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먹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음식을 섭취하는 제일 기본적인 이유에는 당장 숨을 쉬고 움직이는데 필요한 열량과, 아프지 않고 건강한 일상을 누리는데 필요한 영양소가 있다. 아직도 이 기본적인 열량과 영양소를 충분히 얻지 못해 괴로운 삶을 이어가는 인류가 상당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열량과 영양소는 이미 당연한 것이며, 오히려 과한 열량에 대해 관리를 해야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21세기 서울, 음식은 차고 넘쳐난다. 편의점, 카페, 식당, 술집, 레스토랑, 마트에는 정말로 다양하고 새로운 먹거리들이 가득하다. 만두가 먹고 싶은 날이라면, 편의점에 들러 냉동만두를 전자레인지에 4분 50초 돌리거나, 길 건너 분식집에서 고기만두 김치만두 반반을 주문하고 10분을 기다리거나, 마트에 들러 드넓은 냉동만두 코너에서 30여분을 고민하거나, 혹은 귀갓길에 앱을 켜서 30년 역사를 지닌 손만두 집의 특별한 만두를 주문할 수도 있다.
얼마 전부터 달콤한 딸기 케이크 한 조각이 먹고 싶었다. 케이크를 살 수 있는 선택지는 만두만큼이나 다양해서, 일단 동네 근처 케이크를 파는 곳에 들어가 앉았다. 친구를 끌고 가서 욕심나는 대로 제일 맛있어 보이는 두 조각을 주문했지만, 첫 입에 실망하고 말았다. 퍼석한 스펀지와 미끌거리는 크림, 단순한 백설탕의 단맛만 남아 있는 케이크에 서너입을 먹고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딸기는 시럽에 코팅되어 마른 듯 한 반쪽짜리가 전부였다.
며칠이 지나고 가족들과 외식을 할 기회가 생겼다. 아직 케이크에 대한 허기가 채워지지 않은 나는, 외식 장소 근처를 물색했다. 일부러 케이크를 맛있게 먹기 위해 배는 적당히 채우고, 이번에도 인원 수를 핑계로 두 조각을 주문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실패였다. 아무리 다시 먹어봐도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아 살찔텐데, 하면서도 자꾸 손이 가는 케이크가 아니었다.
분명 맛은 있는 케이크였다. 딸기는 여기서도 반 개짜리 였지만, 겹겹이 쌓인 크림과 스펀지는 충분히 달콤하고 폭신했다. 하지만 마음이 느껴지지 않았다. 제누아즈의 섬세한 폭신함을 돋보여 주고, 생크림만의 진한 고소함과 향긋함을 완벽한 휘핑으로 살려주려는 마음. 신선하고 잘 익은 딸기의 과즙이 톡 터지며 크림과 함께 입안에서 선사하는 그 환상적인 하모니를 선사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
우리가 흔히 '정성'이라고 표현하는 이 마음은 열량과 영양소와 마찬가지로 음식을 통해 먹는 사람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품질 좋은 식재료를 소중히 다루는 마음이건, 먹는 사람의 행복한 표정을 상상하며 요리하는 마음이건, 이 마음들은 차곡차곡 쌓여 우리의 외로움을 보듬어 준다. 연인의 열정적인 사랑이 아닌,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도록 사랑을 가슴 깊이 채워준다. 진심이 가득한 "진짜" 음식을 먹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풍성해지는 이유다.
혀를 즐겁게 하는 맛은 쾌락을 선사하지만, 맛 자체만으로는 마음까지 채워줄 수 없다. 레스토랑에서 아무리 비싸고 맛있는 식사를 하고도 뭔가 허한 날이 있는데, 단촐하게 차려 준 엄마의 집밥을 먹었을 때 오히려 만족스러운 날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숙련된 조리기술로만으로도 충분히 맛을 낼 수 있지만, 재료와 먹는 사람을 아끼는 마음까지 더해진다면 그야말로 정말 여운이 남고 감동을 주는 음식이 되는 것이다.
드디어 며칠 전, 먹고 싶었던 "진짜" 케이크를 찾았다. 예상치 못하게 낯선 동네 은평구 한복판에서 나는 생일케이크를 구해야 했고, 케이크 아뜰리에라는 곳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쇼케이스에 진열된 디저트에서는 베이킹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뿍 묻어났다. 정확하고도 자연스럽게 발린 고운 결의 생크림, 영롱하게 빛나는 블루베리 한 알 한 알, 부드러운 갈색의 바삭한 타르트지. 화려한 장식과 유행을 타는 재료들로 눈길을 끄는 과시용 디저트가 아닌, 존중과 배려를 담아 좋은 재료와 숙련된 기술로 켜켜이 쌓아 올린 그런 케이크들이 놓여 있었다.
파티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케이크를 크게 한 조각 잘랐다. 진한 우유의 고소함은 풍성하고 부드러운 생크림을 타고 들어와 혀를 가득 감쌌고, 바닐라와 계란, 설탕이 만나서 내는 맛의 조화는 단맛에 눌리지 않고 은은히 지속되었다. 사이사이 촘촘히 박혀 있는 딸기가 씹힐 때는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어릴 적, 예쁘고 잘 익은 딸기만 골라 엄마가 정성껏 만들어 주었던 추억의 내 생일 케이크를 오랜만에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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