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단상

이번 주말은 말복에다가 정말 정말 더웠으나 이벤트 당첨되신 분들에게 선물을 얼른 보내드려야 하기에 일을 크게 벌인 자신을 2초 원망하고 주말 베이킹에 돌입했다. 원래는 두세가지만 만들려 했으나 메뉴를 짜다보니 내 결단력 부족으로 여섯가지 아래로 줄이는데 실패. 한번에 세가지 정도는 만들어봤어도 여섯가지는 처음이라 막상 팔을 걷어부치면서도 설마 할 수 있을까, 했는데 어라, 하다보니 부엌 초토화 시키지 않고 대강 잘 끝냈다.

그리고 물론 대량생산 이후에 돌릴때의 뿌듯함과 즐거움. 항상 베이킹 선물을 할 때마다 느끼지만 아무리 많이 한다고 해도 포장할때면 너무나 부족한 느낌. 여튼 아직 배울 것이 더 많은 부족한 실력이지만 대신 유정란, 유기농 과일, 특히 국내생산 제품을 많이 사용하려 애썼다. 일회용품 포장대신 계속 사용하실 수 있는 플라스틱 박스에 포장하고. 당첨되신 분들중에는 혜라님처럼 푸드스타일리스트도 계셔서 부족한 면을 메꾸려 재료도 더 세심히 고르고 위생에도 더 신경쓰게 된 것 같다. 다행히 맘 먹은대로 다들 괜찮게 완성되었고 나 자신도 하면서 또 많이 배운 주말.

아 이렇게 자꾸 주절주절 쓰니 무슨 초등학생 때 일기쓰는 기분...그럼 토요일과 일요일의 현장스케치 사진 고고!

제대로 하는 법을 참고해 더욱 더 깨끗하게 제스트 준비.

레몬바를 위한 버터와 설탕도 크림화 하고.
CIA의 교과서를 참고로 하니 역시나 잘 됨.

준비된 레몬제스트와 민둥민둥해진 레몬들.

1차 굽기가 완료된 비스코티 반죽. 팬 옆으로 마구 흘러넘침 -.- 

식히는 동안 짜준 딸기머랭 반죽 작업. 날씨가 더워 초스피드로 짰더니 모양이 들쭉날쭉.

식은 비스코티 자르기. 아몬드 듬뿍. 잠깐 일렬로 세워놓고 찰칵!

2차 굽기 완료된 녀석들. 오렌지를 넣었더니 색이 오렌지스러운(아 표현력 부족)

밤새 온도에서 저온으로 말려진 딸기 머랭. 역시 아침햇살이 색이 이쁘다는.

가또쇼콜라 응용해 본 녹차화이트브라우니. 저 뽀얀 흰자 으크크.

Before 앤드 After. 거칠어진 피부? -.- 
흰자 열심히 올렸더니 아주 빠방히 잘 부풀어줬다!

녹차가 구워지는 동안 가또 쇼콜라도 반죽. 돌려돌려 잘 섞어주기.

역시나 푹 꺼짐. 아 보들보들. 

지인이 뉴욕 MoMA에서 사다준 초깜찍발랄 거품기. 이번에 처음 써 봤는데 아주 좋음!

피넛버터 바나나 쿠키. 포크로 자국내주는 것이 포인트 ;)

포장하려 포개놓은 쿠키들. 잠깐 한 컷.

이건 고소하고 부드러운 버터 크러스트와 상큼한 레몬 커스터드가 잘 어울리는 레몬 바. 
레몬이 다섯개나 들어갔어요!

포장하는 와중 한 컷.

이렇게 포장되어 오늘 아침에 다다다 배달!

바빴지만 베이킹에 푹 빠질 수 있었던 정말정말 즐겁고 행복했던 주말! 블로그 놀러와 주시는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곧 다시 이벤트할 기회를 마련하겠습니다 :D

ps. 그나저나 난 편의점에 그렇게 편한 택배서비스가 있는 줄 절대 모르고 있었다. 완전 강추.


