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단상

'이찬웅'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8.07 진정한 감성이란? 이찬웅님의 칼럼 <칡과 커피> (2)
  2. 2010.04.19 칡뿌리와 수타면 (6)
이전 포스팅을 하면서 한두번 언급했던 글이 하나 있는데, 저번 바나나에 관해 쓰다가 나의 부족한 글솜씨로는 못 미더워 이 참에 이찬웅님이 한겨레 21에 게재하신 칼럼 <칡과 커피>라는 글의 전문을 공유해 드린다. 내가 여태까지 살면서 읽어왔던 글들 중 법륜스님의 주례사와 함께 제일 아끼는 또 하나의 글인데, 처음 읽고 난 후 내 삶의 방향을 깨닫게 된, 매우 소중한 글이다. 

그럼, ENJOY!

칡과 커피

이찬웅 프랑스 리옹고등사범학교 철학박사과정
(한겨레 21 2009년 8월 3일자, page 96)

아버지의 전근을 따라 입학했던 초등학교는 산속 작은 학교였다. 조그마한 학생들이 걸어서 등교했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오기도 했고, 산속에 나 있는 작은 길들을 헤치고 오기도 했다. 엄청나게 먼 길을 걸어서 오는 친구도 있었다. 소풍날 오전 내내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저기가 우리 동네라고 누군가 말해 깜짝 놀랐다.

감성은 지성과 대립하지 않는다

한번은 친구들한테서 학교 뒷산에 가는데 따라오라는 ‘초대’를 받았다. 예닐곱 명쯤 익숙한 자세로 나뭇잎을 살피면서 산속으로 올랐다. 그러다가 멈춰서서, 들고 온 곡괭이로 뭔가 캐내기 시작했다. 땅속에도 씹을 만한 게 자란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칡이었다. 어떤 칡은 그냥 버렸다. 칡에도 종류가 있는데, 씹으면 정말 밥맛이 나는 밥칡이 있고, 딱딱하기만 한 나무칡이 있다는 것이었다. 신기한 것은, 친구들은 겉모양만 보고도 단번에 그것들을 구분해내는 것이었다. 몇 번을 더 따라다니면서, 나도 그걸 구분해보려고 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그것은 쉽게 얻어지는 능력이 아니었다. 그 능력 덕택에 친구들은 나뭇잎에서 땅 밑으로 이어지는 선을 감각하고 있었다.

감각은 우주를 구성하는 많은 선들을 따라가게 하는 능력이다. 그 점에서 감성은 지성과 대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필요로 하며, 서로의 도움을 받아 그 선을 추적하게 한다. 감성이 멈춘 곳에서 지성은 감성을 실어나른다. 예를 들어 선물받은 초콜릿은 그저 달콤할 뿐이지만, 그 맛이 실제로 어떻게 얻어지는지는 ‘초콜릿은 천국의 맛이겠죠’와 같은 기사 덕분에 알게 된다. 초콜릿이 이제 마냥 달콤하지 않다면, 그것은 그것에 연결돼 있는 선들을 타고 새로운 진동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맛의 이름은 이제 ‘달콤하기도 하고 쓰기도 하고’쯤 될까. 그 맛을 느낀다면 뭔가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협력 안에서 감성이 지성보다 우월한 것은, 그것이 ‘지금 바로 여기’의 경험에 와닿는 선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각만으로 그 선을 충분히 추적할 수는 없지만, 감각이 없다면 시작조차 할 수 없다. 감성에는 취향의 정교화와 다양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그 자체로 좋다기보다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 안에서 좋은 출발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예민한 감성을 갖지 않는다면, 20년 전에 읽은 책으로 여전히 세계를 설명하는 지성의 나태함에 빠지기 쉽다. 결국 문제는 감성과 지성 사이의 대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감성과 좋은 지성을 함께 갖는 데 있다.

커피는 브라질·콜롬비아 어느 고장의 것이다. 뛰어난 감성은 그곳에 가닿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은 것은 상품화 때문이다. 상품화는 이익을 내기 위해 선을 분절한다. 재배와 소비는 직접 연결되지 않고, 농장·하청·착취·수입·유통·광고·판매·할인 등으로 조각난 단계를 거쳐 연결된다. 원두커피를 매장 테이블에 늘어놓고 원주민들의 사진을 원용하면서 조각난 선을 상상적으로 연결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실제가 아니다. 분절된 연쇄의 끝에 대도시가 있고, 도시는 상품의 출력 단자로 포위된다. 그에 맞춰 소비자의 감각은 입력에 반응하는 단말기에 가까워진다. 이런 경우 단말기가 아무리 정교해지고 복잡해지더라도, 그것은 감성의 수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상품화의 조각, 산속의 등굣길

