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단상


며칠 전 고등학교 후배를 오랜만에 만나 저녁을 먹게 되었다. 계산을 하고 일어서는데 쿠폰을 나누어 주며 맞은편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 한 잔은 무료라는 것이다. 큰 3층짜리 건물에 사람도 많고 해서 가볼까, 하는 마음으로 계단을 올라가는데 커피향기대신 큰 커피체인점에서 느껴지는 불길한 느낌이...

서울을 점령하고 있는 큰 커피체인점들을 내가 싫어하는 이유는 커피에 대한 정성을 전혀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작동하는 방법과 레시피들만 배운 소위 '바리스타'라는 사람들은 입이 델 정도로 뜨겁고 쓰디쓴 커피를 일회용 컵에 부어댄다.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는데 역시 펄펄 끓는 상태로 배달. 그리고 난 종이컵에서 느껴지는 그 은근한 신문지 냄새며 왁스도 좀 꺼림칙해서 웬만하면 머그잔에 달라고 하는데, 결국 두시간 있는 동안 반도 못 마셨다. 휴.

그 실망감을 달래기 위해, 오래전부터 나의 아지트인 강남역 레이나(LEINA)를 간만에 찾았다. 레이나는 맛집과 음식문화의 불모지인 강남역에서 유일하게(내가 알기로는) 드립과 사이폰 커피를 맛볼수 있는 소중한 곳. 

역시 온도계가 꽃혀있는 주전자들. 그 뒤로 분주한 바리스타 언니.

나는 파나마 산, 친구는 멕시코 산 커피를 시켰다. 각각 드립과 사이폰으로. 바로 드립 들어가시는 곽 바리스타님. 나중에 알고보니 관련 대회에서 상도 타신 분.


마지막에 여과지가 갈색으로 물들며 커피 거품이 풍성하게 올라오는 저 순간, 너무 아름답다.

한김 꺼지며 슈욱 가라앉는 고운 거품.

짜잔. 이 곳은 잔들도 다 너무 예쁘다. 커피 마시는데 종이컵과 이런 컵의 차이는 분명히 느껴진다.

과일 맛이 감돌고 약간의 산도가 느껴지는, 긴 여운이 남는 훌륭한 커피 한 잔. 며칠 전 느꼈던 실망감을 한 번에 내려주는 따뜻한 한모금.

친구 커피는 사이폰으로 축출. 샌프란도 그랬지만 사이폰은 대부분 일제품.

서빙을 기다리는 커피.

수다를 떨며 홀짝홀짝 마시고 있는데 바리스타 분이 콜럼비아 커피를 샘플로 한 잔 내려주시는 것이 아닌가. 세가지를 비교해 보면서 마시는데 요것은 약간 더 보리차 같은 구수함이 느껴졌다. 

거기다가 나중에 조인한 친구는 예카치프를 시켰는데, 사이폰과 드립 중에 고민하다 사이폰으로 주문하니 나중에 드립으로 내린 버전을 샘플로. 그렇게 계속 조금씩 얻어먹다 보니 내 앞에 수북한 잔들.

정성을 들여 내린 커피는 식어도 맛있다. 오히려 더 달달한 기운이 느껴지면서 점차 변화하는 맛을 느낄 수 있다. 

커피는 굉장히 많은 연습과 지식이 필요하며 관련된 역사와 문화도 엄청나게 방대한데, 커피 원두를 돈으로 보며 막 태우고 막 갈고 막 내리는 커피샵들을 보고 있으면 난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그런 곳들에게 공정무역까지 기대하는 것은 정말 영 무리인 것일까? 저 멀리 남미나 아프리카 대륙에서 땀흘리며 고생한 농부의 손길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커피 한잔을 내리는 비법은 그 원두를 정성과 관심으로 소중하게 다루고 최선을 다해 내리는 것이라 생각된다.

여튼, 레이나에서 깜짝 테이스팅을 하게 되어 매우 즐거운 저녁이 되었다. 커피 좋아하시는 분들은 바에 앉는 것을 추천드린다. 바나 레스토랑과 마찬가지로, 바리스타나 바텐더, 주인들과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고 딸려오는 서비스까지, 완전히 다른 경험을 맛 볼 수 있다.

레이나는 강남역 시티극장 바로 뒷 골목(7번 출구 뒷골목) 2층에 자리잡고 있다. 예전에 맛보았던 와플도 맛있었던 기억. 아주 옛날의 소박함은 이제 덜하지만 여전히 커피를 사랑하고 아끼는 실력파 바리스타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니 강남역에서 좀 특별한 공간을 원하시는 분들은 한 번쯤 들려보시길. 물론 원두도 판매.
 
ps. 마지막엔 미니 핫초코 한 잔 타주시는 센스까지!

pps. 커피 숙취는 술 숙취보다 더 무서운 것 같다. -ㅅ-.


지난 주말 친구와 가로수길에서 브런치를 먹고 친구가 꽃꽃이를 배우는 꽃집에 잠깐 들렸다. 오랜만에 구경하는 꽃들과 향기에 취해 열심히 둘러보고 있는데, 한켠에 바질 묘종들이 주욱 진열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에선 백화점 지하마트 아니면 쉽사리 찾아보기 힘든 녀석이라 너무 반가운 마음에...무려 다섯송이나 질러버림. 그것도 두팔로 안고 낑낑대야 하는 사이즈의 화분에다가. 

꽃집을 나서는데 주인장 언니 왈, "잘 키워서 맛있게 드세요!". 누가 들으면 강아지 사다가 복날에 잡아먹는 줄.

