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단상

지짐누름적. 도라지, 표고, 쪽파, 소고기, 당근.


혹독한 한파에 정신못차리고 어버버대고 있다보니 어느덧 2월이 찾아오고 구정이 찾아왔다. 명절이면 훈훈한 가족모임의 분위기가 생각나기도 하지만 손가는 음식들을 대량생산해내야 하는 많은 어머니들에게는 상당한 스트레스로 먼저 다가올터. 오죽하면 '명절 증후군'이란 말이 생겨났을까 말이다.

이번 해 설에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 중 하나인 전을 내가 맡아 하기로 했다. 사실 전은 손이 많이 갈 뿐만 아니라 텍스쳐과 색을 둘다 제대로 살려 맛있게 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고난이도의 아이템이다. 부침개류는 가장자리와 겉면은 바삭하되 속은 촉촉해야 일품이고, 생선전이나 호박전 등 일품전은 타지 않고 노릇하며 부드러워야 한다. 그렇지만 별 생각없이 중불에 기름 좀 두르고 대강 부치다 보면 퍽퍽해지고 갈색으로 그을리고 태우기 일쑤.  

전을 맛있게 부치려면 주의해야 할 점들이 여러가지 있지만, 제일 중요한 네가지는 확실히 물기 제거된 재료, 과다하지 않은 밀가루 옷과 달걀물, 적당량의 기름, 그리고 세심한 열 조절이다. 아, 물론 인내심도 필수.
 

통도라지. 신세계에서 겨우 구했다.


확실히 물기 제거된 재료 이건 대부분의 요리에 적용되는 중요한 룰이기도 하나, 재료의 물기가 남아있으면 전을 부칠 때 다음과 같은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우선 빈대떡 등이나 김치전 등의 밀가루'물'과 재료를 섞어 부침개의 경우는 반죽이 묽어져 재료와 밀가루 물이 따로 놀게 되며, 눅눅하게 부쳐지게 된다. 물론 간도 맛질 않는다. 

일품전의 경우를 보자. 호박전 같은 경우에는 호박을 미리 썰어놓으면 물기가 계속해서 나오는데, 이를 제대로 제거하지 않고 밀가루 옷을 뭍히려 하면 밀가루가 떡이 지고 호박에 제대로 뭍혀지지도 않는다. 밀가루의 용도는 달걀물을 골고루 잘 입히기 위한 것인데 이렇게 되면 달걀물 코팅도 망한다. 결과물은 너덜너덜거리는 달걀옷과 달걀물 부족으로 뻣뻣하게 구워진 재료다. 


과다하지 않은 밀가루 옷과 달걀물 위에서 말했듯이 밀가루옷을 입히는 작업은 재료에 달걀물이 얇게 착! 입혀지기 위한 밑준비다. 그렇지만 여기서 적당한 밀가루의 양은 재료가 얇게 비칠 정도이다. 그 이상의 밀가루가 입혀지게 되면 우선 맛이 텁텁하게 된다. 그리고 과다한 양의 달걀물이 입혀지게 되어 서로 떡이 지며 두툼한 달걀옷이 되버린다. 이는 재료가 제대로 익는 것을 방해하며(혹은 익히다가 달걀옷이 타거나) 본재료의 맛도 감춰버리게 된다. 마지막으로 밀가루 옷은 그때그때 입히는 것이 좋지, 미리 입혀놓으면 재료에서 나오는 수분으로 인해 물기가 돌게 된다.

밀가루는 잘 입혔는데 달걀물이 과다한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재료를 달걀물에 담근 후 후라이팬에 가져갈 때에는 반드시 여분의 달걀물이 흘러내릴 수 있도록 그릇 가장자리나 젓가락으로 밑면을 한번 쓱 그어준다. 과다할 경우 물론 달걀옷이 두꺼워지는 것도 있지만 팬 여기저기에 달걀물이 뚝뚝 떨어져 쉽게 타고 부치는 전의 표면에 자꾸 묻게 되어 지저분해진다. 


적당량의 기름 전은 기름에 부쳐낸 음식이다. 때문에 기름양이 맘에 걸려 기름을 부족하게 사용하다 보면 퍽퍽한 전이 완성될 수 밖에 없다. 특히 빈대떡이나 김치전의 바삭한 겉면은 고온의 기름에 단시간에 지져내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름을 넉넉한 느낌으로 둘러주는 것이 중요하다.

