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단상

출장오기 한참 전부터 들떠있던 점은 한국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먹을 것들을 맘껏 먹어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금요일 오후에 도착해서 대충 정신차리고 시차적응 한후 주말 내내 시내 곳곳을 돌아다녔는데, 이것저것 먹어보고 쿠킹스토어 잔뜩 구경하고 정말 설레는 반나절이었음. 돈도 생각보다 많이 썼다. 그렇지만 아래 사진들을 보시면 구매대행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지실걸 음하하...

우선 아침 산책나갔다가 샀던 탱글탱글 신선한 블루베리 한 박스. 

생 블루베리를 한국에서 구하긴 너무 힘들다. 미국서도 자그마한 한 박스에 오천원씩 하는지라 자주는 못 쓰지만 파운드케익이나 머핀 등에 가끔 큰맘먹고 넣으면 상큼하니 톡톡 터지는 것이 최고인데, 한국은 냉동 아니면 건조밖에 본 적이 없다. 한국에서도 생과를 재배하는 농가가 생기고 있다고는 하는데 꽤 비싸지 않을까. 여튼 샌프란시스코에 있을 때 매일 먹어주겠으!

그 다음 여기서도 유명한 Blue Bottle Coffee에서 라떼 한 잔. 

홍대 커피와 사람들에서 드립커피를 마시고 올레를 외쳐본 적은 있으나 태어나서 라떼를 마시고 이렇게 감동한 적은 처음. 느무나 부드러운 우유거품에 커피의 깊은 향과 맛이 잘 녹아들어있었고, 맛있는 음식들이 그렇듯이 단순히 우유 + 커피 맛이 아니라 고소함부터 은근한 단맛까지 이어지는 3-4초간의 복합적이고 깊은 맛의 향연. 간간히 스타벅스도 보이는 샌프란시스코이지만 이런 커피정신이 살아있는 로컬 커피샵들이 성업하고 인기가 좋은 것이 큰 장점이라 생각한다. 참, 우유도 유기농을 쓰고 커피도 공정무역이지만 가격은 사천원도 안한다는 것. 

같이 먹은 시나몬롤도 역시나 오렌지와 사과향까지 배어든 신신한 감동.


그리고 아이언맨2 관람해주고 다운타운 쇼핑 잠깐 시작하려는 찰나, Crate & Barrell 발견해버림. 오노.
<출처 : http://www.crateandbarrel.com>

Crate & Barrell은 미국 전역에 백여개의 브랜치를 두고 있는 생활용품 가게이다. 물론 내가 관심있어하는 키친용품코너로 바로 샤샤샥.  눈돌아가기 시작함.

세트로 마련해 주고 싶은 Wusthof 칼들.

오마이갓. 인터넷에서만 보면서 애태우던 키친에이드 믹서기들이 빤짝빤짝. 제일 오른쪽 빨강이는 한정품 모델로 믹싱보울이 유리다 으헝헝. 지르고 싶으나 도저히 가져갈 수가 없기에...........

이렇게 다양한 부엌용품들이 넘쳐난다. 아래는 사과 등을 한번에 깨끗이 잘라주는 도구들.

한국에서는 줄리&줄리아 영화로 더 잘 알려지게 된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책과 거품기 등. 세라믹 파이팬도 너무 이쁘고.

계량스푼 종류도 몇십가지다. 막대사탕모양 쿠키커터 너무 이뻐서 들었다 놨다 백만번.

크렘블레 만들때 필요한 토치. 거기다 너무 깔끔하고 이쁜 레메킨들까지.

뜨거운 냄비손잡이 잡을 때 좋은 실리콘 손잡이. 정말 손에 너무 편하게 잘 맞는다.

무지개색 믹싱보울 세트.

나가는 길에 본 무지막지하게 예쁜 접시들. 세일하는데 몇개 사갈까 완전 고민중.

애써 맘을 달래며 가게를 나서니 얼마 못가서 Williams & Sonoma 발견. 
<출처 : http://sfist.com>

4층까지 있는 그야말로 최고의 부엌용품 백화점.

이 번쩍거리는 냄비들과 팬들..........

컬러풀함과 아름다움의 극치 Le Creuset. 진짜 다 업어가버리고 싶었음.

요런 노르딕 미니 케익팬도 보이고.

하트나 꽃모양의 계란후라이를 만들수 있는 틀. 살까살까말까살까말까?!

이건 부엌용품 최고의 디자인으로 유명한 회사 중 하나인 OXO에서 나온 락앤락 같은 밀폐용기다. 근데 손으로 열 필요가 없이, 가운데 저 버튼만 살짝 누르면 밀폐가 풀리며 저렇게 올라와 잡고 들어올리기만 하면 된다. 닫을때는 그냥 얹어놓고 다시 버튼 누르면 밀폐가 되며 닫힌다. 열고 닫을 때 딱 한손으로만 가볍게. 정말 최고다.

그 후 책방에 가서 천권은 되어 보이는 온갖 요리, 베이킹, 음식, 와인 등에 대한 책을 슈렉에 나오는 고양이 눈빛으로 바라봐주며 한참 보다가 결국 한 권 샀다.

저녁은 새로 생긴 유명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핸드메이드 파스타로. 내껀 손으로 직접 뽑은 약간 두툼한 면에 양고기를 오래 푹 익혀 잘게 찢은 후 바삭한 빵가루를 뿌린 것. 

이런 하루를 보내고 집에 와서 골아떯어짐. 그러나 역시 시차때문에 새벽 다섯시에 눈을 떠버렸다는...

앞으로 종종 샌프란 업데이트 올리도록 하겠다. 혹시 추천하시는 곳 있음 바로 댓글 달아주시고! :)

반죽 → 1차발효 → 휴지&성형 → 2차발효 → 굽기

포스팅 시작하기 전 잠깐 : 필자가 앞으로 한달간 샌프란시스코 출장이라 포스팅에 제한이 있을 예정. 글이야 계속해서 꾸준히 올리나 사진 에디팅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당분간은 아이폰사진이나 퍼오는 사진으로 대체해야 할 듯 하니 사진퀄리티가 널뛰더라도 양해부탁드린다 :)

자 그럼, 성공적인 발효를 위한 발효빵 성공하기 시리즈 제2탄 고고!

