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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15 녹두껍질 밤새 까봐야 식당가서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 (6)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곧 추석이 다가오고 동생도 모처럼 때맞춰 휴가를 나오게 되면서 우리집은 벌써부터 음식준비에 바빠지고 있다. 명절때마다 항상 등장하는 주인공은 고사리, 돼지고기, 김치 등을 넣어 바삭쫄깃하게 부친 녹두빈대떡. 요새는 백화점에 아예 빈대떡 반죽을 포장해 팔더만, 우리집은 변함없이 매년 생녹두를 사다 직접 갈아 반죽을 만든다. 대야 한 가득 담긴 녹두를 몇시간 내내 불리고, 껍질을 까고, 믹서기로 갈고, 들어가는 재료를 손질하고 섞으면 반죽 완성. 그러면 부엌바닥에 신문지를 쫙 깔고, 식용유 큼직한 병 하나를 갖다놓고 널찍한 팬에다 부치기 시작하는데, 온 집안이 곧 고소한 기름냄새로 진동하기 시작한다. 


나랑 내 동생이 어렸을 땐 옆에 앉아 입천장을 디어가며 팬에서 방금 지져낸 바삭한 빈대떡을 집어먹기 바빴다. 그 고소한 녹두의 맛이란! 거기다가 간간히 씹히는 곰곰하고 아삭한 김치와 부드러운 돼지고기까지. 그렇게 정신없이 몇개를 연달아 먹고 나면 배가 불러왔고, 욕심에 한 입 더 베어물고 남기는 만용까지. 잘 먹기만 해도 부모님이 기뻐하셨던 그 땐 이 맛있는 빈대떡이 얼마나 심각히 손이 가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절대 몰랐다.


한살두살 나이를 먹어가며 우리가 빈대떡에 기여하는 참여도는 조금씩 늘어갔다. 처음에는 집게, 키친타월 등 필요한 걸 나르는 심부름. 그 후에는 한 김 식은 빈대떡들을 한구석으로 정렬시키고 새로 부치는 뜨거운 녀석들을 위해 새로이 키친타월 깔아주기. 반죽 물이 위로 올라오면 잘 저어줘서 다시 농도 맞춰 주기. 그러다 어느 날, 녹두껍질을 까던 어머니가 부르심.

"자, 이 나머지 좀 까봐라. 손을 너무 쓰면 쉬어버리니까 살살 다루고."

까짓거, 하고 앉았는데 윽, 이게 보통일이 아닌 것이다. 녹두를 물에 담가 살살 저어가며 떠오르는 껍질들을 체로 건지고, 또 슬슬 비벼가며 껍질을 벗기고, 또 체로 건지고. 한시간 정도 하다보니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그렇게 삼십분이 흐르고, 또 한시간이 지나고. 식탁 위 전등 하나 키고 난 세시간째 벌건 눈을 하고 녹두껍질을 까고 있었다. 사실 껍질이 약간은 있어도 별 지장없고 푸르고 텁텁하지 않을 정도로 골라내면 되는데 한번 발동걸리면 멈출 줄 모르는 이 완벽주의 때문에 결국 100% 껍질 다 벗겨버림. 그리고 그대로 침대에 기절했다.


아침에 녹두를 보신 어머니는 감탄을 하셨고 그 다음부터 녹두껍질을 까는 것은 매년 내 몫이 되었다.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얼마나 힘들게 노릇한 색이 나오는지 알기 때문에 빈대떡의 후덜덜한 귀중함을 느끼며 더 맛있게 먹게 되는 건 사실이다. 몇시간째 껍질을 까다 보면 깐 녹두 한 알만 개수대로 흘려보내도 마치 금싸라기를 흘린 느낌(녹두알들이 정말 금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녹두로 만든 반죽이기에 굽다가 반죽을 흘리거나 명절손님이 식사중 빈대떡 한입을 남기기라도 하면 그 순간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며 확 뒷골이 땡김. 

커피 한 잔 내리는 원두를 얼마나 세심히 골라내는지, 파스타 소스에 들어가는 토마토 한 알 한 알의 껍질을 일일이 벗겨야 하는 사실 등을 알고 나면 정말 음식을 남길 때 가슴이 찢어진다. 매번 하는 얘기지만, 단말기처럼 완제품만 섭취하는 소비자로써 그 뒤에 숨겨진 긴 작업시간과 정성을 알기란 너무 어렵다. 그렇지만 그걸 조금이라도 경험해 보면 더 이상 그 음식이 같은 맛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접시에 담긴 음식의 사진 한 장이 아닌, 그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들이 눈앞에 파노라마로 지나가며 동영상을 볼 수 있게 된다. 그 만큼 더 깊어지는 그 음식의 가치와 맛. 

