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단상

그동안 블로그에 쓰고 싶은 얘기들이 많았다. 특히 학교 시작하고 요리에 흠뻑 빠져 지내며 하루종일 랜덤하게 여기저기서 솟아오르는 질문들. 생각들. 근데 다시 블로그 쓰기 시작하면 자주, 뭔가 내용이 충실한 글을 올려야 된다는 압박감에 매여 지내기 싫어서 그냥 미뤘다. 근데 공유하고 끄적거리고 싶은 잡생각들이 너무 많아 안되겠다.

1. 요새 학교서 너무 잘 먹여줘서 저녁은 뭔가 가벼운 걸 먹고 싶었다. 학교서 맨날 먹고 남은 거 싸오다보니 냉장고에 딱히 먹을 것도 없다. 처치곤란한 샐러리가 한봉다리나 있고. 샐러리는 생으로 먹으면 첫 몇입은 몸이 가벼워진다는 최면에 먹히나 두번 세번 씹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 아리한 풀맛에 찡그리게 된다. 버터를 쓰자니 가벼운 걸 먹자는 취지에 어긋나는 것 같고. 며칠전 브런치 파티에서 세이브 해뒀던 베이컨 기름이 냉장고 한 구석에 있다. 질 좋은 훈제향 베이컨이었는데 왠지 샐러리랑 잘 어울릴 것 같다. 그래 요리 배우는 입장에서 칼로리 때문에 실험을 포기하면 안되지, 생각하며 소심하게 반스푼을 썼다. 근데 볶다보니 부족해서 반스푼 더 썼다. 베이컨 기름까지 썼는데 뭔가 더 완성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양파도 넣고 메이플 시럽도 넣고 쌀도 넣고 잣도 넣었다. 레몬즙까지 넣으니 맛이 상당히 좋다. 메이플 시럽 + 쌀 + 잣 조합에 약과 생각이 난다. 갑자기 입맛이 확 돈다. 다 먹고 나니 완전 더부룩하다. -_-

2. 가수 알리가 불후의 명곡으로 뜨고 있는 것이 너무 자랑스러워(나 매니저?) 오지랖 팬심으로 관련 블로그들 보고 있다가 누가 알리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무대에 대해 극찬해 놓은 글을 읽게 되었다. 그는 조용필의 곡에 대한 알리의 재해석에 감탄하고 있었다. 근데 그가 정리한 재해석의 정의가 팍 와 닿았다. 대강 정리하면:

재해석: [원곡의] 질감과 그 안에 담긴 철학/감성의 이해. 그 [노래]가 히트했던 당시의 시대정신과 대중들의 감성을 알아야 함. 그런 다음에 현대석 감성과 [부르는 가수]의 [음악]적 철학과 감성을 [노래]에 담아내서 대중들에게 전달함.

[괄호]안의 단어를 음식/요리사로 대체하니 딱 들어맞는다. 한식의 세계화를 열심히 외치고 있지만 마스코트를 내세운 정부의 떡볶이 홍보노력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_-, 유행타는 프렌치/이탈리안/퓨전 레스토랑들의 "서구화" 한식은 과연 제대로 된 재해석일까? 현재 고민해보고 싶은 음식들은 잡채/냉면/동치미/순두부 정도. 

3. 예상했지만 미국와서 제일 짜증나는 건 한식 = 바베큐 + 매운 음식으로 단순화 되는 것과 두부가 히피/채식주의자들의 전유물로 치부되는 것이다. 특히 두부. 콩에 대한 별 생각 없이 만든 두부를 단순히 고기의 대체식품으로 야채들과 후루룩 볶아버리거나 삶아버리니 맛이 있을 수가 있나?!??!?!? 응?!?!? 그리고 크리미한 디저트를 만들기 위해 크림치즈 대신에 두부를 갈아넣는다. 아...두부에 대한 모욕이다. 

4. 글쓰다 보니 배가 좀 꺼졌다 휴 다행이다. 근데 있다 숙제하다 보면 분명 배고파질텐데? 저번에 밤 열두시 다 되서 메뉴플래닝 프로젝트 하느라 레스토랑들 웹사이트와 사진들 뒤지다 배고파서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5. 학교에 젊고 잘생긴 셰프 교수님들 완전 많다 *-_-*
 
