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단상

  • 3일간 일을 쉰 후 복귀하는 목요일은 아무래도 컨디션이 백프로가 아니다. 그런데 어제는 특히 더 아침에 피곤하고 몸도 찌뿌둥한데다가, 손과 머리가 따로 노는 느낌. 결국 왼손이 좀 수모를 당햇다 -_-; 검지손가락은 서랍에 낑기고 가운데 손가락은 베이는 사고를 ㅠ_ㅠ 가뜩이나 오른손을 많이 쓰는데 왼손이 불편하니 오른손에 과부하가 걸려 욱신욱신하고.. 여튼 어제 집에 오는 길은 참 힘들었다 ㅋㅋ 
  • 알렉스가 일하는 속도가 참 많이 빨라졌다 ㅋㅋㅋ
  • 어제 손 다치기 전 칼질할 프로젝트가 무지 많았는데, 로마노 줄기콩 다지는데 걸리는 시간을 완전 잘못 잡아서 11:30pm이 되서야 겨우 퇴근했다. 다 다지고 정리하고 치우고 있는데 셰프 맷이 올라와서 아직도 있냐며 산더미 같은 다진 로마노 콩을 보더니... "로마노 헬!" 이러면서 웃는다. ㅋㅋㅋ 어쨌든 다 끝냈다니 또 "굿잡!!!!!" 이러고 악수하고 퇴근하심. :)
    • 근데 콩 한 80% 다졌을때 정말 토할것 같았음 -,.-
    • 그래도 G가 많이 도와줘서 많은 일을 끝내고 퇴근했다.


일하는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은 일요일이다. 다른날보다 손님이 적어 차근차근 배워가며 라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상대적으로 일하는 사람도 적어 일할 공간도 넓어져 능률도 오른다. 이번주도 어김없이 일요일이 돌아왔고, 평소보다 조금 더 머리도 신경써 땋고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 완료! 


브런치 타임 요리사들과 저녁 타임 요리사들이 바톤 터치를 하는 걸 도우며 프로젝트를 하나하나 해치우고 있는데, 시계를 보니 어느새 오후 다섯시다. 오늘 내가 일요일마다 라인에 선다는 얘기를 전해들으신 blueprint님이 다섯시반 예약이라는데, 아무래도 서비스 시작에 맞춰서 내려가진 못할 눈치. 도착하신 걸 보고 짧게 인사를 드리고 다시 윗층에서 프로젝트를 마저 하고 있는데, 로드리고 아저씨가 헐레벌떡 뛰어 올라오더니 셰프 셰리가 부른단다. 



얼른 달려 내려가니 셰리가 정색한 척 하며 나에게 조용히 지인에게 무얼 서비스로 드리고 싶냐고 물어본다. 요새 네가 한창 만들고 있는 pork leg dish 어떠냐고 추천하는데, 아쉽게도 내가 아직 플레이팅을 할 줄 모르는거라 담당쿡인 조던과 콜린한테 지나가며 부탁했다. 그런데 조던이 갑자기 잡더니, 지금 가르쳐줄테니 내 손님들 오더를 직접 플레이팅 해 보는게 어떠냐며 씩 웃는다. 어차피 지금 같은 메뉴 오더가 두 개 들어와 있으니, 하나는 조던이 하는 걸 보고 배우고, 하나는 연습용(?)으로 해 보란다. 그래서 얼떨결에 플레이팅을 하고 있는데, 카운터 자리에서 잘 보이게 계속 옆자리를 치워준다. 너무 고맙고 너무 떨리는 마음으로 조금은 정신없이 플레이팅을 해서 넘기고 다시 이층으로 올라왔다. 


생각해 보니 pork leg는 이제 첫 curing 스텝부터 플레이팅까지 전과정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된거다. 학교에서 수업듣던 시절 매우 따르던 셰프님이 한 분 있었는데, 제일 좋았던 점 하나는 내가 그 날 맡은 주재료가 있으면 손질부터 플레이팅까지 맡기던 시스템이었다. 좀 더 책임감도 생기고, 결과물을 이해하니 그만큼 손질과 요리과정도 더 이해가 잘되는 효과가 났다. 그렇지만 SPQR에서는 과정들도 훨씬 더 복잡하고 긴데다, 아직 요리를 직접 할 일이 많지 않으니 그럴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드디어!!!