<출처 : http://pinchmysalt.com>

지난 포스팅에서는 빵의 살결을 책임지는 반죽을 제대로 하는 법에 대해 살펴봤다. 그럼 이렇게 열심히 정성을 들여 치댄 반죽을(반죽기 돌리신 분들은 전기값 들어갔고) 잘 발효시켜보자. 

우선 발효란 무엇인가? 발효란, 반죽의 이스트가 가스를 생성하게 해 반죽에 공기를 불어넣는 작업이다. 반죽이 충분히 부풀지 않으면 그만큼 밀도가 높아지고 덜 뽀송하다.

발효작업은 개요에서 살펴봤듯이 대개 두 번에 걸쳐 들어간다.(필요에 따라 예외도 있다.) 이를 1차발효, 2차발효로 나눠부르는데, 두 번에 걸쳐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반죽을 좀 더 숙성시켜 더 부드럽고 유연한 빵결 만들기. 바로 성형하면 반죽이 상대적으로 뻣뻣해서 힘들고, 이미 한 번 공기가 들어갔다가 일부 빠진 유연한 상태에서 작업하는 것이 더 수월하며 나중에 더 뽀송하다. 달리기 할때 근육을 바로 쓰는 것보다는 스트레칭이나 워밍업등을 한 후 운동하는 것과 마찬가지. 둘째, "두번째 우려낸 녹차" 같은 상품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1차발효에 풍풍 생성된 "첫" 가스로 빵을 부풀려 바로 굽는 것보다는 좀 더 이스트를 울궈먹어(?) 깊은 가스맛을 우려내는 것이다.

그럼 발효를 잘하려면 제일 중요한 스킬은 무엇인가? 반죽 치대기와 달리, 발효는 힘 들어갈 일이 없다. 다만 발효가 잘 되려면 이스트가 가스생성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온도와 습도가 제일 중요하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서.

그럼 (사실 차례라 할것도 없는) 1차발효의 기본 차례를 살펴보자.


반죽 둥글려 세팅 → 적합한 온도&습도 제공  발효상태 확인


뭐 요 정도?

반죽 둥글려 세팅                                                                        

1) 우선 다된 반죽을 대충 뭉뚱그려 둥그렇게 넣지 말고 반죽을 밑에서 받치듯이 두손으로 잡고 중앙에서 바깥으로 잡아당기며 둥글리면서 결을 정리해준다.
2) 그 다음 기름칠을 하라고 많이들 하는데, 사실 안해도 그만. 그냥 믹싱보울 바닥에 슬쩍 밀가루 뿌리고 반죽담아도 지장없다. 
3) 랩을 씌워 구멍을 숭숭 뚫어준다. 

적합한 온도&습도 제공                                                            

온도 너무 온도가 낮으면 이스트가 활동을 못하고, 너무 높으면 과발효 되거나 빠른 가스생성으로 인해 빵의 맛이 덜해진다. 적당한 1차 발효 온도는 섭씨 30-35도. 한여름에 냉방되지 않은 실내라면 사실 실온도 적당하다.

습도 홈페이킹의 취약점은 충분한 습기를 제공해 주는 발효실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너무 눅눅해도 반죽이 무거워지고 질어져 발효가 제대로 안되나 말라도 풍성한 발효가 어렵다. 

그럼 집에서 온도와 습도 모두 잡을 수 있는 방법들을 알아보자.

1) 오븐

오븐을 살짝 데워 온도를 올리고 물 한컵을 같이 넣거나 물뿌리개로 분사해 수분을 보충한다. 발효기능이 있는 오븐은 알아서 맞춰서 사용하시면 되고, 발효기능 없는 오븐은 잠깐 오븐을 덥혔다 끄고 반죽을 넣어준다. 주의 절대 오븐 내부가 50도를 넘지 않도록 한다. 이스트는 60도에서 죽으니 50도 이상이 되면 위험하다. 발효기능이 따로없는 경우 절대 오븐을 켜놓지 않고, 껐다 하더라도 불안하면 오븐 문을 살짝 열고 발효시킨다. 

2) 전자렌지

발효하는 그릇이 너무 크지 않을 경우 물 한두컵을 전자렌지에 넣고 2-3분간 강으로 돌리면 수증기도 차고 내부온도도 올라간다. 바로 반죽그릇을 넣고 재빨리 닫고 발효시킨다.

3) 밑에 냄비, 위에 면보

오븐은 불안하고, 전자렌지가 너무 좁으면 제일 원시적으로! 반죽그릇 밑에 뜨뜻한 물이 든 냄비나 용기를 받치고 위에는 젖은 면보로 덮어주어 온도와 습도 보충주의 물과 그릇바닥이 너무 가까워 이스트가 죽거나 반죽이 익어버리는 경우가 없게 한다. 

그밖에 전기장판, 아이스박스 등 방법은 다양하나 위 세가지가 집에서 하기 제일 수월하고 용이한 듯. 

발효상태 확인                                                                              

예를 들어 레시피에 1차발효 30분, 이런 식으로 나와 있다면 반드시 시간이 아닌 반죽의 상태로 확인한다. 그날의 온도, 습도, 반죽의 상태에 따라 20분이 걸릴수도 있고 한시간이 걸릴수도 있으니 정확히 체크하는 법을 알아보자.

1) 부피가 두배로 늘었다

간단하다. 반죽의 부피를 눈으로 확인. 그러나 처음에는 1.5배인지, 2배인지 감이 잘 안오니 지름이 바닥부터 일정한 용기를 쓰거나 부피표시가 되어 있는 용기가 있으면 편하다. 반죽을 보고 "오호...좀 부풀었는데?" 하면 1.5배. "흐어어억 빵빵하다"라는 감탄사가 나오는 것이 2배삘. 아래 사진 참고.
<발효전과 발효후>

2) 손가락으로 찌르면 그대로 있는다

요것도 간단하다. 손가락에 밀가루 좀 묻히고 가운데쪽을 푸욱- 찔러본다. 반죽 구멍이 다시 올라오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다 된 것. 스으윽- 다시 올라오면 좀 더 놓아둔다.