6. 사는 곳 바로 옆에 Seven Stars라는 카페/베이커리가 있는데 몇몇 아이템들이 눈 튀어나오게 맛있다. 특히 비스킷/스콘의 텍스쳐!!! 그리고 태어나서 먹어본 중에 최고로 부드럽고 고소한 옥수수빵. 그리고 체다치즈 바게트. 커피도 훌륭해서 거의 매일 마신다. 드립도 나쁘지 않은데 탄맛이 가끔 오락가락하고, 아메리카노와 카푸치노가 아주 훌륭. 특히 라이언과 에릭(으로 추정되는)이라는 이름의 바리스타 둘이 내려주는 카푸치노는 실크같이 부드러우면서 가벼운 우유거품으로 시작해 커피가 조금 식으면 느껴지는 과일류의 단맛신맛과 우유의 고소함의 조화가 눈을 감게 한다. 다만 2%, 1%, 무지방 따위의 우유로써는 절대 불가능. 한번 1% 카푸치노 시도후 나는 언제나 whole milk please일세.(어차피 대개 4% 내외)

집에서 보통 고구마를 먹을 경우에 삶거나 쪄서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겨울철엔 뭐니뭐니에도 꺼멓게 그슬린 달콤한 군고구마가 최고. 그렇지만 집에서 후라이팬에 구워봐도 가스불에 구워봐도 영 시원찮다. 결국 직화냄비라는 것까지 등장해 대히트를 쳤고, 잡지나 신문에는 온갖 방법을 테스트 한 후 어떤 것이 제일 길거리 군고구맛에 가까운 결과를 내는지에 대한 리서치 기사까지 볼 수 있었다. 


고구마는 익히면 왜 달아지나?

우선 고구마의 조리를 논하기 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바로 고구마의 화학적인(...쿨럭) 이해이다.

고구마는 전분 함유량이 매우 높다. 전분도 당의 한 종류이지만 전분만 직접 먹게 될 경우 단맛을 느낄 수가 없다(응? 하시는 분들은 옥수수전분 한숟갈 먹어보길). 그러나 전분이 특정 효소에 의해 맥아당이라는 '설탕'으로 분해가 될 경우 확 달게 느껴진다. 고구마의 경우 이 특정 효소를 가지고 있고, 계속해서 효소는 활동을 하며 고구마의 전분을 분해한다. 이 효소는 온도가 올라가면서 더욱 활발해져 60도 가량에서 최고조를 보인다. 때문에 저온에서 서서히 오래 익히는 것이 고구마의 속살을 더 달게 바꿔준다. 

굳이 더 파고 들어가자면 전분을 맥아당으로 분해하는 효소는 아밀라아제(Amlyase)인데, 고구마에는 베타-아밀라아제가 들어가 있다. 그런데 맥아당은 또 포도당으로 분해가 될 수 있고, 포도당은 맥아당보다 더 달다. 그렇지만 역시 열을 가한다고 무조건 분해가 되는 것이 아니고 또 다른 효소인 말타아제(Maltase)가 필요한데 고구마 자체에 말타아제가 있는지는 없는지는 확인을 못했다. 인터넷 눈 빠지게 돌아다녔는데 못 찾겠다 -_- 


고구마, 제대로 보관해 봤니?

고구마는 살아 숨쉬는 생물이다. 저 위에 얘기한 전분을 당분으로 분해하는 과정은 바로 고구마 자신이 그 당분을 영양소 삼아 싹을 틔우고 자라나기 위한 것이다. 때문에 효소가 활발해지는 실온 이상의 온도에 고구마를 오래 두게 되면 막 싹이 나고 고구마 덩쿨밭...... 뭐 여튼 대부분의 먹을 거리들이 실온에서는 오래 보관을 못하기 때문에 고구마도 대부분 아무 생각없이 냉장고에 넣어버리기 일쑤다. 그러나 고구마는 냉장온도에서는 가운데 심이 생기고 단단해지며 쓴맛도 발생한다. 적정한 온도는 섭씨 13-14도.

무엇보다 고구마의 보관이 중요한 이유는 저 위에 얘기한 전분 분해 작업을 조리하기 전에 미리 하는 것이 단맛을 끓어올리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아궁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60도 가량의 온도를 유지한 채 수분을 날리지 않고 고구마를 오래 익히는 것은 집에서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평소에 서늘한 곳에서 보관해 고구마를 전분이 많은 상태로 잘 보관했다가, 조금 높은 온도에서 며칠 숙성을 시켜 설탕화를 시킨 후 익히면 더 단 고구마를 맛볼수 있다.

(얼마나 사람들이 고구마 보관을 제대로 안했으면 무려 1918년에도 이런 기사가 - 뉴욕타임즈 영문)


고온의 마법, 카라멜화

그럼 똑같이 열을 가한 찐고구마와 군고구마, 도대체 왜 그렇게 맛이 다른걸까?


