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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11 정식당, 분자요리에 대한 회의를 한방에 날려주다 (15)
몇달전부터 웬만한 맛집 / 미식가 블로그에 꼭꼭 등장한 정식당이라는 곳이 있었다. 한마디로 한식의 맛을 전혀 새로운 식감과 비쥬얼로 변신해 내놓는 "New Korean"이라는 쿠진을 선보이는 곳이다. 

이곳도 파인 다이닝을 주도하고 있는 Gastronomy(Gastronomy 자체는 좀 더 넓은 의미의 미식, 문화와 음식에 대한 연구를 총칭하는 용어) 문화에 기반한, 즉 분자요리인데, 사실 난 여러 블로그들을 보면서 Gastronomy 이런 레스토랑들이 내놓는 음식들에 엄청난 기대가 가면서도 과연 이것이 정말 맛있을까,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샐러리와 흑미라던지, 가리비와 오미자 등의 조합과 음식보다 미술작품에 가까운 비주얼은 그 맛이 상상이 되지 않았고, 당일에도 2%의 의심을 품고 정식당으로 향했다. 

점심코스는 4만원과 7만원으로 두가지가 있었는데, 4만원짜리 코스를 택했다. 여기에 10% 택스 추가.

첫 타자는 머루젤리와 푸아그라 무스. 그리고 청양고추 바게트와 크렌베리로 추정되는 달달한 얇고 바삭한 빵이 함께 서빙되었다. 달달한 빵과의 조화가 좋았으며, 개인적으로 푸아그라의 사육과정 때문에 먹을 때 100% 마음이 편하지는 않으나, 녹진한 푸아그라와 상큼한 머루의 조합은 좋았음. 그러나 제일 감동은 청양고추 바게트. 예전 Hyatt 호텔 부페에서 먹은 미니바게트 만큼의 감동이었다. 겉은 바사삭하고 안은 뽀송하고 고소하고. 거기다가 청양고추가 아주 잘게 다져서 들어가 있는데, 그 겉돌지 않고 잘 어울리는 조합히 심히 놀라웠으며, 절대 오버스럽지 않은 매운맛, 그렇지만 은은하게 입안에 계속 맴도는 알싸한 매운맛이 매우 즐거웠다. 철저하게 계산된 듯한 이 조합과 매운 정도에 이미 다른 요리들에 대한 기대감이 확 올라갔다.

그 다음 나의 코스였던 해산물 샐러드. 내 앞에 놓여졌을 때의 그 비쥬얼 감동은 생생하다. 저온건조한 메추리알 노른자, 페타치즈, 멜론류(참외였으려나), 그리고 바닥에는 라임젤리. 옆은 자몽거품과 아이올리소스에 버무린 가리비(또 다른 해물류도 있었음). 무슨 맛인지 전혀 상상이 안 감.


나에게는 이 디쉬가 그날 최고의 쇼크였다. 제일 놀라웠던 것은 이파리 한입, 새끼손톱만한 치즈, 소스 한 방울이 너무나 강렬하고 생생한 맛을 뿜어냈다는 것. 특히 저 초록색 소스는 샐러드 야채로 자주 등장하는 arugula를 쓴 것 같은데 무슨 농축엑기스 폭탄이 입안에서 터지는 듯한 정도의 강렬함이었다. 재료 본연의 맛을 극강으로 끌어올린다는 게 이런거구나 싶었음. 먹고 한참 정신놓고 있었다. 

그 다음은 밥/면류 삼총사. 보리된장 리조또와 시금치 볶음밥, 그리고 청양고추 수제비  세가지 중 한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우리 일행은 세명이었으므로 한가지씩! 요것들도 다 맛있었는데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마일드한 느낌으로 약간 쉬어가는 느낌.

보리 된장 리조또. 가운데 동글동글한 하얀 녀석들은 무엇일까요?
무려 깍두기. 정말 알싸하게 매운 맛이 난다.

이건 시금치 볶음밥. 역시 깍두기와.

이건 내가 시킨 청양고추 수제비. 베이컨의 고소함과 크런치가 지나가면 크리미한 소스가 느껴지고 그후 치고 올라오는 역시 정제된, 그러나 확실한 매운맛. 거기다가 완~전 쫄깃한 치자반죽 수제비. 

이 쯤 먹고나니 메인이 너무너무 기다려졌다. 도대체 뭐가 나올 것인가.

