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단상

내가 하고 싶은 요리는? 에필로그

joowon 2012. 1. 6. 14:42
당연한 현상이지만, 요새처럼 인생 통틀어 이렇게 음식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먹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재밌는 게, 더 많이 알게 되면 될수록 한식에 대한 탐구심과 향수병이 커지는 거다. 

딱 1년전(신기하다 -ㅁ-) 내가 하고 싶은 요리는? 이란 포스팅을 올렸었다. 문화에 너무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조리기법과 재료사용을 하고 싶으며, 그렇지만 퓨전음식이란 간판을 달기는 싫은 그런 요리. 그렇지만 요새 슬슬 한식의 발전에 이바지해보자, 라는 무모한(?) 도전정신이 들고 있다. 

바로 그 계기는 맨하탄에서 시작.

크리스마스라 친구네 가족과 함께 보내기로 했는데 정신없어서 가져갈 파이도 못 만들었고, 에라 뉴욕 들렸다 가니 그냥 사가자는 계획. 이왕이면 한국적인 걸 사가는 게 좋을 것 같아 한인타운(정확히 하면 한인거리;)에 들렸는데.................참 암담했다. 뭐 완전 전통화과나 떡은 어차피 서울에도 때깔만 좋은 녀석들이 많으니 녹차롤케잌정도에서 쇼부를 볼 예정이었다. 그런데 차마 "PARIS BAGUETTE"가 찍혀있는 녹차롤을 사갈 수는 없었다.(이건 나중에 별개 포스팅으로 분개할 예정이지만 파리바게트 뉴욕점의 존재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물론 그들은 크리스마스라고 미리 주문받아 전날 열심히 대량생산한 케잌들을 번호표 받고 배분하는 중이었음) 

랩 씌운 스티로폼 포장의 떡(쌀 성분도 의심)을 사갈수도 없고, 그나마 한국스러운 이름의 고려당에서 파는 빵들은.....................................

누가 가스불과 후라이팬만 빌려줘도 깨강정스러운 것이라도 만들어 갔을터인데 ㅜㅜ

여튼 그때 랩포장떡과 전통화과 사이의 갭을 절실히 깨닫고 미국에서 뭐 해볼까, 하는 중, 한국정부의 진부하고도 진부한 한심한 한식 세계화 관련 글들을 읽으며 깨달았다. 한국에도 맛있는 한국음식이 없는 걸 말이다. 뭐 널리고 널린 백반집과 고깃집들, 비싼 고급한정식 집들은 많아도 정작 정말 좋은 재료와 정성으로 한식의 발전을 도모하는 음식점이 몇군데나 있던가? 

이태원에서 이스트빌리지 운영하고 계신 권셰프님의 블로그를 읽다보면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절히 느껴진다. 점점 빠른 서비스와 자극적인 맛을 찾고, 건조면+캔토마토+냉동해산물+조미료는 거뜬히 2만원 이상 지불하면서 칼국수가 만원이라면 생난리를 칠 소비자들과 기반이 흔들리고 계속 악재가 겹치는 한국 농업. 깔끔한 인테리어에 들어왔다가 메뉴가 한식인 걸 보고 나가는 손님들이 있는 문화에서 요리사들 몇명이 혼자 아둥바둥하며 발전을 도모하기에는 역부족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모든 문화에는 혁명이 있었고 그걸 이끈 사람은 항상 소수의 개개인이었지 않은가? 우후훗 

전체적인 한식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먹거리에 대한 의식과 서포트, 요리사들의 현대적인 식재료와 조리법 연구, 정부의 식재료 유통과 개선에 대한 노력과 서포트(요새는 거꾸로 가지만 ㅜㅜ)가 모두 맞물려야겠지만... 한국에도 코리안버전 모더니스트 쿠진과(번역말고) 딘앤딜루카 대신 한국식재료로 꽉꽉 채운 이탤리(Eataly)같은 곳이 생기는 그날까지!!!

ps. 이 자리를 빌어 내 인생 평생 미원 한 톨 없이 밥해주신 우리 엄마와 생전 손수 순대를 빚어주신 함경도 출신 우리 노할머니께 진심으로 감사를. 덕분에 제 입맛은 썩지 않았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