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단상


누구나 한번쯤은 그렇듯이, 두어달 전 블로그를 한 번 개설해보자, 라는 결심을 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수록 그래, 나도 멋드러지게 써서 블로깅으로 먹고 살 수 있을거야, 라는 희망에 가까운 야망이 커져갔다. 시작은 창대했으나...로 대변되는 블로거 케이스들이 대부분인 이 레드오션에서 내 블로그를 성공시킬 만한 아이디어들을 고민했고, 결국 그래 이거야, 라는 몇가지로 좁히기까지 이르렀다. 광고요청이 이어지고 포스팅마다 댓글이 수십개씩 달리는 내 블로그를 혼자 그려보며 행복감에 가득. 마치 예전 애인 생일케익을 계획하다 버터크림으로 멋드러지게 쓴 그의 이름과, 비싼 버터와 초콜렛으로 무장된 2단짜리 층층케익을 보며 사람들이 꺄아 감탄할 생각에 뿌듯해했던 것처럼.(참고로 우리나라 속담으로 '김칫국부터 마신다'라고 한다나?)

마음 먹은 후부터 마음이 바빠졌다. 개설은 어디다 할지 한참 고민하고, 한달치 주제를 미리 다 써보기도 하고, 디자인도 그려보고. 그러는 동안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갔고 결국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한채 한달이 흘러갔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선택권이 반드시 자유를 주는 것은 아니다(Choices are not necessarily liberating)'라는 말이 있다. 슈퍼에 치약 사러 갔는데 진열선반 한면 가득을 채우고 있는 수십가지의 치약을 보고 고민하다 머리아픈 경험 다들 있으시겠지. 차라리 한가지만 팔면 그것만 그냥 사면 되는데 말이다. 여튼 고민에 고민을 하는 동안 블로그를 우선 시작하게 되면 그만큼 대단한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부담에 계획한지 한달이 넘었으나 여전히 난 블로그가 없었다. 

그래서 저번 주말에 결심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간만에 실천하기로 하고 온갖 욕심을 버리고 우선 쓰기로 말이다. 이제 고민은 끝났고 난 마음 편히 글만 쓰면 된다....응? 막상 잊고 있던 중요한 사실 : 이미 다른 사람이 사용하고 있지 않은(그리고 내 마음에 드는) 아이디 생각해내기는 낙타 바늘 통과하기(생뚱)보다 어렵다.

블로그를 개설하기로 결심한지 한시간째, 난 충혈된 눈으로 티스토리, 이글루스, 텍스트큐브 등에서 아직까지 온갖 단어조합을 시도해 보고 있었다. 역시 계획만 너무 세우다 남친생일 바로 전날밤까지 케익 스펀지도 없이 충혈된 눈으로 레시피를 뒤지고 있던 그날밤처럼. 2단과 크림장식의 욕심을 버리면 일사천리가 될 줄 알았건만. 모든 슈퍼 문 닫은 야밤에 집에는 버터도 없고, 박력분도 없었다. 달걀은 한 개. 밤 12시가 넘었으나 나는 여전히 인터넷에서 분노의 클릭질을 하고 있었다. 뭔가 좀 괜찮아 보이는 레시피를 클릭해 보면 '달걀 3개...' 아님 '버터 넉넉히...'의 테러가 이어졌다.

결국 블로그 신(응?)이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anotherfoodie.tistory.com를 선사하시며 나를 구원해 주셨다. 주소나 디자인이나 백프로 마음에 들진 않지만 다음날 아침에 나의 1단짜리 버석버석한 초콜렛 케익을 맛있게 먹어준 옛 애인처럼 여러분도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 




  1. Haechi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정한 블로거로 한걸음 나아서는군요 쥔장~^^
    난 그냥 나좋자고 만들어놓고.. 그냥 지인이나 보고가는.. 미니홈피에서 살짝 발전된 블로그를 가지고 있을 뿐인데.. ㅎㅎ 배울게 참 많은 친구야...
    푸디를 응원합니다!!! 매우 많이~~ ^ㅡ^/

    2010.04.18 23:57
  2. 까브드맹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경우에는 일단 시작하고 적다보면 그럭저럭 되가다가 나중에는 점차 나아지더라고요.

    즐겁게 꾸준하게 포스팅하시기 바랍니다!

    참 링크 걸어놓아도 될까요?

    2010.04.25 07:53 신고
    • joowon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요, 시작하면서 자꾸 써봐야 나아지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해봐야죠. :)

      링크 걸어주신다면야 저야 완전 영광입니다.

      2010.04.25 14:18 신고
  3. 당신을 응원해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작하셨구만~
    일을 벌이셨어~
    신선해~!!

    2010.04.26 17:05
  4. 파니니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푸디님 자주와서 보다가 이제야 첫 댓글 남겨요~
    전 근데 이 글 읽기전까지 푸디님이 멋진 센스쟁이 남자...이실거라고
    왜 생각했을까요? ㅋㅋㅋㅋ

    여자들에게 잘 없는 뭔가 정돈되고 깔끔하며 공학도스러운 느낌으로 보는듯한
    요리세상이 매력이다 생각했는데

    푸디님이 여자라고 생각하니까
    더더더욱 매력이 상승됩니다 ㅎㅎ


    오늘 푸디님 블로그에서 보고 초콜렛빵 방금 만들었어요.

    전 푸디님 사진처럼 발효가 잘 안된 듯 보였지만
    시식을 마친결과 푸디님 말처럼 사르르 녹는게 맘에 들어요

    식혀서 낼 아침에 먹으면 더 맛있겠죠? ^^

    아무튼 좋은 레시피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0.11.02 17:10
    • joowon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 사실은 남자.......

      프흐흐흐

      초콜렛빵 다음날 더 맛있길! 커피 드신다면 그 궁합도 좋더라구요 ^^ 자주 와주신다니 감사해요 ㅎㅎ

      2010.11.03 22:0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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