단, 일품전은 좀 다르다.  저온에 오래 부드럽게 익혀야 하는 일품전은 기름을 많이 쓸 경우 뜨겁게 달궈진 기름에 달걀물이 쉽게 타버린다. 때문에 초반에는 기름코팅만 해서 모양을 잡고 웬만큼 익힌 후 마지막에 기름을 조금 넉넉하게 둘러 단시간에 반짝거리고 촉촉하게 익혀 낸다.

부침개던 일품전이던 기름은 매우 뜨거워지고 또 쉽사리 온도가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다량의 전을 부칠 경우 오래된 기름을 닦아내고 새 기름으로 보충해가며 지지면 겉면이 쉽게 타지 않는다. 오래된 기름을 닦아낼 때 부치는 전에서 묻어나오는 그을음도 같이 제거가 되어 새로 부치는 전들의 겉면이 깨끗하게 보존되는 효과도 있다.


세심한 열 조절 예전 달걀보기를 여자같이 하라라는 포스팅에서도 다뤘지만, 달걀은 열에 매우 민감하다. 달걀이 많이 쓰이는 전에 대한 열 조절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익힌 달걀이 그대로 겉면에 보이는 일품전의 경우에는 더욱 더 중요하다.

일품전에 적당한 온도는 처음 팬에 올려놓았을 때 전의 형태가 어느 정도 잡힐 정도의 온도이면서 달걀이 타지 않고 서서히 노릇하게 익을 수 있는 저온이다. 너무 온도가 높을 경우 달걀이 확 익어버려 뻣뻣한 식감이 되버리고 재료가 익기 전에 겉이 타버리게 된다. 너무 온도가 낮으면 전의 모양이 초반에 제대로 잡히지가 않으며 달걀이 보송하게 익지 않고 약간 꾸덕하면서 반투명으로 굳어지게 된다(제대로 익지 않은 상태). 보통 많이 볼 수 있는 경우는 빨리 부쳐내려고 중불 이상으로 불을 올리고 기름을 술술 둘러가며 팍팍 빠르게 지져내는 것인데, 일품전은 노릇하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기 때문에 저온에서 서서히 인내심을 가지고 요리해내야 한다. 

부침개는 초반에 기름을 넉넉히 둘러 팬을 꽤 뜨겁게 달구워 치직하고 바싹 겉면을 익힌 다음 온도를 살짝 낮추어 속은 부드럽게 익혀내는 것이 포인트이다. 

다들 떡국과 따땃한 전을 드시며 행복한 구정을 보내셨길!

비오는 날은 유난히 더 생각나는 음식이 많다. 동동주에 부침개부터 더 향이 깊게 느껴지는 커피 한잔, 오뎅국물에 사케 한잔, 달콤하고 찐한 초콜렛 케익 한 조각까지. 특히 비오는 토요일 아침은 뭔가 폭신하고 따끈한 것이 생각나는데, 오늘도 역시나 비. 평소에는 침대에서 딩굴딩굴 하다가 대충 씻고 빵 한조각이나 밥에 달걀, 김 등의 '때우는' 메뉴지만 오늘은 어제 산 원두도 있겠다, 커피도 내리고 팬케이크 만들어 먹어야겠다는 모처럼의 결심.


밀가루, 달걀, 우유 등의 간단한 재료를 섞어 부쳐내는 팬케이크는 쉬워 보이지만 막상 맛있게 만들기가 그리 쉽지 않다. 팬케이크의 생명은 바로 촉촉하고 폭신한 살결 때문인데, 집에서 부쳐낼 경우 뻑뻑하고 질기게 되는 경우가 많다. 맛있는 팬케이크를 위한 두가지 포인트는 바로 훌훌섞기와 불 조절. 


팬케이크에는 다른 제과 레시피와 마찬가지로 젖은재료와 마른재료가 있는데, 마른재료와 젖은재료를 각각 따로 잘 섞어놓았다가 마지막에 합할 때 아주 성의없게 훌훌 섞어주어야 한다. 날가루가 보이고 멍울멍울할테지만 구우면 다 괜찮아진다. 여기서 너무 매끄럽게 반죽을 섞는답시고 저어주면 팬케이크는 그만큼 질겨진다. 

이보다 더 폭신한 질감을 원한다면 달걀을 한번에 풀어서 사용하지 말고 노른자와 흰자를 구분하는 수고를 거치면 된다. 흰자거품을 따로 내어 섞어주면 그만큼 더 보드라운 반죽이 된다. 흰자거품 제대로 쉽게 내는 방법은 이전 이 포스팅에서 다룬 적이 있으니 참고하시길.