감성은 지성만큼이나 개체에서 세계로 뻗어나가는 능력이다. 좋은 감성은 입 안에서 커피의 열두 가지 맛을 식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뭇잎을 뒤지며 칡의 종류를 구분했던 친구들의 능력 속에 있다. 산속으로 나 있는 기나긴 등굣길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처럼, 좋은 감성은 지성의 도움을 통해 분절된 세계의 선을 복원해나가는 데 있다. 오늘날 그것은 특별히 어렵다.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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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는 책 읽는 것이 그렇게 재밌을 수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즈음 전까지는 자기전에 네다섯권씩 머리맡에 쌓아놓고 등 하나 켜 놓은채  늦게까지 책을 읽다 학교에 지각하는 것이 굉장히 잦았다. 그 중 제일 좋아했던 책들 중 한권은 Laura IIgals Wilder(로라 잉걸스 와일더)의 '초원의 집' 시리즈의 첫 권인 Little House on the Prairie(초원의 작은 집)였는데, 정확히 세 본 적은 없으나 아마 일백번이 넘게 읽도록 읽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을 세계 전집으로 접하신 분들도 꽤 있겠지만, 간략히 내용을 설명하자면 아버지 어머니 딸 셋으로 이뤄진 미국의 한 가족이 서부로 이주하면서 초원에서 집짓고 밥짓고 농사짓고 우물파고 소기르며 말타며 사는 알콩달콩 모험기이다. 어떻게 보면 사소해 보이는 이 얘기가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의 셀러가 되고 내가 백여번씩 읽은 이유는 일상적인 것들을 굉장한 디테일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직접 벤 나무를 일일이 반으로 갈라 바닥에 깔아 근사한 마루를 만든 후 또 일일이 손으로 훑으면서 나무가시가 없도록 확인하는 일이라던지, 직접 우유를 짜 몇일에 걸쳐 저어주며 당근즙을 짜 넣어 버터를 만든다는 일이라던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마루, 버터, 문, 우물, 옥수수가루 등등을 직접 창조해서 장만해 가는 스토리 한 문장 한 문장에 나는 완전히 빠져들었고, 머릿속에 그 장면들을 그리며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희열과 기쁨을 느꼈다. 

당연한 얘기지만 자라면서 나에게 직접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최고의 관심사였다. 집에서 어머니가 케익을 구울때면 귀찮으리만큼 옆에 붙고 끼어들었고, 학교에서 제일 재밌는 수업은 토마토를 키우고 바느질을 배우는 가정 시간이었다.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누가 직접 고추장을 담구거나 치즈를 직접 만들었다는 포스팅을 발견하면 옛날 '초원의 집'을 읽을 때와 같이 완전 흥분하는 것은 예사. 방학때는 대부분 두유 만들기, 두부 만들기 등의 실험을 하며 보내기 일쑤였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렇게 '직접 만들어 보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냐고? 글쎄, 그러게 말이다. 슈퍼에 가면 이미 다 편리하게 만들어져 있고 포장도 되어 있고 두부 한 모에 십만원씩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얼마 전 잡지를 읽다 너무 고마운 칼럼을 발견했다. 아마 한겨레였던 것 같은데, 이찬웅 씨라는 박사과정을 준비하시는 분이 쓰신 '칡과 커피'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저자가 어렸을 적 전근간 시골의 학교 친구들은 정확하게 주변과 뿌리의 겉만 보고 달달한 칡뿌리가 어떤 건지 금세 알아낼 수 있는 '감성'이 있었고, 그건 절대 쉽게 몇 번의 연습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친구들은 단순히 이미 수확되고 다듬어지고 포장된 칡뿌리밖에 접한 적이 없는 아이들과 달리, 그 이상의 연결고리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 훌륭한 글을 망치기 전에 한 문단 인용을 하도록 하겠다(사실 귀찮음...응?):

커피는 브라질·콜롬비아 어느 고장의 것이다. 뛰어난 감성은 그곳에 가닿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은 것은 상품화 때문이다. 상품화는 이익을 내기 위해 선을 분절한다. 재배와 소비는 직접 연결되지 않고, 농장·하청·착취·수입·유통·광고·판매·할인 등으로 조각난 단계를 거쳐 연결된다. 원두커피를 매장 테이블에 늘어놓고 원주민들의 사진을 원용하면서 조각난 선을 상상적으로 연결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실제가 아니다. 분절된 연쇄의 끝에 대도시가 있고, 도시는 상품의 출력 단자로 포위된다. 그에 맞춰 소비자의 감각은 입력에 반응하는 단말기에 가까워진다. 이런 경우 단말기가 아무리 정교해지고 복잡해지더라도, 그것은 감성의 수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문단을 읽는 순간, 난 무릎을 탁 쳤다. 난 단순히 맛있는 커피의 은은하면서도 다크한 스모크와 초콜렛 향을 느끼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면서 커피빈이 익어가는 농장의 모습, 수확하는 인부의 모습, 상업화로 인한 폐해, 공정거래의 시스템과 중요성 등을 함께 느끼며 그 선들을 이어가고 알고 느끼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오늘 밤 저녁은 직접 만든 손칼국수. 면을 우리밀과 정수기 물, 천일염으로 직접 반죽하고 원하는 굵기와 길이대로 재단하면서(이것도 직접 만드는 것의 대단한 장점이다) 엄청 뿌듯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자랑스러운 마음에 인터넷 서핑을 좀 하고 있는데 평소 내가 즐겨읽는 블로그 쥔장 밥 아저씨 왈, 파는 밀가루들이 맘에 들지 않아 직접 밀을 갈아 파스타를 만들었다..........난 이제 밀을 직접 재배해야 하나?

참, 국수 직접 밀면 농담 아니고 몇십배백배천배 더 맛있다. 진짜 비교 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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