3) 바닥에 거미줄이 깔렸다

이건 발효 전 기름칠 하면 좀 확인이 어려운데, 반죽 밑바닥을 들어봤을 때 아래 사진같은 거미줄이 주욱 늘어나며 보인다면 발효 완료. 그나저나 요것들이 바로 나중의 닭살빵결들의 주인공 으흐흐흐~

<출처 : http://blog.naver.com/chi00>

4) 반죽을 찝으면 기포가 느껴진다

반죽양이 너무 적으면 어려울 수도 있는데, 검지와 엄지로 반죽 표면을 살짝 찝어본다. 소포 안에 든 버블랩 터지는 느낌이 톡톡 뽀드득 나면 발효가 다 된 것이다. 


이 중 한두가지만 확인하면 되지만 처음에는 네가지 다 확인해보는 것이 감 익히는데 큰 도움이 되니 재미삼아 해 보시길 :)

반죽을 만지다보면 발효가 잘된 반죽이 얼마나 보드랍고 황홀한 느낌인지 알게되실거다. 2차발효 시키고 나서는 반죽에 손을 댈 수 없으니 1차발효 후에만 유일하게 그 느낌을 즐길 수 있는데 난 항상 너무 느낌.......쿨럭

도움이 되셨음 추춴 한봥! :D

나는 보통 음식점을 가서 사진을 잘 찍지 않는 편이다. 관광하러 갔다가 사진 찍는데에 너무 정신이 팔리면 막상 직접 보고 느끼는데의 집중력이 분산되는 것이 싫은 것과 같은 이유다. 그리고 음식이 갓 테이블에 올라 따끈할 때 맛보는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기도 하다. 블로그에 굳이 여러장 올리지 않아도 이미 리뷰사이트들과 다른 블로그들에 음식사진들은 충분히 올라와 있는데다가, 또한 주문하고 과연 어떤 비쥬얼이 등장할 것인가 상상해 보는 것도 상당한 재미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레스쁘아에서 사진을 찍게 된 계기는 얘기해 드리고 싶은 스토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보통 셰프에게 최고의 칭찬은 깨끗하게 빈 접시라고 하지 않는가. 얼마나 깨끗하게 먹었는지(웨이터에게 약간 민망할 정도로) Before와 After를 비교해 드리고 싶어서 한장씩 박아왔음.

삼성동 아파트 단지 건너편 골목에 자그마하게 위치한 레스쁘아는 윙버스에서 처음 발견했다. 예전 살던 곳이라 반갑기도 했고, 좋은 음식평들에 한 번 가보고 벼르고 있다가 마침 나에게 르 알라스카를 소개해준 그녀와 함께 비오는 스산한 화요일 레스쁘아로 향했다. 


자그마한 공간에 여섯개 정도의 식탁, 가지런히 걸려있는 와인글래스, 요리서적이 놓여있는 은은한 불빛의 레스쁘아는 이국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역시 자그마한 오픈키친에서는 남자 세 분이 열심히 준비를 하고 계셨고, 웨이터는 훤칠한 남자분 한 분. 

메뉴를 한참(정말 한참) 고르고 고르다 결국 단품으로 스프, 샐러드, 메인 두가지를 시키기로 결정. 거기에 와인은 보르도 블랑(Bordeaux Blanc) 반병짜리.


첫 주인공 양파스프.


양파스프가 이럴 수 있구나. 어머어머어쩌니이거어떻게이렇게만들지양파를어떻게볶은거야도대체치즈는뭐지오마이갓어머나를 연발하면서 싹싹 긁어먹었다. 나의 짧은 작문실력으로 대강 표현을 해 보자면 뜨끈달콤구수고소짭짤쫄깃부들 정도 되겠다. 여태까지 먹은 양파스프중에 단연 일등. 물론 주관적이라 하겠지만 하도 이 스프에 대한 극찬 리뷰들을 읽어 기대감 한껏 상승한 상태에서 저 정도의 감동을 느낀다는 건 대단한 맛이라는 것이 아닐까.

양파스프는 먹고나서 너무 정신줄 놓고 있다가 웨이터가 빈 그릇 치우기 전 사진 못 찍음.


두번째 주인공 비트 샐러드.


잘 익힌 비트는 정말 맛있다. 달짝하면서 상큼하고, 내가 좋아하는 뿌리야채의 그 부드러운 식감까지. 이 샐러드는 절대 드레싱이나 치즈로 범벅이 되어 있지 않다. 한줌의 그린 밑에 사과와 호두, 비트가 섞여있고 블루치즈 두조각이 얌전히 곁들여 나온다. 상큼한 드레싱과 모든 재료들이 산뜻달콤새콤아삭한 조화를 자랑하며 약간 꼬리꼬리한 블루치즈가 깊이를 더해준다. 그리고 샐러드 먹다보면 잎파리들이 너무 많이 남거나 부족한데, 요것은 딱 좋았음.


초토화.


옆 테이블에 여섯명의 테이블이 있어 메인이 나오는데 시간이 걸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시킨 메뉴들의 비주얼과 맛에 점점 기대가 되며 들썩들썩하고 있을 때...


오리 콩피 등장.


우선 육수와 아래 깔려있는 보리밥(?)을 조금 떠서 먹었는데 약간 맹숭한 느낌. 몰려오려는 실망감을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 거부하고 있었는데 웨이터님, "콩피는 살을 발라 육수와 함께 숟가락으로 드시면 더 맛있습니다." 아하하하 그래 나 콩피 먹어본 적 없고. 베시시 웃으며 감사의 미소를 날리고 얼른 살을 발랐다. 