물을 이용한 요리법은 끓어올릴 수 있는 온도에 한계가 있다. 보통 압력과 물을 생각했을 때 섭씨 100도인데, 설탕이 갈색으로 녹으면서 '카라멜화'가 되는 과정은 보통 섭씨 160도 이상의 고온에서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생성되는 여러 화학물들이 좀 더 복잡하고 미묘한 맛과 냄새를 추가하게 된다(단순히 달기만 한 일반 흰설탕과 좀 씁쓰름하며 깊은 단맛의 '뽑기'의 차이를 떠올려 보면 된다). 카라멜화의 과정에서는 또한 설탕이 녹아 끈적한 시럽으로 바뀌고 어떤 당분은 더 단맛이 나는 다른 당분으로 분해되기도 한다. 군고구마도 바로 고온에서 이런 카라멜화를 거치기 때문에 더욱 더 달아지고 깊은 맛으로 탄생하게 된다. 

다른 대표적인 예로는 약불에 슬슬 볶으면 달짝지근해지는 양파나 사과파이의 사과 등이 있다.

설탕이 카라멜화를 거치는 과정샷 <출처 - http://ceramiccanvas.com>


카라멜화는 아직까지 정확히 왜, 어떻게 일어나는지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한 현상이나, 요리에서는 매우 중요한 갈(색으로)(하는)작용 중 하나이다. 그런데 요리에서는 또 하나의 중요한 갈변작용이 있다. 바로 메일라드(Maillard) 반응인데, 육안으로 구분하기는 상당히 어려워 '고기 겉면의 카라멜화'라는 어처구니 없는 말도 심심찮게 보인다. 카라멜화는 설탕만의 화학작용이고, 메일라드는 단백질과 설탕의 화학작용이며 둘은 완전히 다른 과정이다. 이것까지 커버하려면 머리 터질 것 같으니 메일라드는 다음 시간에 -_-;













banana cake with chocolate buttercream.

예전부터 가족이나 친구의 생일이 다가오면 케이크를 구울 이유가 생겼다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 없었다. 처음에야 제대로 된 데코는 커녕 급하게 크림을 바르느라 덜 식은 스펀지의 온기에 줄줄 녹아 질척하기가 일쑤였고, 스펀지는 폭신하기보다는 거칠거칠했지만, 조금씩 수전증이 사라지고 크림이 매끄러워질수록 생각해 두었던 아이디어를 하나씩 시도해보기 시작했다. 첫 시작은 초코파이를 좋아하는 회사 동기에게 선물한 두툼한 홈메이드 마시멜로가 깔린 거대한 초코파이.

선물도 단순히 값어치 나가는 아이템보다는 가격과 상관없이 퍼스널한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 더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것처럼, 단순히 맛있고 고급스런 케이크보다는 받는 사람에게 좀 더 특별하게 와닿는 그런 케이크가 좋다. 한국에서야 보편적인 케이크들은 그냥 베이커리에서 골라 바로 사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미국에서는 최소한 이름과 문구와 함께 사이즈를 맞춰 주문하는 것이 매우 흔하다. 심지어 원하는 사진을 식용잉크로 케익 윗면에 인쇄해 주는 서비스도 등장. 가격도 심플한 구성이니만큼 상당히 저렴하다. 보통 이렇게 사각에 넙적한 케이크들을 sheet cake이라고들 많이 한다. 

대학교 시절 친구 생일을 위해 주문한 케이크. 웃긴 사진을 골라 프린팅 주문을 했다.


물론 십만원 한참 이상의 큰 돈을 지불하면 입이 떡 벌어지는 이런 케이크를 주문할 수도 있다. 오른쪽 사진은 이게 정말 케이크인지 믿기 어려운 분들을 위한 증거샷. 베이커는 Mike's Amazing Cakes.

Mike's Amazing Cakes의 Dragon Cake


이렇게 생일날 케이크를 먹는 풍습은 주로 서양문화에서 전파되었으며, 요새 흔히 볼 수 있는 케이크의 형태로 자리잡은 것은 17세기 정도. 초를 꽃는 것은 18세기 무렵에 독일에서의 확실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생일이라는 특별한 날에 무언가 달달한 빵 종류를 먹는 것은 무려 로마시대때부터. 이때의 소위 "케이크"는 효모로 부풀린 빵에 견과류와 꿀로 맛을 더한 것. 여기서 배울 수 있는 인간사 불변의 진리는 역시 생일은 단 것을 맘껏 팍팍 먹어줘야 하는 스페셜데이라는 것? -_-

여튼 이 날 smittenkitchen 아주머니 아이디어를 빌려 만든 원숭이띠용(?) 케이크는 모든 일행을 즐겁게 했다. 다만 처음 케익을 자를 때 어디부터 어떻게 잘라야 하나 좀 고민했을 뿐. 칼을 대기 전에는 그 잔인함에 굳건해진 친구의 표정이 막상 자르기 시작하니 밝아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 어린이 시절, 명절날 식구들과 모여 앉아 밥을 먹고 있는데 동생이 갑자기 물었다. 