요리를 하는 건 물론 재미도 있고 어쩔 땐 절약도 된다. 물론 더 맛있을 수도 있고 원하는 재료를 좀 더 풍성히 넣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요리를 즐겨하는 이유는 바로 그 음식에 대한 나의 이해와 가치를 높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ps. 그러나 내 동생은 휴가나와서 부치기가 무섭게 우적우적 먹기만 할 것이 뻔하고, 녹두껍질을 까봐야, 아 이래서 우리 어무이가 빈대떡 먹고 싶다면 한숨부터 쉬시는구나, 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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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추석이 다가오고 동생도 모처럼 때맞춰 휴가를 나오게 되면서 우리집은 벌써부터 음식준비에 바빠지고 있다. 명절때마다 항상 등장하는 주인공은 고사리, 돼지고기, 김치 등을 넣어 바삭쫄깃하게 부친 녹두빈대떡. 요새는 백화점에 아예 빈대떡 반죽을 포장해 팔더만, 우리집은 변함없이 매년 생녹두를 사다 직접 갈아 반죽을 만든다. 대야 한 가득 담긴 녹두를 몇시간 내내 불리고, 껍질을 까고, 믹서기로 갈고, 들어가는 재료를 손질하고 섞으면 반죽 완성. 그러면 부엌바닥에 신문지를 쫙 깔고, 식용유 큼직한 병 하나를 갖다놓고 널찍한 팬에다 부치기 시작하는데, 온 집안이 곧 고소한 기름냄새로 진동하기 시작한다. 


나랑 내 동생이 어렸을 땐 옆에 앉아 입천장을 디어가며 팬에서 방금 지져낸 바삭한 빈대떡을 집어먹기 바빴다. 그 고소한 녹두의 맛이란! 거기다가 간간히 씹히는 곰곰하고 아삭한 김치와 부드러운 돼지고기까지. 그렇게 정신없이 몇개를 연달아 먹고 나면 배가 불러왔고, 욕심에 한 입 더 베어물고 남기는 만용까지. 잘 먹기만 해도 부모님이 기뻐하셨던 그 땐 이 맛있는 빈대떡이 얼마나 심각히 손이 가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절대 몰랐다.


한살두살 나이를 먹어가며 우리가 빈대떡에 기여하는 참여도는 조금씩 늘어갔다. 처음에는 집게, 키친타월 등 필요한 걸 나르는 심부름. 그 후에는 한 김 식은 빈대떡들을 한구석으로 정렬시키고 새로 부치는 뜨거운 녀석들을 위해 새로이 키친타월 깔아주기. 반죽 물이 위로 올라오면 잘 저어줘서 다시 농도 맞춰 주기. 그러다 어느 날, 녹두껍질을 까던 어머니가 부르심.

"자, 이 나머지 좀 까봐라. 손을 너무 쓰면 쉬어버리니까 살살 다루고."

까짓거, 하고 앉았는데 윽, 이게 보통일이 아닌 것이다. 녹두를 물에 담가 살살 저어가며 떠오르는 껍질들을 체로 건지고, 또 슬슬 비벼가며 껍질을 벗기고, 또 체로 건지고. 한시간 정도 하다보니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그렇게 삼십분이 흐르고, 또 한시간이 지나고. 식탁 위 전등 하나 키고 난 세시간째 벌건 눈을 하고 녹두껍질을 까고 있었다. 사실 껍질이 약간은 있어도 별 지장없고 푸르고 텁텁하지 않을 정도로 골라내면 되는데 한번 발동걸리면 멈출 줄 모르는 이 완벽주의 때문에 결국 100% 껍질 다 벗겨버림. 그리고 그대로 침대에 기절했다.