Thanks to Ms. Blueprint for sharing the awesome photo :)


하루 나머지 일들 정리:

  •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레스토랑 Fleur de Lys이자 미국 마스터셰프 출연했던 Hubert Keller가 밥을 먹으러 왔다. 저녁시간에 플레이팅 하는데 카운터 자리에 앉아 바로 코 앞에서 쳐다보니 손이 막 떨림 ㅋㅋ 백발의 포니테일 아우라가 와우...
  • 처음으로 조던이 플레이팅 칭찬을 했다. "Nice looking tomato dish!"
  • 이제 좀 많이 친해지니 어찌나 장난들을 치는지 -,.- 특히 워크인에 들어갔다 나오는데 캔들이 놀래켜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기절하게 놀래니 어찌나 꺽꺽대며 좋아하는지. 아놔!! ㅎㅎ
  • 본인이 라인일이 좀 지겹고 스트레스 받아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나를 좀 더 오래 라인에 서게 해주려고 신경써준게 정말 고마웠다. 파스타 쪽 가서도 계속 배우라고 떠미는 것도 그렇고. 
  • 이 날 패밀리밀에 잡채를 만들었다. 간장도 거의 없고 파도 없었는데 당면을 이미 불려놔서 할 수 없이 어찌저찌 만들어봤다. 근데 맛이 괘, 괜찮다 ㅋㅋ 지단까지 부쳤는데도 30분만에 완성했다는. 게다가 요새 계속 멕시칸 먹다 잡채가 등장하니 인기 폭발!! 사진 못 찍었다 근데 ㅠ_ㅠ
  • 마감하고 캔들이랑 조던이랑 와인 한잔씩 하며 꽤 오랜 수다를 떨었다. 아 이런 게 정말정말 즐겁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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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다시 밝고 열정적인 모드로! ㅎㅎ



요새 한창하는 옥수수 배럴커팅 (한줄한줄 각도 돌려가며). 

