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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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추석이 다가오고 동생도 모처럼 때맞춰 휴가를 나오게 되면서 우리집은 벌써부터 음식준비에 바빠지고 있다. 명절때마다 항상 등장하는 주인공은 고사리, 돼지고기, 김치 등을 넣어 바삭쫄깃하게 부친 녹두빈대떡. 요새는 백화점에 아예 빈대떡 반죽을 포장해 팔더만, 우리집은 변함없이 매년 생녹두를 사다 직접 갈아 반죽을 만든다. 대야 한 가득 담긴 녹두를 몇시간 내내 불리고, 껍질을 까고, 믹서기로 갈고, 들어가는 재료를 손질하고 섞으면 반죽 완성. 그러면 부엌바닥에 신문지를 쫙 깔고, 식용유 큼직한 병 하나를 갖다놓고 널찍한 팬에다 부치기 시작하는데, 온 집안이 곧 고소한 기름냄새로 진동하기 시작한다. 


나랑 내 동생이 어렸을 땐 옆에 앉아 입천장을 디어가며 팬에서 방금 지져낸 바삭한 빈대떡을 집어먹기 바빴다. 그 고소한 녹두의 맛이란! 거기다가 간간히 씹히는 곰곰하고 아삭한 김치와 부드러운 돼지고기까지. 그렇게 정신없이 몇개를 연달아 먹고 나면 배가 불러왔고, 욕심에 한 입 더 베어물고 남기는 만용까지. 잘 먹기만 해도 부모님이 기뻐하셨던 그 땐 이 맛있는 빈대떡이 얼마나 심각히 손이 가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절대 몰랐다.


한살두살 나이를 먹어가며 우리가 빈대떡에 기여하는 참여도는 조금씩 늘어갔다. 처음에는 집게, 키친타월 등 필요한 걸 나르는 심부름. 그 후에는 한 김 식은 빈대떡들을 한구석으로 정렬시키고 새로 부치는 뜨거운 녀석들을 위해 새로이 키친타월 깔아주기. 반죽 물이 위로 올라오면 잘 저어줘서 다시 농도 맞춰 주기. 그러다 어느 날, 녹두껍질을 까던 어머니가 부르심.

"자, 이 나머지 좀 까봐라. 손을 너무 쓰면 쉬어버리니까 살살 다루고."

까짓거, 하고 앉았는데 윽, 이게 보통일이 아닌 것이다. 녹두를 물에 담가 살살 저어가며 떠오르는 껍질들을 체로 건지고, 또 슬슬 비벼가며 껍질을 벗기고, 또 체로 건지고. 한시간 정도 하다보니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그렇게 삼십분이 흐르고, 또 한시간이 지나고. 식탁 위 전등 하나 키고 난 세시간째 벌건 눈을 하고 녹두껍질을 까고 있었다. 사실 껍질이 약간은 있어도 별 지장없고 푸르고 텁텁하지 않을 정도로 골라내면 되는데 한번 발동걸리면 멈출 줄 모르는 이 완벽주의 때문에 결국 100% 껍질 다 벗겨버림. 그리고 그대로 침대에 기절했다.


아침에 녹두를 보신 어머니는 감탄을 하셨고 그 다음부터 녹두껍질을 까는 것은 매년 내 몫이 되었다.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얼마나 힘들게 노릇한 색이 나오는지 알기 때문에 빈대떡의 후덜덜한 귀중함을 느끼며 더 맛있게 먹게 되는 건 사실이다. 몇시간째 껍질을 까다 보면 깐 녹두 한 알만 개수대로 흘려보내도 마치 금싸라기를 흘린 느낌(녹두알들이 정말 금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녹두로 만든 반죽이기에 굽다가 반죽을 흘리거나 명절손님이 식사중 빈대떡 한입을 남기기라도 하면 그 순간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며 확 뒷골이 땡김. 

