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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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은 맛있는 만큼 참 다루기가 까다로운 존재다. 달걀로 부엌에서 하는 작업들을 생각해보자. 우선 껍질 들어가지 않게 잘 깨뜨리기, 노른자 터트리지 않고 예쁘게 후라이 부치기, 각잡아서 반듯한 계란말이 만들기, 노른자가 가운데 오고 푸른끼 없이 달걀 삶기, 원하는 정도로 알맞게 반숙하기, 흰자거품 단단하게 내기, 얄팍하게 지단 부치기 등등 좀체 수월한 것이 없다. 게다가 흰자라도 바닥에 흘렸을 경우 박박 문질러 비누칠해서 닦지 않는 이상 계속 미끄덩 미끄덩. (좋은 팁 있음 공유좀 플리즈)

달걀이 이렇게 다루기가 어려운 이유는 힘과 열에 매우 예민하기 때문이다. 계란 후라이를 예로 들어보자. 어느 저녁, 별다른 반찬이 없어 후라이나 해먹으려고 달걀을 하나 꺼내고 팬을 불에 올려놓는다. 기름을 휘 둘러주고 잠깐 핸드폰이랑 놀다가 손을 올려보니 뜨겁게 달궈졌다. 의기양양하게 후라이팬 가장자리에 달걀을 터프하게 탁탁 두드려 깬다. 달걀이 팬위로 퍼지며 뜨거운 기름에 흰자가 치직거리며 하얗게 익는다. 엇 껍질이 들어갔다. 손가락으로 빼내려는데 미끄덩거리기만 하고 자꾸 빠져나간다. 그러다보니 흰자는 다 익어버려 껍질이 보이질 않는다. 에잇, 모르겠다. 포기하고 윗면을 슬쩍 익혀주려 뒤집으려는 찰나, 어라, 흰자가 바닥에 붙었다. 뒤집개로 밑면을 몇번 퍽퍽 긁어주니 떨어진다. 그런데 너무 터프하게 긁었는지 노른자가 다 터져서 마구 흐른다. 대충 벅벅 긁어서 익혀준 다음에 얼른 그릇에 담고 누가 내 처참한 요리감각을 눈치챌까봐 두입에 끝내버린다. 

상상했던 후라이
<출처: http://whatscookingamerica.net>

현실속의 후라이
<출처: http://whatupduck.com>

계란후라이 따위야 컵라면 정도로 쉬운거 아닌가, 하며 좌절한다. 그러나 그럴 필요 없다. 달걀은 절대 다루기 쉬운 존재가 아니기 떄문이다. 위의 예에서 가장 큰 실수 하나, 너무 처음부터 열을 세게 가했다. 여자들도 너무 처음부터 들이대면 호감있다가도 완전 비협조적으로 나오지 않는가. 거기다가 너무 터프하게 다뤘다. 스킨쉽과 똑같단 말이다! (응?)

여튼, 하고 싶은 말의 요지는...달걀은 삶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지 몇초만에 익어버리기 때문에 원하는 색이나 형태를 살리려면 극도의 정교함과 스피드가 필요하다. 항상 같은 세기의 불이 아니라 세게 할 때와 약하게 할 때를 잘 알아서 불 조절을 하고, 민첩하게 해야 한다. 한마디로 밀당을 잘해야 한다.

그럼 아래와 같은 오믈렛은 도대체 어떻게 만드는 거냐고?
 


달걀 두세개를 멍울 없이 젓가락으로 잘 풀어준다. 고운 체에 한 번 내려 알끈을 제거한 후, 생크림이나 우유를 한큰술 추가해 약간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거기에 소금과 백후추로 간 잊지 마시고.

을 중불 달궈주는데, 약 지름 15-18cm의 둥근 후라이팬이 좋다. 버터 반큰술과 기름 반큰술을 둘러준다. 버터만 하면 발연점(기름이 연기가 나는 온도)이 낮아서 쉽게 타고, 기름만 하면 너무 미끄럽고 버터의 고소한 맛이 없다. 바닥만이 아닌 가장자리도 잘 기름칠을 해주신다. 

을 살짝만 낮추고, 한큰술 정도를 남겨 놓은 나머지 달걀 푼 것을 한번에 스르륵 부어준다. 가장자리가 익는 것이 보일때 바로 빠르게 나무젓가락으로 휘휘 저어주며 몽글몽글하게 스크램블을 만든다. 몽글이들이 한 엄지손톱만한 것이 좋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아직 달걀물이 촉촉하고 빤짝이게 고여있는 정도로만 익혀줘야 한다는 것이다. (온도가 너무 낮으면 몽글몽글 볼륨이 제대로 안나고, 너무 높으면 정말 5초 이내에 다 꾸덕하게 굳어버린다.) 너무 굳지는 않았는데 촉촉한 달걀물이 고인것이 안보이면 아까 남겨뒀단 달걀물을 마저 부어준다.