아침에 녹두를 보신 어머니는 감탄을 하셨고 그 다음부터 녹두껍질을 까는 것은 매년 내 몫이 되었다.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얼마나 힘들게 노릇한 색이 나오는지 알기 때문에 빈대떡의 후덜덜한 귀중함을 느끼며 더 맛있게 먹게 되는 건 사실이다. 몇시간째 껍질을 까다 보면 깐 녹두 한 알만 개수대로 흘려보내도 마치 금싸라기를 흘린 느낌(녹두알들이 정말 금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녹두로 만든 반죽이기에 굽다가 반죽을 흘리거나 명절손님이 식사중 빈대떡 한입을 남기기라도 하면 그 순간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며 확 뒷골이 땡김. 

커피 한 잔 내리는 원두를 얼마나 세심히 골라내는지, 파스타 소스에 들어가는 토마토 한 알 한 알의 껍질을 일일이 벗겨야 하는 사실 등을 알고 나면 정말 음식을 남길 때 가슴이 찢어진다. 매번 하는 얘기지만, 단말기처럼 완제품만 섭취하는 소비자로써 그 뒤에 숨겨진 긴 작업시간과 정성을 알기란 너무 어렵다. 그렇지만 그걸 조금이라도 경험해 보면 더 이상 그 음식이 같은 맛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접시에 담긴 음식의 사진 한 장이 아닌, 그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들이 눈앞에 파노라마로 지나가며 동영상을 볼 수 있게 된다. 그 만큼 더 깊어지는 그 음식의 가치와 맛. 

요리를 하는 건 물론 재미도 있고 어쩔 땐 절약도 된다. 물론 더 맛있을 수도 있고 원하는 재료를 좀 더 풍성히 넣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요리를 즐겨하는 이유는 바로 그 음식에 대한 나의 이해와 가치를 높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ps. 그러나 내 동생은 휴가나와서 부치기가 무섭게 우적우적 먹기만 할 것이 뻔하고, 녹두껍질을 까봐야, 아 이래서 우리 어무이가 빈대떡 먹고 싶다면 한숨부터 쉬시는구나, 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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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추석이 다가오고 동생도 모처럼 때맞춰 휴가를 나오게 되면서 우리집은 벌써부터 음식준비에 바빠지고 있다. 명절때마다 항상 등장하는 주인공은 고사리, 돼지고기, 김치 등을 넣어 바삭쫄깃하게 부친 녹두빈대떡. 요새는 백화점에 아예 빈대떡 반죽을 포장해 팔더만, 우리집은 변함없이 매년 생녹두를 사다 직접 갈아 반죽을 만든다. 대야 한 가득 담긴 녹두를 몇시간 내내 불리고, 껍질을 까고, 믹서기로 갈고, 들어가는 재료를 손질하고 섞으면 반죽 완성. 그러면 부엌바닥에 신문지를 쫙 깔고, 식용유 큼직한 병 하나를 갖다놓고 널찍한 팬에다 부치기 시작하는데, 온 집안이 곧 고소한 기름냄새로 진동하기 시작한다. 


나랑 내 동생이 어렸을 땐 옆에 앉아 입천장을 디어가며 팬에서 방금 지져낸 바삭한 빈대떡을 집어먹기 바빴다. 그 고소한 녹두의 맛이란! 거기다가 간간히 씹히는 곰곰하고 아삭한 김치와 부드러운 돼지고기까지. 그렇게 정신없이 몇개를 연달아 먹고 나면 배가 불러왔고, 욕심에 한 입 더 베어물고 남기는 만용까지. 잘 먹기만 해도 부모님이 기뻐하셨던 그 땐 이 맛있는 빈대떡이 얼마나 심각히 손이 가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절대 몰랐다.


한살두살 나이를 먹어가며 우리가 빈대떡에 기여하는 참여도는 조금씩 늘어갔다. 처음에는 집게, 키친타월 등 필요한 걸 나르는 심부름. 그 후에는 한 김 식은 빈대떡들을 한구석으로 정렬시키고 새로 부치는 뜨거운 녀석들을 위해 새로이 키친타월 깔아주기. 반죽 물이 위로 올라오면 잘 저어줘서 다시 농도 맞춰 주기. 그러다 어느 날, 녹두껍질을 까던 어머니가 부르심.

"자, 이 나머지 좀 까봐라. 손을 너무 쓰면 쉬어버리니까 살살 다루고."