이전 포스팅을 하면서 한두번 언급했던 글이 하나 있는데, 저번 바나나에 관해 쓰다가 나의 부족한 글솜씨로는 못 미더워 이 참에 이찬웅님이 한겨레 21에 게재하신 칼럼 <칡과 커피>라는 글의 전문을 공유해 드린다. 내가 여태까지 살면서 읽어왔던 글들 중 법륜스님의 주례사와 함께 제일 아끼는 또 하나의 글인데, 처음 읽고 난 후 내 삶의 방향을 깨닫게 된, 매우 소중한 글이다. 

그럼, ENJOY!

칡과 커피

이찬웅 프랑스 리옹고등사범학교 철학박사과정
(한겨레 21 2009년 8월 3일자, page 96)

아버지의 전근을 따라 입학했던 초등학교는 산속 작은 학교였다. 조그마한 학생들이 걸어서 등교했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오기도 했고, 산속에 나 있는 작은 길들을 헤치고 오기도 했다. 엄청나게 먼 길을 걸어서 오는 친구도 있었다. 소풍날 오전 내내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저기가 우리 동네라고 누군가 말해 깜짝 놀랐다.

감성은 지성과 대립하지 않는다

한번은 친구들한테서 학교 뒷산에 가는데 따라오라는 ‘초대’를 받았다. 예닐곱 명쯤 익숙한 자세로 나뭇잎을 살피면서 산속으로 올랐다. 그러다가 멈춰서서, 들고 온 곡괭이로 뭔가 캐내기 시작했다. 땅속에도 씹을 만한 게 자란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칡이었다. 어떤 칡은 그냥 버렸다. 칡에도 종류가 있는데, 씹으면 정말 밥맛이 나는 밥칡이 있고, 딱딱하기만 한 나무칡이 있다는 것이었다. 신기한 것은, 친구들은 겉모양만 보고도 단번에 그것들을 구분해내는 것이었다. 몇 번을 더 따라다니면서, 나도 그걸 구분해보려고 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그것은 쉽게 얻어지는 능력이 아니었다. 그 능력 덕택에 친구들은 나뭇잎에서 땅 밑으로 이어지는 선을 감각하고 있었다.

감각은 우주를 구성하는 많은 선들을 따라가게 하는 능력이다. 그 점에서 감성은 지성과 대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필요로 하며, 서로의 도움을 받아 그 선을 추적하게 한다. 감성이 멈춘 곳에서 지성은 감성을 실어나른다. 예를 들어 선물받은 초콜릿은 그저 달콤할 뿐이지만, 그 맛이 실제로 어떻게 얻어지는지는 ‘초콜릿은 천국의 맛이겠죠’와 같은 기사 덕분에 알게 된다. 초콜릿이 이제 마냥 달콤하지 않다면, 그것은 그것에 연결돼 있는 선들을 타고 새로운 진동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맛의 이름은 이제 ‘달콤하기도 하고 쓰기도 하고’쯤 될까. 그 맛을 느낀다면 뭔가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협력 안에서 감성이 지성보다 우월한 것은, 그것이 ‘지금 바로 여기’의 경험에 와닿는 선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각만으로 그 선을 충분히 추적할 수는 없지만, 감각이 없다면 시작조차 할 수 없다. 감성에는 취향의 정교화와 다양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그 자체로 좋다기보다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 안에서 좋은 출발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예민한 감성을 갖지 않는다면, 20년 전에 읽은 책으로 여전히 세계를 설명하는 지성의 나태함에 빠지기 쉽다. 결국 문제는 감성과 지성 사이의 대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감성과 좋은 지성을 함께 갖는 데 있다.

커피는 브라질·콜롬비아 어느 고장의 것이다. 뛰어난 감성은 그곳에 가닿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은 것은 상품화 때문이다. 상품화는 이익을 내기 위해 선을 분절한다. 재배와 소비는 직접 연결되지 않고, 농장·하청·착취·수입·유통·광고·판매·할인 등으로 조각난 단계를 거쳐 연결된다. 원두커피를 매장 테이블에 늘어놓고 원주민들의 사진을 원용하면서 조각난 선을 상상적으로 연결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실제가 아니다. 분절된 연쇄의 끝에 대도시가 있고, 도시는 상품의 출력 단자로 포위된다. 그에 맞춰 소비자의 감각은 입력에 반응하는 단말기에 가까워진다. 이런 경우 단말기가 아무리 정교해지고 복잡해지더라도, 그것은 감성의 수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상품화의 조각, 산속의 등굣길

