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단상


읽기 전 다음 리스트를 훑어보며 내게 해당되는 사항이 몇 개나 되나 확인해보자.


• 원하는 온도로 예열 세팅 해 놓고 그 후 정말 제대로 예열이 되었는지 따로 확인하지 않는다

• 유리팬이던 철로 된 팬이던 베이킹 자체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믿는다

• 오븐에 반죽을 넣을 때 특별히 어느 높이에 넣어야 할지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구울 것들이 많을 경우에는 그냥 파이랑 케익 등 여러가지를 한 번에 오븐에 넣어서 구워버린다

 오븐에 넣은 후에는 팬을 돌려주지 않는다

 언제 될까, 혹시 타지는 않을까, 끊임없이 오븐을 열어보며 확인한다

 대충 먹음직스럽게 익고 다 된 것 같으면 별다른 확인 절차 없이 꺼낸다

 오븐을 사고 나서 청소해 본 적이 없다


0-2개 : 이미 대체적으로 오븐을 잘 사용하고 있으나, 혹시 유용한 팁이 있을지 모르니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3-6개 : 머핀 속이 제대로 익지 않은 것, 도구나 재료 탓이 아니다. 다음 글을 읽으시고 오븐과 좀 더 친해져 보자.

7-8개 : 반드시 읽으실 것을 권장한다. 


요리는 열이 없으면 대부분 불가능하다. 아니, 어쩌면 요리 자체가 열에 관한 것일 수도. (갑자기 철학 모드) 좀 더 과학적으로 얘기를 해 보자면, 요리의 대부분 과정은 열에 인한 재료들의 물리적 변화이다. 달걀 흰자가 투명한 액체에서 단단한 흰색으로 굳어진다던지, 고기가 갈색으로 변하며 맛이 변한다던지 하는 것 말이다. 베이킹도 마찬가지. 열심히 반죽 다 해 놓고 그냥 상온에 두면 질척한 반죽이 갑자기 뽀송한 머핀으로 변신하지 않는다. 반드시 열을 가해야만 온갖 화학/물리 작용으로 인해 변신한다. 


여기서 얘기는 더 복잡해진다. 무조건 열을 가한다고 머핀이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제때 적절한 온도로 적당한 시간동안 열을 가해줘야만 제대로 봉긋하게 완성이 된다. 때문에 베이킹에서 유일한 열의 원천인 오븐을 잘 알고 다루면 그 만큼 더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맛볼수 있는 것이다. 


많은 분들이 오븐을 다룰 때 크고 작은 실수를 범한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이런 실수들을 짚어보며 도움이 되실만한 팁들을 다루기로 하겠다. 기대해 주씨고! 자 다음 포스팅이 왔어요 왔어!X2v4,

미국과 친하신 분들은 미국 50개 주의 하나인 알라스카를 생각하셨을지도...

여튼, 이 블로그에서 처음으로 소개드리고자 하는 곳은 신사동 작은 골목에 살포시 숨겨진 르 알라스카(Le Alaska)라는 빵집이다. 내가 빵순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회사 지인분이 작년 말에 소개시켜 준 곳인데, 빵이 그렇게 맛있다는 것이다. 서울에 넘치고 넘치는 파리 크라상 등의 대형 브랜드 빵집들이 날마다 어마어마한 양의 빵들을 생산해 내고는 있지만, 대부분 보기에만 좋고 막상 먹으면 밀가루와 설탕 맛 이외에 별로 느껴지는 것이 없는 無맛이라 느끼는 나에게는 너무나 반가운 소식이었다. 

압구정동의 화려한 부티크샵들과 으리번쩍한 카페들을 한참 지나면서 도대체 말로 들었던 아담하고 소박한 빵집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는 순간, 빨간색 벽돌빌딩 일층에 자리잡고 있는 화사한 노란색의 알라스카가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복작거리는 서울을 떠나 완전히 다른 곳으로 온 느낌. 


알라스카의 로고는 빵이 꽃인 왕관 아니면 빵을 들고 있는 쿠키얼굴의 사나이...정도로 보인다. 바게트부터 샌드위치까지 리스트가 되어 있네. 

