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단상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을때마다 고민. "오늘은 대체 어디서 만나지?" 

보통 술 한잔씩 하게 되는데, 비오는 날은 이자까야에서 오꼬노미야끼에 사케 한잔, 정하기 힘든날은 만만한 와라와라에서 이런저런 요리와 과일소주, 아님 칼로리 땡기는 날은 치킨에 맥주. 누가 보너스라도 탄 날은 파스타 먹고 와인바에서 한잔. 정말 갈데 없음 고기에 소주 한잔. 이 뻔한 레파토리 몇 번 반복하니 새로운 곳이 너무나 절실해짐.

해산물 향 가득한 멍게비빔밥

그러다가 예전 신선한 시도의 다양한 메뉴를 맛본 정식당이란 곳에서 "Anzu"라는 캐주얼한 브랜치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감만족 돼지보쌈을 간단히 서빙하거나, 멍게비빔밥, 딸기 막걸리 등 특이한 메뉴가 벌써부터 정식당스러운 느낌 팍팍! 마침 주말에 잡힌 대학동기들 모임을 이곳에서 하기로 했다. 레스쁘아의 임셰프님의 메뉴 추천까지 받아 더욱 기대감을 안고 찾아갔다.


압구정역 근처 골목 안쪽에 위치한 이곳은 마침 내가 좋아하는 와인바 클라레 바로 옆자리. 문을 열고 들어가니 널찍널찍한 자리에 무지 심플한 인테리어. 다섯명이 넓은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들여다보니 정식이 볶음밥이란 재밌는 이름부터 찹쌀 탕수육, 미역빠에야, 닭튀김, 보쌈 등등 대략 서른가지의 메뉴가 있었다. 가격은 보통 8천원선에 만원을 넘는 것들도 있음. 


요렇게 나오는 보쌈 한접시가 8천원인데 너무 맛있어서 두번 시켜먹었다. 사진찍기 무서운 젓가락 날라오는 분위기가 감지되시는지...술마시러 갔다가 서로 사투를 벌이며 안주를 집어먹은 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저 마지막은 내가 사진찍고 얼른 먹었음.


여자 다섯명이 요리 한 여덟가지에 막걸리 세 종류 마셨는데 배불러서 힘들었다. 우리가 시킨건 볶음밥, 미역빠에야, 멍게비빔밥, 찹쌀 탕수육, 보쌈 두접시, 닭갈비 떡볶이. 거기에 서비스로 주신 두부/숙주 요리까지. 술은 딸기, 복숭아, 누룽지 막걸리를 각각 한병씩 마셔봤는데 복숭아는 너무 달았으나 누룽지맛은 누룽지사탕맛이 나며 살짝 달달하니 괜찮았고, 나의 베스트는 딸기막걸리였다. 신기하게 맛이 잘 어우러지며 풍부한 과일향까지.

깔끔한 미역국 맛과 독특한 식감의 미역 빠에야

요리베스트는 이 탕수육. 돈까스스러운 비주얼이긴 하나 매우 쫄깃하고 소스로 범벅되지 않아 끝까지 바삭거리는 것이 좋았다. 닭갈비 떡볶이도 완전 쌀떡에다가 닭도 쫄깃하고 부드러워 별미. 다만 너무 배불러서 다 못먹었다. 



이 날은 술 좀 줄이자, 라는 모토의 친구들이 좀 많아 막걸리로만 마셨으나 사케리스트도 상당하고 와인도 있으니 다른 술도 도전해봐야겠다. 전통주 리스트도 좀 더 늘려가심 아주 완벽한 술 라인업이 될 듯하다. 

정식당 자체는 아무래도 파인다이닝 카테고리이다 보니 더 비판/비평도 많고 파인다이닝 자체의 격식, 스타일 등에 대한 압력도 있을터이나 이곳은 오히려 임정식 셰프와 스태프들의 아이디어를 더 자유롭게 펼쳐보이고 공유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참, 저날 저렇게 먹고 한 사람당 만오천원이라는 압구정동에선 깜짝 놀랄 가격이 나왔다. 앞으로 심히 단골이 될 듯 하다. 주소는 강남구 신사동 567-28으로 압구정역 4번출구로 나와 쭉 걸어오다 국민은행 골목에서 우회전해서 안쪽으로 들어간다. 전화번호는 (02) 518-4654. 당분간은 예약 안하고 찾아가도 될 듯 하나 조만간 어찌될지...



초콜렛은 디저트에서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주인공. 과일, 바닐라 등 무궁무진한 재료들이 있지만 역시초콜렛의 그 씁쓰름하면서도 진하고 깊은 달콤함은 따라오기 어렵다. 특히 비가 주륵주륵 오는 날 단것이 땡길때 찐한 초콜렛이 주르르 흘러나오는 폰당이란...


