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단상

 

마감을 치며 청소를 하고 집에 갈 준비를 하면 배가 급 고파온다. 라면이 땡기는 날도 있고 그냥 빵 한쪽, 혹은 설렁탕 한 그릇이 먹고 싶은 날도 있지만, 제일 먼저 달려가 보는 곳은 압구정역 근처의 한 김밥집. 열시쯤이라도 부랴부랴 가 보면 운 좋게도 남은 김밥을 단돈 이천원에 얻는 횡재를 누릴 수 있다.

 

 

근데 여기 김밥은 할인된 가격에 사오기가 미안할 정도로 그 퀄리티가 남다르다.  우선 사진 투척.

 

 

 

밥도 간이 너무나 잘 되어 있고 냉장고에 넣어 놔도 다음날 잘 마르지 않는다. 꽉 찬 저 볼륨감도 볼륨감이지만, 재료 하나하나가 직접 다듬고 조리한 생 야채가 대부분이며, 흔히 볼 수 있는 햄/어묵/맛살/짜디짠 단무지와 우엉이 아닌 것이다. 종류도 다양해서 버섯불고기, 파프리카 버섯, 슈퍼 야채, 참치, 뭐 엄청 많은데, 슈퍼 야채를 먹어보시라. 제대로 간한 밥과 오이/당근/단무지가 만나면 이렇게 단촐하게 들리는 조합도 정말 맛있을 수 있구나, 깨닫게 된다.

 

매장이 너무 작아서 떡볶이 등 다른 메뉴도 있는데 느긋하게 먹기는 어렵고, 여튼 위치와 연락처.

 

주소: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610번지 서원빌딩 1층 

전화번호: 02-548-5552

압구정역 2번 출구로 나와 바로 왼쪽 골목으로 좌회전, CU 편의점 끼고 오른쪽으로 우회전 하면 오른편에 보인다. 들려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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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함과 심플함이 매력인 서래마을의 PAOLODEMARIA TRATTORIA





















샌프란시스코의 54 Mint에서 먹은 파스타 맛을 잊지 못해 괴로워하던 어느날, 서래마을에 새로운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생겼다는 소식을 입수했다. 이탈리아에서 날아와 홍대 등지에서 활약하던 Paolo de Maria(파올로데마리아) 셰프가 오너셰프로서 본인의 이름을 내걸고 차린 곳.  

한국에는 생소한 컨셉이나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스타일과 퀄리티에 따라 카테고리가 나누어진다. 그 분류에 따라서 대강 서빙되는 음식이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 제일 캐주얼한 곳은 Osteria(오스떼리아)며, 음식자체의 퀄리티 보다는 끼니를 때우는 곳이 좀 더 주된 목적인 대중적인 식당들. 제일 고급식당은 Ristorante(리스또란떼)라고 불리우며, 서비스와 가격도 그만큼 높다. 그 중간은 Trattoria(뜨라또리아)인데, 파올로데마리아가 바로 이 뜨라또리아.


한국인 아내를 둔 파올로데마리아 셰프는 강의실에서도 활약하며 정통 북부 이탈리안 퀴진을 한국에서 널리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평소 인터뷰를 보면 한국에서 쉽게 접하는 흥건한 소스에 푹 삶아진 면을 예로 들며 좀 더 제대로 된 파스타를 알리고 싶다는 셰프의 의지가 강하게 엿보인다. 때문에 이곳의 메뉴를 보면 해산물 토마토, 까르보나라 등의 익숙한 이름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살펴보면 파스타의 심오한 세계를 느낄 수 있다.

파스타의 종류는 셀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우리에게 제일 익숙한 종류는 아마도 스파게띠가 아닐까 싶은데, 이는 우리가 파스타 하면 흔히 생각하는 그 가늘고 둥근 면을 지칭한다. 그 외에 링귀니, 딸리아뗄레, 푸실리, 펜네, 리가또니 등등등등등등등 정말 수많은 종류가 있는데, 면의 모양에 따라서 식감도 천차만별이고, 또 각각 잘 어울리는 소스가 있게 마련이다. 때문에 면 종류를 고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써는 일반 식당의 파스타 메뉴에 명확히 표시가 되지 않은 점들이 항상 아쉬웠었다. 파올로데마리아는 그점에서 백점만점!
이곳에서 우리는 세가지 파스타를 시켰는데,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순식간에 흡입하듯이 해치웠다. 면발은 야들야들하면서도 탱탱하고, 소스는 얼마나 향이 풍부하고 신선한지! 특히 삼겹살 부위가 들어간 빨빠델 파스타는 숯불향이 매우 진하게 배어있어 씹으면 씹을수록 그 감칠맛이 최고. 다른 블로그에서 익히 접한 바질 파스타는 정말 멀리서부터 그 향긋한 향기가 진동했으며 감자와 줄기콩이 촉촉한 면과 너무나도 잘 어우러졌다. 토마토 소스는 하나같이 심플하면서도 토마토의 단맛과 약간의 신맛, 그리고 부드러움이 녹진하게 느껴졌고. 각 디쉬마다 마지막 한입이 너무 아쉽게 느껴졌다.


이곳은 따로 주문할 수 있는 디저트가 있긴 하나, 이렇게 멋드러진 디저트카트가 있다. 그 전날까지 미친듯이 베이킹을 한터이라 단 것이 땡기지 않는다고 조금씩만 담아달라 했지만......이곳에서 직접 만드는 하나같이 정말 훌륭한 맛에 정신줄 놓고 마구 퍼먹음. 개인적으로는 저 뒷편의 푸딩이 최고. 티라미수도 상당히 훌륭했다. 아포가또도 하나 시켰는데(디저트 총량이 거의 식사류와 맞먹을 뻔함) 에스프레소의 진한 맛이 완벽한 마무리를 선사했다.