오리를 뒈췌 어떻게 구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드럽고 쫄깃한 살점과 깊은 맛의 육수, 탱글탱글한 보리밥이 어우러진 한 숟갈. 정말 구수하면서 기름지면서 담백했다.(나도 이게 어떻게 가능한 조합인지 모름) 거기다가 너무 느끼하지 않게 잡아주는 은~은한 상큼한 뭔가가 끝맛에 느껴졌다. 먹으면서 뭘까뭐지도대체뭐냐고아진짜뭐지를 되뇌이며 먹다가 순간 오렌지라는 것을 깨달으니 눈에 들어오는 곱디고운 오렌지 제스트.(근데 알고 봤더니 메뉴에 오렌지라고 써 있어서 엄청 허무했음)

이 메뉴가 특히 좋았던 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식어서 맛이 덜해지는 것이 아니라 먹으면 먹을수록 맛이 더 깊어진다는 것.

역시 초토화.



그리고 마지막 주인공인 랍스터 리조또.


얼마나 훌륭한 비주얼인가. 

리조또의 노란색 주인공은 사프란(Saffron)인데, 꽃에서 나는 향신료다. 꽃 한송이당 두세가닥밖에 없는 수술을 체취한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비싸다. 그렇지만 향기로우면서 감칠맛나는 특이한 향신료다.

리조또는 밥알이 퍼펙트한 알덴테(내 맘대로 갖다 붙이기)였다. 시작은 한없이 부드러우면서 끝에 살짝 씹히는 맛. 랍스터는 겉에는 탱글, 속은 사르르 녹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정말 남산타워의 엔그릴에서 먹었던 퍽퍽하고 드라이한 8만원짜리 랍스터랑 너무 비교되는...


역시 깨끗하게 마무리.


접시와 랍스터 껍질에 묻은 소스까지 아까움.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나니 정말 반 정신이 풀려있었다. 그렇지만 잠깐 정신을 차리고 디저트 주문.


크렘블레(Crème brûlée) 등장.


크렘블레는 바닐라빈을 충분히 써서 풍부한 바닐라맛과 부드러운 커스터드에, 적당한 두께의 카라멜. 너무 클래식한 맛이어서 그런지 쇼킹한 감동은 없었으나 은근하고 부드러운 마침표. 


이마저 싹싹.



참고로 식전빵은 그냥 무난했다. 톰볼라의 포카치아가 더 감동. 아마 빵을 직접 굽는 게 아니라 공수해오는 듯.(제가 빵은 열심히 만들어 납품해드릴 용의가 있는데 굽신...) 그렇지만 같이 나오는 트러플 오일과 올리브 스프레드는 아주 깔끔하고 좋았다.

청담역 바로 근처인 강남구 삼성동 65번지에 위치한 이 곳은 뉴욕의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 다니엘에서 경험을 쌓은 임기학 셰프가 오픈한 곳이라 한다. 자리가 협소하니 예약권장.(02-517-6034) 일요일 휴무. 가격대는 스프/에피타이저가 8천원 - 2만2천원. 메인은 2만5천원선에서 5만원선까지. 디저트류는 8천원대. 코스는 5만8천원 - 9만8천원선. 별도세금 10%. 아, 와인이 반병짜리가 많아 좋다.

예전 맛집 리뷰에 관한 단상에 올렸듯이, 정말 맛있는 집은 서비스나 칼로리 등에 신경쓸 겨를이 없이 음식에 집중하게 된다. 레스쁘아는 그런 즐거움과 감동을 안겨준 손에 꼽히는 집이었고, 조만간 다른 메뉴들을 먹으러 갈 계획이다. 너무 격식을 차리지 않고, 캐주얼한 복장에 슬슬 산책겸 걸어가 훌륭한 요리를 맛볼수 있는 소중한 곳. 주방의 바빠지는 열기를 직접 느낄 수 있고 밥먹고 셰프의 얼굴을 보며 잘 먹었다고 인사할 수 있는 곳.

아, 나 셰프님 안아드리고 싶었는데 수줍어서...

내가 격하게 아끼는 레시피 중에 고소한 버터향에 입에서 사르르 녹아버리는 비스킷 레시피가 있다. 이 레시피를 올리면서 꼭 다루고 싶었던 포인트가 있었느니...바로 스콘과 비스킷의 차이점. 원래 발효빵 정복하기 시리즈 끝내고 올리려 했으나 블로그 서핑중 "스콘과 비스킷은 결국 똑같지 않나?"라는 백만스물일곱번째 포스팅을 보고 야밤의 급 포스팅 시작한다.

우리 좀 닮았나요♬

<출처 : http://www.fotobank.ru>
<출처 : http://bakingillustrated.com>

둘 다 동그랗게 만들어버리면 얼핏 보기만해서는 비슷해 보이는 스콘과 비스킷은 들어가는 재료와 과정면에서는 사촌격이기는 하나 여러가지의 차이점을 지닌 엄연히 다른 종족들이다. 물론 둘다 밀가루와 버터가 주재료로 들어가고, 베이킹파우더를 사용해 팽창시키는 '퀵 브레드'라는 점은 같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스콘 비스킷 
 유래국가 스코트랜드(현재는 영국) 미국
 재료  달걀 넣는 경우 많음 달걀 들어가지 않음 
 질감  전체적으로 좀 더 밀도 있고 단단 좀 더 빵스럽고 폭신함 
모양  둥그렇거나 세모낳거나 네모낳거나 99% 둥그런 모양 
맛  달게도 만들고 짭짤하게도 만들고  짭짤하게만 만든다 
같이하는음식  차나 커피 등 마실것 고기나 그래비 등 음식
<출처 : http://www.wikipedia.org>

정리가 좀 되셨는지. 물론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맛이나 질감이 차이가 없어져 버릴 수도 있겠지만 재료와 방법이 비슷하다고 비빔냉면과 국수가 같은 것은 아니지 않나?

자, 그럼 고이 아껴두었던 비스킷 레시피 나간다. 