 
들어가기 전 가게를 지키고 있는 앙증맞은 바다사자와 맞닥뜨려야 한다. 어흥....음.


들어가니 햇살로 가득한 아늑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오른편에는 열심히 반죽을 하시는 남자분과
 뭔가를 재빨리 휘핑하는 한 여자분, 그리고 칙 하며 내려지는 에스프레소 소리가 간간히 들리는 오픈키친이었다. 손으로 쓴 메뉴판과 안이 훤히 보이는 뒷편에 자리한 큼지막한 오븐들도 보였다. 

그 바로 옆에, 정말 먹음직스러우면서 섬세함과 정성, 독창성이 돋보이는 빵들이 주우우우우욱 놓여 있었다. 


구스띠모를 처음 들렸을 때처럼 다 섭렵해보고 싶은 욕심을 꾹 누르고 한참을 고심한 끝에 결국 파이널 초이스로 가득찬 종이백을 들고 가게를 나섰다. 집에 가기 전 참지 못하고 카페에 들려 시식.

크로와상은 탄성이 나올 정도로 정말 겹겹이 잘 부풀어 올라 있었다. 또 야들야들한 겹마다 사르르 골고루 배어있는 버터. 그 옆의 반짝거리는 브리오슈 풍의 트위스트 빵은 솜사탕 같이 보드라웠다. 거기에 콕콕 박혀있는 보석같은 새콤달콤한 크렌베리와 달달한 글레이즈가 어우러져 쉽사리 질리지 않는 맛을 만들어내는데 감동. 


무엇보다 둘 다 너무나도 '신선한' 맛이었다. 설탕 등의 첨가물 외에 뭔가 아른한 단 맛. 마치 수돗물과 정수된 물에서 느껴지는 차이점, 혹은 매연 가득한 강남 한복판에 있다가 시골로 벗어나서 느끼는 공기의 차이와 같았달까. 

집에 와서도 빵 먹기는 계속되었다......


으아아앗 아름다워라


제일 맘에 들었던 두 가지는 아래 견과류 한움큼과 카라멜을 올려준 브리오슈 종류의 빵과 시금치 종류로 보이는 꽈배기 빵. 견과류, 특히 헤이즐넛은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우러나는데 마치 찰리의 초콜렛 공장에 등장하는 절대 물빠지지 않는 껌이 생각났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할깝숑.


이 곳은 르 꼬르동 블루와 동경제과 출신들이 차린 곳으로, 이미 윙버스(알라스카 링크) 등에 널리 알려져 있다. 정확한 주소는 강남구 신사동 653-9(지도 링크)이며, 압구정동 씨네씨티 골목에서 크라제 옆골목인 미니스탑이 있는 골목으로 꺾어들어가면 왼편에 있다.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이나, 내 경험상 여섯시를 넘기면 남아있는 빵이 별로 없다. 열심히 찾아갔는데 정말 빵이 하나도 없이 텅텅 비어있을 수도 있으니 가급적이면 첫 방문은 낮에 해 보시길. 가격은 대개 개당 천원에서 삼천원 사이. 여기 좀 무뚝뚝해 보이시는 쥔장 느낌의 아저씨 계신데 나 약간 팬이다, 으하하.

ps. 그날 바로 끝내버린 흔적.
나는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며 (맛집이라는 단어는 너무 유행어 같아 잘 안쓰게 됨) 밖에서 먹을 기회를 그저그런 음식으로 낭비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어제 저녁은 너무 익힌 펜네 면에다가 밍밍한 토마토 소스, 거기다 몇 개 보이지도 않는 대충 익힌 가지 슬라이스들. 게다가 가격은 무려 이만천원. 음식 남기는 것이 너무 아까워 다 먹긴 했다만.