최근 중 거의 99% 완벽하게 되서 사진찍었다 ㅋㅋㅋ

  • 제일 나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던(이넘의 자격지심-_-) 셰프 저스틴과 요새 급 친해짐. 드라이 해 보이긴 한데 농담도 잘 치고 요새 계속 웃는 얼굴이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어도 1분만에 회복해 룰루랄라 하는 사람이라 같이 일하면 매우 안정적이다.
    • 아침에 가서 정리 몇가지 하고 soda bread 만드는 걸 배웠다: Sift the dry stuff (Flour + BS + salt + sugar) > knead in the butter > make a well then toss the whole egg and buttermilk > fold in the raisins etc. > portion (125g) and shape into rectangles > spray very well > chill / score / bake for 15-20 min at 375.
    • 요새 저스틴이 친 농담중 제일 웃긴건... 셰프가 재단할 수박과 멜론 종류를 여러개 아래층으로 가지고 내려왔는데 타조알 크기의 매끈하고 제일 작은 멜론을 가르키더니 "이건 내가 낳은 거임." 정색하고 말하는데 완전 빵 터졌다 ㅋㅋㅋㅋㅋ
  • 셰프 맷이 어제 줄기콩 함께 썰면서 줄기콩 라구 만드는 거 가르쳐 준다더니 진짜 알려줌. 브런치 사람들 완전 많은데 또 아래서 이거저거 썰고 있으니 즐거웠다. 
    • Saute garlic confit and mash all the garlic > stir in a pint of tomato paste > stir in 2 dessert spoonfuls of aleppo and smoked paprika > put in a little bit of red wine > pour in a pint of white wine and reduce > put in the cut beans and braise for a while > season and add carrots and celery > add in a sachet bag of rosemary/sage/thyme.
    • 칼을 집에서 갈아야 되는데 ㅠㅠ 
  • 오늘 콜린이 급 병가 내는 바람에 라인 준비하는 거 좀 돕고 초반에 플레이팅 좀 했다. 
    • 서비스 시간이 다가올수록 느껴지는 이 긴장감 ㅋㅋ
    • 아 프렙 리스트 누가 좀 타이핑해서 정리할 수 없나? 맨날 종이쪼가리나 냅킨에 쓰고 있는 걸 보면 속터진다 진짜...
    • 콜린 대타로 일하고 있던 데니스가 좀 더 빨리 해야 된다는 말이 비수가 되어 꽃혔다 -_- (아직 정신없고 플레이팅 경험 이틀도 안되요 엉엉 ;ㅁ;) 
    • 더 빨리 해야 된다는 건 알겠는데, 그렇게 막 얹어도 되는거임? 하긴 파스타 쪽은 그렇게까지 디테일한 플레이팅은 아니니... 여튼 역시 셰프 콜린이랑 조던이 애피타이저 플레이팅은 최고 잘한다. 
    • 그래도 저번주보다 아티쵸크 플레이팅은 공간 잡는게 좀 더 익숙해졌다. 간단한 샐러드 세가지는 이제 편하고. 
    • 토요일은 역시.. 6시가 되니 오더가 미친듯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6시 45분까지 보조로 버티다 결국 위층으로 다시 올라왔다; 할일 찾아서 이런저런 일 하고 있는데 셰프 캔달이 한번도 본 적없는 정말 심각히 스트레스 받은 표정으로 위로 올라왔다 @_@; 오늘 계속 실수를 해 셰프가 잠시 숨돌리고 오라고 2층으로 보낸 것 같았다. 아까 프렙할때부터 뭔가 평소같지 않은 낌새더니.. 본인도 답답하고 당황스러운 듯. 좀 안쓰러워 *-_-* 물 한잔 챙겨주고 같이 위에서 이런저런 일하고 있는데 저스틴이 올라와서 다독거리고 화이팅하고 다시 추켜세워 데려내려갔다. 휴 ㅋㅋ
    • 나야말로 내일은 좀 더 재빠르게 정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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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은 몸도 마음도 힘든 날이었다. 목요일은 특히 내가 따르는 3인방인 셰리, 콜린, 캔달도 없는데다가 오전에 덱스터랑 일하는 건 정말 이래저래 스트레스 받는 일이다. 본인이 정리가 안되어 우왕좌왕에, (이리 말하면 좀 웃기지만) 내가 보기에 자격이 없는 참견과 잔소리를 해대니 가끔 열이 뻗친다. 에너지가 넘쳐 일을 후다닥 할때도 있지만 꼼수도 부리며 셰프에게 자주 혼나고 그닥 똘똘하지도 않고 일을 두번 하게 만드는 경우가 꽤 있어, 함께 일하기 힘들다. 거기다 굼띤 알렉스까지 추가. -_-


묵묵히 프렙리스트를 체크해 가며 일하고 있는데, 다음주 스케줄이 포스팅 되어 있었다. 7월말이 되어가니 이제 라인에 공식적으로 세워주려나, 살짝 기대를 하며 올려다 보았지만 역시나 이번주와 같은 스케줄이었다. 아직 몇 주 남았으니까, 어차피 프렙하면서 더 많이 배우고 있으니까, 마음을 다독였지만 은근히 민감해져 있었나보다. 어제 12시간 넘게 일하고 집에 가서 뻗은 다음 출근하는데, 무급에 오버타임으로 계속 프렙일을 하고 있는 게 갑자기 서러움으로 다가왔다. 잠도 모자라고 몸도 힘든 이유도 컷겠지만, 눈물이 글썽일랑 말랑하는 것이 느껴졌다. 


꾹 참고 출근후, 어제와 비슷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오전에는 사소하지만 100% 완벽할 수 있었던 일에 한두가지 실수를 하고, 오후에 셰프가 올라와 냉장고를 또 한바탕 뒤집어 놓는 바람에 (덱스터는 또 한번 깨지고 ㅡ 워크인에 데리고 들어가 혼내는데 "EVERY FUCKING DAY!" 들려와 내가 다 조마조마) 프로젝트 진행을 거의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수솁 저스틴이 몇가지 도와달라고 부탁해 아래층에서 도와주고 올라오는 길에, 덱스터가 pork leg 포장하는 거 끝냈냐고 물어봐서 아직 못했다 하니까 조금 더 빨리 하라는 거다. 참을인자 백만번 새겨가며 다시 프로젝트들 진행하고 있는데, 워크인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노크를 분명히 했는데 덱스터가 나올때는 노크하라고 잔소리를 또 하는거다. 아니, 이 정도면 거의 시비거는 차원아냐? 