내가 보통 최고로 꼽는 레시피들은 두가지 덕목이 필요하다 : 간단할 것. 그러나 맛있을 것. 이 비스킷 레시피는 가진 레시피들 중 제일 간단하고 쉬울 뿐만 아니라, 먹어본 비스킷 중 제일 맛있었다. 오븐에서 갓 구워져 나온 녀석을 한 입 베어물었을 때 입안에 따뜻하게 번지는 버터의 고소한 향과 사르르 녹는 속살. @#$#@*$#(*$@(#!#@#!



사르르 생크림 비스킷

지름 5-6cm 12개 분량

중력분 220g (2컵)

베이킹파우더 1 Tablespoon

소금 1/2 Teaspoon

설탕 1 Tablespoon (옵션)


생크림 1과 1/4컵

버터 3 Tablespoon 녹인거 (1/4컵 좀 안되게)

(너무 착한 재료)


1 미리 예열해 놓기 섭씨 220도로 예열한다.

2 마른재료 섞기 밀가루, 베이킹파우더, 소금, 설탕을 체쳐서 고루 섞어준다.

3 생크림 부어주기 우선 한 컵을 먼저 넣고 농도를 봐 가면서 나머지를 섞어준다. 농도는 손에 묻어나지 않고 말랑말랑한 정도가 좋다.



4 밀어서 모양잡기 밀대로 밀어 (아니면 그냥 손으로 퍽퍽 눌러 납작하게) 3cm 정도 두께로 만든다. 그 다음에 둥근 틀로 찍어내던가 칼로 슥슥 네모나 세모모양으로 잘라준다. 단 크기들은 같아야 익는 시간이 고르겠지?

5 버터 발라주기 녹인 버터를 넉넉~히 발라준다. 너무 많이 바르면 질어지면서 좀 퍼질 수가 있으니 한강처럼 흥건하게 발라주지는 않는다.
 

6 중간높이에서 굽기 예열된 오븐에 바로 반죽을 넣고 15분 가량 구워준다. 노릇노릇하게 익으면 끝.

완전 쉽죠잉? 

그럼 칼로리도 일반 비스킷보다 적고 열배는 더 맛있는 비스킷 한 번 구워보시고 맛있으면 손가락 눌러 추천 한 방! :D

반죽 → 1차발효 → 휴지&성형 → 2차발효 → 굽기

Intro에서도 언급했듯이 잘 치대어진 반죽은 발효빵 성공의 기본이다. 반죽이 쫄깃하게 잘 되어야 발효도 그만큼 잘되고, 맛도 있는 것. 그럼 쫙쫙 늘어지고 애기 궁뎅이 같은 반죽을 위해 고고!

우선 반죽의 목적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첫번째, 빵을 빵빵하게 만드는 가스의 주범(?)인 이스트를 반죽에 잘 섞어 고루 살포. 두번째, 포실하고 닭살같은 빵의 구조를 만드는 촘촘하고 튼튼한 그물망 같은 반죽 구성.

기본적인 차례는 역시 간단하다.


마른 재료 섞기  액체류와 섞기  팍팍 치대기


제빵기나 스탠드믹서를 쓰시는 분은 속도만 조절해 같은 순서로 해 주시면 되겠다. 손반죽하시는 분들은 팔 준비운동 잠깐 해주시고~ 그럼 각 차례를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며 반죽의 두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주의해야 할 점들을 찝어보자. 

마른 재료 섞기                                                                                    

1) 이스트는 살아있는 생물, 죽이지 말자

빵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마른 재료란 밀가루, 소금, 설탕, 이스트를 얘기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스트가 소금과 설탕에 직접 닿지 않도록 한다. 가스를 방출하려고 넣었는데 이스트가 첨부터 죽어버리면 시작해보지도 못하고 게임끝인거다. 밀가루와 이스트를 먼저 조물락거려 밀가루로 코팅해 준 후 소금과 설탕을 넣는다.

여기서 잠깐, 이스트는 살아 있는 미생물이다. 얘네도 수명이 있겠지 그럼? 이스트를 사놓고 좀 오래되어 긴가민가 하다면, 이스트 테스트를 해보자. 별거 없다. 그냥 뜨뜻한 물에 설탕 좀 풀고 이스트를 뿌려놓은 다음 5분에서 10분 정도 기다려보고 사진같은 기네스 맥주같은 거품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살아있는 거다. 단, 물 온도는 섭씨 40-50도가 좋으며 60도에서는 이스트가 죽으니 절대조심.

요렇게 부글부글 거품이 생겨야 한다. 사진은 5분여 지났을 때.

Phoebe님이전 포스팅에 덧글 남겨주신 것처럼 이스트 선택도 중요한데 그건 부록에서 다루도록하겠다. 여튼 제일 중요한 것은 이스트가 살아있는지 확인하는 것과 죽이지 않는 것.


액체류와 섞기                                                                                     

액체류는 대개 물, 우유, 혹은 물+우유, 달걀, 그리고 버터 등의 유지류이다. 아까 섞어놓은 가루류에 넣고 고루 섞어준다. 손반죽 하시는 분들은 여기서부터 손쓰면 너무 들러붙으니 스패츌라나 주걱을 이용하시는 걸 권해드린다.

1) 반죽이 너무 차가우면 이스트가 제대로 활동을 못하니 따뜻하게 온도를 맞추어준다. 

물이나 우유는 한 컵양에 전자렌지로 3-40초 돌려 섭씨 40-50도로 맞춰준다. 손을 넣었을 때 따끈한 느낌이 좋다. 뜨뜻은 좀 부족하고 앗뜨거는 이스트가 죽는 60도가 넘을 가능성이 높다.(맘편하게 온도계를 사는 것을 추천드린다.) 나같은 경우는 아예 들어가는 물이나 우유 전량에 이스트 테스트를 한 후 그걸 그대로 마른 가루와 섞어준다. 그리고 달걀은 미리 실온에 한시간 이상 꺼내놓는다.(시간이 없음 겨드랑이에 끼어서......음.)

