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단상

*사진은 다찌에서가 아닌 7월달 서초점 테이블에서의 정식 식사

미식가인 아버지 덕분에 난 어릴적부터 꽤 비싼 일식집에서 초밥과 회를 접할 기회가 잦았다. 게다가 계란찜이나 튀김 등 다른 주전부리들로 배를 채우면 낭비라는 그 잔소리란...먹고 싶은 거 먹으면 어때, 라는 반발심은 아직도 남아있으나 결국 회전초밥집을 가도 먹고 싶은 생선 탑10으로만 깔끔히 먹고 나오는 내 모습은 정말 세뇌교육이 무섭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이고.



가세가 슬쩍 기울면서(엉엉) 고급 일식집을 가는 일은 거의 없어졌지만 그래도 스시히로바 등 회전초밥집은 가끔씩 들러주던 때, 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읽으면서 이런 초밥들이 정말 있기나 한걸까 너무 궁금했다. 아마 전시리즈를 세번 이상 정독한 듯 한데, 읽으면 읽을수록 그 갈망은 더해갔다. 그러다가 안효주 셰프님에 대한 기사를 접하게 되고 스시효라는 곳도 알게 된 후, 언젠가 가보야 할 곳으로 머릿속에 등극.

그러다 두달전, 친구들과 축하할 일이 있어 식당을 고르던 중, 바로 그 스시효가 강남역 부근에 서초점을 내었다는 얘길 들었다. 네명이 테이블로 예약을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리뷰들을 읽어보고 있는데, 가끔가다 너무 평범했어요, 다른데서도 더 저렴한 가격으로 맛볼수 있는 초밥이에요, 이런 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8만원 이상의 고가의 저녁인지라 내가 과연 그만큼의 맛을 느낄 수 있을까, 약간 긴장하고 방문했는데, 무릎을 탁 칠만큼 맛있는 초밥들도 몇개 있었지만 솔직히 나머지는 몇년간 기대한 그런 맛은 아니었다.



다시 갈일은 없겠구나, 라고 생각하면서도 실망감과 미련에 여전히 블로그들을 돌아보던 중, 다찌에 앉아 주문해 보면 혹시 그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아주 위험한 생각이 들었다(다찌에 앉으면 기본적으로 가격 1.5배). 그러나 역시 같이 갈 사람을 찾는 것도 쉽지가 않고 금전적인 부담도 그렇고 해서 그냥 막연히 언젠가는 가봐야겠다, 라고만 생각했는데 어제 갑자기 그 기회가 찾아온 것! 

자리를 잡고 앉으니 훤히 들어오는 반듯하고 깨끗한 도마들과 멋진 사시미 칼들. 가슴이 두근두근대기 시작했다. 역시나 내 눈길은 안효주 셰프님에게로! 여러분들이 계셨는데.......어라 사장님이 직접 집어주시는 분위기. 으하하하 이런 기회가!


자리가 세팅이 되고 광어로 스타트! 그 후 이어지는 내 사랑 방어, 도미, 오도로(참치뱃살), 아부리 오도로, 타코(문어), 즈케 마구로(붉은살 참치), 가이바시(관자), 아나고(장어), 청어/시사모알, 에비(단새우), 아부리 엔가와(광어 지느러미살), 신코(전어), 가리비, 전복, 우니, 도미 더 하나, 한치도 먹은 것 같고. 아 갈빗살 군함말이도 있었고. 잠깐, 게살에 사바(고등어) 두가지도 있었는데. 으아, 어쩐지 좀 심각하게 배부르더라. 너무 힘들어서 사장님 스탑! 을 외치고 깔끔하게 계란말이로 마무리. 사장님 왈, "진정한 미식가시군요." 응? 어렸을 땐 먹으면 혼났는데 이런 칭찬을.

마...많이 먹긴 많이 먹었다. 먹었을 때는 15개 정도라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무려 스무개가 넘다니. 어떻게 다 들어간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이렇게 먹고 내 앞으로 15만원 찍었다. 다찌에 앉으면 보통 11만원 플러스 나오는 듯. 근데 어떻게 다 기억하고 단가 책정하시는거지 그것이 미스테리.



사실 서초점에서 먹고 실망한 피스들 몇가지는 제외해달라고 할까 하다가 그냥 먹어보자, 하고 셰프님 해 주시는대로 올인했는데 다 대박이었다 진심으로. 마약이 든걸까 생각이 들 정도로 먹고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먹어도 먹어도 점점 더 맛있엇지는 스시마라톤. 방어/아부리 오도로/아나고/엔가와 이렇게 네가지는 진짜 일시적으로 정신이 혼미해짐. 옆에 아저씨분들은 왁자지껄 술 드셔가며 얘기하느라 정신없는데 우리는 침묵속에 다소곳이 정자세로 앉아 하나 먹고 정신 못차리고, 또 하나 먹고 베시시거리고. 사장님 보시기에 완전 웃겼을 듯.

서초점서 먹은 후식 흑미 아이스크림. 참 맛있게 먹었는데
청담점에서 나온 흑깨아이스크림이 더 부드러운 별미!

