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단상

며칠전 마트에 장을 보러갔다가 방울토마토가 반값 할인중이길래 큼지막한 팩을 두개나 집어왔다. 토마토 먹은지 오래되어 욕심을 부렸으나 막상 몇 개 집어먹어보니 맛도 좀 맹맹하니 별로라 처치곤란 상태. 뭘 해먹을까 생각하다 귀찮아서 그냥 올리브 오일 좀 두르고 따끈하게 오븐에 구우려는데 좀체 적절한 온도가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대충 해 버리자의 유혹이 몰려왔으나 애써 물리치고 구글링 시도.

그러다가 내가 사모하는 스미튼키친 아줌마네 블로그에서 "slow-roasted tomatoes"라는 제목의 포스팅을 발견했다. 오잉 이게 뭐지?

재료도 너무나 간단. 토마토와 올리브 오일. 마늘 몇 쪽. 으왕굳.

포스팅에서 아줌마 왈, 처음 입에 넣었을 때 깜짝 놀라 쓰러질지도 모르니 조심하라고. 

뭐 이리 맹숭맹숭한 토마토가 구운다고 그렇게 크게 달라질까? 여튼 토마토를 씻어 반을 가르고, 올리브오일을 대강 치고 후추 살짝. 엥, 근데 소금이 없는 것이 미심쩍다. 요리를 잘하려면 소금을 잘 쓸 줄 알아야 한다는 둥, 소금을 적절히 쓰면 그 재료가 가진 맛을 극대화 할 수 있다는 믿음에 세뇌당한 탓일까? 쓰지 않으려니 불안하다. 

결국 소금을 토마토의 반 정도에 살짝 뿌리고 섭씨 100도의 켠듯만듯한 오븐에 투입. 조리시간은 무려 세시간 -_- 


방에 돌아와서 이것저것 하다가 햇살에 좀 나른해져 잠깐 침대에 누웠다(백수의 여유 음하하). 그러다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눈을 뜨니 해가 기울어지고 있다...헉 오븐! 화들짝 놀라 부엌으로 달려가니 아까의 탱글탱글한 토마토들이 전부 쪼글쪼글해져 있었다. 


맛보고 싶은 급한 마음에 얼른 한개를 호호 불어 입에 넣었다. 혀에 닿는 따끈하고 부드러운 토마토의 겉면. 입을 다물어 꾹 누르니 서서히 배어 나오는, 살짝 상큼함이 남아 있는 녹진한 약간의 토마토 즙. 육즙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을 정도로 진했다. 천천히 씹으니 보통 토마토 소스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깊은 맛이 계속 배어나왔다. 말린 토마토(sun-dried tomatoes)를 먹어본 적이 있다면 그 맛을 상상하면 된다. 그렇지만 그 깊은 오묘한 맛을 바탕으로, 부드러움과 상큼함, 그리고 촉촉함이 어우려져 한알한알 강렬한 초울트라토마토엑기스 탄생.



그 맛에 취해 계속 몇개를 집어먹고 있다가 이런 것이 바로 재료의 맛을 극대화한다는 것의 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도 토마토를 오븐에 로스팅해서 먹은 적은 많았지만, 그냥 고온에 조금 물러지게 구워 구워진 토마토의 맛을 즐기는 정도였다. 그런데 좀 더 긴 시간동안 차분히 수분을 날리고 나니 베일을 벗은 묻혀있던 이 새로운 맛. 소금으로도, 어떤 향신료로도 첨가할 수 없는, 토마토가 깊은 곳 지니고 있던 토마토 맛.


이렇게 구운 토마토는 올리브 오일을 좀 뿌려 냉장고에 보관하면 오래 보관이 가능하다. 그냥 먹어도 맛있고, 마늘 몇쪽 얇게 편썰기 해서 올리브오일에 같이 익혀 간단히 파스타에 버무리면 흥건한 토마토 소스보다 더 진한 맛을 선사한다. 소고기나 닭고기, 연어, 샐러드에도 엑센트를 제공하는 훌륭한 토핑. 


저온에 오래 구운 깊은 맛의
슬로우 로스트 토마토
from smittenkitchen.com

오븐은 섭씨 100도로 예열한다.

방울토마토 서너컵, 반 갈라 준비
올리브오일 두세큰술
까지 않은 통마늘 두세쪽

기름종이/유산지/호일 등을 깔아준 후 토마토를 늘어놓고 올리브 오일을 골고루 뿌려준다. 마늘을 군데군데 올려놓고 예열된 오븐에서 세시간 구워준다. 




토마토에 발갛게 물들은 올리브 오일, 마치 석양을 보는 듯!





히 한국서 나쵸로 통하는 또띠야(Tortilla)칩은 햄버거와 감자튀김만큼이나 멕시칸 음식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사이드이다. 또띠야는 타코, 부리또 등을 싸먹는 넓은 반죽인데, 노오란 옥수수 또띠야를 조각조각 잘라 튀기면 바로 또띠야칩이 된다. 

그냥 먹으면 약간 슴슴할 수 있는 또띠야칩은 다양한 딥(dip)에 찍어먹는 것이 묘미인데, 한국에서도 풋고추, 오이 등을 쌈장에 찍어먹는 문화는 있지만 또띠야는 생소한 편. 그러나 멕시코를 이웃으로 두고 있고 멕시칸 이민자도 많이 받는 미국의 경우, 또띠야칩은 절대 빠질 수 없는 스낵이다. 굉장히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심지어 떠먹고 찍어먹기 편하게 움푹한 모양으로 만들어져 나오는 제품도 있다. 

