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단상


우리는 어릴적부터 먹을 때 도구를 쓰는 훈련을 받아온다. 나 초등학교 다닐때에도 젓가락으로 1분안에 콩 30개 집어옮기기등의 시험이 있었고,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인도 영화 '블랙'에서도 '야만인처럼' 밥을 먹는 소녀에게 포크 등을 사용해 밥을 먹는 습관을 들이며 해내었을때 감격한다. 손으로 음식을 먹는 곳은 아직 인도같은 '후진국'이며, 으레 화장실에서도 손을 사용한다고 어딘가에서 들은 얘기를 떠울리며 킥킥들 대기 일쑤.

그런데, 어떤 도구보다 다루기가 쉽고 다재다능한 손이 언제부터 음식을 먹을 땐 불결하고 교양없는 도구로 인식되었을까? 


포크스러운 도구가 처음 음식을 먹을 때 사용된 기록은 400 A.D. 무렵 터키에서라고 한다. 그 후 점차 식탁에서의 사용이 늘긴 했으나, 몇몇의 부자들만 사용을 했었고, 10세기 무렵 유럽으로 건너와 17세기가 되어야 그 사용이 점차 퍼졌다. 처음 포크가 소개되었을 때에는 신이 주신 손가락에 대한 모독이라는 반발도 있었고, 남성들은 너무 여성스럽다 해서 사용을 거부한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무려 19세기가 되어서야 포크 사용이 대중화가 되었고, 한국에서 젓가락이 처음 사용된 것은 약 1,800년전으로, 결국 오늘처럼 식탁에서 먹는 도구들이 대중적으로 사용된 것은 얼마 안되었단 얘기다. 

우리도 다 이렇게 즐겁게 먹었었던 시절이...
<출처 - Google Image Search>

손으로 음식을 먹는 행위는 몇배이상으로 더 '찐한' 경험을 가져다준다. 방금 쪄낸 따끈한 왕만두의 열기가 손을 타고 전해지고, 손가락 끝으로 느껴지는 폭신함은 입에 넣기도 전에 설레임을 가져다 준다. 치토스를 한 봉지 다 먹고 난 후 손가락에 바알갛게 묻어있는 시즈닝을 쪽 빨아먹을 때의 느낌. 생크림에 손가락을 푹 찔러 핥아먹는 느낌. 차갑고 딱딱한 촉감의 포크로 찍어먹는 것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는 몸으로 느끼는 맛이다. 피자 썰어먹는 분들, 얇은 화덕피자는 제발 손으로 먹어보라. 야들야들 손가락위에서 늘어지는 따뜻한 반죽의 느낌, 죽죽 늘어지는 치즈를 손으로 끊어먹으면서 마지막에 손에 슬쩍 묻은 토마토소스 핥아먹기. 피자의 맛을 두배로 느낄 수 있다. 

중국 꾸이지엔에서 먹은 민물가재 요리. 장갑을 껴도 손이 얼얼할 정도로 
맵지만 손으로 느껴지는 열기덕분에 그 매운맛을 더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그 외에도 손의 사용은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초밥을 먹을 때 한번 손으로 먹어보라. 젓가락으로 비틀비틀 초밥을 집어올리다 간장에 풍덩 빠뜨려버리는 사고를 예방하기도 하지만, 체온이 미묘하나 초밥을 제일 먹기 적합한 온도로 유지해준다. 엄지, 검지, 중지를 사용해 가볍게 쥐고!

아프리카의 이티오피아에서는 커다란 접시를 가운데 놓고 여럿이 음식을 나눠먹으며, 위 사진의 Injera(인제라)라고 불리는 이티오피아의 얇고 폭신한 빵 종류를 넓게 펴 담은 후 그 위에 다양한 음식을 담고 싸 먹는 것이다. 

<출처 - http://www.flickr.com/photos/mississippi_snopes>
<출처 - http://www.flickr.com/photos/joshie_woshie>

이때 한입크기로 인제라에 잘 싸서 상대방을 먹여주는 의식을 Gursha(굴샤)라 부르는데, 이는 상대방에 대한 존경과 친절을 의미한다 한다. 한마디로 누군가에게 손으로 음식을 직접 먹여주는 행위가 매우 소중하고 중요한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출처 - Google Image Search>

이렇듯 손으로 먹는 것은 후진만화가 아닌 감각과 감성을 일깨워 주는 문화적이고 과학적인 행위이다. 서울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손으로 파스타 먹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어느 식당이던 기회가 있을 땐 최대한 손을 사용해보라. 새우튀김의 바삭한 표면도 느껴보고, 빵이 나오면 손으로 죽 찢어서 냄새도 맡아보고. 소스 손가락에 슬쩍 찍어 맛도 보고. 손에 묻히고, 교양 없어 보이고 이런 거 신경쓰지 말고 손끝부터 음식을 진정으로 느끼며, 옆 사람과 정도 나누며 푹 음미해보길 바란다. 물론 손은 깨끗이 씻은 후에!

ps. 우리집에서도 어제 월남쌈을 해서 가운데 큰 그릇을 두고 서로 누가 더 
맛있게 쌌느니 자랑도 하고, 오손도손 서로 싸 주기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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