"누나, 깻잎은 깨의 잎이라서 깻잎이야?" 
"바보, 당연하지."

툭 답해놓긴 했는데 뭔가 찜찜했다. 깨는 눈꼽만치 작은데 그에 비해 이파리가 너무 크잖아? 비율이 맞질 않는데? 게다가 깻잎은 향긋한데 깨는 고소하고. 너무 다른데? 머릿속으로 깨와 깻잎이 달려있는 식물을 상상해 보려 했지만 좀처럼 그림이 그려지질 않았다. 

향긋하고 담백한 깻잎찜


2. 내가 제일 좋아하는 깻잎요리는 매운맛이 없는 향긋하고 담백한 깻잎찜이다. 몇년전 우연히 한 블로그를 발견했는데 기억에 남은 두 레시피가 바로 이 깻잎찜과 오븐에 살짝 구운 자몽이다. 간장 한두큰술을 물 두세큰술에 탄 후 마늘과 파 다진 것, 양파 가늘게 채썬것을 섞어 만든 양념장을 깻잎 스무장 정도에 겹겹이 잘 뿌린 후 5분 정도만 중불에 익히면 끝나는 정말 간단한 반찬. 짜지도 않고 익힐 동안의 향이 참 좋아 자주 해먹고 있다. 

그나저나 그 블로그는 차분하고 아늑한 느낌에 음식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엮어내는 글들이 좋아서 자주 들렸었는데, 지금은 찾아볼 수가 없다. 자주 들리던 안식처 같았던 카페가 사라져버린 듯한 아쉬움.

3. 어제도 깻잎찜을 하려고 깻잎 한단을 사왔는데 갑자기 이십여년 전의 미스테리가 떠올랐다. 열심히 리서치를 해 본 결과 역시 깻잎은 깨의 잎이 맞았다 -_-. 깻잎은 높은 수요덕분에 따로 재배해서 파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물론 깨를 수확하기 전 따는 이파리들이 바로 깻잎. 이파리를 수확한 "깻단"은 베어서 잘 말린 후 깨를 털어 수확한다. 깨를 "찐다"고 한단다.

말린 깻단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깨. 출처는 아래 링크된 기사.


가톨릭뉴스 사이트에서 발견한 한 취재글(가을은 '참깨수확'의 현장에서 - 가을들녘을 담는다), 아름다운 깨 수확 풍경을 훌륭히 담아내었다. 강력추천! 

추가정보 : 우리가 먹는 깻잎은 들깻잎. 참깻잎은 모양이나 향이 식용으로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단다. 그러나 들깻잎도 깨의 수확용으로 농작하는 밭에서 따는 것으로는 수요가 부족하므로 깻잎용 따로 재배하는 경우가 대부분.

연말에 초등학교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할 일이 있었다. 고심하다 고른 저녁 메뉴테마는 분식. 백원짜리를 모아모아 하교길에 몰려가 입가에 뻘겋게 떡볶이 국물을 뭍혀가며 먹고 뜨겁고 짭짤한 오뎅국물로 매운 입안을 달래던 추억을 빼놓고 초등학교 생활을 얘기할 수 없기에. 

어묵탕. 꽃게 빠꼼. 역시 냉동은 맛없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 사회에 나와도 분식은 여전히 특별한 음식으로 남았다. 학원이 끝나고 집에 가는 늦은 추운밤이던, 늦게까지 친구들과 술 한잔을 하다 기분좋게 취해 집에 들어가던 새벽길이던, 출출한 속과 시린 손을 달래는 힘을 갖고 있는 떡볶이 트럭은 없어선 안될 존재이다. 이렇게 떡볶이가 우리나라의 음식 및 소셜문화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보니 국제화 전략까지 세우면서 한국의 대표음식으로 마케팅되고 있는 요즘.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떡볶이가 널리 전파되고 사랑받게 된 기반인 포장마차와 트럭은 홀대받고 있다. 

베트남의 반미(bánh mỳ) 스탠드.

