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단상

야밤에 닭 잡기

요리단상 l 2010. 4. 24. 22:57
요새 양식 조리 자격증 실기 준비한다고 난리다. 그 중 가장 익숙하지 못한 것은 역시 다뤄본 경험이 제일 적은 생닭과 생생선 다루기. 그래서 주말 전부터 닭 포뜨기 연습한답시고 목우촌 닭 한마리 사놓았다.

금요일 밤에 느지막히 집에 들어와 유희열 아저씨가 오랜만에 생각나 티비를 틀었더니 엥, 기다려도 기다려도 뜨질 않는다. 인터넷 뒤져보니, 웬걸, 결방? 아니 막장 드라마들은 버젓이 방송하면서 왠 음악프로그램을 결방시키니. (개콘도 이제 4주째 결방중이라 완전 짜증나 있음)

갑자기 할 일 없어져 사놨던 닭 잡았다. 시작시간 오전 영시 삼십사분. 목표 시간 십오분. 타이머까지 준비함.

뭔가 야시시해 보이는 푸르딩딩한 미스터 생닭

...십삼분 사십이초 후.


가죽과 살만 남았다.

호러영화 찍은 기분. 쩝.
난 보통 먹는 닭소돼지살코기 및 회를 포함한 해산물류 이외에 다른 부위들이나 동물들을 그렇게 찾아다니면서 즐겨먹는 편은 아니다. 곱창도 작년에 처음 먹어봤고 아직도 몇 점 이상 잘 안먹으며, 남들이 눈에 불을 키는 족발이나 좀 더 매니아적인 닭발도 우와 맛있겠다 침 뚝뚝의 리액션은 전혀 없으니. 완전 미식가이셨던 아버지 덕택에 순대집 가면 나오는 온갖 종류의 절대 뭔지 알 수 없는 고기류들을 어릴 적 부터 접해보긴 했으나 역시 침 뚝뚝은 아니다. 때문에 친구들 만났는데 곱창집 가자 그러면 마음이 무거워져서 어흐흐...(우리 그냥 삼겹살은 안되겠니)

그렇지만 작년말, 요리에 좀 더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소금을 맛만보고 비교할 수 있는 셰프들이나 어릴 적 산속에서 온갖 풀과 약초를 다 뜯어먹어 본 산당 임지호 선생 등의 얘기를 접하게 되니, 이건 정말 닥치는대로 다 먹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마침 작년말, 회사에서 아주 퍼펙트한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바로 북경 출장. 다음과 같은 사진들 블로그에서 많이들 보셨겠지?


 역시 중국에서의 열흘간 출장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음식점들의 메뉴는 전부 크기도 두 팔로 펼쳐들어야 할만큼 크고 무겁고, 앞뒤로 사진까지 빽뺵히 스무장에 야채 요리만 수십가지가 기본인 거의 '음식사전' 수준이었다. 자주 본(먹지는 못하고...) 아이템은 돼지 귀, 거위 곱창, 소 혀, 해마 정도? 으허허.

열흘 중 제일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페킹덕(Pecking Duck), 베이징 오리로 잘 알려진 오리구이를 먹으러 유명한 체인점을 갔었을 때였다. 난 단순히 오리고기와 반찬 조금 정도를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웬걸, 오리 을 먼저 에피타이저로.


뭐, 이 정도는 고급 프랑스 요리에 자주 등장하는 푸아그라랑 똑같지 뭐, 라고 한 점 덜어놓고 야금야금 하던 중 다음 녀석 등장.


고기 같긴 한데 호두 같이 생기기도 했고 무슨 열매 같이 생기기도 해서 옆의 친구에게 물어보니 오리 심장.

그리고 드디어 오리 살코기(껍질 20%). 원래 먹으러 온 거였는데 잠시 잊고 있었음.