이탈리안 퀴진의 제일 큰 매력은 접하기 쉬운, 너무 기교를 부리지 않은 심플하고 정직한 음식이다. 그렇지만 그만큼 더 인상깊게 맛있게 요리해 내기가 힘들기도 하다. 장인정신으로 재료 하나하나를 소중히 챙기고 다루고, 기술 그 이상의 무언가를 쏟아붇지 않고는 도저히 그 맛을 재현해 낼수가 없기에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한국의 손맛과 비슷한 구석이 있는 듯도 싶다.

조금은 생소할 수도 있지만, 이곳에 들려 한번쯤 제대로 된 파스타를 맛보시길! 주소는 서초구 반포동 91-3(지도링크)이며, 서래마을 파리크라상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 우회전하면 바로 나온다. 10월에는 가을메뉴로 개편하신다니 그전에 얼른 한번 가서 다른 파스타들 먹어봐야겠다. 월요일은 휴무이며 요새 한창 인기가 높아 점심 저녁 두시간대 모두 예약은 필수! (02) 599-9936.

Grazie Chef Paolo de Ma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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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다찌에서가 아닌 7월달 서초점 테이블에서의 정식 식사

미식가인 아버지 덕분에 난 어릴적부터 꽤 비싼 일식집에서 초밥과 회를 접할 기회가 잦았다. 게다가 계란찜이나 튀김 등 다른 주전부리들로 배를 채우면 낭비라는 그 잔소리란...먹고 싶은 거 먹으면 어때, 라는 반발심은 아직도 남아있으나 결국 회전초밥집을 가도 먹고 싶은 생선 탑10으로만 깔끔히 먹고 나오는 내 모습은 정말 세뇌교육이 무섭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이고.



가세가 슬쩍 기울면서(엉엉) 고급 일식집을 가는 일은 거의 없어졌지만 그래도 스시히로바 등 회전초밥집은 가끔씩 들러주던 때, 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읽으면서 이런 초밥들이 정말 있기나 한걸까 너무 궁금했다. 아마 전시리즈를 세번 이상 정독한 듯 한데, 읽으면 읽을수록 그 갈망은 더해갔다. 그러다가 안효주 셰프님에 대한 기사를 접하게 되고 스시효라는 곳도 알게 된 후, 언젠가 가보야 할 곳으로 머릿속에 등극.

그러다 두달전, 친구들과 축하할 일이 있어 식당을 고르던 중, 바로 그 스시효가 강남역 부근에 서초점을 내었다는 얘길 들었다. 네명이 테이블로 예약을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리뷰들을 읽어보고 있는데, 가끔가다 너무 평범했어요, 다른데서도 더 저렴한 가격으로 맛볼수 있는 초밥이에요, 이런 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8만원 이상의 고가의 저녁인지라 내가 과연 그만큼의 맛을 느낄 수 있을까, 약간 긴장하고 방문했는데, 무릎을 탁 칠만큼 맛있는 초밥들도 몇개 있었지만 솔직히 나머지는 몇년간 기대한 그런 맛은 아니었다.



다시 갈일은 없겠구나, 라고 생각하면서도 실망감과 미련에 여전히 블로그들을 돌아보던 중, 다찌에 앉아 주문해 보면 혹시 그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아주 위험한 생각이 들었다(다찌에 앉으면 기본적으로 가격 1.5배). 그러나 역시 같이 갈 사람을 찾는 것도 쉽지가 않고 금전적인 부담도 그렇고 해서 그냥 막연히 언젠가는 가봐야겠다, 라고만 생각했는데 어제 갑자기 그 기회가 찾아온 것! 

자리를 잡고 앉으니 훤히 들어오는 반듯하고 깨끗한 도마들과 멋진 사시미 칼들. 가슴이 두근두근대기 시작했다. 역시나 내 눈길은 안효주 셰프님에게로! 여러분들이 계셨는데.......어라 사장님이 직접 집어주시는 분위기. 으하하하 이런 기회가!


자리가 세팅이 되고 광어로 스타트! 그 후 이어지는 내 사랑 방어, 도미, 오도로(참치뱃살), 아부리 오도로, 타코(문어), 즈케 마구로(붉은살 참치), 가이바시(관자), 아나고(장어), 청어/시사모알, 에비(단새우), 아부리 엔가와(광어 지느러미살), 신코(전어), 가리비, 전복, 우니, 도미 더 하나, 한치도 먹은 것 같고. 아 갈빗살 군함말이도 있었고. 잠깐, 게살에 사바(고등어) 두가지도 있었는데. 으아, 어쩐지 좀 심각하게 배부르더라. 너무 힘들어서 사장님 스탑! 을 외치고 깔끔하게 계란말이로 마무리. 사장님 왈, "진정한 미식가시군요." 응? 어렸을 땐 먹으면 혼났는데 이런 칭찬을.

마...많이 먹긴 많이 먹었다. 먹었을 때는 15개 정도라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무려 스무개가 넘다니. 어떻게 다 들어간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이렇게 먹고 내 앞으로 15만원 찍었다. 다찌에 앉으면 보통 11만원 플러스 나오는 듯. 근데 어떻게 다 기억하고 단가 책정하시는거지 그것이 미스테리.