작년 G20이 열리기 얼마 전, 일하다가 급 출출해져 뭘 먹을까 팀원들과 얘기하다 회사에 있는 수많은 간식을 제치고 테헤란로변에 있는 떡볶이 트럭으로 달려갔다. 늦은 오후 다들 출출할 시간인지 이미 트럭주변은 바글바글 했고, 우리처럼 포장을 해 가려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다 우리 차례가 와서 주문을 하려는 차, 마침 떡볶이가 다 떨어졌다. 언제 오면 있냐고 물어보니 조금 있다 단속이 나온다고 오늘은 일찍 접고 들어간다는 아주머니. 아쉬운 대로 김말이와 순대 등을 포장해 사무실에 들어오니 인기폭발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까 단속나온다며 씁쓸해 하던 아주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물론 포장마차에서 위생을 기대할 수는 없으며 삐까번쩍한 고급스런 인테리어도 아니고, 불법영업도 많지만 간간히 들려오는 무대포 불법철거 뉴스는 마음을 무겁게 한다.

길거리 음식은 단순히 값싼 음식이나 불량식품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길거리 음식은 다양한 형태와 문화로 존재한다. 조금 지켜보고 있노라면 다르면서도 참 비슷한 풍경이 많다. 호빵 서너개가 담긴 김이 서린 비닐봉지를 들고 사무실로 뛰어가는 베이징의 직장인들이나 바게트로 만든 베트남식 샌드위치인 '반미'를 오토바이에 매달고 가는 호치민 시의 사람들을 보다보면 영락없이 서울의 아침 출근길, 분주한 토스트 트럭의 모습이 떠오른다. 인도에서는 오후의 간식으로 한국의 분식처럼 찻(chaat) 스탠드가 큰 인기를 누리며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2010년 겨울, 베이징 길거리의 토스트(?) 리어카.


이렇게 길거리 음식은 마케팅과 국제화로 포장되지 않은, 현지인들과 그들의 문화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매력적인 창구이다. 게다가 국민들에게도 옛날 추억부터 일상생활의 별식까지 아우르는 소중한 공간. 그런데 하나의 문화로 잘 다스려나가기 보다는 단순히 지저분하고 '외국인들이 보기에 안 좋다'라는 이유를 앞세워 밀어버리는 사태가 아쉬울 뿐이다. 



며칠전부터 읽기 시작한 Eating Animals라는 책. 이 책을 읽기 전에 고기를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도 그럴 생각이 없다. 아니 그러지 않아도 될거라면서 애써 버티고 있다. 그런데 아까 아침에 볼만한 영화를 뒤져보다 미국에서 히트한 나탈리 포트만의 블랙스완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갑자기 나탈리 포트만의 필모그래피가 궁금해졌다. 그녀의 위키피디아 페이지를 읽기 시작했다. 채식주의자란다. 아니, 였단다. 근데 Eating Animals를 읽고 유제품 등 일체 동물성 제품을 섭취하지 않는 Vegan이 되었단다. 순간 덜컹, 했다. 헉, 역시 이 책은 고기 먹는 것에 대한 정당화에 도움을 주지 않는구나. 에이, 그래도 나만의 이유가 있음 되겠지 하고 창을 닫았다.

카페에 가서 책 몇장을 더 읽었다. 어업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물론 참치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참치를 잡을 때 같이 잡혀 죽는 생물의 종류는 책의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마침 카페는 참치횟집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건 뭐, 어떻게 봐도 돌아갈 수가 없다. 그렇지만 내 머릿속에는 두 가지 초이스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아예 안 먹던가, 그냥 무시하던가. 마침 저자가 말한다. 왜 이 이슈에 관해서는 사람들은 항상 두 가지 초이스만을 떠올리는가. 책을 덮어버리고 남은 커피를 음미는 커녕 원샷한 후 카페를 나섰다. 서비스로 준 쿠키는 무슨 맛인지 잘 기억이 나질 않고 커피는 썼다. 

운동을 하러 갔다. 새해의 목표인 하프마라톤을 위해 이번 주부터 꾸준히 조깅을 하기로 시작했다. 하프마라톤은 20여킬로미터. 한 2킬로미터를 뛰었는데 젠장, 너무 힘들다. 몇달동안 운동부족으로 둔하고 찌뿌둥한 내 몸이 답답하다. 무슨 마라톤은 마라톤, 갑자기 짜증이 난다. 그냥 살던대로 살자, 라는 생각이 치밀어 오른다. 그냥 슬쩍 취소하고 싶기도 하다. 