2) 유지류는 나중에

보통 유지류를 한번에 넣어서 믹싱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조금 귀찮을지 몰라도 물이랑 달걀을 먼저 섞고 어느정도 뭉쳐지면 유지류를 넣어주는 것이 좋다. 특히 스탠드믹서보다 힘딸리는 손반죽은 더욱 그러한데, 그 이유는 유지를 처음부터 같이 넣어버리면 밀가루에 수분이 고루 퍼지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촉촉하고 잘 늘어나는 반죽을 만드려면 수분의 고루퍼짐이 중요. 


팍팍 치대기                                                                                       

빵의 살결은 이 치대기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기계를 사용하시는 분들은 반죽 테스트에 관한 마지막 포인트만 참조하시면 되겠다. 

1) 덧가루는 최대한 자제해주신다. 

덧가루가 많으면 반죽이 뻑뻑해지고 빵도 맛이 없다. 보통 덧가루를 첨가하는 이유는 너무 질어서 들러붙어 반죽하기가 힘들어서가 대부분인데, 반죽에 직접 밀가루를 퍽 추가하지 말고, 들러붙으려 하면 손바닥과 바닥에 얇게 밀가루를 묻혀가며 치댄다. 요기서 팁 - 아래와 같은 구멍숭숭 양념통 강추. 또 바닥에 붙는 반죽들은 스크레이퍼로 긁어주며 밀가루 사용을 최소화한다. 바닥에 찍찍 붙으나 너무 많이 묻어나지 않는 반죽 상태가 좋다.

매우 유용한 밀가루 셰이커.
<출처 - http://www.salad-in-a-jar.com>

이럴 지경이어도 인내하라. 인내. 인내. 인내하고 인내하고 치대다 보면 복이 온다.
<출처 - http://sustainablepantry.com>

2) 무조건 열심히 치대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필요하다. 

달걀보기를 여자같이 하라 포스팅에서 말했듯이, 나 너 좋아라고 득달같이 열정만으로만 달려들다가는 일을 그르친다. 노련한 밀당스킬이 필요하다. 반죽 치대기도 마찬가지다. 기술을 알면 10여분내에 끝나지만, 테크닉없이 열심히 치대기만 하면 30분을 치대도 진전이 없고, 오히려 애써 조금이나마 만든 결을 끊어버릴 수가 있다. 

자 그럼, 치대기 테크닉을 알려 드리겠다. 밀고 접고 돌리기, 일명 밀접돌 테크닉이다. 한 손으로 반죽을 밀어낸후(잡아땡기는 것이 아니고) 반 접어 90도 돌리고 다시 밀어주고 접고 돌리고 밀고 접고 돌리고...백문이 불여일견, 그림을 보자. 아직 이해 안되시는 분은 여기 동영상 00:50부터 참조.

이렇게 밀고 - 접고 - 돌리고를 반복한다.

테크닉의 포인트는 반죽을 끊임없이 접고 밀어 계속해서 새로운 면들을 접촉시키는 것이다. 이래야 더 많은 글루텐, 즉 빵결 네트워크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반죽 그냥 손에 쥐고 주물럭거리기만 하면 글루텐이 형성되지 않는다.

3) 시간이 아닌 반죽의 정도로 다 되었는지 확인한다

반죽은 테크닉이나 손, 혹은 믹서의 힘, 그리고 반죽 자체 구성에 따라 치대는 시간이 달라진다. 때문에 반죽의 정도로 확인하는데, 이는 반죽을 조금 떼어서 살살 손끝으로 늘려보는 방법이다. 손에 들러붙으니 손에 덧가루 충분히 묻히고, 검지손가락과 엄지손가락으로 중앙부터 납작하게 눌러가며 살살 늘려본다. 아주 약간의 힘에도 늘어나지 않고 뚝 끊어지면 덜 된 것이다. 반대로 손가락 지문이 비칠 정도로 얇게 늘어나면 완성! 이 때 너무 급하게 쭉 잡아당기면 아무리 잘 된 반죽도 끊어지니 살살~

손반죽으로 기계 반죽만큼 매끄럽고 지문 비칠 정도로 좍좍 늘어날 정도로 치대기는 어렵다. 늘려봤을 때 표면이 약간 거칠지만 불빛이 비쳐질정도로 얇게 늘어날 정도면 빵 잘 나오니 거기서 마무리한다. 

요렇게 살살 펴본다. 
<출처 - http://thekitchn.com>

자, 다음 포스팅에서는 이렇게 땀흘리고 정성들여 완성한 반죽을 잘 발효시키는 팁을 다룰 예정이다.참고로 제빵기 쓰시는 분들, 여유 있으시면 발효는 따로하시는 걸 권해드린다. 반죽하는 법 마스터했으면 이제 발효를 해보자. 다음 포스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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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인내심 백만컵과 노력 백만큰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불가능은 없다는 걸 기억하며 동기부여용으로 돌덩이빵으로 시작해 제빵기능사 자격증까지 따게 된 필자의 일화를 잠시 감상하자. 지루하신 분은 바로 스킵해주시면 되겠다.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가 케익과 파이 등을 구우실 때마다 동경의 눈빛으로 쳐다봤던 나는 재료비를 충당할 재정적 능력이 생기면서 부엌을 밀가루 천지로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해 보이는 쿠키류부터 머핀, 스펀지 케익 등등. 레시피를 하나하나 시도해 볼 때마다 모양과 맛이 그런대로 괜찮게 나왔고, 베이킹 좀 한다, 라는 자만심이 약간씩 붙어갈 때쯤, 나를 좌절시킨 것이란 발로 발효빵.

파운드 케익이나 초콜렛칩 쿠키는 너무 쉬워서 재미없다, 라며 일부러 복잡한 레시피를 고르던 철없는 대학생이었던 난, 발효빵도 일부러 뭔가 더 있어보이는 베이글을 만들어보기로 결정했다.(지금 생각하면 참...) 열심히 레시피대로 치대고 둥글리고 구멍뚫고...그런데 하면서 잘 되고 있다, 라는 감이 통 오질 않는 것이다. 발효를 한시간 했는데 부풀지도 않고, 말랑한 느낌도 없고. 불안했지만 무식한 자신감으로 결국 오븐까지 골인. 오븐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버텨봤지만 허연 반죽덩이들은 베이글보다는 말라빠진 프렛즐에 더 가까운 모양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오븐에서 나온 녀석들은 밀가루 돌덩이라는 표현이 딱 적합했다. 얼굴을 붉히며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투하. 