사실 서초점에서 먹고 실망한 피스들 몇가지는 제외해달라고 할까 하다가 그냥 먹어보자, 하고 셰프님 해 주시는대로 올인했는데 다 대박이었다 진심으로. 마약이 든걸까 생각이 들 정도로 먹고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먹어도 먹어도 점점 더 맛있엇지는 스시마라톤. 방어/아부리 오도로/아나고/엔가와 이렇게 네가지는 진짜 일시적으로 정신이 혼미해짐. 옆에 아저씨분들은 왁자지껄 술 드셔가며 얘기하느라 정신없는데 우리는 침묵속에 다소곳이 정자세로 앉아 하나 먹고 정신 못차리고, 또 하나 먹고 베시시거리고. 사장님 보시기에 완전 웃겼을 듯.

서초점서 먹은 후식 흑미 아이스크림. 참 맛있게 먹었는데
청담점에서 나온 흑깨아이스크림이 더 부드러운 별미!

일본 가면 훨씬 더 저렴한 가격에 더 좋은 스시를 먹을 수 있다느니 유명세만큼 말들이 많은 곳이지만 나에게는 2010년 최고의 식사이자 최고의 초밥 경험이었다. 게다가 정말 티끌하나 없어보이는 주방과 정갈한 흰색의 조리복을 입고 물흐르듯 움직이는 안효주 셰프님의 장인정신을 느끼는 경험이란. 스시효 관련 정보는 워낙 온라인에 많으나 주소는 영동고등학교 바로 근처인 강남구 청담동 21-16이고 전화번호는 (02) 545-0023. 물론 예약 필수! 어차피 가실 분들은 몇만원 더 투자하시고 카운터에 앉아 보시길.

ps. 앞으로 당분간 저녁은 라면? 으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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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을때마다 고민. "오늘은 대체 어디서 만나지?" 

보통 술 한잔씩 하게 되는데, 비오는 날은 이자까야에서 오꼬노미야끼에 사케 한잔, 정하기 힘든날은 만만한 와라와라에서 이런저런 요리와 과일소주, 아님 칼로리 땡기는 날은 치킨에 맥주. 누가 보너스라도 탄 날은 파스타 먹고 와인바에서 한잔. 정말 갈데 없음 고기에 소주 한잔. 이 뻔한 레파토리 몇 번 반복하니 새로운 곳이 너무나 절실해짐.

해산물 향 가득한 멍게비빔밥

그러다가 예전 신선한 시도의 다양한 메뉴를 맛본 정식당이란 곳에서 "Anzu"라는 캐주얼한 브랜치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감만족 돼지보쌈을 간단히 서빙하거나, 멍게비빔밥, 딸기 막걸리 등 특이한 메뉴가 벌써부터 정식당스러운 느낌 팍팍! 마침 주말에 잡힌 대학동기들 모임을 이곳에서 하기로 했다. 레스쁘아의 임셰프님의 메뉴 추천까지 받아 더욱 기대감을 안고 찾아갔다.


압구정역 근처 골목 안쪽에 위치한 이곳은 마침 내가 좋아하는 와인바 클라레 바로 옆자리. 문을 열고 들어가니 널찍널찍한 자리에 무지 심플한 인테리어. 다섯명이 넓은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들여다보니 정식이 볶음밥이란 재밌는 이름부터 찹쌀 탕수육, 미역빠에야, 닭튀김, 보쌈 등등 대략 서른가지의 메뉴가 있었다. 가격은 보통 8천원선에 만원을 넘는 것들도 있음. 


요렇게 나오는 보쌈 한접시가 8천원인데 너무 맛있어서 두번 시켜먹었다. 사진찍기 무서운 젓가락 날라오는 분위기가 감지되시는지...술마시러 갔다가 서로 사투를 벌이며 안주를 집어먹은 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저 마지막은 내가 사진찍고 얼른 먹었음.


여자 다섯명이 요리 한 여덟가지에 막걸리 세 종류 마셨는데 배불러서 힘들었다. 우리가 시킨건 볶음밥, 미역빠에야, 멍게비빔밥, 찹쌀 탕수육, 보쌈 두접시, 닭갈비 떡볶이. 거기에 서비스로 주신 두부/숙주 요리까지. 술은 딸기, 복숭아, 누룽지 막걸리를 각각 한병씩 마셔봤는데 복숭아는 너무 달았으나 누룽지맛은 누룽지사탕맛이 나며 살짝 달달하니 괜찮았고, 나의 베스트는 딸기막걸리였다. 신기하게 맛이 잘 어우러지며 풍부한 과일향까지.

깔끔한 미역국 맛과 독특한 식감의 미역 빠에야

요리베스트는 이 탕수육. 돈까스스러운 비주얼이긴 하나 매우 쫄깃하고 소스로 범벅되지 않아 끝까지 바삭거리는 것이 좋았다. 닭갈비 떡볶이도 완전 쌀떡에다가 닭도 쫄깃하고 부드러워 별미. 다만 너무 배불러서 다 못먹었다. 



이 날은 술 좀 줄이자, 라는 모토의 친구들이 좀 많아 막걸리로만 마셨으나 사케리스트도 상당하고 와인도 있으니 다른 술도 도전해봐야겠다. 전통주 리스트도 좀 더 늘려가심 아주 완벽한 술 라인업이 될 듯하다. 