저녁 밥상에는 김치찌개가 올라왔다. 돼지고기가 들어간. 요새 읽고 있는 육식에 관한 책이 재밌다고 말을 꺼내본다. 그렇지만 아무도 말이 없다. 침묵이 이어진다. 찌개 한 숟갈을 입으로 가져갔다. 김치와 돼지기름의 조합은 역시 환상궁합이다. 틀어놓은 티비에서는 구제역 뉴스가 나오고 있다. 현재까지 살처분 된 가축은 백만마리가 넘었단다. 백만마리가 도대체 얼만지,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지 감도 안 온다.

컴퓨터 앞에 앉아 이번 주말부터 시작할 살사 수업에 대한 내용을 읽어본다. 페이스북도 하고, 다음뷰도 보고, 뉴욕타임즈보도 보고, 싸이도 가보고, 그러다 트위터에 가니 구제역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기사를 제대로 보기 시작하니 그 심각성이 갑자기 확 와닿으며 걱정이 된다. 구제역이 뭔지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봤다. 대강만 읽어도 이런 스케일의 상황에서 살처분이 최우선이 아니라는 걸 알겠다. 한숨이 나온다.

뉴스를 더 찾아보다가 돼지들이 생매장 되는 사진을 봤다. 누구는 미국 소고기와 관련된 음모설을 재기한다. 왠지 그럴싸하다. 공무원 중에 구제역 근무 때문에 과로사한 사람도 있댄다. 일손이 모자라고 예방접종을 한다 해도 사후처리가 중요하단다. 대만은 실제로 구제역 때문에, 사후처리 부족으로 양돈업이 싸그리 망했단다. 어후 답답하고 걱정된다. 갑자기 뭘 해야 할 것만 할 것 같다. 달려가서 도와? 어떻게 마술로 뿅 하면 구제역을 없앨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진짜 좋겠다란 간절함까지 느껴졌다.

그러다 김치찌개 생각에 갑자기 화가 났다. 먼나라 얘기도 아니고, 같은 한국이란 작은 나라안에 있으면서 우리집 저녁 밥상과 신음하고 있는 농가가 이렇게 단절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가 막혔다. 이건 진짜 말도 안된다. 농가에서 돼지들이 어떻게 길러지고 도살되고가 문제가 아니라, 저쪽에서는 지옥중의 지옥인데, 우리는 정말 무덤덤하게 찌개를 입에 넣고 있고, 마트에서는 활발하게 해피하게 돼지고기가 팔리고 있다. 그리고 인터넷 창을 닫고 잠에 들면, 난 또 이런 감정들을 잠시 누르고 잊은채 내일 살사 수업을 들으러 가겠지. 추가 : 내 친구가 물었다. 이럴 때일수록 더 사주는 게 농가를 도와주는 거 아니니? 그 측면만 보면 그렇겠지만, 내 요지는 '단절'이다. 우리 집이 돼지고기를 저녁밥상에 올린 이유는 농민들이 아니다. 그리고 수입 돼지고기를 50% 싸게 팔면, 구제역 상관없이 여전히 팔릴텐데? 롯데마트의 통큰갈비가 백톤이 팔렸대매.

이쪽 산업에 대해 더 알고 배우고 나의 소신을 세우기 위해 독서를 시작했건만, 갑자기 힘이 쭉 빠졌다. 그냥 살던 대로 살까? 내가 채식을 한다면 뭐야? 왜? 야 됐다, 라는 반응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여기서 덮어버리면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터인데 말이다. 근데 왜 채식을 하면 나는 이상하고 까다로운 사람이 되는 걸까? 친구한테 이 책을 읽고 있다고 얘기하니 채식할라고? 야 하지마~란다. 왜? 왜? 왜?

잠시 침대에 누웠다. 머리 맡에 붙여져 있는 나의 바이블인 "칡과 커피"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이 절단된 선들을 잇고 이어주는 것이 내 삶의 목표이자 즐거움이었지. 마라톤도 고기 이슈도, 우선 달려보자. 그나저나 이 이찬웅님이란 분은 도대체 어떤 분이길래 나한테 이렇게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글을 쓰셨는지, 만나뵙고 인사나 드리고 싶다.

ps. 제발 구제역의 후폭풍이 우려만큼 심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물론 머리아프고 가슴아픈 뉴스를 접하기 싫은 내 이기심이 더 큰 이유이지만.