그런데 놀랍게도 초콜렛의 원천인 카카오빈은 원래 굉장히 쓴맛이 난다. 이를 먹을 정도의 맛으로 변화시키려면 발효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렇게 발효시킨 카카오빈은 세척, 로스팅, 껍질 제거 등의 과정을 거쳐 초콜렛 원액으로 갈린다. 원액을 이루는 두가지는 코코아 버터와 코코아 고형물로, 우리가 흔히 먹는 초콜렛의 주 원료이다. 여기에 설탕을 섞어야 비로소 우리가 즐기는 초콜렛의 달콤함이 완성된다. 다크 초콜렛은 설탕이 덜 들어가고 밀크초콜렛은 탈지분유 등과 설탕이 더 들어가며, 화이트 초콜렛은 코코아 고형물이 전혀 포함되지 않고 코코아 버터로만 이루어져 있다.


평소에 초콜렛을 사용해서 보통 쇼콜라나 브라우니 류의 당도가 강한 베이킹을 주로 했었는데, 내가 사모하는 데이빗 레보비츠(David Lebovitz) 아저씨가 한참의 연구끝에 초콜렛 발효빵 레시피를 블로그에 올리셨다. 식용유 vs. 버터, 강력분 vs. 중력분, 노른자 vs. 전란등의 정말 여러가지 실험을 통해 최적의 조합을 실험하는 모습에 입이 떠억......


굉장히 진 반죽에(거의 브라우니 반죽 수준) 치댈 필요도 없는 5분 반죽류는 처음 실험해보는 거라 하는 내내 약간 불안했는데, 오븐에서 구워져 나온 빵 반갈라 먹어보곤 그 촉촉함에 쓰러지는 줄 알았다. 쉽고 설거지 적고 맛좋으니 나의 탑10 레시피에 바로 등극! 저렇게 열심히 연구하신 레보비츠 아저씨의 레시피를 홀랑 가져와 올리기에 약간 죄송한 마음이 있으나 한국의 홈베이커들에게도 널리 알린다는 보람으로 합리화 에헤헤.....


단 걸 좋아하는 분은 밀크초콜렛을, 다크초콜렛을 즐기는 분들은 최대한 진한 초콜렛을 사서 사용. 그리고 초콜렛은 가능한 최고의 품질로!


촉촉한 초콜렛 발효빵

23cm 식빵 틀이나 12개 머핀틀
(버터칠해서 준비)

우유 3/4컵(180ml) 따뜻하게 데워 준비
드라이 이스트 4g (패킷 하나)
설탕 75g
버터 55g
초콜렛 85g 굵게 다져 준비
달걀 1개, 실온 
바닐라 1/2 티스푼
굵은소금 3/4 티스푼 (일반 소금은 1/2티스푼)
강력분 280g
코코아가루 20g

여기에 프룬 등의 말린 과일이나 피칸, 호두 등의 견과류, 그리고 초콜렛칩이나 다진 초콜렛을 넣어도 매우 잘 어울린다. 견과류를 넣을 경우에는 오븐에서 한 번 토스팅을 해서 넣으면 더욱 풍미가 좋다.



1 우선 우유를 뜨뜻하게 데워 설탕을 일부 덜어 저어준 후 그 위에 이스트를 골고루 뿌려준다. 우유는 이스트가 죽지 않도록 절대 60도를 넘지 않게 한다(35-45도가 적당). 그리고 뜨뜻한 곳에 놓고 뽀글뽀글 거품이 올라오면서 기네스거품처럼 발효될 때까지 기다린다. 

2 이스트거품이 올라오길 기다리는 동안, 버터와 초콜렛을 중탕으로 녹여놓는다. 

3 이스트거품이 다 올라오면, 나머지 설탕과 달걀, 바닐라, 소금을 한번에 넣고 잘 저어준다. 

4 여기에 밀가루와 코코아가루의 반을 넣어주고 섞은 후 녹인 버터와 초콜렛을 넣는다. 잘 섞이면 밀가루와 코코아가루를 마저 넣고 과격하게(?) 5분 가량 마구 저어준다. 반죽기 있는 분들은 도우훅을 끼어 5분 돌려준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버터와 초콜렛 녹인 것을 너무 뜨겁지 않게 식혀 반죽에 넣는다(안 그러면 이스트가 죽겠지요).

5 반죽이 매우 질겠지만 당황하지 말고 열심히 치댄후 랩을 씌워 1차발효를 두시간 한다. 

6 1차발효가 끝나면 견과류 등을 (넣을 경우) 잘 섞고 틀에 넣어 다시 2차발효를 하는데 이번에는 한시간 가량. 

7 발효가 다 되면 섭씨 180도로 예열된 오븐에서 35분 가량 구워준다. 머핀 틀은 좀 더 짧게. 안의 온도가 섭씨 85-90도, 혹은 그 이상이며 완료된 것이다.