정식당 자체는 아무래도 파인다이닝 카테고리이다 보니 더 비판/비평도 많고 파인다이닝 자체의 격식, 스타일 등에 대한 압력도 있을터이나 이곳은 오히려 임정식 셰프와 스태프들의 아이디어를 더 자유롭게 펼쳐보이고 공유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참, 저날 저렇게 먹고 한 사람당 만오천원이라는 압구정동에선 깜짝 놀랄 가격이 나왔다. 앞으로 심히 단골이 될 듯 하다. 주소는 강남구 신사동 567-28으로 압구정역 4번출구로 나와 쭉 걸어오다 국민은행 골목에서 우회전해서 안쪽으로 들어간다. 전화번호는 (02) 518-4654. 당분간은 예약 안하고 찾아가도 될 듯 하나 조만간 어찌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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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와 양파, 감자. 서로 확연히 구분되는 이 재료들을 비슷한 크기로 썬 후 코를 막고 먹어보라. 그 확연하던 차이가 집중하지 않으면 느끼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감기가 걸려 코가 심하게 막힌 경우 음식 맛을 느끼기가 어려운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바로 우리가 '맛'이라고 느끼는 감각의 70% 이상이 후각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어떤 음식을 먹기전에 아 맛있겠다, 혹은 윽 이상하군, 이라고 판단을 해 주는 감각은 미각이 아닌 후각이다. 아침일찍 빵집에 들어가니 달콤하고 구수한 냄새에 갑자기 배가 고파지거나, 음식이 상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냄새를 먼저 맡아본다던지 말이다. 두리안이나 초두부 같은 경우 냄새가 너무 역해 먹지 못하겠어도 맛있다는 사람들 말을 듣고 억지로 먹어보는 경우가 많다. 결국 음식에 관해서 혀보다 오히려 코가 일차적인 기관인 것이다.

와인이나 커피 전문가들도 마시기 전, 반드시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냄새들에 대한 차트(아로마휠, Aroma Wheel)가 따로 있을 정도로 후각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오늘 점심을 먹은 도산공원 근처의 그라노(Grano)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이 냄새였다. 식전빵, 올리브 오일, 에피타이저부터 메인까지 접시가 내 앞에 놓이는 순간 진하게 풍겨오는 신선한 냄새들. 다른 레스토랑에서는 쉽사리 경험하지 못한 정도의 강렬함이었다. 입에 넣고 꼭꼭 씹을떄마다 더욱 더 진하게 올라오는 향기에 몇 입 먹지도 않았는데 배부른 느낌이 들었다. 살짝 압도당한 내 후각과 미각을 위해 간간히 쉬어가며 먹어줌. 

에피타이저로 시킨 가지요리(상위사진)는 고소한 파마지아노 치즈와 토마토 소스가 부드러운 가지와 아낌없이 들어간 올리브오일과 어우려져 정말 진한 맛을 내었다. 이거 한가지만 시켜도 배불렀을 듯. 

내가 시킨 까르보나라는 아스파라거스를 갈아 소스에 넣고 정말 퍼펙트하게 익혀진 아삭한 아스파라거스가 몇줄기 들어가 있었다. 다만 트러플 오일이 나에게는 너무 강하게 느껴져 조금 거부감이 들었다. 아무리 다른 종류의 소스를 먹어봐도 내 favorite은 토마토 소스. 좀 색다른 걸 찾는 분에게 추천한다.


또다른 파스타 디쉬였던 미트볼이 들어간 토마토 소스. 이거 정말 맛있었다. 펜넬씨가 들어간 미트볼은 부드러우면서도 씹는 맛이 좋았고, 토마토 소스는 상큼하면서도 녹진한 깊이가 느껴졌다. 두 파스타 모두 면은 처음 먹었을 때 어라, 이거 먹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꼬들바삭꼬들한데 먹다보면 아주 약간 더 익어 입에 짝 붙는다. 단지 좀 억셌던 파슬리가 살짝 부드러웠음 더 좋았을 뻔.



그라노의 음식들은 한국식 파스타에 익숙해지신 분들에게는 조금은 너무 이국적이고 간이 짜다고 느껴질 듯. 진하고 풍미있는 이탈리안 음식이 땡길 때 아주 좋은 곳. 내가 이탈리안 음식을 좋아하는 이유가 이런 투박함과 단순하면서도 깊고 신선한 맛인데, 그걸 제대로 보여주는 레스토랑이다. 

게다가 완전히 오픈된 주방에서 러시아워의 활기와 살벌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우리 서버분도 참 친절하시고 차분하셔서 더욱 편한 식사. 가지요리에 배가 불러 파스타를 남긴 것이 너무너무 미안했음(포장해오긴 했다만 내일 상태가 어떨지는 흑흑...). 요리하는 사람에게 깨끗한 접시가 얼마나 기분이 좋은 칭찬인지 잘 알기에 음식 맛있지만 배불러 남길때 진짜 죄책감 느낀다. 운동을 두배로 하는 수밖에?

그라노는 매일 정오부터 오픈하고 요리들 대부분 17,000원 이상. 여기에 10% 붙는다. 와인 리스트는 한잔 정도 먹을 수 있도록 글라스로도 판매하면 좋으련만, 전반적으로 센 값의 와인들이 대부분. 위치는 아래 지도 참조하시고 전화번호는 (02) 540-1330. 예약하면 더 편하게 먹겠지만 우리는 오늘 느지막히 가서 바로 앉았음. 야외에도 식탁이 있어 가을에 앉아 파스타 먹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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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하루 휴가를 내고 파주 헤이리마을에 처음으로 다녀왔다. 크게 깊이있는 곳이 없다고 들은바도 있고, 같이 간 친구의 친구가 어머니와 4년째 함께 운영중인 카페에 들려 쉬는 것이 목적이어서 큰 기대는 하고 가지 않았는데 말이지...결론적으로 너무 즐겁고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왔다.

