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단상

오늘 고기외길30년의 @JBooom님과 셰프 에드워드 권의 두번째 서울 작품 더 스파이스를 다녀왔다. 큰 문을 열고 들어가니 화이트/레드/블랙의 인테리어. 생김새는 화려한데 플라스틱을 많이 쓴 것이 약간 고급스레 보이려는 영화장 세트같은 느낌. 

약간은 적응 안되는 분위기에서 메뉴를 보고 에피타이저 두가지 + 메인 + 디저트 코스인 프레스티지 점심 메뉴를 선택했다. 우선 식전빵 매우 좋았고, 같이 나온 오일도 좋았다. 구운 푸아그라가 메인인 애피타이저도 괜찮았고, 직접 만든 듯한 베이컨이 들어간 샐러드도 좋았고, 스프도 아주 깔끔한 식감으로 나쁘지 않았고. 메인 중 농어는 껍질이 없고 좀 퍽퍽한 것이 에러였지만, 오리와 생선 둘 다 괜찮았다. 디저트는 시나몬이 뿌려진 초콜렛 케익이 제일 먹을만 했고, 파인애플 얇게 절여 올라간 바닐라푸딩 + 크런치 디저트도 뭐, 깔끔하고 라이트했다. 그런데...남겼다. 


사실 블로그들을 어느 정도 읽고 간 터라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식전빵의 포카치아와 푸아그라, 그리고 베이컨 정도 외에는 무덤덤했다. 뭐 나오는 요리 모두다 감동을 받을 수는 없고, 분명 입맛은 주관적인 것이지만, 메인에 가서는 별 감흥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에드워드 권이 하는 곳이기 때문에 맛있어야 한다고 스스로 세뇌를 하고 있는 것이 느껴짐. 

결국 그 식당이 그만큼 값어치를 하고 맛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다시 갈 것인가 말 것인가로 결정된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더 스파이스는 전혀 다시 가 볼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 집에 와 앉아서 글을 쓰면서도 별로 생각나지도 않고. 요새 나의 favorites인 레스쁘아와 정식당은 다른 요리를 먹어보려 최대한 빨리 돈모아 다시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말이다. 

밥먹고 산책을 하며 둘다 곰곰히 생각을 해 보았는데, 흠 잡을점이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조리상태들도 다 괜찮았고, 농어요리 소스의 바닐라향도 신선한 맛의 조화였고. 내가 낸 비유는, 누가봐도 참 깔끔하고 멋있게 잘생긴 이성을 만났으나 전혀 끌리지 않는다, 정도. 

근데 왜 끌리지 않았을까?


결론은 깊은 맛의 원천인, 음식을 제일 중요시하고 사랑하는 장인정신 부재.

음식을 압도하는 미스매칭의 인테리어는 편하게 음식을 즐기기 어렵게 해 주었다. 조금은 촌스런 허연 플라스틱 샹들리에나, 커튼 장식이나, 너무나 모던한 빨간색 원형 소파, 높이 탑을 쌓고 이는 보드카 병, 디스코볼 등은 우아하게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먹어야 하는 음식보다는 추구하는 '힙'한 분위기와 매칭이 되는 gourmet 피자나 프라이 등 핑거푸드 종류가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모던함을 추구하는 접시들은 먹다가 중간중간 포크나 나이프를 걸쳐놓기가 매우 어려웠고, 의자는 끌 때 큰 소리가 나고 테이블에 잘 맞지 않는 등 먹으면서 자세가 약간 경직되는 분위기였다. 평소에 이런 거 잘 신경 안쓰지만, 이 곳은 점차 신경에 거슬릴 정도로 불편했다. 포크와 칼을 쓰면 한입 썰고 먹고 내려놓고 들고 썰고 먹고 들고를 반복해야 하는데, 특히 메인이 이런 접시에 나온거, 진짜 거슬렸다. 


그리고 천장에 걸려있는 권셰프의 큼직한 사진들은 마치, 나 이렇게 힙하고 쿨한 멋진 셰프다, 라고 얘기하는 듯해 거부감 플러스. 키친에서 막상 직접 요리를 하는 분들도 요리 자체에 대한 사랑보다는 셰프라는 타이틀의 트렌디함을 쫒고 있다면...결국 음식과 요리보다는 인테리어와 분위기에 더 초점이 맞추어진 듯한 곳에서 먹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깊은 맛의 음식이 나오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그 멋진 남자가 내면의 미가 부족했던 것처럼.

ps.  오늘의 사진 크레딧은 @JBooom님, 그리고 그의 알파550과 매크로 렌즈 :) 
pps. 한번쯤은 가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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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배가 고픈데, 약속은 깨졌고 연락되는 친구도 없고, 집에는 라면밖에 없으며, 장어덮밥이 무지 땡긴다. 내가 좋아하는 돈부리 집도 집에 가는 길이다. 그렇지만 혼자 들어갈 용기가 없다. 그래도 그 앞을 슬슬 지나가 본다. 안은 전부 삼삼오오 모임과 연인들 투성이다. 문앞까지 다가가보나 역시 망설여진다. 그러나 문틈사이로 흘러나오는 덮밥냄새에 문을 열고 슬며시 들어간다. 

