그곳에서 시도해 볼 식당들과 가게들을 뒤지던 도중, 호텔 바로 근처에 위치한 요리보조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급식소를 알게 되었다. 토요일 오전 8시에 까야 할 양파는 백개이상. 다질 피망도 백개 이상. 그렇지만 야채를 다듬고 다지는 그 몇시간 동안 난 마치 명상하는 기분처럼 너무 차분하고 편안했다.

야채도 손질이 끝나고, 이런저런 준비 후 셰프를 도와 끓인 스튜를 다른 음식들과 함께 요앙원 노인분들에게 서빙할 차례. 서빙을 다 마치고 나도 한 그릇 떠서 빈자리가 하나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스튜를 먹고 있던 한 할아버지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시더니 여기서 일하냐고, 이걸 먹고 있으니 예전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주말마다 끓여먹던 스튜 생각이 난다고. 그랬더니 맞은편에 계신 다른 할아버지는 당신 아내가 끓여주던 검보(미국 남부의 진한 스튜 종류)가 최고라고. 직접 기른 옥수수를 넣었었다며 마구 자랑을 하셨다. 그 후 한참 이어진 옛날 미국음식들에 대한 얘기.

그런데 대화 도중 나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오르며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내가 준비한 음식을 나누며 사람들과 교감하고 그로 이어지는 이야기들과 생각. 잠시 실례를 하고 화장실로 자릴 피해 행복감에 엉엉 울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이란 것을.

물론 그 이후에도 한번에 회사에서의 많은 혜택들, 사회적인 인지도와 안정을 포기하긴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와 비슷한 경험을 미리 하신 많은 분들의 경험담들이 큰 용기를 주었다. 1년 가까이 차츰차츰 마음을 다져가던 어느날, 지금 아니면 평생 후회할 것이란 본능적인 직감이 들었고 자진백수전환을 결국 실행에 옮겼다.

지인이 보내준 가수 김동률씨가 동생에게 쓴 글귀의 일부로 글을 마치며, 다시 한번 열심히 해보겠다 다짐한다. 화이팅!

자기 이름을 걸고 무엇인가를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에 대해
또 그걸 돈 주고 사주십사 하는 것에 대한 책임감에 대해
자기를 드러내어야 하는 민망함과 진실성에 대해
부족함에서 오는 아쉬움과 더 나아지고 싶은 욕심에 대해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들'이 해석하는 '나'의 새로움에 대해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끝없이 놀라고 고뇌해야 하고, 
또 기뻐할 수 있는 창작자의 길로 들어선 것을
진심으로 환영!

신선함과 심플함이 매력인 서래마을의 PAOLODEMARIA TRATTORIA





















샌프란시스코의 54 Mint에서 먹은 파스타 맛을 잊지 못해 괴로워하던 어느날, 서래마을에 새로운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생겼다는 소식을 입수했다. 이탈리아에서 날아와 홍대 등지에서 활약하던 Paolo de Maria(파올로데마리아) 셰프가 오너셰프로서 본인의 이름을 내걸고 차린 곳.  

한국에는 생소한 컨셉이나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스타일과 퀄리티에 따라 카테고리가 나누어진다. 그 분류에 따라서 대강 서빙되는 음식이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 제일 캐주얼한 곳은 Osteria(오스떼리아)며, 음식자체의 퀄리티 보다는 끼니를 때우는 곳이 좀 더 주된 목적인 대중적인 식당들. 제일 고급식당은 Ristorante(리스또란떼)라고 불리우며, 서비스와 가격도 그만큼 높다. 그 중간은 Trattoria(뜨라또리아)인데, 파올로데마리아가 바로 이 뜨라또리아.