카페에서 직접 아침을 해 먹기로 해서 일곱시부터 부산을 떨어 카페 블루메(Blume)에 아홉시 도착. 햇살이 가득한 아름다운 공간내부로 들어가니 하늘하늘 수국이 테이블마다 한가득. 말끔히 정리되어 있는 키친의 온갖 도구들과 원두들 및 드립 스테이션을 보고 정신 못차리며 한참을 구경함. 에스프레소 머신에 불이 들어오고 재료들을 꺼내고 팬을 달구기 시작했다. 카페 옆 텃밭에서 따온 토마토도 썰고, 곰돌이 팬케이크도 부치고, 수란도 만들고, 신선한 레모네이드와 오디쥬스도 한잔씩. 

처침히 옆구리 터진 곰돌이들. 머리부터 먹나요 다리부터 먹나요!

생크림과 아몬드 슬라이스, 슈거파우더에 시럽까지 챙겨 햇살이 환히 비치는 창가에 자리잡았다. 거기에 홈메이드 딸기쨈과 스콘까지 추가. 마지막으로 빠질 수 없는 아메리카노 한잔. 역시 텃밭에 자라는 블루베리 나무에서 딴 싱싱하고 탱글탱글한 블루베리 추가. 



최근 먹은 스콘 중에 제일 맛있엇다. 적당히 촉촉함.

햇살과 수국이 너무나 아름다운 공간.

그 후 헤이리마을에서 한창 열리고 있는 With Art, With Artist 전시를 몇 군데 구경했다. 금요일이라 표 확인하는 사람도, 구경온 사람도 없이 텅 빈 갤러리들. 날씨가 너무나 무더워 좀 힘들긴 했지만 열심히 걸어다니고 카페 컨셉들도 구경하고 미래의 내 공간도 더 계획하고. 듣던대로 헤이리마을의 건물들은 대부분 현대적이고 독특한 디자인이 많았다. 그 중 내 눈을 제일 끌었던 블루메의 공간은 아래 사진에 나온 콘크리트 '화분'이었다. 

건물을 건설할 때 아래 큰 나무를 베어내지 않기 위해 가지와 잎이 그대로 자랄 수 있게 돌려가며 디자인을 했다 한다. 글쎄, 막상 나무는 답답하다 느낄 수도 있겠지만 베어내는 것 보단 자연과 타협한 디자인을 했다는 것이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결정이었다. 


햇살이 파고드는 공간. 안에 서 있으면 건물 내부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밖에 있는 듯한 오묘한 느낌이 든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한참 구경하니 출출해 우선 점심을 먹기로 했다. 분명 아침에 스콘까지 싹쓸이 했을 땐 점심 안 먹어도 되겠다, 싶었지만 말이다. 크흑... 점심메뉴는 블루메의 대표적인 메뉴인 연잎밥과 장아찌. 나올 때부터 찐한 향기가 흘러나오는 연잎을 살포시 펼치면 쫄깃하면서도 구수하고 향기로운이 한가득 담겨있다. 같이 나오는 반찬은 연근, 매실, 무 등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는 살짝 매콤한 장아찌와 김. 여기서 제일 큰 서프라이즈는 장아찌위에 올려나오는 호두와 잣이 장아찌와 이루는 극상의 맛의 조화. 견과류 두번이나 더 갖다 먹었다. 



심심하지만 밥만 먹고 있어도 향기가 온몸을 가득 채우는 느낌이다. 연잎차도 같이 서빙되어 그 향기를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는데,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은 아주 살짝 거부감이 느껴지실지도. 자스민 차 등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강력추천. 


밥을 다 먹고선 연하게 내려주신 훌륭한 파푸아뉴기니 드립커피 한잔을 더 마시고 아래 로스터리 카페를 구경했다. 심플한 진열대를 다양한 원두와 기구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너무나 갖고 싶은 동드립퍼와 포트. @_@

한켠에는 커피나무들 묘목들도 몇 그루 자리하고 있었다.

네가지 원두를 블렌딩한다는 Blume Blending. 이 날 여기서만
커피를 세잔씩이나 마셔 자제하느라 아쉽게도 마셔보진 못함.

밥에 커피까지 마시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집에 가려고 일어서는데 사장언니가 비닐봉투를 하나씩 쥐어주며 옆 텃밭에서 야채를 좀 따가란다. 머뭇거리는 우리의 손을 잡고 성큼성큼 밭으로 들어가심. 뒤따라 들어가려는데 얼굴과 다리에 스치는 잎파리들과 거미줄,  벌레들에 나도 모르게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아 이런 모습 정말 반성해야 함. 

그래도 오랜만에, 혹은 처음보는 광경들에 연신 신기해 하다보니 점차 편해지기 시작했고 열심히 사진도 찍고 수확(?)도 했다. 슈퍼에서는 가지런히 놓여있는 수많은 야채들이 실제 자라고 있는 모습, 참 재밌는 경험이다. 조만간 농장과 밭 좀 많이 다녀야겠다.

멀리서도 눈에 들어오는 보랓빛 가지.

꽃이 지고 영글어 가고 있는 오이. 새끼손가락만 했다.

이건 좀 더 자라 제법 크기가 있는 녀석들. 구엽지만 가시가 날카로워 보인다.

중간에 가다가 큼지막한 거미를 보고 완전 헉.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거미줄을 저렇게 정교하게 치는 녀석, 참 경이로운 동물이다 그려.

