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단상

우선 서두는... 보고 나서 눈물나도록 한참 웃었던 개콘 '네가지'의 관련 내용 동영상(1:25부터)



속살을 하얗게 드러낸 양파가 정열적인 고춧가루를 유혹하고 있어. 그 둘이 만나서 아주 뜨거운 제육볶음의 탱고를 추고 있지!!!!!! ㅋㅋㅋㅋㅋㅋㅋ


이런저런 요리와 음식관련 글을 읽고 있으면 빈번하게(혹은 거의 유일하게) 등장하는 표현들이 있다. 담백하고, 느끼하고, 고소하고, 풍미좋고, 감칠맛 나고. 그런데 사실 정확한 뜻을 찾아보면 이 표현들이 묘사할 수 있는 "맛" 내지 "감각"은 굉장히 제한적이다.


[국어사전 참조]


담백하다

2. 아무 맛이 없이 싱겁다. ≒담담하다1[1]ㆍ담박하다. 
3. 음식이 느끼하지 않고 산뜻하다. ≒담담하다1[1]ㆍ담박하다ㆍ담하다. 


느끼하다 
1. 비위에 맞지 아니할 만큼 음식에 기름기가 많다. 
2. 기름기 많은 음식을 많이 먹어서 비위에 거슬리는 느낌이 있다. 

고소하다
━ [ⅰ] 볶은 깨, 참기름 따위에서 나는 맛이나 냄새와 같다. 

풍미
[ 風味 ] 1. 음식의 고상한 맛. ≒맛매. 
[ 味 ] [명사]푸지고 좋은 맛.

감칠맛
1. 음식물이 입에 당기는 맛. 

그리고 이건 나도 잘못 알고 있었던 건데, 녹진하다라는 표현은 깊고 진한 맛이 아니라 
1. 물기가 약간 있어 녹녹하면서 끈끈하다. 
2. 성질이 보드라우면서 끈기가 있다.
(뭐 사전에 의하면)

때문에 예를 들어 "피자가 담백하니 맛있어요~"라는 표현은 기름기가 과하지 않아 비위에 거슬리지 않았다, 맛이 좋았다지, 도우의 그을린 향, 도우의 텍스쳐(질겼다, 부드러웠다, 겉은 파삭하니 가벼웠는데 내면은 살짝 쫄깃하니 폭신했다), 피자 소스의 신맛 단맛 짠맛, 치즈의 특유의 향, 늘어나는 정도, 온도, 이런 자세한 맛을 전혀 알 수 없다. (그나저나 피자가 담백하면 맛있나? -_-)
 
인간이 무언가를 먹었을 때 느끼는 "맛"은 온도, 텍스쳐, 맛, 향 등 매우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주는 경험인데다가, 비교는 잘하지만 이게 어떤 향이다, 맛이다라고 콕 집어낼 수 있는 능력이 낮아 묘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리스트를 작성해보기 시작했다. (완전 무작위)

떫다, 깔끔하다, 매끄럽다, 쫄깃하다, 꼬들꼬들하다, 아삭하다, 끈적이다, 거칠다, 바삭하다, 버석하다, 말랑말랑하다, 몰랑몰랑하다, 질기다, 연하다, 부드럽다, 보드랍다, 녹진하다, 사르르 녹다, 촉촉하다, 탱글탱글, 차지다, 퍽퍽하다, 사각사각하다/사각거리다, 서걱서걱하다/서걱거리다, 파삭하다, 퍼석하다, 쫀득하다, 기름지다/느끼하다, 얼얼하다, 물컹하다, 몰캉하다, 텁텁하다, 아리다, 담백, 감칠맛, 고소.구수, 풍미가 있다, 톡 쏘다, 얼큰하다, 시원하다, 비리다, 느끼하다, 쩡하다, 칼칼하다, 짭짤하다, 달다/달달하다/달콤하다/달곰하다, 고소하다, 구수하다, 시큼하다, 새콤하다, 시다, 시금털털, 밍밍하다/싱겁다, 맵다/매콤하다, 슴슴하다, 쓰다, 씁쓸하다, 밋밋하다, 싱그럽다, 상쾌하다, 화사하다. 
(+ on and on)

여기서는 촉감을 나타내는 것도 있고, 맛 자체도 있고, 향, 혹은 복합적인 단어도 있는데, 이렇게 늘어놓아 보아도 막상 무언가를 설명하기가 참 어려운 건 매한가지. 

예를 들어 송이버섯의 맛을 설명해 보려고 하면...

- 텍스쳐: 조리법에 따라 좀 다르겠지만 뭔가 보송하면서도 아주 살짝 쫄깃하면서도 몰캉하지는 않고 매끄러운 건 아닌데 그렇다고 크리미하게 부드러운 것도 아니고. 
- 맛과 향: 뭔가 묵은 듯한 버섯 특유의 맛(이건 어찌 묘사 ;ㅁ;)에 수풀 냄새도 좀 나고 어릴 적 나무에서 껍질 벗겨 맡으면 나던 싱그러운, 그렇지만 단단한 나무의 향.그리고 표현 못하겠는 다른 오묘한 향들.