"몇분이신가요?"

"아, 저기 그냥 저..."

"혼자 오셨나요?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눈치없는 종업원이 대빡 큰 목소리로 비수를 꽂는다. 사람들이 어휴 저 루저하고 쳐다보는 것 같다. 자리에 앉자마자 스마트폰을 꺼내어 열심히 메일을 보며 바쁜 척을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건 없고 달아오른 얼굴에 굳어지는 어깨에 빨리 먹고 나가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하다.

이제 스마트폰으로도 할 게 없다. 게임을 하면 너무 없어보인다. 읽은 메일 또 읽고 또 읽고. 친구녀석들은 답문자도 없다. 아 장어덮밥은 장어를 잡으러 갔는지 아직 냄새도 풍기질 않는다. 괜시리 사색에 잠긴 척 포스를 잡아본다. 옆에 앉은 커플을 슬쩍 보는데 오호, 남자가 훈훈하게 생겼다. 그런데 밥 열심히 먹고 있던 여친의 날카로운 눈빛이 느껴진다. 다시 폰을 꺼내 열심히 문자보는 척 한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밥이 나왔다. 이런 자태만 아니었음 그냥...
<출처 - http://dasu7422.egloos.com>

근데 시킨 장어덮밥에 딸려나온 새우튀김 몇 개. 으잉, 안 시켰는데요, 하는 눈빛으로 서빙해준 조리사를 쳐다보니 서비스란다. 한 입 베어물었는데 와사삭, 너무 맛있다. 보통 빵가루 튀김과는 좀 다른 느낌. 튀김을 물끄러니 보고 있자니 조리사 아저씨, 맥주를 좀 섞어 튀기면 더 바삭하단다. 물론 반죽은 차게. 새우는 사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전부 다 먹어야 더 맛있다는 말씀꺼정. 요새 새우들이 좀 비실비실 했는데 모처럼 좋은 놈들이 들어와 신난다며 새우 싱싱한 거 고르는 것에 대한 노하우, 어디서 사면 좋고 등 얘기를 듣다보니 아까의 조급함과 멋쩍스러움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나도 모르게 열심히 아저씨와 새우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아저씨가 슬쩍 건네준 녹차 아이스크림 한 입으로 입가심을 하고 집에 오는 길, 바에 앉아서 혼자 먹는 경험이 이렇게 즐거울 수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날 이후, 나는 식당이던 카페던 바가 있으면 일부러 혼자 찾아가기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 출장에서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바에 앉아 미국으로 이민온 느끼한 이탈리안 아저씨랑 와인 한 잔 쨍하며 파스타와 와인에 대해 한 수다를 떨고, 한 술집에서는 역시 바에 앉아 잘생긴 바텐더와 여자들의 추근댐을 받는 잘생긴 바텐더의 숨겨진 애환에 대해서 깊은(?) 얘기를 나누고, 서울의 한 카페에서는 바에 앉아 바리스타분과 필리핀/태국 여행 경험담 공유를 하다 드립커피까지 배우게 되었다. 

좋아하는 곳에 아래와 같은 바가 마련되어있다면, 혼자 찾아가 자신에게 특별하고 멋진 경험을 선사해보길 바란다. 물론 오픈마인드와 약간의 철판은 필수!
<출처 - http://goodiesfirst.typepad.com>

물론 좀 더 즐겁고 풍부한 경험을 하려면 체인점들보다는 뭔가 해당분야에 대한 내공과 열정이 느껴지는 곳이 좋겠다. 아무래도 돈 벌기위해 겉핥기 식으로 에스프레소 기계 사용 배워서 내리는 아르바이트생 바리스타와 정말 커피를 사랑해 오랫동안 시간을 투자하고 커피농장도 다녀와 본 고수 바리스타와는 나눌 수 있는 정보의 차이가 있으므로. duh.

내가 저번달에 gYul님의 포스팅을 읽고 감동받아서 바로 찾아간 커피킹도 바로 그런 곳이다. 커피에 대한 열정과 포스를 느낄 수 있고, 바에 앉아 바리스타 분과 이런저런 얘기도 많이 나눌 수 있는 곳.

어느 카페보다 맘에 들었던 메뉴. 화려한 수식어보다는 객관적이고 자세한 맛의 기준.

바로 앞에서 내 커피 한 잔이 내려지는 광경을 경험하며

커피 한 잔을 통해 오가는 인연과 이야기들. 단순히 커피 한 잔 이상의 값어치.

벽에서 떼오고 싶었던 액자. 별 의미없는 화려한 미술작품보다 커피에 관한 신기하고 재밌는 포스터들. 

자세한 위치는 gYul님 포스팅 참조. 커피 향기뿐만 아니라 가게에 흘러넘치는 훈훈한 사람 향기와 정성, 그리고 열정을 느껴보고 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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