영글어 가고 있는 초록빛 토마토.

텃밭의 상당한 부분을 고추나무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놀란건 가지들에 어찌나 벌레가 많은지! 예전부터 풋고추나 오이는 벌레가 많이 꾀어 농약을 사용하지 않기가 참 힘들다고 들었는데, 풍뎅이 비슷하게 생긴 녀석들이 가지에 다닥다닥 수백마리씩 달려있었다. 좀 더 따고 싶었지만 솔직히 좀 겁남.


빨갛디 빨간 고운 색. 근데 저 가지에 보이는 저런 벌레들때문에 소심하게 몇개만 땄다. 어휴.

내가 딴 것, 사장언니가 따준것까지 봉지에 담고 나니 한가득이다. 오이가 가지에서 오래 익은 노각들도 몇개 받아오고 방울토마토도 몇 개 따왔다. 아침마다 잡초를 뽑아주는 수고를 거르지 않고 꾸준히 키워오는 모녀사장님, 정말 대단들하시다. 

커피부터 마지막 야채수확까지, 정말 알찬 하루. 버스를 타고 오면서 더위에 지쳐 몸은 참 피곤했지만 집-회사를 오가는 강남 콘크리트 거리를 조금만 벗어나도 이런 하루를 보낼 수 있단 생각에 마음만은 여유로웠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얼마나 보고 배우고 경험할 것이 많은지 새삼 느끼고 왔다. 몇년전 친구와 재래시장을 갔었을 때 사과 코너를 들렸는데,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사과들을 보면서 친구가 얼마나 놀랬는지 모른다. 일반 슈퍼에는 고르고 골라 반듯한 모양과 일정한 크기의 사과들을 진열해 놓으니, 놀랄법도 하지만 말이다. 

카페 블루메는 서래마을 3번 게이트로 쭉 들어가면 바로 나온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요기 블로그에서 운영중.


ps. 그나저나 집에 오는 길에 얼굴 벌겋게 익고 야채 한가득씩 들고 지하철 탄 두 아가씨들, 지하철에서 꽤나 시선집중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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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2010년 10월 28일) : 팻투바하님 블로그에서 접한 소식인데 봉에보가 문을 닫는답니다 엉엉...참고하세요.

요리에 좀 더 관심을 가지면서 관련 서적을 접할때마다 골치아픈 한 가지가 생겼다. 서양요리의 역사와 기술 전반에 깊고 넓게 깔려있는 프랑스요리 덕분에 바로 불어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것. 마구 읽어내려가다가 불어 한 마디 튀어나오면 딱 막히고. 제대로 된 발음은 전혀 모르는데 미국식 발음으로 읽어주자니 안타까워하다 못해 분노할 프랑스인들이 생각나 입안에서 대충 샹숑섕거리고 넘어가기 일쑤였다. 예전 대학때도 와인 테이스팅 수업을 들으면서 불어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 공부하고 외우느라 쫌 고생을 했었다. 와인 가게에 가서도 프랑스 와인 뭐 있냐고 물어볼 때 대충 얼버무리면서 샤또...거시기...뭐 있잖아요 하기가 일쑤. 

그래서 결심했다!

불어 공부하기로. 음하하.

여튼 몽환적인 불어발음을 익히는데 뭔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주말브런치에 프렌치를 먹어주기로 했다. 이태원에서 작년부터 자자히 들어왔던 봉에보(Bon et Beau)로 예약. 

여기서 불어 한마디!

Bon = Good, 좋다
et = and, 그리고
Beau = Beautiful, 아름답다.
합치면 좋고 아름답다는 뜻.
구뗴라 뀌진 블로그의 클라크님 한마디 : 진선미 중에 진이라는 뜻이랍니다!

발음은 입을 한껏 오무려주고 약간 뽕- 하는 느낌으로 통 튀게
한국어 '에' 처럼, 그러나 약간 입을 덜 벌리고 짧고 에로틱하게
그리고 입술 오무리고 약간 섹시하게 내밀어주면서

Bon et Beau에서 내놓는 음식들은 느끼함과 짭짤함, 감칠맛이 풍만한 프랑스 요리다. 어떤 분들은 처음엔 약간 거부감이 느껴지실지도. 우리가 이 날 주문한 메뉴는 35,000원 브런치 코스메뉴. 예전엔 2만원 브런치 메뉴있었는데 이제 하지 않는다 함.

우선 아주 따끈한 프렌치롤과 또띠아와 함께 아래 스프가 나왔다. 스페인 스타일인 가즈파쵸(Gazpacho)로써, 토마토 베이스며 차게 서빙된다. 위에 아보카도 크림과 양파 등의 살사토핑. 아주 상콤하며 전체적으로 식감이 다양하게 잘 살아있어서 더운 여름날에 에피타이저로 그만!

그 다음 등장한 오징어 리조또. 보통 오징어가 큼직큼직하게 썰어들어가는데 여기는 밥알과 양파와 전체적인 크기가 비슷하게 손질되어 좀 더 조화로운 맛이 났다. 사각함이 살아있는 양파와 쫄깃한 오징어의 식감 역시 굳. 

짭쪼롬한 연어와 감자요리, 그리고 내가 싸랑하는 수란과 홀렌데이즈 소스. 홀렌데이즈 소스는 버터와 달걀 노른자가 주재료인데 마요네즈 만드는 것처럼 휘핑을 매우 열심히 잘해줘야 한다. 내가 만든 것은 뭔가 뻑뻑했는데 요기는 참으로 부드러움(다, 당연한 건가). 신선한 통후추도 플러스. 