바질을 비롯한 식용허브는 키우기 나름 수월해서 선인장도 말라죽이는 정도의 원예솜씨를 가지신 분이 아닌 이상 적극 추천한다. 말린 허브가루와 신선한(그것도 직접 키워 막 잎을 딴) 허브의 차이는 음...모토로라 흑백 스타텍과 새로나온 아이폰 4 정도? 

아 싱그러 싱그러

바질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단골 아이템인 카프레제부터 파스타, 피자에도 잘 올라가고 페스토의 주재료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바질 김렛(Basil Gimlet)이라는 칵테일도 강추추추추. 다음에 바질 좀 자라면 사진과 함께 레시피 올려드리겠당 :)

직접 키워보기에 도전할 경우에 기억할 몇가지!
  • 바질은 햇볓이 중요하니 볓이 잘 드는 창가에 놓아둔다.
  • 물은 흙이 마른 듯한 느낌일때 밑면까지 젖어들도록 축축히. 건조함에 따라 4일에서 일주일에 한번 정도.
  • 바질이 자라면 흰 꽃이 피는데 꽃이 피기 시작하면 잎이 굳어버리니(무슨 마술에 걸린 공주같은 느낌 -ㅅ-) 봉우리가 생기려고 하면 얼른 따준다.
  • 모종을 여러개 사서 심어놓고 각 줄기에서 잎을 따준다. 한 줄기에서 다 따버리면 잎이 다시 자라나기가 어렵다.
바질외에도 다양한 로즈마리, 민트 등의 다양한 허브를 모종 및 소량포장으로 파는 인터넷 농가가 몇 군데 있던데 살펴보시고 더욱 즐겁고 향기로운 요리타임 되시길!  

신금쇼핑몰 skfarm.co.kr
엔젤농장 angelfarm.co.kr
허브아이 herbi.co.kr

무럭무럭 잘자라라...어서 먹게 우후후

그나저나 내가 바질을 산 가로수길의 런던플라워앤가든의 실장님은 은행 일 십년하다가 때려치시고(?) 영국으로 건너가 클래스에 전부 투자하셔서 플로리스트로 계심. 또 한번의 동기부여 :D



샐러드는 물론이고, 마요네즈, 드레싱, 하물며 오꼬노미야끼 위에까지 올라가는 마요네즈는 부엌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 무려 1750년대부터 존재한것으로 추측되는 요넘은 유럽, 미주, 러시아, 일본, 한국, 칠레, 호주에서 굉장히 다양한 용도로 엄청난 양의 섭취가 이루어지고 있다. 어제 갑자기 마카로니 샐러드가 먹고 싶어서 슈퍼에 갔는데 하필 작은 사이즈의 마요네즈가 똑 떨어졌다는. 그래서 오랜만에 집에서 팔운동 좀 하기로 했다. 

마요네즈의 주재료는 딱 두가지 - 달걀노른자와 식용유다. 이 둘이 서로 분리되지 않도록 잘 저어주면 저렇게 매끈하고 노오란 크림상태로 변신한다는 것. 여기에 유화를 돕거나 간을 맞추는 역할의 물, 레몬즙, 겨자가루와 소금, 백후추 정도가 들어가게 된다.

제일 중요한 달걀과 식용유 비율은?

달걀노른자 30ml (약 한개반에서 두개) : 식용유 240ml (약 한컵)


이 정도의 양은 거의 두컵에 달하는 마요네즈를 만든다. 부재료는 물과 레몬즙 각 1.5 작은술 (15ml)에 가루류 약간씩. 

그럼 어떻게 이 간단한 재료들이 뿅하고 마요네즈로 변신하는지 살펴보자.

1. 우선 식용유를 제외한 모든 재료를 거품기로 잘 풀어준다. 이때 소금/후추도 같이 넣어준다. 나중에 넣으면 잘 섞이지가 않는다.
2. 식용유를 방울방울(진짜로) 떨어뜨려가며 마구 휘핑기로 젓기 시작한다. 실처럼 가늘게 부어주어야 함. 절대 한번에 식용유를 들이붓지 않는다. 완전 분리되고 난리남.
3. 1/3정도의 식용유가 들어갔으면 조금씩 속도와 양을 늘려 저어준다. 식용유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점점 되직해지니, 원하는 양이 아닌데 이미 되직할 경우 물이나 레몬즙을 조금씩 넣어 풀어준 후 식용유를 더 추가한다.

마요네즈가 분리되었을 땐 어떻게 해야 하나? 

마요네즈가 분리되기 시작하면 잠시 멈추고 달걀 노른자 동량에 물을 한작은술넣고 잘 푼 후 분리된 마요네스 믹스쳐를 조금씩 부어주며 휘핑해준다. 그럼 다시 매끄럽게 변신.

그 외에 부수적인 유의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 날달걀이 재료이기 때문에 제일 신선한 달걀을 사용하도록 한다.
* 올리브오일은 너무 향이 강해 피하는 것이 좋다. 일반 식용유가 적합하다.
* 레몬즙 대신 식초를 써도 무방한데 좋은 퀄리티의 식초를 사용하길 권한다. 나중에 냄새가 구릴 수 있음.
* 믹서기를 사용해도 괜찮은데 양이 적을 때는 손으로 휘핑해주는 것이 구석구석 잘 된다.
* 재료들은 실온의 온도가 좋다.
* 적은 양만 만들고 만든 마요네즈는 바로 냉장해 1주일내에 끝내버린다.

어제 이렇게 만든 마요네즈에 겨자/설탕 약간 넣어주고 토마토, 셀러리, 양파를 넣고 마카로니 샐러드를 만들었다. 우루과이전 보면서 마구 퍼먹음.


샐러리 좋아하시는 분들은 연한 잎파리 골라서 파슬리 대신 다져 섞어주면 더 풍부한 샐러리의 향을 즐길 수 있다.

근데 아직 팔이 좀 욱신댄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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