저녁에는 G와 마델린까지 붙어 함께 프렙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셰프가 한 번 더 워크인 점검을 하러 올라왔다. 하던 프로젝트를 또 멈추고 워크인 정리를 한참 돕고 있는데 시계를 보니 벌써 9시. 약간이지만 셰프가 처음으로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9시반이 되어 자포자기한 상태로 다시 옥수수를 다듬기 시작했다. 옥수수가 거의 끝나가고는 있었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다이스를 해야 할 줄기콩이 한통 남아 있었다. 물론 셀러리/당근도 있고 베이컨 슬라이스도 해야하고 @#$#!%%!%#%#$# 


10시쯤 되어 셰프가 다시 올라오더니, 아직도 프렙을 하고 있는 우리 세명을 보고 리스트를 정리해주기 시작했다. 이제 서비스 마감시간 다 되어가니 위도 정리하기 시작하자며, 내일로 넘길 일, 오늘 마무리 할일 등 다시 리스트 분배를 시작했다. 그러더니 셰프 왈, 줄기콩은 밑에서 나랑 같이 빨리 다지기 시합하자며 스테이션 청소 후 칼들고 내려오란다. 읭? 


얼른 정리 후 Scrubbing을 하려고 soap water를 집어드는데, 마델린이 1층에서 뜨거운 새 비눗물을 받아와야 될 것 같단다. 아 갑자기 짜증이 확 몰려왔다. 물론 그러면 좋겠지만, 같이 오버타임을 하고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녀이지만, 평소 일 제대로 못하는 누군가 셰프도 지적하는 점을 뭐라 하니. 무엇보다 얼른 마쳐버리고 집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버티고 "이렇게 시간이 늦었는데 이제 와서 뭘."이라고 대꾸해버렸다. 같이 피곤하고 스트레스 받은 그녀도 "아 그럼 하고 싶은대로 해"라며 기분이 좋진 않은 모양. 


찝찝한 기분으로 비누칠을 벅벅하고 있는데 자꾸 눈물이 차올랐다. 그렇지만 절대 울긴 싫었다. 사실 딱히 울 이유도 없었고 그냥 스트레스 받은 상태인걸. 꾹꾹 눈물을 참고 비누칠을 다 한 후 마델린에게 아까 일은 미안하다고 한마디 건넸다. 그녀 역시 괜찮냐고 물어보며 다독여주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울컥거렸다. 계속 괜찮냐고 물어보는 마델린에게 I'm fine이라 애써 크게 외치고 일층으로 달려내려갔다.


손님들과 다른 SPQR 식구들로 버글거리는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저 멀리 줄기콩을 다지고 있는 셰프 맷의 모습이 보였다. 본인 칼을 건네주며 딱 반통만 같이 다지고 집에 가자. 프렙리스트는 언제나 끝이 없으니, 제 시간에 리스트 정리하고 쳐내고 마감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며 셰프는 조근조근 얘기(수다ㅋㅋ)를 시작했다. 셰프가 왠지 어제 오늘 힘들었던 내 마음을 읽은 것만 같았다. 안 그래도 한창 셰프에게 직접 여러가지를 많이 배우던 초기에 비해 혼자 조용히 맡은 일을 묵묵히 하는 것이 왠지 배움의 속도도 떨어지고 셰프가 예전보다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이 덜한가, 라는 의구심도 살짝 들고 있었던 상태인데, 함께 줄기콩을 다지고 있으니 초심이 돌아오며 마음이 100% 평온해졌다.


