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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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12 원두 솎아내기부터 추출까지, 처음으로 직접 내려본 커피 (16)

내가 커피를 처음 접했던 건 초등학교 때였다. 우리 외갓집 식구들은 매주 일요일마다 외할머니댁에 모여 점심을 먹었는데, 마무리는 꼭 설탕과 프림이 들어간 진한 믹스커피 한잔씩이었다. 물론 어른이 아니라는 이유로 내 잔을 따로 받지는 못했지만, 어른들이 챙겨드시는 이 갈색의 음료수의 맛이 너무 궁금한 나는 엄마에게 슬슬 졸라서 한모금씩 얻어마시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커피"를 내 돈주고 사마시기 시작했던 건 고등학교 때 스타벅스가 한창 유행할 때였다. 시골 산꼭대기 기숙사학교에 지내던 내 친구들과 나는 일주일에 한번씩만 다운타운에 나갈 수 있었고, 스타벅스에서 달디단 프라푸치노와 카라멜 마끼아또를 손에 들고 우리가 벌써 멋진 대도시의 대학생이 된 것처럼 분위기를 내곤 했다. 


"쓰디쓴" 원두커피를 처음 접했던 것 유학생활 중 잠시 한국에 들어와 있을 때였다. 한동안 커피를 배우시던 엄마를 좇아 따라간 곳은 청담동의 커피미학. 너무나 다양한 커피잔들과 기구들, 그리고 나를 압도했던 그윽하면서도 강한 커피향기. 엄마가 커피를 배울 때 나는 옆 의자에 걸터앉아 그 신기한 광경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도 세잔의 다른 커피를 얻어마셨으나 입안에 느껴지는 맛은 씁쓸함밖에 없었다. 

대학교 진학 후 언제부턴가 나는 커피를 끊기로 결심했다. 아마 카페인에 대한 우려와 커피 한잔이면 아프리카 어린이들 몇십명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등의 캠페인으로 의한 커피는 사치다, 라는 아이디어 때문이었던 듯. 그렇게 3년 넘게 커피를 마시지 않다가, 커피 중독인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커피를 다시 마시게 되고, 커피머신이 바로 옆자리에 있는 회사에 취직해 일하다 보니 다시 one-cup-a-day로 전환. 그렇지만 여전히 커피를 맛으로 먹기보단 잠깨려고 마시기 일쑤.


어느 주말, 친구가 나를 홍대에 있는 한 커피집으로 끌고 갔다. 커피와 사람들이라는 커피전문점. 무뚝뚝하게 생긴 아저씨분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분주하게 커피를 내리고 계셨고, 말로만 듣던 사이폰 등 다양한 기구가 즐비했다. 메뉴에는 원산지별로 표기된 커피종류들이 빼곡했고, 난 친구가 골라주는대로 한잔을 시켰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내 앞에 심플한 블랙커피 한잔이 놓여졌고, 난 별 생각없이 커피잔을 입에다 갖다대었다. 

어라, 이 좋은 향기. 한모금을 얼른 넘겼다. 대형커피점에서 으레 아메리카노에 입을 데이기 일쑤여서 아차 하는 순간, 너무나 기분좋은 따끈한 온도의 커피가 상쾌하게 입안으로 퍼졌다. 저절로 씩 미소가 지어지는 이 만족감. 마지막 한모금까지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커피를 마셨다. 

그 후 나는 "좋은" 커피, 즉 커피를 정말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정성을 들여 다룬 커피를 찾아다니게 되었다. 결국 여러곳을 돌아다니다가 핸드드립 기물까지 사는 만행(?)을 저지름.


사고 나서 계속 물따르기 연습만 하다가 어제 드디어 단골집인 가배두림의 사장님과 바리스타님의 날카로운 시선아래 실제 원두를 놓고 처음 물을 내려봤다. 그런데 완전 긴장했는지 가늘게 물줄기를 정가운데에 내려야 하는데 1cm 넘는 굵은 물줄기 콸콸. 직접 물이 닿아서는 안되는 필터에 막 부어주고. 주전자를 돌릴 때마다 물줄기는 삐뚤빼뚤, 확확 튀어나갈때마다 "어이쿠!" "어이쿠!" 하고 추임새 넣어주시는 사장님과 바리스타님. 

땀났다.

사장님이 내려주신 은근한 신맛과 군고구마향은 찾기 힘들고 쓴맛과 레몬처럼 시디신 시큼함이 느껴졌다. 집에 가서 원두값 아깝지 않을때까지 연습하라는 숙제. 마침 원하는 원두가 떨어져 로스팅 과정을 구경할 좋은 기회가 생겼다.

우선 생두 구경하기. 살짝의 비릿함.

원두 중에는 결점두라 하여 구멍이 나거나, 깨지거나 등등의 골라내줘야 하는 녀석들이 있다. 손으로 하나하나 봐가며 우선 이런 아이들을 찾는 작업을 해준다.

오른쪽 하단에 보면 찌그러진 녀석이 보이시나? 

예쁜 아이들을 골라 로스팅 준비 완료! 참고로 아래 저 빤듯하니 예쁜 원두는 브라질 산토스. 위에 나온 원두는 탄자니아 킬라만자로. 모양, 색, 크기 등에 다 차이가 조금씩, 혹은 눈에 확 띌 정도로 있다.

예열된 로스터에 원두를 쏟아붓는다. 작은 창으로 색이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중간에 몇 알씩 빼보아 정확한 색과 향기 확인.

자, 이제 푸릇푸릇한 원두가 깊은 갈색으로 변하는 과정 잠시 감상.

로스팅이 다 되었으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입구를 열어 와르르 투하!

로스터 옆에 달린 유리병에는 생두에 붙어있던 은피라는 얇은 막들이 벗겨져 가득하다. 왼쪽은 로스팅 시작하기 전 비어있는 유리병. 원두들이 로스팅이 되며 열이 가해져 팽창할때 이 은피들이 벗겨진다. 한마디로 원두가 허물벗는 작업이랄까 -.-?


너무나 예쁘게 볶아진 원두.

로스팅 날짜를 표기한 병에 소복히 담겨진다.

연습용 원두를 갈아주시는 사장님. 원두값 해야할텐데 흑흑.

집에 와서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연습해보기로 했다. 물을 끓이고, 필터를 접고, 서버와 컵을 데워놓고. 사온 원두를 필터에 정확히 20g을 담아주었다. 심호흡을 하고 물을 따르기 시작했는데, 아까 한 연습때문인지 좀 더 안정적으로 물줄기가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흥분하면 또 막나갈까봐 애써 진정하며 추출완료. 

맛은 아까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었다. 쓰거나 시거나 튀는 맛보다는 전체적으로 좀 더 균형이 맞으며 부드러운 느낌. 그러나 초반에 필터에 물이 조금 직접 닿았더니 살짝 싱거운. 속상했지만 역시 요리와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내공을 그대로 보여주는, 운이나 잔꾀가 통하지 않는 정직함에 안도했다. 그래야 정진해서 열심히 하고 그만큼 더 보람을 느낄테니 말이다! :)


그나저나 내가 핸드드립에 빠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필터에 담긴 저 반짝거리는 젖은 커피가루. 물을 소복히 부어 거품이 일어나다 부드럽게 사그라지며 물이 빠질 때 마치 바닷가에 있는 착각이 든다. 모래사장에 맨발로 서 있으면 파도가 들어왔다 거품이 일며 부드럽게 물이 빠지며 모래가 반짝거리는 풍경, 딱 그 느낌.  저렇게 검은 모래도 어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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