반죽 외에 또 중요한 한가지는 바로 불 조절. 태우지 않고 촉촉히 익혀내려면 무조건 불을 중약불로 한다. 처음 한 면을 익히는데에 2-3분 정도 걸리는데, 이때 인내심을 가지고 불을 약하게 둔다. 물 한방울 떨어트렸을때 은근하게 칙- 소리가 나면 준비가 된 것. 

한 국자 정도 부어 편편히 펴준후 익히기 시작한다. 이 때 후라이팬에 적절량의 녹인 버터를 계속 조금씩 발라가면서 구워준다. 너무 버터가 많아도 발연점이 낮기 때문에 타기가 쉬우니, 양을 잘 조절하고 탄 버터찌꺼기는 키친타월로 제거해가면서 사용한다. 카탈로그에 나오는 아주 매끈한 갈색 단면을 원한다면 코팅처리가 굉장히 잘 된 후라이팬을 사용하고 버터를 칠한 후에 한번 키친타월로 닦아내고 부친다.


요렇게 버블버블 구멍이 숭숭 올라오고 가장자리가 익었다면 뒤집을 타이밍이 온 것이다. 뒤집은 후에는 익는 시간이 1분도 채 안 걸린다. 전이나 고기와 마찬가지로 뒤적뒤적하지 말고 딱 한번만 뒤집는 것이 좋으니 아래 사진처럼 버블이 풍성하게 올라올 때까지 반드시 기다리기!


팬케이크는 매우 다양한 모양과 맛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진다. 보통 이런 방식으로 도톰히 부쳐내어 시럽과 먹는 것은 미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달걀, 베이킹 파우더 등을 사용해 부풀린다. 약간 걸쭉한 반죽이 대부분. 영국 버전은 프랑스의 크레이프와 마찬가지로 더 묽은 반죽이며 단 토핑뿐 아니라 짭짤하게 먹기도 한다. 브라질에서도 비슷한 크레이프 류의 음식이 있고, 유럽 전반에 걸쳐 밀가루, 달걀, 우유를 기반으로 한 팬케이크/크레이프가 퍼져 있다.


그 밖에도 '팬케이크'라는 단어는 우리나라의 전 등을 포함한 단 맛, 짭짤한 맛을 포함해 반죽을 만들어 기름을 두른 팬에 지져내는 음식에 전반적으로 쓰인다. 예를 들어 한국의 해물파전이나 감자전은 'Seafood Pancake'과 'Potato Pancake"으로 두루 알려져 있으며, 인도의 Dosa라는 쌀/두류로 만들어진 넓은 지짐도 설명할 때에는 팬케이크류로 통한다. 물론 각 나라 고유의 음식에 대한 정확한 명칭을 사용해 주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여튼 뜨거운 철판에 기름을 두르고 뭔가 지져먹는 것, 만국에서 통하는 맛의 진리인가보다. 

촉촉하고 뽀송한 미국식 팬케이크

지름 10cm 정도로 약 16장 

박력분 240g (중력분도 오케이)
베이킹파우더 2작은술
소금 1/2작은술
설탕 3큰술
달걀 2개
우유 1컵
녹인 버터 3큰술

밀가루, 베이킹파우더, 소금과 설탕을 체친다.걀, 우유, 버터를 따로 잘 섞은 후 미리 체쳐놓은 가루류를 넣어 훌훌 섞어준다. 

중약불에 후라이팬을 달구어 버터칠을 해 가면서 노릇하게 구워낸다. 

버터, 잼, 시럽, 파우더 슈거를 곁들여 먹는다. (물론 오밤중에 그냥 삼삼하게 하나 손으로 들고 먹는 재미도...)


블루베리나 초콜렛칩, 바나나를 넣어서 구워도 별미! 너무 많이 넣으면 팬케이크가 고르게 지져지지 않으니 적당량만. 시나몬, 레몬 제스트 등을 넣어도 아주 고급스런 맛이 탄생한다. 참고로 여러장을 부쳐야 하는데 따뜻하게 보관하고 싶을 경우 오븐온도를 75도 정도로 맞춰놓고 그 안에 넣어놓으면 한두시간 정도는 마르지 않고 촉촉하게 유지 가능하다.


ps. 어제는 전에 막걸리에, 오늘은 팬케이크에. 비 핑계대고 8월은 주구장창 과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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