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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16 중간에 절대 열어보지 말 것 두가지, 핸드폰과 오븐 11


지난 9일, 자신의 발 사진으로 유명한 발레리나 강수진의 갈라쇼를 보러 오랜만에 예술의 전당에 다녀와줬다. 공연 전 엘레강스한 옷차림에 좀 어울리지 않는 백년옥에서 두부비빔밥과 녹두전을 배불리 먹고 나니 공연중 졸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배에 힘을 주고 오랜만에 신어준 구두를 또각거리면서 오페라 극장으로 들어가니 그 안은 이미 수천명의 사람들로 웅성거림이 가득했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아까 비빔밥의 고추장 기운이 입안에 맴돌았다. 젠장, 파스타를 먹을걸. 백을 뒤지며 껌을 열심히 찾고 있는데 종소리가 들리며 불이 어둑해지더니 순간 공연장 안은 암흑과 정적으로 가득찼다. 그 고요함 속에 부스럭대며 껌 종이따위를 깔 자신은 없어 그대로 껌을 손에 쥔채로 동작정지. 


공연 연출이 어둠을 너무 즐기시는지, 뭔가 엄청나게 드라마틱한 오프닝이 터져주려는지, 기다림이 길어지자 여기저기서 기침소리가 터져나오고 사람들이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껌을 재빨리 입에 까서 넣어주고) 그 드라마틱함을 놓치고 싶지 않아 해이해지는 집중력을 달래며 열심히 앞쪽을 응시하고 있던 찰나, 1층에서 반딧불떼처럼 하나 둘씩 켜지는 핸드폰 조명들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아래로 흘렀다. 순간 무대위에 무언가가 나타났고, 재빨리 고개를 들었으나 내가 기다리던 그 순간은 이미 놓쳐버렸고. 공연 내내 계속되는 핸드폰떼의 조명 테러 탓에 좀처럼 백프로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뭐가 그렇게 기다리는 급한 연락이 있으며, 뭐가 그렇게 급히 확인해야 하는 문자가 있단 말인가? 그래 없는데 그렇게 습관처럼 때와 장소 못가리고 열어보는 것 아닌가?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그 와중, 살짝 민망해지며 내 자신의 안 좋은 습관 하나가 생각났다. 바로 베이킹 도중 오븐을 계속해서 열어보는 나쁜 습관 말이다. 그래, 오븐에는 중간에 열지 않고 안을 볼 수 있게 작은 등이 하나 달려있긴 하지...그렇지만 작은 오븐 창으로는 오븐에 거의 뺨을 갖다붙혀도 전체가 잘 보이질 않고 답답하기 짝이 없으며, 자동차 유리처럼 어둡게 코팅되어 있어 색이 제대로 났는지 보이지가 않는단 말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다고 흑흑흑...(아 이게 아니고.) 마치 받지 않는 남친 전화에 부재중 전화 이미 몇 통 찍어놓고, 그래 난 대인배니 한시간 넘게 하지 말아야지, 한 후 십분도 넘기질 못하고 다시 부재중 전화 한 통 찍는 것처럼. 5분전에는 안 받고 10분전에도 안 받았지만 지금 하면 받을테니까. 5분전에는 빵이 아직 허얬지만 지금 다시 열어보면 마술처럼 갈색으로 변해있을 테니까, 라는 이성으로 절대 설명 불가한 조급증 때문에 계속 열어보는 나쁜 습관 말이다.


자꾸 오븐을 열어보는 것이 좋지 않은 습관인 이유는 열고 닫기를 0.0001초내에 달성하지 않는 이상 열어볼때마다 오븐의 온도가 팍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많게는 섭씨 2-30도씩 온도가 떨어질 수 있는데, 이는 촉촉하지 못한 쉬폰이나, 누르끼끼한 빵이나, 반죽 다 잘해놓고 무언가 상당히 맘에 들지 않는 실패감을 맛보기 딱 좋은 지름길인 것이다. 


공연 다음날, 브런치로 먹을 베이글 반죽을 하면서 이번에는 절대 중간에 오븐에 손도 안댈거야, 라고 머릿속에 각서를 썼다. 반죽을 오븐에 넣고 손톱을 깨물면서, 책을 읽으면서, 스트레칭을 하면서, 강아지랑 놀면서, 게임을 하면서, 동동거리면서 타이머가 울리기만을 기다렸다.(굽는 시간 20분도 안됨) 그러다 땡 치자마자 오븐 앞으로 달려가니 구수한 갈색의 둥그런 녀석들이 꺼내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강수진 언니 감사합니다!


ps. 베이글에 트위스트를 좀 주어봤다. 어떤가?

pps. 반대로 우리 강아지(사실 십년된 개님)는 하루종일 눈을 못 떴다. 뭘 했다고 피곤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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