만석이었던 그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같이 간 데이트남이 리뷰사이트에서 자신있게 골라온 곳이었다. 몇십 명의 사람들이 다 좋은 평점을 줬고 사진들도 맛있어 보인다고. 겨우 두번째 데이트인지라 통후추니 정제후추니 따지는, 음식에 관한 나의 초울트라까다로움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오우, 여기 파스타 정말 맛있죠?" 하면서 씩 웃는 그의 얼굴에 그냥 미소를 띄우며 끄덕거렸다. 식사 후 사람 와글와글한 카페에서 탄맛나는 밍밍한 커피 한 잔과 뻑뻑한 티라미수 한 조각을 먹고 나니 그저그런 음식으로 배만 채운 듯한 느낌에 기분 다운. 물론 그 카페도 소위 맛집매니아라 지칭하는 그분의 추천이었고. (바이바이)

집에 와서 궁금한 마음에 검색을 해 봤다. 레스토랑과 카페 두 곳 다 별 다섯개 만점에 평균 네개로 선방, 거기다가 각각 백여개에 달하는 댓글들. 대충 훑어보니 "여기 진짜 친절해요", "양 많아서 좋아요", "사장분이신 거 같던데 인상 되게 좋으시더라구요", "인테리어가 너무 아기자기 하고 이뻐요"라는 멘트로 가득했다. 어떤 사람은 빵 리필이 안되서 별 하나 뺐댄다. 어떤 사람은 사람 수대로 안 시켜도 된다 해서 별 하나 추가. 누구는 자기 카드가 결제가 안되서 결제 하는데 오래 걸렸다 해서 별 하나 빼고. 잠깐, 도대체 음식에 관한 얘기는 어디있는 거지? 아 밑에 하나 있네. "여기 파스타도 맛있고 피자도 맛있어요!" ......이보다 더 막연할 수는 없을 뿐이고.

나도 윙버스 같은 리뷰 사이트들을 이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맛집 블로그들도 종종 돌아본다. 그렇지만 넘쳐나는 글들과 사진들 중, 정말 도움이 되는 정보는 얼마나 될까? 한참 보다가 좀 괜찮은 곳을 찾았다 생각이 되면, 어김없이 별 한 개 줘 놓고 식당 내부가 너무 춥고 웨이터가 불친절했다는 혹평이 눈에 들어온다. 다른 곳을 봐도 양이 너무 적거나 너무 오래 기다렸다는 불평불만. 음식 자체와는 별 상관없는 멘트들과 별점 외에, 이제는 돈을 받고 작성해주는 리뷰들도 있다. 맛 자체가 워낙 주관적인 것이지만, 아예 거짓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내가 잘 들리는 건다운 님의 야후 블로그 관련 포스팅을 보면 좋은 예가 나와 있다. (이 분은 음식 자체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주셔서 좋다)

물론 음식외에 그 곳의 분위기, 가격, 그리고 특히 서비스는 전체적인 인상뿐만 아니라 음식 맛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언가가 특별나게 훌륭하거나 최악인 경우가 아니라면 아이돈케어. 게다가 종업원이 설사 뜨거운 국을 당신의 무릎에 쏟았다 치더라도, 식당에 별 한 개를 주는 대신 그냥 그날의 운수나쁨을 탓해야 하지 않는가? 그 식당이 오는 손님한테 매번 국을 쏟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물론 서비스가 전체적으로 항상 별로인 곳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곳은 대부분 종업원의 100% 서비스를 기대할 만한 고급 식당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고, 위생이 문제되는 곳은 요리의 기본을 못 지키니만큼 요리 자체도 그냥 그런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내가 그 식당에 다시 들리지 않는 이유는 음식이 별로였기 때문이지, 불친절한 웨이터나 불편한 의자때문에가 아니라는 얘기다. 

감동의 쓰나미를 몰고 오는 음식은 먹는 순간 다른 것들에 대해 잊어버리게 된다. 음식이 그저 그럴때, 다른 것들에 눈길이 가고 신경이 쓰이게 되는 것이다. 

내가 아끼는 곳들에 대해 블로그에 올릴 때는 그 곳의 음식 자체, 맛, 텍스쳐, 재료, 요리법 등등에 포커스를 맞출 계획이다. 좀 특별한 점이나 들어줄만한 에피소드가 있을 경우에는 함께 소개하겠지만 감동치 상위 20%에 들어가는 곳들만 공유드릴 테니 일단 가보셔도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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