한국인 아내를 둔 파올로데마리아 셰프는 강의실에서도 활약하며 정통 북부 이탈리안 퀴진을 한국에서 널리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평소 인터뷰를 보면 한국에서 쉽게 접하는 흥건한 소스에 푹 삶아진 면을 예로 들며 좀 더 제대로 된 파스타를 알리고 싶다는 셰프의 의지가 강하게 엿보인다. 때문에 이곳의 메뉴를 보면 해산물 토마토, 까르보나라 등의 익숙한 이름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살펴보면 파스타의 심오한 세계를 느낄 수 있다.

파스타의 종류는 셀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우리에게 제일 익숙한 종류는 아마도 스파게띠가 아닐까 싶은데, 이는 우리가 파스타 하면 흔히 생각하는 그 가늘고 둥근 면을 지칭한다. 그 외에 링귀니, 딸리아뗄레, 푸실리, 펜네, 리가또니 등등등등등등등 정말 수많은 종류가 있는데, 면의 모양에 따라서 식감도 천차만별이고, 또 각각 잘 어울리는 소스가 있게 마련이다. 때문에 면 종류를 고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써는 일반 식당의 파스타 메뉴에 명확히 표시가 되지 않은 점들이 항상 아쉬웠었다. 파올로데마리아는 그점에서 백점만점!
이곳에서 우리는 세가지 파스타를 시켰는데,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순식간에 흡입하듯이 해치웠다. 면발은 야들야들하면서도 탱탱하고, 소스는 얼마나 향이 풍부하고 신선한지! 특히 삼겹살 부위가 들어간 빨빠델 파스타는 숯불향이 매우 진하게 배어있어 씹으면 씹을수록 그 감칠맛이 최고. 다른 블로그에서 익히 접한 바질 파스타는 정말 멀리서부터 그 향긋한 향기가 진동했으며 감자와 줄기콩이 촉촉한 면과 너무나도 잘 어우러졌다. 토마토 소스는 하나같이 심플하면서도 토마토의 단맛과 약간의 신맛, 그리고 부드러움이 녹진하게 느껴졌고. 각 디쉬마다 마지막 한입이 너무 아쉽게 느껴졌다.


이곳은 따로 주문할 수 있는 디저트가 있긴 하나, 이렇게 멋드러진 디저트카트가 있다. 그 전날까지 미친듯이 베이킹을 한터이라 단 것이 땡기지 않는다고 조금씩만 담아달라 했지만......이곳에서 직접 만드는 하나같이 정말 훌륭한 맛에 정신줄 놓고 마구 퍼먹음. 개인적으로는 저 뒷편의 푸딩이 최고. 티라미수도 상당히 훌륭했다. 아포가또도 하나 시켰는데(디저트 총량이 거의 식사류와 맞먹을 뻔함) 에스프레소의 진한 맛이 완벽한 마무리를 선사했다.


이탈리안 퀴진의 제일 큰 매력은 접하기 쉬운, 너무 기교를 부리지 않은 심플하고 정직한 음식이다. 그렇지만 그만큼 더 인상깊게 맛있게 요리해 내기가 힘들기도 하다. 장인정신으로 재료 하나하나를 소중히 챙기고 다루고, 기술 그 이상의 무언가를 쏟아붇지 않고는 도저히 그 맛을 재현해 낼수가 없기에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한국의 손맛과 비슷한 구석이 있는 듯도 싶다.

조금은 생소할 수도 있지만, 이곳에 들려 한번쯤 제대로 된 파스타를 맛보시길! 주소는 서초구 반포동 91-3(지도링크)이며, 서래마을 파리크라상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 우회전하면 바로 나온다. 10월에는 가을메뉴로 개편하신다니 그전에 얼른 한번 가서 다른 파스타들 먹어봐야겠다. 월요일은 휴무이며 요새 한창 인기가 높아 점심 저녁 두시간대 모두 예약은 필수! (02) 599-9936.