재빨리 을 제일 약하게 줄인다. 이때 팬이 많이 달궈져 있거나 열전도가 오래가는 팬이라면 불에서 바로 띄어준다. 몽글몽글한 스크램블 덩어리들을 납작하게 넓은 타원형으로 모양을 잡아준다. 그 다음에 후라이팬 손잡이의 반대쪽 가장자리로 슬쩍슬쩍 밀어준다. 달걀의 가장자리가 팬의 옆면에 걸쳐질정도로 밀어졌으면 후라이팬을 살짝 기울여 그 가장자리 밑면이 먼저 익도록 해준다. 아랫면이 얇게 굳어졌으면 주걱이나 스패츌라로 가장자리를 접어주며 안으로 만다. 그리고 반대쪽에서 가장자리 쪽으로 한번 더 밀어준 후 다시 안으로 마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다시 밀고 말고 한 후 계속 살짝씩 밀어주면 얘가 저절로 말리기 시작한다. 길쭉한 럭비공 모양으로 다 말아졌으면 여전히 가장자리에 놓고 살살 굴려주며 팬을 기울였다 눕혔다 하면서 전체적으로 고루 노란색으로 예쁘게 익혀준다. 

을 넣고 싶다면 원하는 재로 조금 물기 없이 준비한 후 처음에 스크램블 둥그렇게 펴 준후 약간 바깥쪽 가장자리에 올려놓는다. 이 때 그냥 뿌려주는 것이 아니라 약간 박아준다는 느낌으로 눌러준다. 그렇지 않으면 말 때 다 튀어나온다. 

아 저 느글느글한 체다치즈의 자태...


정확히 몇시간인지는 모르지만, 하루 중 내가 인터넷에서 보내는 시간은 좀 챙피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대게 컴퓨터 앞에 않으면 먼저 이메일 확인으로 워밍업. 메일을 보다보니 트위터에 새로운 팔로워가 생겼다는 반가운 알림메세지. 유후거리며 트위터에 로그인해 프로필을 보려다가 새로 올라온 몇십개 메세지에 잠시 한눈팔림. 읽다가 누가 독일 와인에 관한 질문을 올렸는데 윽, 답해주려니 예전에 다 배운거였는데 기억 하나도 안난다. 당황해서 즉시 독일 와인 검색해 나오는 글들 한 번 섭렵해주고 일시적인 안도감에 잠시 안정을 취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싸이서 방명록 남기고 클럽들 들려서 새글 확인하고 창을 닫으려는데 네이트온에서 친구가 웃긴거라며 동영상 링크를 보내준다. 보면서 한참 키득대다 관련 동영상들 몇 개 클릭클릭. 잠깐, 이메일 확인 아직 다 못했는데.  

이러다 보면 오늘은 11시에 잠들자, 라는 결심은 안드로메다에 가 있기 태반. 그러나 나에게 인터넷만큼 조심해야 할 곳이 있다면 바로 부엌. 한 번 발을 담그기 전에 스스로 정신차리지 못하면 오늘밤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오늘 비도 추적추적 오고, 자격증 시험 공부에 운동도 해야하고 빨래도 밀렸는데 집에 오니 벌써 일곱시반. (마을버스 평소 십분거리 무려 40분걸림 웩.) 대충 씻고 공부할 거리를 뒤적거리다보니 출출해졌다. 오늘은 할일이 많으니 대충 때워야겠군, 하면서 냉장고 앞을 알짱거리다가 라면을 발견했다. 오늘 하루종일 좀 잡스럽게 군것질을 많이해서 약간 건강스럽게 만들어줘야 할 것 같은 압박에 냉장고를 열었다. 흠, 유통기한 3일 지난 우유라, 패스. 곰팡이 핀 치즈(비싼건데 왕짜증)도 패스. 오, 애호박 짜투리와 표고버섯이 있다. 앗싸. 어라, 양파도 있네. 아 맞다, 그제 잡고 얼린 닭도 있지.

주섬주섬 라면토핑(?)을 챙기다보니 어느새 식탁위에는 나름 괜찮은 재료들이 수북히 쌓였다. 갑자기 조미료와 튀긴 면빨따위로 오염시키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며 계획 급수정. (이때 정신차리고 멈춰야하는데 말이다) 간장에 설탕에 파, 마늘, 생강까지 다져주고 레몬즙까지 넣어줬다. 닭과 버섯을 재우고 돌아섰는데...밥이 없다. 국수는 있나? 

동서남북 찬장과 서랍을 다 뒤졌는데 나온건 스파게티면 몇가닥 뿐이었고.  아, 결국 라면에 볶아야 하나 잠시 좌절하다가 순간 (정말 정신이 나갔는지) 저번에 만들었던 칼국수면처럼 수타면으로 만들면 대박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밀가루랑 물 반죽하다 시계를 보니, 헉, 아홉시...

신나게 볶아서 먹고 소파에 잠시 앉아 정신을 차려보니 설겆이는 한가득에 완전 피곤이 몰려왔다. 

공부해야지...
빨래해야지......

하며 주니를 끼고 티비를 보다가 깜박 졸았는데. 일어나니 이제 정말 잘 시간.

오늘도 이렇게 말렸다. 

ps. 문제의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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