까짓거, 하고 앉았는데 윽, 이게 보통일이 아닌 것이다. 녹두를 물에 담가 살살 저어가며 떠오르는 껍질들을 체로 건지고, 또 슬슬 비벼가며 껍질을 벗기고, 또 체로 건지고. 한시간 정도 하다보니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그렇게 삼십분이 흐르고, 또 한시간이 지나고. 식탁 위 전등 하나 키고 난 세시간째 벌건 눈을 하고 녹두껍질을 까고 있었다. 사실 껍질이 약간은 있어도 별 지장없고 푸르고 텁텁하지 않을 정도로 골라내면 되는데 한번 발동걸리면 멈출 줄 모르는 이 완벽주의 때문에 결국 100% 껍질 다 벗겨버림. 그리고 그대로 침대에 기절했다.


아침에 녹두를 보신 어머니는 감탄을 하셨고 그 다음부터 녹두껍질을 까는 것은 매년 내 몫이 되었다.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얼마나 힘들게 노릇한 색이 나오는지 알기 때문에 빈대떡의 후덜덜한 귀중함을 느끼며 더 맛있게 먹게 되는 건 사실이다. 몇시간째 껍질을 까다 보면 깐 녹두 한 알만 개수대로 흘려보내도 마치 금싸라기를 흘린 느낌(녹두알들이 정말 금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녹두로 만든 반죽이기에 굽다가 반죽을 흘리거나 명절손님이 식사중 빈대떡 한입을 남기기라도 하면 그 순간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며 확 뒷골이 땡김. 

커피 한 잔 내리는 원두를 얼마나 세심히 골라내는지, 파스타 소스에 들어가는 토마토 한 알 한 알의 껍질을 일일이 벗겨야 하는 사실 등을 알고 나면 정말 음식을 남길 때 가슴이 찢어진다. 매번 하는 얘기지만, 단말기처럼 완제품만 섭취하는 소비자로써 그 뒤에 숨겨진 긴 작업시간과 정성을 알기란 너무 어렵다. 그렇지만 그걸 조금이라도 경험해 보면 더 이상 그 음식이 같은 맛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접시에 담긴 음식의 사진 한 장이 아닌, 그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들이 눈앞에 파노라마로 지나가며 동영상을 볼 수 있게 된다. 그 만큼 더 깊어지는 그 음식의 가치와 맛. 

요리를 하는 건 물론 재미도 있고 어쩔 땐 절약도 된다. 물론 더 맛있을 수도 있고 원하는 재료를 좀 더 풍성히 넣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요리를 즐겨하는 이유는 바로 그 음식에 대한 나의 이해와 가치를 높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ps. 그러나 내 동생은 휴가나와서 부치기가 무섭게 우적우적 먹기만 할 것이 뻔하고, 녹두껍질을 까봐야, 아 이래서 우리 어무이가 빈대떡 먹고 싶다면 한숨부터 쉬시는구나, 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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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추석이 다가오고 동생도 모처럼 때맞춰 휴가를 나오게 되면서 우리집은 벌써부터 음식준비에 바빠지고 있다. 명절때마다 항상 등장하는 주인공은 고사리, 돼지고기, 김치 등을 넣어 바삭쫄깃하게 부친 녹두빈대떡. 요새는 백화점에 아예 빈대떡 반죽을 포장해 팔더만, 우리집은 변함없이 매년 생녹두를 사다 직접 갈아 반죽을 만든다. 대야 한 가득 담긴 녹두를 몇시간 내내 불리고, 껍질을 까고, 믹서기로 갈고, 들어가는 재료를 손질하고 섞으면 반죽 완성. 그러면 부엌바닥에 신문지를 쫙 깔고, 식용유 큼직한 병 하나를 갖다놓고 널찍한 팬에다 부치기 시작하는데, 온 집안이 곧 고소한 기름냄새로 진동하기 시작한다. 


나랑 내 동생이 어렸을 땐 옆에 앉아 입천장을 디어가며 팬에서 방금 지져낸 바삭한 빈대떡을 집어먹기 바빴다. 그 고소한 녹두의 맛이란! 거기다가 간간히 씹히는 곰곰하고 아삭한 김치와 부드러운 돼지고기까지. 그렇게 정신없이 몇개를 연달아 먹고 나면 배가 불러왔고, 욕심에 한 입 더 베어물고 남기는 만용까지. 잘 먹기만 해도 부모님이 기뻐하셨던 그 땐 이 맛있는 빈대떡이 얼마나 심각히 손이 가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절대 몰랐다.