그리고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브리오슈로 감싼 연어. 그리고 몇가지 야채/과일 다이스와 망고 소스. 이것도 역시 다양한 맛이 너무 조화롭게, 그러나 각각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일단 드셔보시길.

너무나 아름다운 비주얼의 이 디쉬의 이름은 '보물섬'. 가자미와 각종 야채, 그리고 조개국물. 맛의 조화는 좋았으나 식감면에서 생선이 약간 더 부드러웠으면 어떨까 싶었다.

이 날 세명 모두의 찬사를 얻은 메인인 '오감만족 돼지보쌈'. 참 재밌는 이름. 정말 한폭의 그림같다고!
바삭쫄깃부드러운 돼지고기와 달달하고 부드러운 양파? 소스와 고추가 잘 어울려 완벽한 한 입을 만들어냄. 강추메뉴.

이제 디저트가 나올 차례. 메인들은 너무나 맛있었는데 디저트가 약한 것보다 더 큰 실망은 없는 것 같다. 대표적인 예가 한정식집에서 화려한 코스 후 참외와 수박한쪽, 마트서 파는 매실주스 한 잔 내오는 것. 그렇지만 이곳은 디저트를 기대하지 않을수가...

이것은 수정과 맛이 나는 무스/젤리/스펀지케익 조합. 왕신기. 계피향이 강하지도 않고 딱 적당. 아래는 무려 당귀 아이스크림인데 쌉싸르한 맛이 바닐라와 매우 잘 어울렸다.

이것은 팥빙수를 접시위로 옮겨놓은 디저트. 밀크 아이스크림에 올려진 저 쿠키 너무 맛있었으며 녹차무스와 밤도 좋았다. 전체적으로 맛있게 먹은 디저트이나 재료 자체의 맛을 끌어내고 조합했다기보다는 이미 있는 음식의 맛을 만들어낸 것이라 다른 음식보다는 감흥은 약간 덜함. 수정과에 한 표. 봉에보에서 먹은 엄청난 감동의 토마토 샤베트 같은 디저트가 좀 더 내 취향이기도 하고 전체적인 흐름에 더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었다. 

아, 그리고 디저트 먹기전에 빵조각 등 테이블 깨끗이 한 번 치워주는 서비스, 매우 간단한데 의외로 안해주는 식당이 참 많으나 정식당은 역시 박박 긁어(?) 깨끗하게 치워줘서 흐뭇했음.

마지막으로 차 혹은 커피와 쑥 피낭시에가 나오는데...이 귀여운 것들 정말 대단했다. 폭신하면서도 쫄깃하고 상큼하고 달달하고 부드러운. 정말 한무데기로 사오고 싶었다.

여기까지가 점심코스. 한국에서 최고의 dining experience였으며 가격대비 너무 만족스럽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식감, 온도, 맛의 조화 등 모든 것들이 100% 완벽하게 계획되고 접시 위에 그대로 실현되어 나오는데, 내가 음식 한 접시를 먹고 있다, 이런 느낌은 좀 덜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다. 그렇지만 정제된 완벽함과 섬세함이 끌어내는 미각경험의 정점. 왜 분자요리가 이렇토록 각광을 받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식사였다.

여담으로, 블로그들을 읽다보면 정식당 관련해 한식의 진정한 세계화가 뭐니 New Korean이란 이름이 적합하지 않다니 말들이 있는데, 요리는 결국 Anthony Bourdain이 말한 것 처럼 Pleasure Business, 쾌감을 위한 것 아닌가. 어떤 요리법이던, 재료던, 다양하게 조합하고 창조해서 먹는 사람에게 이 정도의 놀라움과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훌륭한 요리라고 생각한다. 거기다 한식에서 쓰이는 다양한 맛의 조합에서 영감을 얻고 신선한 비주얼과 식감을 부여해 한식에 익숙한 한국인들도 새롭게 먹어보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는 데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도산공원 근처에 위치한 이곳의 더 자세한 정보는 윙버스 링크에서 확인해 보시길. (02) 517-4654로 예약은 필수. 일요일 휴무라 들었는데 블로그 보다보면 가신 분도 계신 듯? 여튼 확인 요망.


ps. 얼른 돈 모아서 이제 저녁코스 도전해야지. -ㅅ-
pps. 정식당의 로고는 올리브 가지와 냉이.
<출처 - http://blog.naver.com/power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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