빵에 대해 수다를 떨며 계속 칼질을 하던 도중, 셰프가 인턴 후 계획이 어찌되냐 물었다. 뭐 학교는 다 끝나고 이제 정식 일자리 옵션들을 고민해봐야 될 것 같다고 대답하니, 잠시 침묵후 내가 배우는 속도나 태도가 굉장히 마음에 든다며 SPQR도 옵션에 넣으라고 하는거다. 좀 벙쪄서 (손가락 베일 뻔 ㅋㅋㅋ) Th..thank you chef 버벅거린 후 계속 칼질. 셰프는 계속 수다 -,.- 


여튼 남은 기간동안 브런치 라인에 정식으로 조만간 서게 될 거고, 한번 보여주면 다시 가르쳐 줄 필요없이 두번째부터 똑같이 해내고, 내가 혼자 맡아 할 수 있는 일이 벌써 여러가지 되는 건 굉장히 좋은 사인이며, 저스틴과 셰리도 날 매우 마음에 들어한다는 칭찬들을 줄줄이 해주셔서... 눈물이 쏙 들어갔다. 역시 리더는 리더인가보다. 제일 밑사람 마음을 어찌 이렇게 아시고 ㅋㅋ (덕분에 삘 받아서 12시까지 일했다 ㅋㅋㅋㅋ)


Thank you, Chef Mat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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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4

인턴일지 l 2012. 7. 14. 02:01

오늘 소감 한마디. TIRED.

처음 인턴일지를 쓰기 시작했을 때는 배운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그날그날 기록해두는 이유가 제일 컸다. 그렇지만 점점 배우는 것이 많아지고 반복학습에 의해 자잘한 것까지 매번 기록해두지 않아도 되자, 그 날 제일 기억에 남았던 일 몇가지를 추스려보고 돌이켜보는 시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요 며칠새 가장 인상깊고 기분좋은 기억으로 미소지으며 잠들게 만드는 일들은 대부분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교감을 경험한 사건(?)들. 


예전 강남역 카페에서 일할때부터 내가 제일 사랑한 주방일의 한 부분이지만, 서로 손발이 척척 맞아떨어지는 희열이라던지, 내가 미치도록 바쁘거나 결정적인 도움이 절실한 순간 딱 나타나 도와준다던가, 혹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응원의 제스쳐나 말 한마디, 이 모든 것은 정말 상대방을 위하는 진실된 마음가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얘기지만, 이런일이 반복되면 그만큼 더 친해지고, 더 친할수록/친해질수록 이런일이 더 많아지기 때문에 너무나 빨리 친해질 수 밖에 없다. 


어제도 13시간 넘게 일한 고된 하루였지만(아침에 일어나니 오른손이 쫙 펴지지 않을 정도로-_-)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일들 몇가지를 적어보장!

  • 파스타 스테이션에는 마지막 피니쉬를 위한 가루치즈 몇가지가 준비되어 있다. 물론 우리가 다 갈고 조각내고 해서 준비해야 하는 것. 그런데 이 치즈들은 워크인 냉장고 제일 윗칸 구석탱이에 처박혀 있고, 큰 플라스틱 통에 여러가지 치즈가 들어가 있어(도합 약 15키로) 이걸 한번 꺼내려면 뭘 밟고 올라가고 힘쓰고...여튼 나에게는 보통 고생스러운 일이 아니다. 어제도 서비스 직전에 fontina라는 치즈 믹스가 떨어져 두가지의 치즈를 꺼내어 갈아야 하는데, 다른 프로젝트를 끝내고 치운 다음 자리에 돌아갔더니.... 세상에나 셰프 캔들이 본인이 필요한 다른 치즈 꺼내면서 내가 필요한 두가지 치즈를 꺼내놓아준 것이 아닌가. 것도 딱 필요한 양 맞춰서... ㅠㅠ 덕분에 나는 서비스 시간 맞춰 준비할 수 있었고 힘들게 올라가 치즈를 꺼내고 다시 넣을 필요도 없었다. 꺄오♥
    • 물론 이밖에도 셰프 캔들과는 자잘하게 친해지는 사건이 무지 많았다. 출근하자마자 오늘 잘해보자고 하이파이브를 날리더니(손 아팠다 -,.-), 갑자기 날 데리고 진공포장기로 데려가더니 시간 절약해 포장하는 법도 보여주고, 나중에는 파스타 소스 찾는 걸 도와줬더니 허그까지 날리심 ㅋㅋ 