Grazie Chef Paolo de Maria! 
가을 생각나면 찾게 되는 것 중 하나는 고구마. 겨울철 드럼통에서 파는 찐득한 군고구마부터 빠스, 맛탕, 스틱, 그리고 케이크나 만주 등을 포함해 다양하게 사용되는 훌륭한 재료이다.  또한 다이어트에 좋다고 해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음식이기도 하고.



재배되는 고구마는 주로 소주의 원료인 주정(식용알코올)을 만드는데 쓰이는 공업용과 우리가 마트에서 쉽게 접하는 식용고구마가 있다. 식용고구마의 주된 두가지 종류는 바로 밤고구마와 호박고구마. 바슬바슬한 밤고구마와 달리 최근에 개발되어 부드러움과 달콤함으로 승부하는 호박고구마가 큰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고, 우리집에서도 밤고구마는 외면을 당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 들리신 외할머니 손에는 밤고구마 한봉다리가 들려있지 않은가.

"에이 할머니 이거보다 호박고구마가 더 맛있는데요!"
"녀석아, 그건 질척하기만 하고 요게 더 맛있는겨. 쪄서 김치랑 먹어봐라."

할머니가 가신 후 고구마는 냉장고로 직행. 

얼마가 지났을까, 냉장고 정리를 하다가 야채칸에 처박아두었던 고구마 봉다리를 발견했다. 약간 마르기도 했고, 심이 많아보이는 고구마들. 그냥 먹기는 맛없을 것 같고, 버릴수도 없고 해서 요리책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중에서 한복려 선생님의 고구마조림 레시피가 눈에 들어왔다. 간장, 참기름과 설탕 등에 조린 반찬. 오호...

사실 요리가 너무하고 싶어 아침 여섯시에 눈이 떠졌는데, 그 에너지로 내친 김에 맛탕도 해버렸다. 덕분에 아침부터 온 집에 기름냄새가 진동. 

밤고구마는 호박고구마보다 수분과 당분이 적은만큼 전분량이 높다. 호박고구마의 전분량은 5-8%에 불과한데 밤고구마는 무려 18-20%. 수분이 적은 만큼 그 조직도 더 단단하며 길게 늘어지는 섬유질도 덜해 조리하기 훨씬 더 좋은 재료는 밤고구마다. 대신 전분이 많으면 수분을 계속 흡수해 요리가(특히 튀김등) 눅눅해지므로 조리전 물에 담가 전분을 충분히 빼주는 것을 잊지 말기.

그럼 간단한 레시피 두가지로 밤고구마를 더 맛있게 즐겨보자!

짭쪼롬함이 매력인 고구마조림

고구마(손질후) 400g

간장 3큰술
설탕 2큰술
맛술(미림) 1큰술
물 3큰술
참기름 1큰술

통깨 약간

고구마는 깨끗이 손질해 먹기좋은 크기로 손질한다. 손은 조금 가지만 모서리 정리해서 밤톨처럼 손질하면 덜 으깨져서 깔끔하게 조려진다.

조림장 재료를 냄비에 한데 넣고 섞은 후 가열한다. 한번 끓어오르면 중약불에 놓고 고구마를 넣는다. 불조절해가면서 서서히 조려 가끔 살살 뒤적여준다. 너무 약불로 해도 고구마가 으스러질 수 있다. 투명한 빛이 돌때까지 자작하게 조려준다.



달콤바삭한 고구마맛탕

고구마(손질후) 400g
튀김 기름 넉넉히
소금 약간

설탕 5큰술
물 5큰술
물엿 3큰술

통깨 약간

고구마를 손질해 물에 한시간여 담가 전분을 제거한다. 섭씨 180도의 기름에 6-8분여 노릇해질때까지 튀겨낸다. 두번 튀기면 더 바삭.

고구마가 식으면 냄비나 후라이팬에 설탕과 물을 넣고 젓지 말고 끓인다. 설탕이 녹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면 물엿을 넣어 잘 섞는다. 식은 고구마를 넣어 잘 버무려준다. 너무 오래 버무리면 딱딱해질수 있으니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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