그렇다면 또띠야칩과 잘 어울리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아마 대부분 영화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진득한 누런 치즈소스를 생각하실 듯.

그렇지만 또띠야는 바로 살사와 먹어야 제맛이다! 

살사(Salsa)는 스페인어로 소스라는 뜻이며, 종류는 한국의 김치처럼 다양하다. 때문에 살사라고만 하면 정확히 어떤 소스나 딥을 얘기하는지 알기가 불가능하다. 주원료는 토마토가 많은 편이고, 생토마토를 사용하기도 하며 익힌 토마토를 사용하기도 한다. 초록색인 경우도 있고, 심지어 마른 고추를 사용해 검붉은 색의 "블랙" 살사도 있다. 


이중에서 가장 손쉽게 만들고 대중적인 두가지는 바로 생토마토를 사용한 살사 크루다(Salsa Cruda). 그냥 생토마토 살사라고 생각하심 편하다. 뜻은 "생 소스"이며, Salsa Fresca, Salsa Picada 등 생토마토를 사용하고 입자가 있다는 뜻의 다양한 이름들이 있다. 


토마토 다진 것에 다진 양파, 할라피뇨, 고수가 조금씩 들어가며, 라임이나 레몬즙, 마늘 다진 것도 넣기도 한다. 소금으로 간. 토마토 씨와 점액등을 제거하고 과육만 잘 다져야 너무 물기가 생기지 않으며, 만들어서 바로 먹기보다는 냉장고에 차게 몇시간 보관하는 것이 재료들의 맛이 더 잘 어우러진다. 고수를 싫어하시는 분들은 아예 빼는 것이 상책이지만 살사에는 사실 중요한 재료. 뭐 취향대로!

생토마토 살사(Salsa Cruda)만들기(5-6인분): 토마토 5mm로 다진 것 3컵, 양파 중간사이즈 1/3개 다져 물에 담가 매운기를 약간 제거, 고수와 할라피뇨(풋고추 종류) 다진 것 각각 1/2컵씩, 레몬즙이나 라임즙 한큰술, 마늘 한톨 다진 것, 잘 버무린 후 소금으로 간. 너무 짜다면 토마토를 더 다져 넣는다. 

이 살사외에 또 폭발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것은 바로 아보카도로 만든 과카몰레(Guacamole)이다. 한국 메뉴에서 가끔 '구아카몰'이란 발음기호로 적힌 과카몰레는 푹~ 익은 말랑말랑한 아보카도를 으깨어 역시 양파, 고수 등과 버무린 살사의 한 종류이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 제일 사랑한 음식 중 하나. 한국에선 아보카도가 너무너무 비싸 엄두를 못내지만, 아보카도가 넘쳐나는 미국에서, 특히 멕시칸 이민자들이 많은 남부 캘리보니아에서는 엄청나게 먹어댔었다. 오랜만에 미국갔을 때는 칩이고 뭐고 그냥 과카몰레를 스푼으로 퍼먹는 위력을 발휘...진짜 마약같다. 얼마전 이마트에서 보니 두알에 6천원 가량의 가격으로 팔던데, 이제 가끔 해먹을 듯. 부드럽고 상큼한 맛이 잘 어우러져 주변에 있는 사람과 쟁탈전을 벌이게 하는 무서운 음식. 얼마전 차렸던 저녁파티에서도 제일 인기가 많았다. 

과카몰레(Guacamole)만들기(5-6인분): 잘 익은 아보카도 두개 으깬 것, 마늘 한 톨 다진 것, 양파 1/4개 다져 매운맛 재거, 고수와 할라피뇨 다진 것 각각 두큰술씩, 레몬즙이나 라임즙 한큰술. 소금으로 간. 토마토 반개를 잘게 다져 물기 확실히 제거 후 넣어줘도 색이 이쁘다. 공기와 접촉하면 사과처럼 색이 변하니 랩으로 바로 밀착되게 덮어준다. 덮어줘도 제일 윗면은 색이 변하지만 섞으면 바로 환한 녹색으로 돌아온다.

여기서 팁은 아보카도를 으깰 때 너무 곱게 으깨지 말고 약간 덩어리가 지게 멍울멍울 으깨는 것! 그래야 나중에 너무 곤죽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아보카도는 밝은 초록색이 아닌, 손가락으로 눌러봤을 때 부드럽게 들어가는 짙은 검녹색이 좋다. 덜 익은 아보카도밖에 없을때는 바나나와 마찬가지로 실온에 두고 며칠 익힌다. 바나나와 함께 비닐에 싸두어도 빨리 익는다.

한국은 이상하리만치 다른 퀴진만큼 아직 멕시칸 음식이 많이 퍼져있지 않다. 매운맛부터 재료들도 양념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많은데 말이다. 손쉽게 만들어 볼 수 있는 살사 두가지로 화려하고 신선한 멕시코의 맛을 집에서 느껴보시길!

ps. 5-6인분이라 써놓긴 했으나, 막상 해 놓으면 1인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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