그뒤로 대여섯번을 더 시도했지만 뽀송뽀송한 빵은 절대 나와주지 않았다. 돌덩이 같은 빵 두세번 굽고나니 이제는 약간 부풀어 오르긴 했는데 여전히 뻑뻑. 블로그들에 올라온 닭살같이 쭉쭉 찢어지는 빵결은 아예 꿈도 꾸지 못했다. 열심히 손으로 반죽을 치대느라 팔만 굵어질 뿐. 그 후 나는 아예 발효빵 자체를 포기하기로 생각했다. 

그러다 몇 년이 지난 작년 여름, 불현듯 다시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는 모르겠고 그냥 막연히. 열씸히 반죽을 치대고 공을 들여 발효를 시키고...오호라, 감이 괜찮았다. 오븐에 넣고 몇 년전과 마찬가지로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어, 그런데 조금 지나니 뭔가 부풀어오르면서 빵빵해진다. 오호, 색깔도 노르스름 나름 빵스럽게 변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20여분이 지난 후 두근두근 설레임을 안고 조심스럽게 꺼내 급한 마음에 얼른 빵을 썰어보았다. 오오, 빵스럽지 아니한가. 치아바타를 구웠는데 구멍 숭숭에 뽀송뽀송. 물론 간도 좀 안맞고 질긴 껍질에 빵결도 거칠었지만 나에게는 감동의 날이었다. 

<감격스런 첫 성공>

그 후 엄청난 탄력을 받은 나는 식빵에 베이글에 닥치는대로 시도하기 시작헀고, 곧 나름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오븐질>

그러나 계속되는 동생의 정직한 피드백. "그냥 먹을만 해." 

먹을만 해...먹을만 해...먹을만 해...먹을만 해...

내친김에 제대로 배워보자 생각을 하고 날씨가 선선해지기 시작한 늦여름, 집근처 제빵학원에 등록했다. 그것도 무려 자격증반. 토요일마다 대여섯시간씩 온갖 빵들을 구워보면서 혼자 인터넷 뒤져가며 할때는 상상도 못했던 소중한 노하우들과 팁들을 배우게 되었고, 결국 올해 2월, 감격스런 제빵기능사 자격증 시험에까지 합격했다. 이제 빵을 구워 먹이면 동생은 "아 또 먹으래!" 하면서도 "오 맛있네~"를 연발해준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결국 결론은 하면 된다, 이다. 

그럼 이제, 본격적인 매뉴얼을 시작해보자. (백만년 걸려주시고)

버터와 설탕을 섞다가, 흰자 거품을 냈다가, 재료와 방법이 휙휙 바뀌는 머핀, 케익 등의 제과와 달리 제빵은 어떤 레시피던 대부분의 기본 절차가 똑같다. 그 절차는 크게 다음과 같다.

반죽 → 1차발효 → 휴지&성형 → 2차발효 → 굽기

그러나 많은 분들이 반죽과 특히 발효를 어려워하시며, 두세번의 실패 후에는 예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예 포기를 하시는 경우가 많다. 이 빵 반죽이라는 녀석은 민감해 조금이라도 뭔가 부족하면 원하는 퀄리티가 나와주지 않는다. 그러나 각 단계를 마스터해 한 번 성공하고 나면 제과보다 훨씬 덜 복잡하고 재료도 간단하며, 오히려 더 쉽게 느껴질 수 있다.

시리즈로 진행할 이 매뉴얼은 각각의 단계를 좀 더 심도있게 다룰 예정이다. 본인이 조금 취약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면 해당 파트를 골라 정독해주시면 되겠다. 우선 오늘 intro에서는 전체 흐름을 살펴보도록 하자.

반죽 

밀가루, 이스트, 달걀 등 빵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잘 섞어주는 단계이다. 반죽의 주 목적은 이스트가 생성하는 가스가 고루고루 반죽을 팽창시킬 수 있도록 말랑하고 탄탄한 조직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마치 불기 쉽고 튼튼한 풍선을 만드는 것처럼. 아무리 풍선을 열심히 불어도 바람이 샌다던가, 너무 질기다면 잘 부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더 자세히 보기


1차발효 

반죽내의 이스트가 가스생성을 하도록 습하고 따뜻한 환경에 내버려두는 단계이다. 1차발효의 주 목적은 반죽에 공기를 불어넣어 전체적으로 부피감을 늘려주고 조직을 뽀송뽀송하게 만들어주는 단계이다. 풍선을 본격적으로 불기전에 바람을 한 번 불어넣어줘서 워밍업 한다 생각하자. 더 자세히 보기


휴지&성형

휴지는 말 그대로 반죽을 잠시 쉬게 두는 단계이다. 치대고 부풀었다 줄었다 한 반죽은 바로 성형에 들어가면 오그라들어 작업이 어렵기 때문이다. 휴지 후에는 원하는 모양으로 성형을 한다. 성형 후에 그 모양대로 가스를 더 불어넣을 것이기 때문에 완성품의 부피와 모양보다 좀 더 납작하고 얇게 작업이 들어간다. 왼쪽 일러스트레이션은 식빵 성형 예시이다. 더 자세히 보기

2차발효

1차발효와 마찬가지로 반죽내의 이스트가 가스새성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단계이다. 2차발효의 주 목적은 성형한 반죽안에 마지막으로 가스를 불어넣어 최종 부피와 모양을 잡아주는 것이다. 그러나 오븐에 넣은 후 열이 오르면서 이스트들이 마지막 발악을 할 때 순간 가스를 확 방출하기 때문에 최종 부피의 80% 정도로 잡는다. 더 자세히 보기