  • 어제도 라인에 내려가 플레이팅을 했다! 역시나 신나게 배우며 일하고 있는데 중간중간 뭐가 필요할때마다 훌리오 아저씨가 얼마나 옆에서 깨알같이(그리고 귀신같이 ㅋㅋ) 챙겨주는지. 우리가 직접 나누는 대화는 hola, como estas, good night, gracias 밖에 없지만 덕분에 정이 팍팍 들고 있다. 셰프가 멀리서 뭐 갖다달라고 나에게 주문해 가지러 돌아서면 어느새 그걸 들고 서 있는 훌리오 아저씨 ㅋㅋㅋ 어제는 플레이팅 하는 것까지 보고 있다가 필요한 그릇 챙겨주심. 

  • 어제 정말 의외이자 제일 감명깊은 인상을 준 건 바로 수셰프 저스틴. 평소에 매우 sarcastic하고 살짝 4차원이고 조용하다가 드라이한 농담을 던지는, 직접적인 따뜻함은 찾아보기 어려운 사람이다. 그런데 어제 낮에 위층에서 창고정리 및 이런저런 프렙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창고 안으로 손이 쑥 들어온다. 뭔지 받아들고 보니 재료 정리하다 본인 간식 만들면서 내것까지 두개 만든 것. 안 그래도 배고팠었는데... 평소 드라이하던 사람이 챙겨주니 감동이 열배로 ㅋㅋ 벙쪄서 땡큐 소리도 못하고... 사진까지 찍었다 ㅋㅋㅋ 
벌써 인턴한지 한달이 훌쩍 넘었다. 이제 한달반 정도 남았는데 벌써 정이 팍팍 들어 끝날때 울 것 같은! 아 난 울보 'ㅁ'

그리고 어제 한 프로젝트들 정리 및 기록:

  • 레몬즙 짜기: 못생긴 레몬들로만 50개 골라서 싸그리 즙 짜버렸다. 뭐 어려운 일은 아닌데, 인상깊었던 점은 일한지 며칠 안되었을 때고 같은 작업을 했었는데 그땐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던 쥬서기가 어제는 너무 쉽게 들림. 푸핫.
  • 허브통 정리하기: 허브향에 취해 너무 여유롭게 작업하다 혼남 ㅋ 매일같이 시든 잎 정리해내고 새로운 타월에 말아준다. 
  • 딸기 씻어 다듬어 로스팅 할 애들과 잼 만들기 준비: 하다 작은애 하나 집어먹었는데 대박... ㅠㅁㅠ
  • Carrot puree 만들기: 역시 당근과 생강의 궁합은 짱!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당근즙은 너무너무너무 좋은데 생당근은 왜 이렇게 싫은지.
  • 당근 5mm 다이스: 자투리도 얼마 나오지 않고 빨리 작업 완료.
  • 올리브 다듬기: 이것도 5분안에 완료.
  • 이런저런 재료 계량 및 서비스 밑준비. 진공포장. 더 이상 기억불가...
어제 새로 배운 플레이팅 항목:
  • 새로 출시된 애피타이저/샐러드: 토마토, 오이, 멜론과 burrata 치즈.
  • 아보카도와 방어 애피타이저
  • 초콜렛과 카라멜 디저트 (한손으로 뜨는 quenelle 연습 시급)
  • 시저샐러드
  • 푸딩/베리 디저트
  • 진짜 바쁠때는 파스타에 마무리 치즈도 뿌렸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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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한창 일하고 있는데 오후에 어떤 남자애 하나가 스타쥬를 하러 들렀다. 곧 CIA 졸업에 (흔하디 흔하지만) 문신도 있으시고 칼도 좋은 거 있길래 쫌 하나, 싶었는데 처음 기본적인 작업은 열심히 하더니 어째 슬슬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당근 5mm 다이스를 시켰는데 끙끙대며 완전 짜증나는 작업이라고 투정을 부리질 않나, 렌즈 끼고 오는 걸 깜박했다는 (헛)소리를 하질 않나. 게다가 셰프 셰리가 당근 자투리 담을 통 가져오라 했는데 것도 바로 안 해서 결국 내가 가져오고; 알고보니 원래 내일 일하는 날이었는데 본인이 착각해 오늘 들렀고. 뭐 여튼 포인트 얻을 기회를 계속 놓치는 와중, 셰프 셰리가 당근 다 끝내면 인턴쉽 관련해서 얘기 나누자는데 9시도 안되어 돌려보내는 분위기가 영 심상찮다. 아니나 다를까, 썩소를 띠고 오피스에서 나온다. 바이바이~
    • 방학이라고 동부에서 혼자 샌프란까지 스타쥬를 하기 위해 날라왔는데 첫날부터... 안타깝다 ㅠㅠ 것도 순전 SPQR만을 위해 날아왔는데 -_-
    • 웬만하면 인턴으로는 다 채용하는 줄 알았는데 나는 덕분에 자부심과 자신감 상승 ㅋㅋ
    • 알렉스는 덩달아 까임. 같은 학교 출신/후배라 기대했는데 꽤 실망했다며 셰프 셰리 한숨. 거기다 저번에 일하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오피스로 불러 얘기했더니 심지어 울기까지 했단다. 어이구 우리 알렉스 ㅜㅜ
    • 그러더니 나한테 여름 후 계획이 어떻게 되냐며 여기 더 있고 싶냐고 은근슬쩍 물어봄. 비자 해결되면 풀타임 채용되는 거임?!!??!