이 아름다운 작품은 닭모래집 보리 리조또. 각 재료가 너무 조리가 적당히 잘 되었고 씹으면 씹을수록 깊은 맛이 난다. 그러나 전체적인 느끼함과 생소한 소스맛이 약간의 호불호가 갈리는 메뉴였었음. 개인적으로 먹으면 먹을수록 약간의 새큼함과 짭짤함, 버섯향이 어우러져 중독되는 맛. 

리조또 말고도 자몽 스파게티와 오리요리를 시켰는데, 자몽 스파게티 완전 강추. 토마토 소스와 쌉싸르달콤한 자몽이 그렇게 잘 어울릴 줄은 정말 몰랐다. 사진이 완전 흔들려 못 올리는 것이 아쉽...

그리고 이 날의 베스트, 디저트. 

토마토 샤베트가 나왔는데, 사실 메뉴에서 봤을 땐 어떤 맛인지 상상이 잘 가질 않았다. 토마토쥬스 얼린 정도밖의 상상력의 한계. -ㅅ- 옆 테이블에 앉아계시던 분이 "으와 완전 맛있어!" 하시길래 좀 기대하긴 했는데, 진짜 일행 모두 한스쿱으로는 너무 아쉬웠을 뿐이다. 정말 통으로 포장해서 파시면 사왔을텐데.

밑에는 알로에스러운 느낌의 바질씨앗이고, 그 위에 부드럽고 새콤하고 상큼하고 은은한 단맛의 토마토 샤베트. 위에는 상큼함을 배가시켜주는 레몬 슬라이스 살짝. 아, 아침으로 먹고 싶다. 츄릅...........


전체적으로 훌륭한 조리에 섬세함과 창의성이 팍팍 느껴지는 정직한 요리. 저녁으로 한 번 먹으러 가야겠다. 햇살은 너무너무 좋았지만 역시 프렌치는 확 땡기지 않을때 가면 브런치로는 좀 무거운 감이...셋이 각각 코스요리 시켰는데 배불러서 다 못먹었다.

위치는 아래 지도 참고. 이태원로에서 오른쪽으로 꺾었을 때 오르막길이 있고 한남제일교회가 보이는데, 그 왼쪽에 있는 오르막길 샛길로 가야한다. 엥 맞게 가고 있나 싶을때 10미터만 내려가면 바로 식당이 보임. 예약은 02-3785-3330으로.


Bon appét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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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전부터 웬만한 맛집 / 미식가 블로그에 꼭꼭 등장한 정식당이라는 곳이 있었다. 한마디로 한식의 맛을 전혀 새로운 식감과 비쥬얼로 변신해 내놓는 "New Korean"이라는 쿠진을 선보이는 곳이다. 

이곳도 파인 다이닝을 주도하고 있는 Gastronomy(Gastronomy 자체는 좀 더 넓은 의미의 미식, 문화와 음식에 대한 연구를 총칭하는 용어) 문화에 기반한, 즉 분자요리인데, 사실 난 여러 블로그들을 보면서 Gastronomy 이런 레스토랑들이 내놓는 음식들에 엄청난 기대가 가면서도 과연 이것이 정말 맛있을까,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샐러리와 흑미라던지, 가리비와 오미자 등의 조합과 음식보다 미술작품에 가까운 비주얼은 그 맛이 상상이 되지 않았고, 당일에도 2%의 의심을 품고 정식당으로 향했다. 

점심코스는 4만원과 7만원으로 두가지가 있었는데, 4만원짜리 코스를 택했다. 여기에 10% 택스 추가.

첫 타자는 머루젤리와 푸아그라 무스. 그리고 청양고추 바게트와 크렌베리로 추정되는 달달한 얇고 바삭한 빵이 함께 서빙되었다. 달달한 빵과의 조화가 좋았으며, 개인적으로 푸아그라의 사육과정 때문에 먹을 때 100% 마음이 편하지는 않으나, 녹진한 푸아그라와 상큼한 머루의 조합은 좋았음. 그러나 제일 감동은 청양고추 바게트. 예전 Hyatt 호텔 부페에서 먹은 미니바게트 만큼의 감동이었다. 겉은 바사삭하고 안은 뽀송하고 고소하고. 거기다가 청양고추가 아주 잘게 다져서 들어가 있는데, 그 겉돌지 않고 잘 어울리는 조합히 심히 놀라웠으며, 절대 오버스럽지 않은 매운맛, 그렇지만 은은하게 입안에 계속 맴도는 알싸한 매운맛이 매우 즐거웠다. 철저하게 계산된 듯한 이 조합과 매운 정도에 이미 다른 요리들에 대한 기대감이 확 올라갔다.

그 다음 나의 코스였던 해산물 샐러드. 내 앞에 놓여졌을 때의 그 비쥬얼 감동은 생생하다. 저온건조한 메추리알 노른자, 페타치즈, 멜론류(참외였으려나), 그리고 바닥에는 라임젤리. 옆은 자몽거품과 아이올리소스에 버무린 가리비(또 다른 해물류도 있었음). 무슨 맛인지 전혀 상상이 안 감.


나에게는 이 디쉬가 그날 최고의 쇼크였다. 제일 놀라웠던 것은 이파리 한입, 새끼손톱만한 치즈, 소스 한 방울이 너무나 강렬하고 생생한 맛을 뿜어냈다는 것. 특히 저 초록색 소스는 샐러드 야채로 자주 등장하는 arugula를 쓴 것 같은데 무슨 농축엑기스 폭탄이 입안에서 터지는 듯한 정도의 강렬함이었다. 재료 본연의 맛을 극강으로 끌어올린다는 게 이런거구나 싶었음. 먹고 한참 정신놓고 있었다. 

