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단상


어릴 적 초등학교 소풍날, 제일 기다려졌던건 동물원 견학도 아니고 보물찾기도 아닌, 바로 새벽부터 일어나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 까먹는 시간이었다. 따뜻한 상태로 배낭에 담겨져 참기름 냄새가 은은하게 배어있는 반질반질한 김밥들.

친구들의 생김새나 성격만큼 각자 싸온 도시락들도 가지각색이었다. 야채를 절대 먹지않는 준영군의 김밥은 햄, 맛살, 단무지, 어묵 사총사 김밥. 항상 아기자기한 문구들을 들고 다니는 선희양의 도시락은 그애의 필통을 연상케 하는 알록달록한 색감에 선희 어머니가 가위들고 엄청나게 공을 들이셨을 법한 헬로키티 생김새의 주먹밥. 밥보다는 햄버거와 핫도그를 좋아하는 동희군은 역시나 샌드위치와 절대 먹지않는 방울토마토 몇개. 우리집은 무려 설탕과 식초에 직접 담근 단무지에 시금치, 소고기, 우엉, 당근으로 무장한 정석 옛날 김밥. 


역시나 제일 주목을 받았던 건 뚜껑을 열었을 때 우와~ 하는 리액션을 받는 정성 이백프로의 도시락들이었다. 그렇게 주목을 받은 친구들은 매우 우쭐해했고, 다른 아이들은 다음 소풍때는 꼭 내가 주인공이 되리라 다짐하며 엄마들을 들볶는 현상이 발생. 나도 문어모양의 비엔나 소세지와 곰돌이 모양의 주먹밥으로 찬양을 받고 싶었지만, 이미 김밥 한 종류를 싸기 위해 어머니가 새벽 다섯시반부터 일어나는 걸 알기에 어린 마음에 차마 조를수가 없었다(사실 무서워서...).

도시락의 주된 주인공인 김밥은 사실 싸려면 상당히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메뉴인데, 몇년전에 우후죽순처럼 생긴 천원김밥 체인점들과 편의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밥 80% 김밥들 덕분에 싸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물론 맨밥에다가 요새 마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김밥용 단무지, 우엉, 햄, 맛살 등으로 넣고 싸면 한 십분만에 둘둘 싸겠지만, 정말 맛있는 김밥을 싸려면 좀 더 시도해 볼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김밥 업그레이드 하기 그 첫번째 : 김밥의 기초는 맛있는 밥! 우선 밥은 평소보다 물을 약간 줄여 고슬고슬하게 지어주기. 그리고 무심코 지나치거나 귀찮아서 스킵하기 쉬운 것이 바로 밥에 간을 하는 것인데, 확 달라지는 김밥을 경험하려면 단촛물로 간을 해준다. 식초, 설탕, 소금을 3:2:1의 비율로 혼합해 밥이 뜨거울 때 잘 섞어주면서 약간 새콤한 맛이 돌게 한다.

김밥 업그레이드 하기 그 두번째 : 가공재료는 최대한 자제하고 고기와 야채를 직접 조리해서 넣어보자. 그래, 단무지 직접 담그는 건 좀 오바이겠지만...햄 대신 다진 소고기나 표고버섯을 볶아서 넣고, 추가로 오이나 시금치를 슬쩍 데쳐 넣거나, 당근을 채쳐 살짝 볶아 넣으면 훨씬 더 깊은 맛의 김밥을 맛 볼 수 있다. 물론 각 재료에도 적절한 간을 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밥 업그레이드 하기 그 세번째 : 재료는 풍성히, 밥은 조금만. 김밥을 싸다보면 나도 모르게 밥의 양이 많이지는 경우가 생기는데, 김의 한 3/2만 밥을 깔아준다. 이 때 김이 중간에 슬쩍슬쩍 보일 정도로얇게 펴주는 것이 포인트. 하얗게 꾹꾹 밥을 깔면 양이 너무 많아진다. 이렇게 밥을 깔고 재료를 엄지마디 정도 넓이와 높이로 넉넉히 얹어주면 딱 한번만 말리면서 좀 더 맛의 발란스가 맞는 김밥이 된다. 

김밥 업그레이드하기 그 마지막 : 달군 팬에 한번 굴려서 참기름을 살짝 발라준다. 김밥용 김은 조미가 되어있지 않고 좀 뻑뻑할 수 있으며, 꾹꾹 눌러가며 김밥을 말다보면 김이 좀 밀려서 구겨질 수 있다. 이때 다 말은 김밥을 살짝 가열한 후라이팬에 슬슬 굴려가며 데워주면 빠방해진다. 여기에 참기름을 살짝 발라주면 훨씬 더 고소한 김밥 완성!

김밥과 같이 싸면 모양도 이쁘고 맛도 좋은 동그랑땡.

얼마전 화창한 날 여의도공원에서 도시락 까먹었더니 너무 환상적이었다. 몇번 더 하려 했는데 입돌아가게 추워진 날씨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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