  • 셰프 맷이 오늘도 줄기콩(Romano Beans) 다듬고 있길래 오늘 30분안에 다 다져버릴수 있을 것 같다고 했더니 "You are the queen of these! Well, you are the queen of many things right now" 란다. 하여튼 셰프 기분 띄워주는 재주는 참 좋으심 ㅋ 여튼 요새 나의 스페셜티 몇가지:
    • 로마노 줄기콩 정확히 빨리 다지기
      • knife skills는 그래도 내가 프렙위주로 일하는 cook들 중에서는 제일 좋은 편에 속하는 것 같다. 오늘 줄기콩 소스용 셀러리 (완벽한 4mm 정육면체 아이들-_-) 다지는데 셰프가 맨날 나 시간되는 토요일날 해야겠다며 씩 웃음
    • 옥수수알 이쁘게 빨리 까기
    • 버터 크루통 만들기 (오늘 빵 재단도 배움)
    • 가니쉬로 올라가는 오이 피클 만들기 (이건 SPQR에서 나만 할 줄 안다 ㅎㅎㅎ)
    • 마지막으로 나의 요새 favorite 프로젝트인 돼지고기 삶아 틀에 굳혀 테린만들기! (Pork Legs라 불린다) 오늘 간도 내가 혼자 다 맞춰 완성해버렸는데 나중에 서비스 직전 모양 다듬다 나온 자투리 먹으며 셰프 셰리가 Joowon makes such good pork legs란다. 오늘 처음으로 좀 벅차 울컥했다 으흐흐...

  • 기타 등등
    • 토니 아저씨 이젠 대놓고 잘 챙겨주는 거 생색내심. "I'm so good to you, right?" ㅋㅋㅋ
    • 로드리고 아저씨는 여전히 유치찬란한 장난을 시도때도 없이 -_-;
    • 다음주 일요일 스태프밀로 잡채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15인분 잡채라...
    • 내일 또 플레이팅 할 듯! ㅇㅎㅎ


