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단상

어제와 오늘은 몸도 마음도 힘든 날이었다. 목요일은 특히 내가 따르는 3인방인 셰리, 콜린, 캔달도 없는데다가 오전에 덱스터랑 일하는 건 정말 이래저래 스트레스 받는 일이다. 본인이 정리가 안되어 우왕좌왕에, (이리 말하면 좀 웃기지만) 내가 보기에 자격이 없는 참견과 잔소리를 해대니 가끔 열이 뻗친다. 에너지가 넘쳐 일을 후다닥 할때도 있지만 꼼수도 부리며 셰프에게 자주 혼나고 그닥 똘똘하지도 않고 일을 두번 하게 만드는 경우가 꽤 있어, 함께 일하기 힘들다. 거기다 굼띤 알렉스까지 추가. -_-


묵묵히 프렙리스트를 체크해 가며 일하고 있는데, 다음주 스케줄이 포스팅 되어 있었다. 7월말이 되어가니 이제 라인에 공식적으로 세워주려나, 살짝 기대를 하며 올려다 보았지만 역시나 이번주와 같은 스케줄이었다. 아직 몇 주 남았으니까, 어차피 프렙하면서 더 많이 배우고 있으니까, 마음을 다독였지만 은근히 민감해져 있었나보다. 어제 12시간 넘게 일하고 집에 가서 뻗은 다음 출근하는데, 무급에 오버타임으로 계속 프렙일을 하고 있는 게 갑자기 서러움으로 다가왔다. 잠도 모자라고 몸도 힘든 이유도 컷겠지만, 눈물이 글썽일랑 말랑하는 것이 느껴졌다. 


꾹 참고 출근후, 어제와 비슷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오전에는 사소하지만 100% 완벽할 수 있었던 일에 한두가지 실수를 하고, 오후에 셰프가 올라와 냉장고를 또 한바탕 뒤집어 놓는 바람에 (덱스터는 또 한번 깨지고 ㅡ 워크인에 데리고 들어가 혼내는데 "EVERY FUCKING DAY!" 들려와 내가 다 조마조마) 프로젝트 진행을 거의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수솁 저스틴이 몇가지 도와달라고 부탁해 아래층에서 도와주고 올라오는 길에, 덱스터가 pork leg 포장하는 거 끝냈냐고 물어봐서 아직 못했다 하니까 조금 더 빨리 하라는 거다. 참을인자 백만번 새겨가며 다시 프로젝트들 진행하고 있는데, 워크인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노크를 분명히 했는데 덱스터가 나올때는 노크하라고 잔소리를 또 하는거다. 아니, 이 정도면 거의 시비거는 차원아냐? 


저녁에는 G와 마델린까지 붙어 함께 프렙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셰프가 한 번 더 워크인 점검을 하러 올라왔다. 하던 프로젝트를 또 멈추고 워크인 정리를 한참 돕고 있는데 시계를 보니 벌써 9시. 약간이지만 셰프가 처음으로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9시반이 되어 자포자기한 상태로 다시 옥수수를 다듬기 시작했다. 옥수수가 거의 끝나가고는 있었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다이스를 해야 할 줄기콩이 한통 남아 있었다. 물론 셀러리/당근도 있고 베이컨 슬라이스도 해야하고 @#$#!%%!%#%#$# 


10시쯤 되어 셰프가 다시 올라오더니, 아직도 프렙을 하고 있는 우리 세명을 보고 리스트를 정리해주기 시작했다. 이제 서비스 마감시간 다 되어가니 위도 정리하기 시작하자며, 내일로 넘길 일, 오늘 마무리 할일 등 다시 리스트 분배를 시작했다. 그러더니 셰프 왈, 줄기콩은 밑에서 나랑 같이 빨리 다지기 시합하자며 스테이션 청소 후 칼들고 내려오란다. 읭? 


얼른 정리 후 Scrubbing을 하려고 soap water를 집어드는데, 마델린이 1층에서 뜨거운 새 비눗물을 받아와야 될 것 같단다. 아 갑자기 짜증이 확 몰려왔다. 물론 그러면 좋겠지만, 같이 오버타임을 하고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녀이지만, 평소 일 제대로 못하는 누군가 셰프도 지적하는 점을 뭐라 하니. 무엇보다 얼른 마쳐버리고 집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버티고 "이렇게 시간이 늦었는데 이제 와서 뭘."이라고 대꾸해버렸다. 같이 피곤하고 스트레스 받은 그녀도 "아 그럼 하고 싶은대로 해"라며 기분이 좋진 않은 모양. 


찝찝한 기분으로 비누칠을 벅벅하고 있는데 자꾸 눈물이 차올랐다. 그렇지만 절대 울긴 싫었다. 사실 딱히 울 이유도 없었고 그냥 스트레스 받은 상태인걸. 꾹꾹 눈물을 참고 비누칠을 다 한 후 마델린에게 아까 일은 미안하다고 한마디 건넸다. 그녀 역시 괜찮냐고 물어보며 다독여주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울컥거렸다. 계속 괜찮냐고 물어보는 마델린에게 I'm fine이라 애써 크게 외치고 일층으로 달려내려갔다.


손님들과 다른 SPQR 식구들로 버글거리는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저 멀리 줄기콩을 다지고 있는 셰프 맷의 모습이 보였다. 본인 칼을 건네주며 딱 반통만 같이 다지고 집에 가자. 프렙리스트는 언제나 끝이 없으니, 제 시간에 리스트 정리하고 쳐내고 마감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며 셰프는 조근조근 얘기(수다ㅋㅋ)를 시작했다. 셰프가 왠지 어제 오늘 힘들었던 내 마음을 읽은 것만 같았다. 안 그래도 한창 셰프에게 직접 여러가지를 많이 배우던 초기에 비해 혼자 조용히 맡은 일을 묵묵히 하는 것이 왠지 배움의 속도도 떨어지고 셰프가 예전보다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이 덜한가, 라는 의구심도 살짝 들고 있었던 상태인데, 함께 줄기콩을 다지고 있으니 초심이 돌아오며 마음이 100% 평온해졌다.


빵에 대해 수다를 떨며 계속 칼질을 하던 도중, 셰프가 인턴 후 계획이 어찌되냐 물었다. 뭐 학교는 다 끝나고 이제 정식 일자리 옵션들을 고민해봐야 될 것 같다고 대답하니, 잠시 침묵후 내가 배우는 속도나 태도가 굉장히 마음에 든다며 SPQR도 옵션에 넣으라고 하는거다. 좀 벙쪄서 (손가락 베일 뻔 ㅋㅋㅋ) Th..thank you chef 버벅거린 후 계속 칼질. 셰프는 계속 수다 -,.- 


여튼 남은 기간동안 브런치 라인에 정식으로 조만간 서게 될 거고, 한번 보여주면 다시 가르쳐 줄 필요없이 두번째부터 똑같이 해내고, 내가 혼자 맡아 할 수 있는 일이 벌써 여러가지 되는 건 굉장히 좋은 사인이며, 저스틴과 셰리도 날 매우 마음에 들어한다는 칭찬들을 줄줄이 해주셔서... 눈물이 쏙 들어갔다. 역시 리더는 리더인가보다. 제일 밑사람 마음을 어찌 이렇게 아시고 ㅋㅋ (덕분에 삘 받아서 12시까지 일했다 ㅋㅋㅋㅋ)


Thank you, Chef Mat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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