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단상

정확히 몇시간인지는 모르지만, 하루 중 내가 인터넷에서 보내는 시간은 좀 챙피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대게 컴퓨터 앞에 않으면 먼저 이메일 확인으로 워밍업. 메일을 보다보니 트위터에 새로운 팔로워가 생겼다는 반가운 알림메세지. 유후거리며 트위터에 로그인해 프로필을 보려다가 새로 올라온 몇십개 메세지에 잠시 한눈팔림. 읽다가 누가 독일 와인에 관한 질문을 올렸는데 윽, 답해주려니 예전에 다 배운거였는데 기억 하나도 안난다. 당황해서 즉시 독일 와인 검색해 나오는 글들 한 번 섭렵해주고 일시적인 안도감에 잠시 안정을 취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싸이서 방명록 남기고 클럽들 들려서 새글 확인하고 창을 닫으려는데 네이트온에서 친구가 웃긴거라며 동영상 링크를 보내준다. 보면서 한참 키득대다 관련 동영상들 몇 개 클릭클릭. 잠깐, 이메일 확인 아직 다 못했는데.  

이러다 보면 오늘은 11시에 잠들자, 라는 결심은 안드로메다에 가 있기 태반. 그러나 나에게 인터넷만큼 조심해야 할 곳이 있다면 바로 부엌. 한 번 발을 담그기 전에 스스로 정신차리지 못하면 오늘밤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오늘 비도 추적추적 오고, 자격증 시험 공부에 운동도 해야하고 빨래도 밀렸는데 집에 오니 벌써 일곱시반. (마을버스 평소 십분거리 무려 40분걸림 웩.) 대충 씻고 공부할 거리를 뒤적거리다보니 출출해졌다. 오늘은 할일이 많으니 대충 때워야겠군, 하면서 냉장고 앞을 알짱거리다가 라면을 발견했다. 오늘 하루종일 좀 잡스럽게 군것질을 많이해서 약간 건강스럽게 만들어줘야 할 것 같은 압박에 냉장고를 열었다. 흠, 유통기한 3일 지난 우유라, 패스. 곰팡이 핀 치즈(비싼건데 왕짜증)도 패스. 오, 애호박 짜투리와 표고버섯이 있다. 앗싸. 어라, 양파도 있네. 아 맞다, 그제 잡고 얼린 닭도 있지.

주섬주섬 라면토핑(?)을 챙기다보니 어느새 식탁위에는 나름 괜찮은 재료들이 수북히 쌓였다. 갑자기 조미료와 튀긴 면빨따위로 오염시키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며 계획 급수정. (이때 정신차리고 멈춰야하는데 말이다) 간장에 설탕에 파, 마늘, 생강까지 다져주고 레몬즙까지 넣어줬다. 닭과 버섯을 재우고 돌아섰는데...밥이 없다. 국수는 있나? 

동서남북 찬장과 서랍을 다 뒤졌는데 나온건 스파게티면 몇가닥 뿐이었고.  아, 결국 라면에 볶아야 하나 잠시 좌절하다가 순간 (정말 정신이 나갔는지) 저번에 만들었던 칼국수면처럼 수타면으로 만들면 대박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밀가루랑 물 반죽하다 시계를 보니, 헉, 아홉시...

신나게 볶아서 먹고 소파에 잠시 앉아 정신을 차려보니 설겆이는 한가득에 완전 피곤이 몰려왔다. 

공부해야지...
빨래해야지......

하며 주니를 끼고 티비를 보다가 깜박 졸았는데. 일어나니 이제 정말 잘 시간.

오늘도 이렇게 말렸다. 

ps. 문제의 프로젝트.

야밤에 닭 잡기

요리단상 l 2010.04.24 22:57
요새 양식 조리 자격증 실기 준비한다고 난리다. 그 중 가장 익숙하지 못한 것은 역시 다뤄본 경험이 제일 적은 생닭과 생생선 다루기. 그래서 주말 전부터 닭 포뜨기 연습한답시고 목우촌 닭 한마리 사놓았다.

금요일 밤에 느지막히 집에 들어와 유희열 아저씨가 오랜만에 생각나 티비를 틀었더니 엥, 기다려도 기다려도 뜨질 않는다. 인터넷 뒤져보니, 웬걸, 결방? 아니 막장 드라마들은 버젓이 방송하면서 왠 음악프로그램을 결방시키니. (개콘도 이제 4주째 결방중이라 완전 짜증나 있음)

갑자기 할 일 없어져 사놨던 닭 잡았다. 시작시간 오전 영시 삼십사분. 목표 시간 십오분. 타이머까지 준비함.

뭔가 야시시해 보이는 푸르딩딩한 미스터 생닭

...십삼분 사십이초 후.


가죽과 살만 남았다.