한살두살 나이를 먹어가며 우리가 빈대떡에 기여하는 참여도는 조금씩 늘어갔다. 처음에는 집게, 키친타월 등 필요한 걸 나르는 심부름. 그 후에는 한 김 식은 빈대떡들을 한구석으로 정렬시키고 새로 부치는 뜨거운 녀석들을 위해 새로이 키친타월 깔아주기. 반죽 물이 위로 올라오면 잘 저어줘서 다시 농도 맞춰 주기. 그러다 어느 날, 녹두껍질을 까던 어머니가 부르심.

"자, 이 나머지 좀 까봐라. 손을 너무 쓰면 쉬어버리니까 살살 다루고."

까짓거, 하고 앉았는데 윽, 이게 보통일이 아닌 것이다. 녹두를 물에 담가 살살 저어가며 떠오르는 껍질들을 체로 건지고, 또 슬슬 비벼가며 껍질을 벗기고, 또 체로 건지고. 한시간 정도 하다보니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그렇게 삼십분이 흐르고, 또 한시간이 지나고. 식탁 위 전등 하나 키고 난 세시간째 벌건 눈을 하고 녹두껍질을 까고 있었다. 사실 껍질이 약간은 있어도 별 지장없고 푸르고 텁텁하지 않을 정도로 골라내면 되는데 한번 발동걸리면 멈출 줄 모르는 이 완벽주의 때문에 결국 100% 껍질 다 벗겨버림. 그리고 그대로 침대에 기절했다.


아침에 녹두를 보신 어머니는 감탄을 하셨고 그 다음부터 녹두껍질을 까는 것은 매년 내 몫이 되었다.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얼마나 힘들게 노릇한 색이 나오는지 알기 때문에 빈대떡의 후덜덜한 귀중함을 느끼며 더 맛있게 먹게 되는 건 사실이다. 몇시간째 껍질을 까다 보면 깐 녹두 한 알만 개수대로 흘려보내도 마치 금싸라기를 흘린 느낌(녹두알들이 정말 금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녹두로 만든 반죽이기에 굽다가 반죽을 흘리거나 명절손님이 식사중 빈대떡 한입을 남기기라도 하면 그 순간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며 확 뒷골이 땡김. 

커피 한 잔 내리는 원두를 얼마나 세심히 골라내는지, 파스타 소스에 들어가는 토마토 한 알 한 알의 껍질을 일일이 벗겨야 하는 사실 등을 알고 나면 정말 음식을 남길 때 가슴이 찢어진다. 매번 하는 얘기지만, 단말기처럼 완제품만 섭취하는 소비자로써 그 뒤에 숨겨진 긴 작업시간과 정성을 알기란 너무 어렵다. 그렇지만 그걸 조금이라도 경험해 보면 더 이상 그 음식이 같은 맛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접시에 담긴 음식의 사진 한 장이 아닌, 그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들이 눈앞에 파노라마로 지나가며 동영상을 볼 수 있게 된다. 그 만큼 더 깊어지는 그 음식의 가치와 맛. 

요리를 하는 건 물론 재미도 있고 어쩔 땐 절약도 된다. 물론 더 맛있을 수도 있고 원하는 재료를 좀 더 풍성히 넣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요리를 즐겨하는 이유는 바로 그 음식에 대한 나의 이해와 가치를 높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ps. 그러나 내 동생은 휴가나와서 부치기가 무섭게 우적우적 먹기만 할 것이 뻔하고, 녹두껍질을 까봐야, 아 이래서 우리 어무이가 빈대떡 먹고 싶다면 한숨부터 쉬시는구나, 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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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추석이 다가오고 동생도 모처럼 때맞춰 휴가를 나오게 되면서 우리집은 벌써부터 음식준비에 바빠지고 있다. 명절때마다 항상 등장하는 주인공은 고사리, 돼지고기, 김치 등을 넣어 바삭쫄깃하게 부친 녹두빈대떡. 요새는 백화점에 아예 빈대떡 반죽을 포장해 팔더만, 우리집은 변함없이 매년 생녹두를 사다 직접 갈아 반죽을 만든다. 대야 한 가득 담긴 녹두를 몇시간 내내 불리고, 껍질을 까고, 믹서기로 갈고, 들어가는 재료를 손질하고 섞으면 반죽 완성. 그러면 부엌바닥에 신문지를 쫙 깔고, 식용유 큼직한 병 하나를 갖다놓고 널찍한 팬에다 부치기 시작하는데, 온 집안이 곧 고소한 기름냄새로 진동하기 시작한다. 