일본 가면 훨씬 더 저렴한 가격에 더 좋은 스시를 먹을 수 있다느니 유명세만큼 말들이 많은 곳이지만 나에게는 2010년 최고의 식사이자 최고의 초밥 경험이었다. 게다가 정말 티끌하나 없어보이는 주방과 정갈한 흰색의 조리복을 입고 물흐르듯 움직이는 안효주 셰프님의 장인정신을 느끼는 경험이란. 스시효 관련 정보는 워낙 온라인에 많으나 주소는 영동고등학교 바로 근처인 강남구 청담동 21-16이고 전화번호는 (02) 545-0023. 물론 예약 필수! 어차피 가실 분들은 몇만원 더 투자하시고 카운터에 앉아 보시길.

ps. 앞으로 당분간 저녁은 라면? 으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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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릴적부터 먹을 때 도구를 쓰는 훈련을 받아온다. 나 초등학교 다닐때에도 젓가락으로 1분안에 콩 30개 집어옮기기등의 시험이 있었고,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인도 영화 '블랙'에서도 '야만인처럼' 밥을 먹는 소녀에게 포크 등을 사용해 밥을 먹는 습관을 들이며 해내었을때 감격한다. 손으로 음식을 먹는 곳은 아직 인도같은 '후진국'이며, 으레 화장실에서도 손을 사용한다고 어딘가에서 들은 얘기를 떠울리며 킥킥들 대기 일쑤.

그런데, 어떤 도구보다 다루기가 쉽고 다재다능한 손이 언제부터 음식을 먹을 땐 불결하고 교양없는 도구로 인식되었을까? 


포크스러운 도구가 처음 음식을 먹을 때 사용된 기록은 400 A.D. 무렵 터키에서라고 한다. 그 후 점차 식탁에서의 사용이 늘긴 했으나, 몇몇의 부자들만 사용을 했었고, 10세기 무렵 유럽으로 건너와 17세기가 되어야 그 사용이 점차 퍼졌다. 처음 포크가 소개되었을 때에는 신이 주신 손가락에 대한 모독이라는 반발도 있었고, 남성들은 너무 여성스럽다 해서 사용을 거부한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무려 19세기가 되어서야 포크 사용이 대중화가 되었고, 한국에서 젓가락이 처음 사용된 것은 약 1,800년전으로, 결국 오늘처럼 식탁에서 먹는 도구들이 대중적으로 사용된 것은 얼마 안되었단 얘기다. 

우리도 다 이렇게 즐겁게 먹었었던 시절이...
<출처 - Google Image Search>

손으로 음식을 먹는 행위는 몇배이상으로 더 '찐한' 경험을 가져다준다. 방금 쪄낸 따끈한 왕만두의 열기가 손을 타고 전해지고, 손가락 끝으로 느껴지는 폭신함은 입에 넣기도 전에 설레임을 가져다 준다. 치토스를 한 봉지 다 먹고 난 후 손가락에 바알갛게 묻어있는 시즈닝을 쪽 빨아먹을 때의 느낌. 생크림에 손가락을 푹 찔러 핥아먹는 느낌. 차갑고 딱딱한 촉감의 포크로 찍어먹는 것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는 몸으로 느끼는 맛이다. 피자 썰어먹는 분들, 얇은 화덕피자는 제발 손으로 먹어보라. 야들야들 손가락위에서 늘어지는 따뜻한 반죽의 느낌, 죽죽 늘어지는 치즈를 손으로 끊어먹으면서 마지막에 손에 슬쩍 묻은 토마토소스 핥아먹기. 피자의 맛을 두배로 느낄 수 있다. 

중국 꾸이지엔에서 먹은 민물가재 요리. 장갑을 껴도 손이 얼얼할 정도로 
맵지만 손으로 느껴지는 열기덕분에 그 매운맛을 더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그 외에도 손의 사용은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초밥을 먹을 때 한번 손으로 먹어보라. 젓가락으로 비틀비틀 초밥을 집어올리다 간장에 풍덩 빠뜨려버리는 사고를 예방하기도 하지만, 체온이 미묘하나 초밥을 제일 먹기 적합한 온도로 유지해준다. 엄지, 검지, 중지를 사용해 가볍게 쥐고!

아프리카의 이티오피아에서는 커다란 접시를 가운데 놓고 여럿이 음식을 나눠먹으며, 위 사진의 Injera(인제라)라고 불리는 이티오피아의 얇고 폭신한 빵 종류를 넓게 펴 담은 후 그 위에 다양한 음식을 담고 싸 먹는 것이다. 

<출처 - http://www.flickr.com/photos/mississippi_snopes>
<출처 - http://www.flickr.com/photos/joshie_woshie>

이때 한입크기로 인제라에 잘 싸서 상대방을 먹여주는 의식을 Gursha(굴샤)라 부르는데, 이는 상대방에 대한 존경과 친절을 의미한다 한다. 한마디로 누군가에게 손으로 음식을 직접 먹여주는 행위가 매우 소중하고 중요한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출처 - Google Image Search>

이렇듯 손으로 먹는 것은 후진만화가 아닌 감각과 감성을 일깨워 주는 문화적이고 과학적인 행위이다. 서울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손으로 파스타 먹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어느 식당이던 기회가 있을 땐 최대한 손을 사용해보라. 새우튀김의 바삭한 표면도 느껴보고, 빵이 나오면 손으로 죽 찢어서 냄새도 맡아보고. 소스 손가락에 슬쩍 찍어 맛도 보고. 손에 묻히고, 교양 없어 보이고 이런 거 신경쓰지 말고 손끝부터 음식을 진정으로 느끼며, 옆 사람과 정도 나누며 푹 음미해보길 바란다. 물론 손은 깨끗이 씻은 후에!

ps. 우리집에서도 어제 월남쌈을 해서 가운데 큰 그릇을 두고 서로 누가 더 
맛있게 쌌느니 자랑도 하고, 오손도손 서로 싸 주기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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