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일지

Day 27 - 첫손질부터 플레이팅까지!

joowon 2012. 7. 17. 17:57

일하는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은 일요일이다. 다른날보다 손님이 적어 차근차근 배워가며 라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상대적으로 일하는 사람도 적어 일할 공간도 넓어져 능률도 오른다. 이번주도 어김없이 일요일이 돌아왔고, 평소보다 조금 더 머리도 신경써 땋고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 완료! 


브런치 타임 요리사들과 저녁 타임 요리사들이 바톤 터치를 하는 걸 도우며 프로젝트를 하나하나 해치우고 있는데, 시계를 보니 어느새 오후 다섯시다. 오늘 내가 일요일마다 라인에 선다는 얘기를 전해들으신 blueprint님이 다섯시반 예약이라는데, 아무래도 서비스 시작에 맞춰서 내려가진 못할 눈치. 도착하신 걸 보고 짧게 인사를 드리고 다시 윗층에서 프로젝트를 마저 하고 있는데, 로드리고 아저씨가 헐레벌떡 뛰어 올라오더니 셰프 셰리가 부른단다. 



얼른 달려 내려가니 셰리가 정색한 척 하며 나에게 조용히 지인에게 무얼 서비스로 드리고 싶냐고 물어본다. 요새 네가 한창 만들고 있는 pork leg dish 어떠냐고 추천하는데, 아쉽게도 내가 아직 플레이팅을 할 줄 모르는거라 담당쿡인 조던과 콜린한테 지나가며 부탁했다. 그런데 조던이 갑자기 잡더니, 지금 가르쳐줄테니 내 손님들 오더를 직접 플레이팅 해 보는게 어떠냐며 씩 웃는다. 어차피 지금 같은 메뉴 오더가 두 개 들어와 있으니, 하나는 조던이 하는 걸 보고 배우고, 하나는 연습용(?)으로 해 보란다. 그래서 얼떨결에 플레이팅을 하고 있는데, 카운터 자리에서 잘 보이게 계속 옆자리를 치워준다. 너무 고맙고 너무 떨리는 마음으로 조금은 정신없이 플레이팅을 해서 넘기고 다시 이층으로 올라왔다. 


생각해 보니 pork leg는 이제 첫 curing 스텝부터 플레이팅까지 전과정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된거다. 학교에서 수업듣던 시절 매우 따르던 셰프님이 한 분 있었는데, 제일 좋았던 점 하나는 내가 그 날 맡은 주재료가 있으면 손질부터 플레이팅까지 맡기던 시스템이었다. 좀 더 책임감도 생기고, 결과물을 이해하니 그만큼 손질과 요리과정도 더 이해가 잘되는 효과가 났다. 그렇지만 SPQR에서는 과정들도 훨씬 더 복잡하고 긴데다, 아직 요리를 직접 할 일이 많지 않으니 그럴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드디어!!!


Thanks to Ms. Blueprint for sharing the awesome photo :)


하루 나머지 일들 정리:

  •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레스토랑 Fleur de Lys이자 미국 마스터셰프 출연했던 Hubert Keller가 밥을 먹으러 왔다. 저녁시간에 플레이팅 하는데 카운터 자리에 앉아 바로 코 앞에서 쳐다보니 손이 막 떨림 ㅋㅋ 백발의 포니테일 아우라가 와우...
  • 처음으로 조던이 플레이팅 칭찬을 했다. "Nice looking tomato dish!"
  • 이제 좀 많이 친해지니 어찌나 장난들을 치는지 -,.- 특히 워크인에 들어갔다 나오는데 캔들이 놀래켜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기절하게 놀래니 어찌나 꺽꺽대며 좋아하는지. 아놔!! ㅎㅎ
  • 본인이 라인일이 좀 지겹고 스트레스 받아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나를 좀 더 오래 라인에 서게 해주려고 신경써준게 정말 고마웠다. 파스타 쪽 가서도 계속 배우라고 떠미는 것도 그렇고. 
  • 이 날 패밀리밀에 잡채를 만들었다. 간장도 거의 없고 파도 없었는데 당면을 이미 불려놔서 할 수 없이 어찌저찌 만들어봤다. 근데 맛이 괘, 괜찮다 ㅋㅋ 지단까지 부쳤는데도 30분만에 완성했다는. 게다가 요새 계속 멕시칸 먹다 잡채가 등장하니 인기 폭발!! 사진 못 찍었다 근데 ㅠ_ㅠ
  • 마감하고 캔들이랑 조던이랑 와인 한잔씩 하며 꽤 오랜 수다를 떨었다. 아 이런 게 정말정말 즐겁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