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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15 블로그 만들다 옛 애인 생일 전날의 악몽을 추억하다 (7)

누구나 한번쯤은 그렇듯이, 두어달 전 블로그를 한 번 개설해보자, 라는 결심을 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수록 그래, 나도 멋드러지게 써서 블로깅으로 먹고 살 수 있을거야, 라는 희망에 가까운 야망이 커져갔다. 시작은 창대했으나...로 대변되는 블로거 케이스들이 대부분인 이 레드오션에서 내 블로그를 성공시킬 만한 아이디어들을 고민했고, 결국 그래 이거야, 라는 몇가지로 좁히기까지 이르렀다. 광고요청이 이어지고 포스팅마다 댓글이 수십개씩 달리는 내 블로그를 혼자 그려보며 행복감에 가득. 마치 예전 애인 생일케익을 계획하다 버터크림으로 멋드러지게 쓴 그의 이름과, 비싼 버터와 초콜렛으로 무장된 2단짜리 층층케익을 보며 사람들이 꺄아 감탄할 생각에 뿌듯해했던 것처럼.(참고로 우리나라 속담으로 '김칫국부터 마신다'라고 한다나?)

마음 먹은 후부터 마음이 바빠졌다. 개설은 어디다 할지 한참 고민하고, 한달치 주제를 미리 다 써보기도 하고, 디자인도 그려보고. 그러는 동안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갔고 결국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한채 한달이 흘러갔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선택권이 반드시 자유를 주는 것은 아니다(Choices are not necessarily liberating)'라는 말이 있다. 슈퍼에 치약 사러 갔는데 진열선반 한면 가득을 채우고 있는 수십가지의 치약을 보고 고민하다 머리아픈 경험 다들 있으시겠지. 차라리 한가지만 팔면 그것만 그냥 사면 되는데 말이다. 여튼 고민에 고민을 하는 동안 블로그를 우선 시작하게 되면 그만큼 대단한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부담에 계획한지 한달이 넘었으나 여전히 난 블로그가 없었다. 

그래서 저번 주말에 결심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간만에 실천하기로 하고 온갖 욕심을 버리고 우선 쓰기로 말이다. 이제 고민은 끝났고 난 마음 편히 글만 쓰면 된다....응? 막상 잊고 있던 중요한 사실 : 이미 다른 사람이 사용하고 있지 않은(그리고 내 마음에 드는) 아이디 생각해내기는 낙타 바늘 통과하기(생뚱)보다 어렵다.

블로그를 개설하기로 결심한지 한시간째, 난 충혈된 눈으로 티스토리, 이글루스, 텍스트큐브 등에서 아직까지 온갖 단어조합을 시도해 보고 있었다. 역시 계획만 너무 세우다 남친생일 바로 전날밤까지 케익 스펀지도 없이 충혈된 눈으로 레시피를 뒤지고 있던 그날밤처럼. 2단과 크림장식의 욕심을 버리면 일사천리가 될 줄 알았건만. 모든 슈퍼 문 닫은 야밤에 집에는 버터도 없고, 박력분도 없었다. 달걀은 한 개. 밤 12시가 넘었으나 나는 여전히 인터넷에서 분노의 클릭질을 하고 있었다. 뭔가 좀 괜찮아 보이는 레시피를 클릭해 보면 '달걀 3개...' 아님 '버터 넉넉히...'의 테러가 이어졌다.

결국 블로그 신(응?)이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anotherfoodie.tistory.com를 선사하시며 나를 구원해 주셨다. 주소나 디자인이나 백프로 마음에 들진 않지만 다음날 아침에 나의 1단짜리 버석버석한 초콜렛 케익을 맛있게 먹어준 옛 애인처럼 여러분도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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