그 다음은 밥/면류 삼총사. 보리된장 리조또와 시금치 볶음밥, 그리고 청양고추 수제비  세가지 중 한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우리 일행은 세명이었으므로 한가지씩! 요것들도 다 맛있었는데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마일드한 느낌으로 약간 쉬어가는 느낌.

보리 된장 리조또. 가운데 동글동글한 하얀 녀석들은 무엇일까요?
무려 깍두기. 정말 알싸하게 매운 맛이 난다.

이건 시금치 볶음밥. 역시 깍두기와.

이건 내가 시킨 청양고추 수제비. 베이컨의 고소함과 크런치가 지나가면 크리미한 소스가 느껴지고 그후 치고 올라오는 역시 정제된, 그러나 확실한 매운맛. 거기다가 완~전 쫄깃한 치자반죽 수제비. 

이 쯤 먹고나니 메인이 너무너무 기다려졌다. 도대체 뭐가 나올 것인가.

그리고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브리오슈로 감싼 연어. 그리고 몇가지 야채/과일 다이스와 망고 소스. 이것도 역시 다양한 맛이 너무 조화롭게, 그러나 각각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일단 드셔보시길.

너무나 아름다운 비주얼의 이 디쉬의 이름은 '보물섬'. 가자미와 각종 야채, 그리고 조개국물. 맛의 조화는 좋았으나 식감면에서 생선이 약간 더 부드러웠으면 어떨까 싶었다.

이 날 세명 모두의 찬사를 얻은 메인인 '오감만족 돼지보쌈'. 참 재밌는 이름. 정말 한폭의 그림같다고!
바삭쫄깃부드러운 돼지고기와 달달하고 부드러운 양파? 소스와 고추가 잘 어울려 완벽한 한 입을 만들어냄. 강추메뉴.

이제 디저트가 나올 차례. 메인들은 너무나 맛있었는데 디저트가 약한 것보다 더 큰 실망은 없는 것 같다. 대표적인 예가 한정식집에서 화려한 코스 후 참외와 수박한쪽, 마트서 파는 매실주스 한 잔 내오는 것. 그렇지만 이곳은 디저트를 기대하지 않을수가...

이것은 수정과 맛이 나는 무스/젤리/스펀지케익 조합. 왕신기. 계피향이 강하지도 않고 딱 적당. 아래는 무려 당귀 아이스크림인데 쌉싸르한 맛이 바닐라와 매우 잘 어울렸다.

이것은 팥빙수를 접시위로 옮겨놓은 디저트. 밀크 아이스크림에 올려진 저 쿠키 너무 맛있었으며 녹차무스와 밤도 좋았다. 전체적으로 맛있게 먹은 디저트이나 재료 자체의 맛을 끌어내고 조합했다기보다는 이미 있는 음식의 맛을 만들어낸 것이라 다른 음식보다는 감흥은 약간 덜함. 수정과에 한 표. 봉에보에서 먹은 엄청난 감동의 토마토 샤베트 같은 디저트가 좀 더 내 취향이기도 하고 전체적인 흐름에 더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었다. 

아, 그리고 디저트 먹기전에 빵조각 등 테이블 깨끗이 한 번 치워주는 서비스, 매우 간단한데 의외로 안해주는 식당이 참 많으나 정식당은 역시 박박 긁어(?) 깨끗하게 치워줘서 흐뭇했음.

마지막으로 차 혹은 커피와 쑥 피낭시에가 나오는데...이 귀여운 것들 정말 대단했다. 폭신하면서도 쫄깃하고 상큼하고 달달하고 부드러운. 정말 한무데기로 사오고 싶었다.

여기까지가 점심코스. 한국에서 최고의 dining experience였으며 가격대비 너무 만족스럽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식감, 온도, 맛의 조화 등 모든 것들이 100% 완벽하게 계획되고 접시 위에 그대로 실현되어 나오는데, 내가 음식 한 접시를 먹고 있다, 이런 느낌은 좀 덜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다. 그렇지만 정제된 완벽함과 섬세함이 끌어내는 미각경험의 정점. 왜 분자요리가 이렇토록 각광을 받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식사였다.

여담으로, 블로그들을 읽다보면 정식당 관련해 한식의 진정한 세계화가 뭐니 New Korean이란 이름이 적합하지 않다니 말들이 있는데, 요리는 결국 Anthony Bourdain이 말한 것 처럼 Pleasure Business, 쾌감을 위한 것 아닌가. 어떤 요리법이던, 재료던, 다양하게 조합하고 창조해서 먹는 사람에게 이 정도의 놀라움과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훌륭한 요리라고 생각한다. 거기다 한식에서 쓰이는 다양한 맛의 조합에서 영감을 얻고 신선한 비주얼과 식감을 부여해 한식에 익숙한 한국인들도 새롭게 먹어보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는 데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도산공원 근처에 위치한 이곳의 더 자세한 정보는 윙버스 링크에서 확인해 보시길. (02) 517-4654로 예약은 필수. 일요일 휴무라 들었는데 블로그 보다보면 가신 분도 계신 듯? 여튼 확인 요망.


ps. 얼른 돈 모아서 이제 저녁코스 도전해야지. -ㅅ-
pps. 정식당의 로고는 올리브 가지와 냉이.
<출처 - http://blog.naver.com/power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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