굽기

말 그대로 가열된 오븐에 부풀린 반죽을 넣어 굽는 단계이다. 정성을 들여 치대고 부풀린 반죽을 열을 가해 굳혀주고 먹음직스런 갈색을 내는 것이다. 위에 얘기한대로 이스트들이 죽기 전까지 가스를 생성하므로 최종 반죽보다 좀 더 커져서 구워진다. 풍선으로 말하자면 80% 정도 불어둔 것을 열을 가해 공기를 팽창시키고 마지막으로 꽉 묶어줘서 공기가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더 자세히 보기


이제 차차 각 단계에 대해 좀 더 자세한 포스팅을 올릴 예정이다. 자세한 내용은 각 파트의 "더 자세히 보기" 링크를 클릭. 궁금한 점이나 수정/추가해야 할 내용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댓글로 달아주시고, 다같이 닭살빵결을 위해 화이팅 :)


음식 중에는 서로 궁합이 잘 맞는 것들이 있다. 찐한 브라우니와 바닐라 아이스크림, 설렁탕과 큼지막한 깍두기, 오뎅과 떡볶이 같이 서로의 맛을 증대시켜주는 짝궁들. 와인 세계에서는 그 와인과 잘 맞는 음식의 커넥션을 마리아쥬(mariage : 프랑스어로 결혼이라는 뜻)라고 부르며 매우 중요시하기까지. 

내가 사랑하는 "마리아쥬"의 하나는 초콜렛과 과일이다. 크게 열매류로 보자면 견과류나 씨앗류까지. 생각해 보면 맛없는 것이 없다 : 초콜렛과 딸기. 초콜렛과 코코넛. 초콜렛과 바나나. 초콜렛과 아몬드, 초콜렛과 해바라기씨(어릴적 스낵 최고봉) 등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생각해내기가 힘이 들 정도.

그 중 내가 진짜 아끼는 조합은 초콜렛과 오렌지이다. 제주감귤초콜렛이나 어렸을 때 가끔씩 먹을 수 있었던 요 밀라노 쿠키 오렌지맛이란....꺄아

Milano cookies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광고 한 번 참 강렬하지 않은가? 진정한 마리아쥬의 느낌을 잘 이해하고 있는 듯.(수줍)

밀라노 쿠키 광고
<출처 : http://mokellyreport.blogspot.com>


여튼, 오늘 아침 요리블로그계에서 유명하신 정윤정님이 요 오렌지 초콜렛 쿠키 레시피를 올리셨을 때 내 리액션을 상상해보라. 게다가 점심 때 오렌지가 나와주시는 게 아닌가! 이건 운명이야...또 오버해 주시면서 오렌지 한 알을 가방에 잘 챙겨두고. 

퇴근하자마자 오렌지를 벅벅 씻어 껍질을 내기 시작했다. 참고로 요리, 특히 베이킹 도구 중 강력추천하는 것은 제스터(zester)이다. 레몬과 오렌지는 껍질 향이 워낙 강렬해서 조금만 갈아 넣어도 그 맛과 향취를 화려하고 신선하게 살려낼 수 있다. 비싼 레몬 백날백컵 즙 짜서 넣어봤자 껍질 두세큰술과는 비교가 안된다. 강추하는 제품은 마이크로플레인사의 요 녀석이다. 

<출처 : http://www.bonairetalk.com>

한국에서의 가격은 결제할때 마우스 잡은 손 좀 떨릴 정도이지만 서양요리나 베이킹 많이 하시는 분들은 칼 하나 좋~은 거 장만했을 때처럼 뿌듯하실거다. 나도 미국에 있을 때 엄청 잘 썼지만 정말 사면 절대로 후회 안하는 아이템 중 하나. 지금 한국서 쓰는 저 사진의 강판은 상대적으로 매우 불편하다. 한국서 파는 온라인매장 링크는 여기를 클릭. (갑자기 이 야밤에 지르고 싶어짐...)

자, 그럼 각설하고 레시피 공유해드린다.



상콤달콤쌉싸르르 오렌지 초콜렛 쿠키

지름 4cm 크기로 약 24개

초콜렛 약 230g

중력분 40g (1/3컵)
베이킹 파우더 1/4티스푼
소금 약간

오렌지 껍질 갈은 것 한개분(늘려도 좋음)
달걀 2개
설탕 100g (1/2컵)

예열 섭씨 180도로 미리 예열

초콜렛 중탕 초콜렛 전량을 중탕해 너무 뜨겁지 않게 멍울없이 잘 녹여놓는다.

가루류 준비 밀가루, 베이킹 파우더와 소금을 체쳐 준비해 놓는다.

달걀 거품내기 달걀 2개와 설탕을 섞고 휘핑해 마요네즈 상태로 만든다.(핸드믹서 유용하겠죠잉) 오렌지 껍질 넣어주고 마저 섞어준다(처음부터 섞어도 상관없음) 마요네즈화 힘빠지면 그냥 어느정도만 해도 되는데 다만 납작하게 퍼진다.(사진처럼) 어느정도 냉장을 해서 반죽 좀 굳힌 후 구우면 좀 덜 퍼진다.

반죽 완성하기 달걀과 설탕 마요네즈화 한 것에 너무 뜨겁지 않게 녹은 초콜렛을 조금씩 부어가며 빨리 섞어준다. 너무 볼륨 죽지 않게 휘젓지는 마시고. 얼추 섞어졌으면 체쳐놓은 가루류를 투하한다. 날림가루만 안 보일정도로 큰 동작으로 슥슥 저어준다.

팬에 올리기 한큰술 정도씩 떠서 공간 충분히 띄우고 팬닝한다. 모양 너무 신경쓸 필요없음.

구워내기 예열된 오븐에서 10-12분 정도 구워준다. 촉촉한 것이 맛있으니 좀 말랑말랑할때 바로 오븐에서 빼내준다. 물론 크기를 크게 했음 좀 더 굽고 작게 했음 좀 덜 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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