  • 오늘 셰프 맷은 정말 무서웠다;
    • 오늘 출근해 옷 갈아입고 내려가니 chef 맷이 sous chef 셰리와 저스틴과 뭔가 심각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우선 덱스터와 일하고 있으라는 셰프 말에 올라가서 잡다한 일 하고 있는데, 셰프가 밑으로 부르더니 오늘 나는 chef 셰리와 일할거란다. 덱스터를 직접 잡기로 각오하신 모양; 아직 해체도 안한 랍스터에 들어갈 허브는 왜 다지게 하고 있냐며 한참 나무라더니 같이 작업 시작.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 및 시간분배를 잘 못해 거의 매일 혼나는 중)
    • 완두콩을 콩깍지에서 분리하는 작업하고 있는데 비닐봉지째 작업하지 말고 (it's unprofessional!) 통에 옮겨 담아 하라. 그리고 팍팍팍 스피드 있게 5분 안에 끝내자! YES CHEF @_@ 외치고 미친듯이 손을 부렸다. 5분에는 못했지만 10분엔 한 듯? ㅠ_ㅠ
    • 오후에 이런저런 작업을 하고 있으면 덱스터는 보통 냉장고 정리를 한두번씩 한다. 공간확보를 위해 여분이 있는 통에 담겨있는 모든 것들을 작은 통으로 옮겨담는 등 끊임없이 청소/정리를 해야하는데, 분명 오전에 널널널널널 하던 워크인이 오후에 이상하게 자리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네시쯤 갑자기 뛰쳐 올라온 셰프가 워크인에 들어가더니 냉장고가 엉망이라며 다시 덱스터를 잡기 시작 -_-;;;; 나도 워크인에 빠짝빠짝 공간땡겨서 정리안해놓은 몇가지가 있어서 움찔하던차, 워낙 목소리를 높여 야단치는 타입이 아닌 셰프지만 나름 격양된 목소리를 덱스터를 마구 혼내기 시작했다...헐. 셰프 셰리는 중간에서 한숨 푹푹 쉬고 있고.
    • 결국 프렙작업 하던 세사람이 뛰어들어 급 냉장고 정리를 했다. 끝내고 들어가보니 아니 세상에 공간이 두배는 넓어졌다 +_+...우왕 신기.
    • 나도 내일부터는 눈여겨보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정리에 참여해야겠다. 

  • 손이 빨라졌다!
    • 파스타 10분만에 끝냄. 덱스터가 놀램. ㅋㅋㅋ
    • 비트 20개 다지는데 15분 걸렸나? 저번에 G는 거의 한시간 붙잡고 있던 프로젝트를 30분만에 바닥에 하나도 안 흘리고 끝냈다. 으히히!!!
    • 옥수수는 이제 진짜 퀄리티와 스피드 둘다 백프로 자신있다. 3통은 힘들이지도 않고 슉슉.  
    • 오늘 마지막으로 작업한 건 파슬리 이파리 뜯기. 콜린이랑 둘이 미친듯이 손놀리니 30분도 안되어 거대한 파슬리 한박스를 다 끝냈다. 우오오!! 이건 셰프 셰리도 진짜 놀램 ㅋㅋ 
    • 셰프 맷이 언제나 강조하는 것이 바로 스피드. 물론 그렇다고 퀄리티가 희생되서도 안되지만 -_-; 뭐 가끔 더 빨리해야 한다고 채근받는 일은 있지만 마들렌이나 알렉스처럼 전체적으로 항상 너무 느리다고 구박받지는 않으니 다행이다 어휴 -_-
      • 셰프 맷이 그래도 경험많고 더 큰 그릇의 윗 사람이라 생각되는 이유는, 아랫사람의 limit을 잘 파악하고 적당하게 자극될 정도로만 push를 하기 때문이다. 오늘 처음 손질해보는 chicken liver를 다루고 있는데 단순히 속도가 느린게 아니라 너무 익숙하지 않은 재료라 힘들어하고 있는데, 아침부터 셰프 맷이 끝없이 잔소리하는 통에 덩달아 신경이 곤두선 셰프 셰리가 무턱대고 빨리빨리를 외치는 바람에 팍! 짜증과 억울함 지수 급상승. 결국 분노와 칭얼거림을 반 섞어 대꾸하니 셰리도 측은했나보다. 다시 자상모드로 ㅋㅋㅋ

  • 기타 등등
    • 상대방을 위해서 1%라도 더 해주는 것, 참 중요한 것 같다. 나에겐 1%이지만 상대에겐 정말 큰 도움과 기쁨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오고가는 와중에 쌓이는 정이란! 
    • 오늘 셰프 캔달 일하는 날인줄 알았는데 안 옴 ㅠ_ㅠ 
    • 일하다 오후 5시쯤 홀짝거리는 커피 한잔의 맛은 참...캬아!!!
    • 그래도 집에 갈때 셰프맷과 악수하고 갔다. 예전부터 Thank you, chef라 해 줬었나? 급 민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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