감성은 지성만큼이나 개체에서 세계로 뻗어나가는 능력이다. 좋은 감성은 입 안에서 커피의 열두 가지 맛을 식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뭇잎을 뒤지며 칡의 종류를 구분했던 친구들의 능력 속에 있다. 산속으로 나 있는 기나긴 등굣길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처럼, 좋은 감성은 지성의 도움을 통해 분절된 세계의 선을 복원해나가는 데 있다. 오늘날 그것은 특별히 어렵다.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치타마냥 저렇게 진한 갈색의 반점이 다다닥 박힌 바나나를 보면 난 본능적으로 오븐 돌릴 생각을 한다. 우리 회사에 들어오는 바나나들도 가끔 제때 먹히지 못해 치타로 변신하는데, 항상 쇼핑백에 가득담아 집에 가져오기 일쑤. 지하철을 타고 오는 내내 달콤한 냄새가 날 정도로 강력한 향기의 파워를 자랑하는 바나나, 다양한 영양소에 요리며 베이킹이며 즐거운 응용이 가능한 훌륭한 지구의 선물인데, 주변에 먹기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

얼마전 화제가 된 법원 판결이 있었는데, 바나나 등 다양한 과일유통기업인 Dole 회사 소유의 남미 바나나 농장에서 일한 직원 둘이 농장에서 사용되는 농약때문에 불임이 되었다는 2007년 판결을 얼마전 7월 판사가 무효로 하며 뒤엎은 것이다. 서로 증인을 매수했다는 등의 소문과 함께 진상규명에 서로 열을 올리는 상황인데, 이는 그동안 바나나 농장과 농약에 대한 수많은 논란과 소문들이 아직까지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가끔씩 주변에서 바나나는 수확후 방부제에 담가 놓는다던가, 농약 범벅을 해 수입한다는 등의 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려 바나나를 먹는데에 불안감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바나나 뿐 아니라, 세계 농산물 시장이 점점 글로벌화 되면서, 내가 먹고 있는 과일이나 채소가 어느 원산지에서 어떤 농작 및 유통과정을 거치는지 쉽게 알기가 어렵게 되었다. 게다가 소비자들이 기대하는 상품은 모양과 크기가 동일하고, 상한 구석 절대 없는 완벽한 사과 한 상자이기 때문에 슈퍼나 과일가게에 도착하기 전까지 상당히 많은 '제조'과정을 거치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대해 소비자들은 대부분 무지하며, 사과 한 쪽을 깎아먹을 때 머릿속에 그려지는 장면은 나무에 실하게 영글은 큼직하고 빨간 사과, 농협 광고에서나 볼만한 땀방울 쭉 씽긋 미소를 지어주시는 농부 아저씨의 웃는 얼굴 정도가 대부분일 것이다. 우리 농산물을 사랑해요! 라는 구호를 외치는 랜덤한 마스코트 하나와 뒤로 울려퍼지는 신나는 빠밤바 노래 등은 보너스.

농사가 즐거워요 으흐흐
<출처 - http://www.npc.gov.cn>

대신 이런 장면들을 상상해봤나? 고요한 사과나무들 옆으로 가끔 웅웅대며 차들이 왔다갔다 하고, 농약이 칙 뿌려지고, 사과가 나뭇잎과 흙 등 이물질이 뭍은 채로 공장으로 실려가 커다란 물탱크에 담겨 둥실둥실 떠다니고,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차디찬 금속 기계들을 통해 크기가 걸러지고 포장이 된다. 

2005년 Our Daily Bread라는 제목의 독일 영화가 하나 출시되었다. 아무 나레이션 없이 조용히, 말없이 세계 곳곳의 농장, 식품 회사등을 지켜본다. 이 영화가 얘기하려자 하는 포인트는 딱 하나, 이것이 당신이 상상하던 모습인가? 아래 이미지들을 보면 따뜻한 농부의 미소는 커녕 차가움과 이질감만이 가득하다.