영어도 earthy나 musty, floral, nutty, 이런 표현들이 발달되고 널리 사용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물론 보통 사람들은 so delicious! 에 그치지만, 좀 더 음식의 맛을 체계적이과 정확하게 표현해보려는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 가면 국어사전 한권 펼쳐놓고 연구 좀 제대로 해 봐야겠다. 롱텀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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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인턴쉽 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왔을때 마지막 저녁식사를 한 곳은 Bar Tartine이라는 곳이었다. 이 식당은 2002년에 개업후 줄줄이 상도 타고 책도 낸, 아직까지 대단한 인기를 누리는 Tartine Bakery의 조인트 레스토랑인데, 음식이 매우 특별하다.


Tartine Bakery의 훌륭한 빵들을 장점으로 십분 활용하는 메뉴 아이템들도 좋지만, Nick Balla라는 이름의 셰프의 음식이 참 인상적이다. 셰프는 헝가리 출신이지만 일본에서도 오래 살고 정통 일식당까지 운영한 경험도 있다. 때문에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알고 사용하는데, 한 그릇안에 너무나 맛있고, 편안하면서도 새로운 음식을 담아낸다. 3월에 저녁을 먹으며 이미 SPQR과 계약을 한 후 이곳을 알게 된것이 좀 후회가 될 정도로 음식들이 맛있었다. 


저녁을 먹고 주방을 구경할 기회가 잠깐 있었는데, 특히 나의 눈길을 확 잡아끈 건 찬장을 빼곡히 메운 직접 말려 만든 각종 향신료 및 피클들이었다. 지금도 관심이 많지만, 한창 말리고 절이는 테크닉에 매료되어 있었던 나는 이곳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때문에 SPQR에서의 인턴쉽이 끝난 후 바로 스타쥬를 위해 문을 두드린 곳이 바로 여기였다. 셰프 Nick과 그의 파트너 Cortney가 이끄는 이 주방의 첫인상은 무척이나 가족적이었다. 여름내내 내가 그토록 목 아프게 외쳐되던 Yes chef는 한번도 듣지 못했고, 모두가 서로의 이름만을 부르며, hon, sweetheart, baby같은 호칭이 대신 들려왔다. 그날그날 라인에 서는 사람들만 하얀 셔츠를 입고,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냥 티셔츠에 아무 앞치마나 두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적응이 빨리 되지 않았던 건 칼질부터 플레이팅까지 fine dining에서 rustic한 모양새로 가는 것이었다. 감자던 당근이던 dice로 썰때 여섯면이 모두 정확히 같은 정육면체로 재단하는 데 온전히 집중했어야 했던 터라, 그냥 대강 비슷한 크기로 썰어도 된다는 사실이 처음에 잘 와닿지 않았다. ㅋㅋ

그만큼 위생이나 정리하고 치우면서 일하는 방식도 여기는 상대적으로 꽤 느슨했다. 때문에 3일간 일을 하면서 크게 배운것이 있다고 말하기는 참 어렵다. 3일은 조리법이나 레시피를 배우기는 사실 너무나 짧은 기간이라 어차피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내가 SPQR에서 훈련받은 위생 및 일하는 방식의 습관이 상당히 높은 기준이라는 것만 새삼 느꼈을 뿐.



그렇지만 3일이라는 짧은 시간 후 떠날때 모두가 악수대신 허그를 해주고, 일하고 나면 너무나 고마웠다며 와인에다 음식도 한 상 차려주며, 모두가 열심히 일하고 가족같이 서로를 대해주는 곳. 그리고 정말 맛있고 완성도 높은 음식들. 그 퀄리티를 계속 유지하고 손님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면, 과연 퍼펙트한 칼질과 똑 떨어지게 정리된 찬장들이 필요한 것일까? 내 생각을 넓힐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뿌리를 찾아

요리단상 l 2012. 9. 22. 22:29

외국에 나오면 우리것이 더 좋아지고 한국인임을 절감하게 되고 애국자가 되고...


이보다 상투적이고 뻔한 말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진짜다 -_-;

오늘 또 한건의 스타쥬를 마치고 돌아와 새벽 내내 한식에 관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뒤지느라 잠을 못 잤다. 사실 한식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이전부터 슬슬 들기 시작해 어느정도 마음을 먹었었는데, 요 그래 관련 다큐멘터리며 기사며 많이 접하며 확고한 결심이 들어섰다. 이미 한국에서 열심히 꾸준히 그 길을 걸어가고 계신 분들도 예상보다 많고, 어려운 길이라 포기한다는 건 용납이 안되므로.....


미쳐보자! 달려보자! 으히히!


ps. 오늘 보고 열광했던 성북동 이종국 선생님의 요리 : http://pat2bach.blog.me/60146976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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