그리고 요로코롬 오리 기름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껍질만 서빙.(지방은 맛이 굉장히 잘 배어 들기 때문에 동물성 지방은 다 특유의 맛이 있다. 요리할때 기름 선택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것)


다음 타자. 크억 이것은 무엇이냐. 


오돌도돌 아주 씹히는 맛이 예술이게 생긴 다름 아닌 오리 . 그렇다. 오리 발을 닭발처럼 쪽쪽 빨아먹는 것도 아니고 저며서 통째로 씹어먹는다.

그리고 제일 대망은 차마 호러물로 분류될까 사진을 올리지 못하는..................

오리 머리다. 부리도 그대로 있고 심지어 반으로 뚝 갈라서 를 먹으라고 내놓는다. 그나저나 생선머리는 아무 느낌 없는데 오리 머리는 수줍어(응?)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손톱 만하게 올린다. 클릭하시면 원본 사이즈 나온다. 난 경고했다구)


결국 친구들의 푸쉬와 전문가가 되려면 이 정도야, 라는 과시욕 플러스 용기 플러스 압박이 가해져서 하나씩 다 먹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오리 혀(으하하하)를 먹고난 후에는 정말이지 오리 한마리가 식도를 타고 꽥꽥대며 올라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영화 '에일리언'의 인간 몸에서 에일리언들이 알깨고 나오는 장면을 볼때 드는 그 기분 말이다. 꺄아아. 다행히 옆에 있던 이과두주 한 잔으로 속을 달랬다.(50도 알콜에선 다 죽잖아, 그지?) 입가심하라고 찐한 오리 육수 혹은 엑기스 한 그릇 주긴 했는데, 뱃속에 들어가면 진짜 오리를 살려내버릴 성수 같은 느낌이어서...

사실 맛은 꽤 괜찮았다. 그리고 전부 처음 경험해 보는 맛이고 텍스쳐이고, 뭐 요리 공부에는 당연히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선은 어디일까 궁금해진다. 더 많이 먹을수록 더 많이 안다라는 것이 유일한 진리일까? 그나저나 누가 처음 오리발을 먹어보자 생각했을까 도대체. 보통 우리가 생각하듯이 그냥 에이 정말 배고팠을거야, 가 이유일까나. 정말 바나나나 사과 정도 외에는 도대체 저걸 왜 먹기 시작했을까 항상 궁금하다. 

여러분이 여태껏 먹은 것 중에 제일 새로웠던(or 쏠렸던) 건 뭐였는지?

칡뿌리와 수타면

요리단상 l 2010. 4. 19. 21:32

어릴 적에는 책 읽는 것이 그렇게 재밌을 수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즈음 전까지는 자기전에 네다섯권씩 머리맡에 쌓아놓고 등 하나 켜 놓은채  늦게까지 책을 읽다 학교에 지각하는 것이 굉장히 잦았다. 그 중 제일 좋아했던 책들 중 한권은 Laura IIgals Wilder(로라 잉걸스 와일더)의 '초원의 집' 시리즈의 첫 권인 Little House on the Prairie(초원의 작은 집)였는데, 정확히 세 본 적은 없으나 아마 일백번이 넘게 읽도록 읽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을 세계 전집으로 접하신 분들도 꽤 있겠지만, 간략히 내용을 설명하자면 아버지 어머니 딸 셋으로 이뤄진 미국의 한 가족이 서부로 이주하면서 초원에서 집짓고 밥짓고 농사짓고 우물파고 소기르며 말타며 사는 알콩달콩 모험기이다. 어떻게 보면 사소해 보이는 이 얘기가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의 셀러가 되고 내가 백여번씩 읽은 이유는 일상적인 것들을 굉장한 디테일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직접 벤 나무를 일일이 반으로 갈라 바닥에 깔아 근사한 마루를 만든 후 또 일일이 손으로 훑으면서 나무가시가 없도록 확인하는 일이라던지, 직접 우유를 짜 몇일에 걸쳐 저어주며 당근즙을 짜 넣어 버터를 만든다는 일이라던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마루, 버터, 문, 우물, 옥수수가루 등등을 직접 창조해서 장만해 가는 스토리 한 문장 한 문장에 나는 완전히 빠져들었고, 머릿속에 그 장면들을 그리며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희열과 기쁨을 느꼈다. 