호러영화 찍은 기분. 쩝.
난 보통 먹는 닭소돼지살코기 및 회를 포함한 해산물류 이외에 다른 부위들이나 동물들을 그렇게 찾아다니면서 즐겨먹는 편은 아니다. 곱창도 작년에 처음 먹어봤고 아직도 몇 점 이상 잘 안먹으며, 남들이 눈에 불을 키는 족발이나 좀 더 매니아적인 닭발도 우와 맛있겠다 침 뚝뚝의 리액션은 전혀 없으니. 완전 미식가이셨던 아버지 덕택에 순대집 가면 나오는 온갖 종류의 절대 뭔지 알 수 없는 고기류들을 어릴 적 부터 접해보긴 했으나 역시 침 뚝뚝은 아니다. 때문에 친구들 만났는데 곱창집 가자 그러면 마음이 무거워져서 어흐흐...(우리 그냥 삼겹살은 안되겠니)

그렇지만 작년말, 요리에 좀 더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소금을 맛만보고 비교할 수 있는 셰프들이나 어릴 적 산속에서 온갖 풀과 약초를 다 뜯어먹어 본 산당 임지호 선생 등의 얘기를 접하게 되니, 이건 정말 닥치는대로 다 먹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마침 작년말, 회사에서 아주 퍼펙트한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바로 북경 출장. 다음과 같은 사진들 블로그에서 많이들 보셨겠지?


 역시 중국에서의 열흘간 출장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음식점들의 메뉴는 전부 크기도 두 팔로 펼쳐들어야 할만큼 크고 무겁고, 앞뒤로 사진까지 빽뺵히 스무장에 야채 요리만 수십가지가 기본인 거의 '음식사전' 수준이었다. 자주 본(먹지는 못하고...) 아이템은 돼지 귀, 거위 곱창, 소 혀, 해마 정도? 으허허.

열흘 중 제일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페킹덕(Pecking Duck), 베이징 오리로 잘 알려진 오리구이를 먹으러 유명한 체인점을 갔었을 때였다. 난 단순히 오리고기와 반찬 조금 정도를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웬걸, 오리 을 먼저 에피타이저로.


뭐, 이 정도는 고급 프랑스 요리에 자주 등장하는 푸아그라랑 똑같지 뭐, 라고 한 점 덜어놓고 야금야금 하던 중 다음 녀석 등장.


고기 같긴 한데 호두 같이 생기기도 했고 무슨 열매 같이 생기기도 해서 옆의 친구에게 물어보니 오리 심장.

그리고 드디어 오리 살코기(껍질 20%). 원래 먹으러 온 거였는데 잠시 잊고 있었음.


그리고 요로코롬 오리 기름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껍질만 서빙.(지방은 맛이 굉장히 잘 배어 들기 때문에 동물성 지방은 다 특유의 맛이 있다. 요리할때 기름 선택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것)


다음 타자. 크억 이것은 무엇이냐. 


오돌도돌 아주 씹히는 맛이 예술이게 생긴 다름 아닌 오리 . 그렇다. 오리 발을 닭발처럼 쪽쪽 빨아먹는 것도 아니고 저며서 통째로 씹어먹는다.

그리고 제일 대망은 차마 호러물로 분류될까 사진을 올리지 못하는..................

오리 머리다. 부리도 그대로 있고 심지어 반으로 뚝 갈라서 를 먹으라고 내놓는다. 그나저나 생선머리는 아무 느낌 없는데 오리 머리는 수줍어(응?)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손톱 만하게 올린다. 클릭하시면 원본 사이즈 나온다. 난 경고했다구)


결국 친구들의 푸쉬와 전문가가 되려면 이 정도야, 라는 과시욕 플러스 용기 플러스 압박이 가해져서 하나씩 다 먹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오리 혀(으하하하)를 먹고난 후에는 정말이지 오리 한마리가 식도를 타고 꽥꽥대며 올라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영화 '에일리언'의 인간 몸에서 에일리언들이 알깨고 나오는 장면을 볼때 드는 그 기분 말이다. 꺄아아. 다행히 옆에 있던 이과두주 한 잔으로 속을 달랬다.(50도 알콜에선 다 죽잖아, 그지?) 입가심하라고 찐한 오리 육수 혹은 엑기스 한 그릇 주긴 했는데, 뱃속에 들어가면 진짜 오리를 살려내버릴 성수 같은 느낌이어서...

사실 맛은 꽤 괜찮았다. 그리고 전부 처음 경험해 보는 맛이고 텍스쳐이고, 뭐 요리 공부에는 당연히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선은 어디일까 궁금해진다. 더 많이 먹을수록 더 많이 안다라는 것이 유일한 진리일까? 그나저나 누가 처음 오리발을 먹어보자 생각했을까 도대체. 보통 우리가 생각하듯이 그냥 에이 정말 배고팠을거야, 가 이유일까나. 정말 바나나나 사과 정도 외에는 도대체 저걸 왜 먹기 시작했을까 항상 궁금하다. 

여러분이 여태껏 먹은 것 중에 제일 새로웠던(or 쏠렸던) 건 뭐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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