나 요리할거다, 라는 말에 제일 많이 물어오는 질문이자 제일 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바로 무슨 요리 할건데, 이다. 내가 요리를 선택한 이유는 음식이 가진 소통의 힘이지, 최고의 바게트를 굽거나 장을 담그는 장인이라는 목표가 아니었다. 때문에 내가 필요한 것은 나의 가치관과 스토리들을 원하는 의도대로 효과적으로 표현하게 해주는 기술이며, 최대한 다양한 기술을 배우는 것이 목표이다. 물론 현재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는 학교들은 대부분 "서양"요리를 기초로 한다. 유럽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가면 물론 그 나라의 "전통" 요리를 배우겠고, 미국으로 가면 대개 프랑스 요리의 기초에 기반한 커리큘럼에다가 학년이 올라가면 간단하게나마 중식, 일식 등등도 가르치는 걸 볼 수 있다(물론 미국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미국의 식당에서 요리해내는 동양음식에 대한 시각이겠지만). 

때문에 짧은 답변은 "서양"요리이나, 어차피 아주 전통적인 프랑스나 이탈리아 음식, 혹은 한국에서 유행인 "미국식" 브런치를 그대로 재현하는데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기에 그 답변은 무리가 있다. 그렇다고 "퓨전"이라고 답하기도 싫다. 물론 내 요리는 한 나라나 문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다양한 맛과 기술 및 영감이 복합된 음식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게다가 (이 포스팅에서 피곤하고 민감한 주제인 한식의 세계화를 다룰 생각은 전혀 없지만) 결국 나는 거의 매일같이 김치와 간장을 먹고 자란 한국사람이다. 한국음식의 맛과 경험을 다른 나라와 나누거나, 새롭게 재해석해서 한국인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안겨주고 싶은 것은 내 본능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음식을 "퓨전"이라고 규정짓는 순간, 이도저도 아닌 애매모호한 마이너리그에 속한 음식이 되 버리는 것 같아 상당히 거부감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요리, 그리고 하고 싶은 요리는 나라에 상관없이 맛과 깊이가 있는 음식이다. 맛있는 음식들은 많다. 그렇지만 먹고서 영감을 얻거나, 십년전 추억이 떠오르게 하거나, 집에 가서까지 관련정보를 인터넷에까지 찾아보게 하는 음식은 흔하지 않다. 얼마 전 방문한 싱가포르의 Iggy's의 pasty chef인 Andres Lara의 말을 인용하자면 "[touching] your soul" (직역하자면 영혼을 울리는 음식 정도? -_-;) 하는 음식을 만들어 내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제발 어디 요리하고 싶냐고 묻지 말아달라 흑흑. 나는 빵도 잘 굽고 싶고 톳나물도 잘 무치고 싶고 스테이크도 잘 굽고 싶단 말이다. 물론 한분야에 평생을 다 바쳐 연마해도 모자랄 것이 음식이고, 요리를 적당히 할 생각은 절대 없다. 다만 내가 20년 후 전문가가 되고 싶은 분야는 음식과 연관된 엄청난 문화와 역사, 그리고 소통의 힘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전파하는 메신저 역할이기 때문에 최대한 다양한 경험과 기술을 쌓는 것이 목표일 뿐!

ps. 사진은 홍대 돈부리점의 간판. 뭔가 음식에 대한 소신과 관련된 사진이라 -_-...

이번에 미국에 갔을 때 맛집 찾아가기보다 더 우선순위는 일반 서점만큼이나 잘 구축되어있고 정리되어 있는 미국의 헌책방들에서 요리/음식 관련 서적을 가방에 넣을 수 있을만큼 쓸어오는 것이었다. 솔직히 난 새 책을 사는 것이 너무너무 아깝다. 가격 떄문이 아니다. 창고에서, 혹은 헌책방에 고이 모셔져 있는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빠닥빠닥한 코팅된 두꺼운 커버에 새하얀 새종이에 인쇄된 책들이 너무 낭비같아서 말이다. 

여튼, 그렇게 벼르고 가서 이번에 구해온 열몇권의 책 중 제일 기대되는 책은 (사실 새 책이었다는 아이러니와 위선은 잠시 옆으로 밀어두고) 소설가인 Jonathan Safran Foer의 첫 비소설인 Eating Animals라는 책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현대 도축산업의 끔찍한 장면들을 논하며 채식주의를 옹호하는 또 한권의 책 같아보였지만, 대강 리뷰들을 보아하니 그것과는 좀 거리가 있는 책이었다. 상당한 양의 리서치를 기반으로 한 이 책은 도축산업과 연관된 사람들, 문화, 역사에 대해 꽤 심도있게 다루고 있는 듯 했다. 결국 같은 카테고리의 수많은 책들 중에서 이 책을 집어들게 만든 건 저자가 vegan(유제품 포함한 동물성식품을 일체 섭취하지 않는 채식주의자)이면서 무려 도살장에서 일하는 인부들과도 인터뷰를 했다는 사실이다. 