<출처 - http://30gms.com>

우리가 이질감을 느끼는 이유는 익숙하지 않고 상상하지 못했던 장면들이기 때문이다. 필리핀에서 무럭무럭 노랗게 익은 바나나들이 주렁주렁 달린 울창한 숲과 원숭이들(응?), 그리고 수확된 다음날 한국에 오겠거니, 라는 막연한 컨셉을 가지고 있는 것이 대부분. 때문에 바나나가 들어오는데 농약 한 가득 뿌린다더라, 시퍼런 날것 상태로 수확해 나중에 가스로 익힌다더라, 하는 얘기를 들으면 놀라 어머머,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먹으면 안되겠네! 라는 감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인터넷이 정보의 주요 유통경로가 되면서 극단적인 정보들이 많이 돌아다니며, 이를 무조건 다 믿어서는 곤란하다. 바나나 농장이 농약을 사용하는 것은 사실이다(많은 농산물처럼). 그리고 15일여간의 기간을 거쳐 수입되면 에틸렌이란 가스로 노랗게 익힌다. 그렇지만 국제기관이나 각 나라에는 계속해서 시정해 나가는 수입 농산물 농약 허용치 등의 법도 엄연히 존재한다. 재배국가에서 농약에 풍덩 담그던 말던 무조건 수입이 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이 기준치들은 대충 때려 적어넣은 숫자들이 아니라 실험과 테스트들이 반영된 수치이다(참고로 에틸렌은 농약이 아니라 일반 과일들이 자연적으로 내뿜는 가스의 하나). 그리고 바나나농장의 환경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나가려는 기관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뭐, 여튼저튼 농약이 조금이라도 사용되는 농산물은 절대 금하고 바나나를 안 먹기로 결심했다 치자.그렇지만 사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살고 있다면 서울 근교로 옮기고 먹거리에 좀 더 의연해지는 것이 그대의 100년살기 목표에 더 좋을 수도 있다. 또한 그대의 육체적 건강 외에도 바나나 한 개와 엮인 '나비효과'는 그 이상이다. 바나나 농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건강. 그들의 경제적 독립. 바나나 농작과 유통이 지구의 환경에 미치는 영향. 

단순히 농약사용이나 유전자조작을 했다는 말에 어머나! 할 것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먹거리 그 이상으로 농작과 유통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뉴스와 관련 기관들의 업데이트에 귀를 기울이고 좀 더 배우려는 이성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나 소비자 한 사람의 선택은 모여모여 큰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결론? 바나나농장 근로자들을 위해 농약 사용이 지속적으로 줄었으면 좋겠고 나는 바나나를 너무 사랑하고 이왕이면 제주바나나로 계속 섭취예정. 그대의 선택은?

계속 바나나를 드실 분들은 아래 나의 막강레시피인 설겆이가 필요없는 바나나 브레드 레시피 참고!


사실 뭐 설거지는 나온다만, 믹싱보울 단 한개! 그렇다! 단 한개만 필요하고 크림화나 휘핑도 필요없고 거기다 맛도 포기하지 않은 최고의 레시피! 

바나나 3-4개 
녹인 버터 1/3컵
설탕 3/4컵
달걀 1개
바닐라 1 teaspoon
베이킹소다 1 teaspoon
소금 1/2 teaspoon
시나몬, 넛멕, 클로브 등 약간씩 기호에 맞춰
중력분이나 박력분 180g (1 1/2컵)
  • 섭씨 180도로 예열. 
  • 믹싱보울에 바나나를 으깬다. 여기에 버터를 넣는다. 여기에 설탕, 달걀, 바닐라와 향신료 넣고 섞는다. 여기에 베이킹 소다와 소금을 넣고 섞는다. 마지막으로 밀가루를 넣고 섞어준다. 견과류나 초콜렛칩 넣고 싶으면 마지막에 스르륵. 
    *요약 버전 : 바나나 + 버터 + 설탕/달걀/바닐라/향신료 + 베이킹소다/소금 + 밀가루
  • 원하는 틀에 넣고 찔러봐서 묻어나오지 않을때까지 구워준다.

아 진짜 심각하게 간단하지 않은가? 미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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