나는 좀 더 달달한 머핀 느낌을 주려 바나나브레드 반죽을 만들어 빵 반죽위에 조금씩 올려주었다. 



Happy baking with chocolate!

사과와 양파, 감자. 서로 확연히 구분되는 이 재료들을 비슷한 크기로 썬 후 코를 막고 먹어보라. 그 확연하던 차이가 집중하지 않으면 느끼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감기가 걸려 코가 심하게 막힌 경우 음식 맛을 느끼기가 어려운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바로 우리가 '맛'이라고 느끼는 감각의 70% 이상이 후각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어떤 음식을 먹기전에 아 맛있겠다, 혹은 윽 이상하군, 이라고 판단을 해 주는 감각은 미각이 아닌 후각이다. 아침일찍 빵집에 들어가니 달콤하고 구수한 냄새에 갑자기 배가 고파지거나, 음식이 상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냄새를 먼저 맡아본다던지 말이다. 두리안이나 초두부 같은 경우 냄새가 너무 역해 먹지 못하겠어도 맛있다는 사람들 말을 듣고 억지로 먹어보는 경우가 많다. 결국 음식에 관해서 혀보다 오히려 코가 일차적인 기관인 것이다.

와인이나 커피 전문가들도 마시기 전, 반드시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냄새들에 대한 차트(아로마휠, Aroma Wheel)가 따로 있을 정도로 후각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오늘 점심을 먹은 도산공원 근처의 그라노(Grano)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이 냄새였다. 식전빵, 올리브 오일, 에피타이저부터 메인까지 접시가 내 앞에 놓이는 순간 진하게 풍겨오는 신선한 냄새들. 다른 레스토랑에서는 쉽사리 경험하지 못한 정도의 강렬함이었다. 입에 넣고 꼭꼭 씹을떄마다 더욱 더 진하게 올라오는 향기에 몇 입 먹지도 않았는데 배부른 느낌이 들었다. 살짝 압도당한 내 후각과 미각을 위해 간간히 쉬어가며 먹어줌. 

에피타이저로 시킨 가지요리(상위사진)는 고소한 파마지아노 치즈와 토마토 소스가 부드러운 가지와 아낌없이 들어간 올리브오일과 어우려져 정말 진한 맛을 내었다. 이거 한가지만 시켜도 배불렀을 듯. 

내가 시킨 까르보나라는 아스파라거스를 갈아 소스에 넣고 정말 퍼펙트하게 익혀진 아삭한 아스파라거스가 몇줄기 들어가 있었다. 다만 트러플 오일이 나에게는 너무 강하게 느껴져 조금 거부감이 들었다. 아무리 다른 종류의 소스를 먹어봐도 내 favorite은 토마토 소스. 좀 색다른 걸 찾는 분에게 추천한다.


또다른 파스타 디쉬였던 미트볼이 들어간 토마토 소스. 이거 정말 맛있었다. 펜넬씨가 들어간 미트볼은 부드러우면서도 씹는 맛이 좋았고, 토마토 소스는 상큼하면서도 녹진한 깊이가 느껴졌다. 두 파스타 모두 면은 처음 먹었을 때 어라, 이거 먹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꼬들바삭꼬들한데 먹다보면 아주 약간 더 익어 입에 짝 붙는다. 단지 좀 억셌던 파슬리가 살짝 부드러웠음 더 좋았을 뻔.



그라노의 음식들은 한국식 파스타에 익숙해지신 분들에게는 조금은 너무 이국적이고 간이 짜다고 느껴질 듯. 진하고 풍미있는 이탈리안 음식이 땡길 때 아주 좋은 곳. 내가 이탈리안 음식을 좋아하는 이유가 이런 투박함과 단순하면서도 깊고 신선한 맛인데, 그걸 제대로 보여주는 레스토랑이다. 

게다가 완전히 오픈된 주방에서 러시아워의 활기와 살벌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우리 서버분도 참 친절하시고 차분하셔서 더욱 편한 식사. 가지요리에 배가 불러 파스타를 남긴 것이 너무너무 미안했음(포장해오긴 했다만 내일 상태가 어떨지는 흑흑...). 요리하는 사람에게 깨끗한 접시가 얼마나 기분이 좋은 칭찬인지 잘 알기에 음식 맛있지만 배불러 남길때 진짜 죄책감 느낀다. 운동을 두배로 하는 수밖에?

그라노는 매일 정오부터 오픈하고 요리들 대부분 17,000원 이상. 여기에 10% 붙는다. 와인 리스트는 한잔 정도 먹을 수 있도록 글라스로도 판매하면 좋으련만, 전반적으로 센 값의 와인들이 대부분. 위치는 아래 지도 참조하시고 전화번호는 (02) 540-1330. 예약하면 더 편하게 먹겠지만 우리는 오늘 느지막히 가서 바로 앉았음. 야외에도 식탁이 있어 가을에 앉아 파스타 먹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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