당연한 얘기지만 자라면서 나에게 직접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최고의 관심사였다. 집에서 어머니가 케익을 구울때면 귀찮으리만큼 옆에 붙고 끼어들었고, 학교에서 제일 재밌는 수업은 토마토를 키우고 바느질을 배우는 가정 시간이었다.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누가 직접 고추장을 담구거나 치즈를 직접 만들었다는 포스팅을 발견하면 옛날 '초원의 집'을 읽을 때와 같이 완전 흥분하는 것은 예사. 방학때는 대부분 두유 만들기, 두부 만들기 등의 실험을 하며 보내기 일쑤였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렇게 '직접 만들어 보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냐고? 글쎄, 그러게 말이다. 슈퍼에 가면 이미 다 편리하게 만들어져 있고 포장도 되어 있고 두부 한 모에 십만원씩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얼마 전 잡지를 읽다 너무 고마운 칼럼을 발견했다. 아마 한겨레였던 것 같은데, 이찬웅 씨라는 박사과정을 준비하시는 분이 쓰신 '칡과 커피'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저자가 어렸을 적 전근간 시골의 학교 친구들은 정확하게 주변과 뿌리의 겉만 보고 달달한 칡뿌리가 어떤 건지 금세 알아낼 수 있는 '감성'이 있었고, 그건 절대 쉽게 몇 번의 연습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친구들은 단순히 이미 수확되고 다듬어지고 포장된 칡뿌리밖에 접한 적이 없는 아이들과 달리, 그 이상의 연결고리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 훌륭한 글을 망치기 전에 한 문단 인용을 하도록 하겠다(사실 귀찮음...응?):

커피는 브라질·콜롬비아 어느 고장의 것이다. 뛰어난 감성은 그곳에 가닿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은 것은 상품화 때문이다. 상품화는 이익을 내기 위해 선을 분절한다. 재배와 소비는 직접 연결되지 않고, 농장·하청·착취·수입·유통·광고·판매·할인 등으로 조각난 단계를 거쳐 연결된다. 원두커피를 매장 테이블에 늘어놓고 원주민들의 사진을 원용하면서 조각난 선을 상상적으로 연결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실제가 아니다. 분절된 연쇄의 끝에 대도시가 있고, 도시는 상품의 출력 단자로 포위된다. 그에 맞춰 소비자의 감각은 입력에 반응하는 단말기에 가까워진다. 이런 경우 단말기가 아무리 정교해지고 복잡해지더라도, 그것은 감성의 수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문단을 읽는 순간, 난 무릎을 탁 쳤다. 난 단순히 맛있는 커피의 은은하면서도 다크한 스모크와 초콜렛 향을 느끼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면서 커피빈이 익어가는 농장의 모습, 수확하는 인부의 모습, 상업화로 인한 폐해, 공정거래의 시스템과 중요성 등을 함께 느끼며 그 선들을 이어가고 알고 느끼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오늘 밤 저녁은 직접 만든 손칼국수. 면을 우리밀과 정수기 물, 천일염으로 직접 반죽하고 원하는 굵기와 길이대로 재단하면서(이것도 직접 만드는 것의 대단한 장점이다) 엄청 뿌듯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자랑스러운 마음에 인터넷 서핑을 좀 하고 있는데 평소 내가 즐겨읽는 블로그 쥔장 밥 아저씨 왈, 파는 밀가루들이 맘에 들지 않아 직접 밀을 갈아 파스타를 만들었다..........난 이제 밀을 직접 재배해야 하나?

참, 국수 직접 밀면 농담 아니고 몇십배백배천배 더 맛있다. 진짜 비교 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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