나랑 내 동생이 어렸을 땐 옆에 앉아 입천장을 디어가며 팬에서 방금 지져낸 바삭한 빈대떡을 집어먹기 바빴다. 그 고소한 녹두의 맛이란! 거기다가 간간히 씹히는 곰곰하고 아삭한 김치와 부드러운 돼지고기까지. 그렇게 정신없이 몇개를 연달아 먹고 나면 배가 불러왔고, 욕심에 한 입 더 베어물고 남기는 만용까지. 잘 먹기만 해도 부모님이 기뻐하셨던 그 땐 이 맛있는 빈대떡이 얼마나 심각히 손이 가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절대 몰랐다.


한살두살 나이를 먹어가며 우리가 빈대떡에 기여하는 참여도는 조금씩 늘어갔다. 처음에는 집게, 키친타월 등 필요한 걸 나르는 심부름. 그 후에는 한 김 식은 빈대떡들을 한구석으로 정렬시키고 새로 부치는 뜨거운 녀석들을 위해 새로이 키친타월 깔아주기. 반죽 물이 위로 올라오면 잘 저어줘서 다시 농도 맞춰 주기. 그러다 어느 날, 녹두껍질을 까던 어머니가 부르심.

"자, 이 나머지 좀 까봐라. 손을 너무 쓰면 쉬어버리니까 살살 다루고."

까짓거, 하고 앉았는데 윽, 이게 보통일이 아닌 것이다. 녹두를 물에 담가 살살 저어가며 떠오르는 껍질들을 체로 건지고, 또 슬슬 비벼가며 껍질을 벗기고, 또 체로 건지고. 한시간 정도 하다보니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그렇게 삼십분이 흐르고, 또 한시간이 지나고. 식탁 위 전등 하나 키고 난 세시간째 벌건 눈을 하고 녹두껍질을 까고 있었다. 사실 껍질이 약간은 있어도 별 지장없고 푸르고 텁텁하지 않을 정도로 골라내면 되는데 한번 발동걸리면 멈출 줄 모르는 이 완벽주의 때문에 결국 100% 껍질 다 벗겨버림. 그리고 그대로 침대에 기절했다.


아침에 녹두를 보신 어머니는 감탄을 하셨고 그 다음부터 녹두껍질을 까는 것은 매년 내 몫이 되었다.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얼마나 힘들게 노릇한 색이 나오는지 알기 때문에 빈대떡의 후덜덜한 귀중함을 느끼며 더 맛있게 먹게 되는 건 사실이다. 몇시간째 껍질을 까다 보면 깐 녹두 한 알만 개수대로 흘려보내도 마치 금싸라기를 흘린 느낌(녹두알들이 정말 금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녹두로 만든 반죽이기에 굽다가 반죽을 흘리거나 명절손님이 식사중 빈대떡 한입을 남기기라도 하면 그 순간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며 확 뒷골이 땡김. 

커피 한 잔 내리는 원두를 얼마나 세심히 골라내는지, 파스타 소스에 들어가는 토마토 한 알 한 알의 껍질을 일일이 벗겨야 하는 사실 등을 알고 나면 정말 음식을 남길 때 가슴이 찢어진다. 매번 하는 얘기지만, 단말기처럼 완제품만 섭취하는 소비자로써 그 뒤에 숨겨진 긴 작업시간과 정성을 알기란 너무 어렵다. 그렇지만 그걸 조금이라도 경험해 보면 더 이상 그 음식이 같은 맛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접시에 담긴 음식의 사진 한 장이 아닌, 그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들이 눈앞에 파노라마로 지나가며 동영상을 볼 수 있게 된다. 그 만큼 더 깊어지는 그 음식의 가치와 맛. 

요리를 하는 건 물론 재미도 있고 어쩔 땐 절약도 된다. 물론 더 맛있을 수도 있고 원하는 재료를 좀 더 풍성히 넣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요리를 즐겨하는 이유는 바로 그 음식에 대한 나의 이해와 가치를 높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ps. 그러나 내 동생은 휴가나와서 부치기가 무섭게 우적우적 먹기만 할 것이 뻔하고, 녹두껍질을 까봐야, 아 이래서 우리 어무이가 빈대떡 먹고 싶다면 한숨부터 쉬시는구나, 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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