아직 몇 페이지만 읽었지만, 오늘 새로 발견한 bluexmas님의 블로그에서 푸아그라 안 먹어도 그만이라는 구절을 읽고 갑자기 삘 받아서 포스팅하게 되었다. 나도 사실 푸아그라 안 줘도 그만이다. 웬만해선 맛있고 즐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나, 갑자기 한밤에 먹고 싶어지는 그런 존재는 아니란 말이다. 게다가 코스요리에 푸아그라가 나오면 신나기보다는 차라리 다른 걸 주고 덜 비싸게 받지, 라는 생각을 하는 일인. 

무엇보다 푸아그라의 목넘김이 힘든 이유는 푸아그라가 만들어지는 과정 때문이다. 거위를 강제로 폭식(force-feeding)하게 만들어(뭐 깔대기를 꽃아 대량의 사료를 위로 바로 투하시키니 "식"이라 하기도 어렵겠지만) 살찌운 간이 바로 푸아그라인데[각주:1],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이걸 먹어야 하나, 라는 맛이 아니기도 하지만 그걸 알고 난 후에는 먹을때 드는 일말의 죄책감과 찝찝함에 100% 즐길 수가 없다. 

푸아그라의 상당한 역사를 보여주는 이집트 벽화.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사실 푸아그라 외에도 육식에 대한 나의 고민은 여러 다른 동물들을 거쳐갔다. 여기저기서 접한 사진들이나 기사들 때문에 반년간 소/돼지/닭고기를 멀리한 적도 있었고, 참치에 대한 마구잡이 어업의 횡포에 대해 읽었을 땐 소비자로써 할 수 있는 일은 소비를 하지 않는 것이라며 절대 참치초밥은 먹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런 결정들은 정확한 근거나 가치관은 커녕 단순히 그때그때 느끼는 순간적인 감정들로 인한 것이었고, 카드값이 여유있는 달만 유기농 유제품을 구입하는 위선적인 내 잣대는 그리 오래가질 못했다. 

사실 현대사회에서 육식이 의미하는 것과 나의 선택이 미치는 영향들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고 고찰한 적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그렇지만 까탈스런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도 싫었고, 굳이 설명을 하기도 귀찮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맛있는 갈비와 참치뱃살을 포기하기도 싫었다. 때문에 이 쪽 산업에 대해 제대로 알게되면 왠지 죄책감이 더 커질 것만 같아 일부러 생각을 하지 않고, 그래 인생은 짧은데 즐겨야지, 라는 모토와 가끔씩만 먹어주고, 먹을 때는 최대한 환경/동물 친화적인 재료를 선택한다는 단순한 합리화 -- 왠만한 사람들이 말없이 수긍하고 인정할만한 잣대--로 지내왔다.

하지만 이 주제는 점점 밀리는 방학일기처럼 마음 한켠에서 계속 불편함을 제공했고, 요리를 업으로 삼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부터는 개학 전날밤의 초조함과 불안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재료에 대해 제대로 알고, 많은 지식과 확실한 가치관을 기반으로 한 이유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의 무게. 그 결심의 첫걸음으로 이 책을 집어들었다. 
 
몇 장 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상당히 기대가 된다. 저자는 매우 위트있게 불편하고 민감한 주제를 아주아주 원론적인 질문부터 소화하기 쉽게 다뤄나간다. 언제부터 우리는 육식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는지, 어떤 계기들이 있었는지, 푸아그라용 거위가 느끼는 육체적 고통과 마블링을 위해 꼼짝 못하는 소가 느끼는 정신적 고통을 비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비교해서 도대체 어쩔건지, 일반 양계장의 닭과 들판을 뛰놀며 자란 닭은 정말 다른지 등등의 다양한 질문을 심도있게 다룬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단순히 도덕성과 가치관에 대한 논란을 떠나 음식과 문화/역사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을 뼈대로 잡고 얘기를 풀어나간다는 점이다. 

 ps. 이 책을 읽고 나서 편한 마음과 확실한 소신으로 계속해서 육식을 할 수 있는 것이 나의 욕심이자 이기심이지만 여전히 (더) 불편한 진실로 남을지도 몰라 좀 두렵다 -_-


  1. 엄밀히 얘기하자면 force-feeding으로 사육되는 거위가 아니면 프랑스법에 따라 foie gras라고 부를 수 없으나, 일부 생산자들은 자연적인 사료섭취, 혹은 거위의 간이 자연적으로 제일 커져있을 때를 골라 도살하는 방법등을 통해 "foie gras"를 만들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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