커피 한 잔 내리는 원두를 얼마나 세심히 골라내는지, 파스타 소스에 들어가는 토마토 한 알 한 알의 껍질을 일일이 벗겨야 하는 사실 등을 알고 나면 정말 음식을 남길 때 가슴이 찢어진다. 매번 하는 얘기지만, 단말기처럼 완제품만 섭취하는 소비자로써 그 뒤에 숨겨진 긴 작업시간과 정성을 알기란 너무 어렵다. 그렇지만 그걸 조금이라도 경험해 보면 더 이상 그 음식이 같은 맛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접시에 담긴 음식의 사진 한 장이 아닌, 그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들이 눈앞에 파노라마로 지나가며 동영상을 볼 수 있게 된다. 그 만큼 더 깊어지는 그 음식의 가치와 맛. 

요리를 하는 건 물론 재미도 있고 어쩔 땐 절약도 된다. 물론 더 맛있을 수도 있고 원하는 재료를 좀 더 풍성히 넣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요리를 즐겨하는 이유는 바로 그 음식에 대한 나의 이해와 가치를 높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ps. 그러나 내 동생은 휴가나와서 부치기가 무섭게 우적우적 먹기만 할 것이 뻔하고, 녹두껍질을 까봐야, 아 이래서 우리 어무이가 빈대떡 먹고 싶다면 한숨부터 쉬시는구나, 할 것이고...


오랜만에 일러작업이 하고 싶어 세상에나 종이와 연필을 버리고 음식스케치를 컴퓨터로 해 버렸다. 생각보다 그럭저럭 괜찮게 나옴. 그렇지만 역시 자꾸 안하니 감이 무섭게 떨어진다.


전체적인 색감은 물론 가을이니 노란색/주황색/갈색 계통으로 하되 좀 더 밝은 색과 녹색을 적절히 섞어주기. 그리고 가을느낌의 재료들과 신선한 과일을 다량 사용. 최종 리스트는 독일식 사과 케익, 당근호두케익, 밤과 잣 파운드케익, 가또 쇼콜라, 바나나 케익, 펌킨 치즈케익, 찹쌀 케이크, 그리고 녹차 수플레 치즈케익. 그나저나 여덟가지를 추석전까지 끝내려면 엄청난 밑준비를 해야되겠구나.......


요새 즐겨보기 시작한 팻투바하님의 맛집 블로그, 역시 배가 고파지는 점심시간 전에 보다가 [커피번개]라는 말머리의 포스팅. 국내에 들어오기 매우 힘들다는 파나마의 에스메랄다산의 "게이샤" 원두를 맛볼 수 있는 기회란다. 늦은 저녁에 시작하는 번개였지만 커피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후 늦게 마시고 찾아오는 두통이나 불면증은 이미 포기한지 오래. 자리있다는 말에 냉큼 신청하고 서래마을로 달려갔다. 


아주 예전 파스타를 먹으러 들렸던 기억이 있는 서래마을 시실리, 그동안 파스타와 커피를 같이 한다더라,는 말만 무성히 듣고 다시 찾아볼 기회가 없었다. 회사에서 허둥지둥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30분 가까이 늦는 바람에 민망한 마음으로 얼른 2층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앞에서 강의를 하고 계시던 카리스마 작렬의 한 남성분이 "일부러 아직 안 마시고 기다렸습니다"라는 말에 죄송한 마음이. 


알고보니 그 분은 시실리의 오너 바리스타, 무려 커피 경력 17년이신 권대옥 사장님이셨다. 어쩐지 포스가 정말 강렬하셨단. 내려주실 커피가 더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커피냄새가 아니라 커피이라 조금은 미안해하시면서도 몇번씩이고 강조하시던 사장님. 이런 이유있는 의견과 주장이 있으신 분들 너무 좋다.


이날 시음의 첫 커피는 이티오피아 시다모 네키스 (Ethiopia Sidamo Nikisse). 
이전 커피 관련 포스팅들에서도 언급했지만 커피는 여러 나라에서 재배하고 있으며, 와인과 마찬가지로 원산지와 커피나무, 즉 원두의 종류에 따라 커피의 맛과 향기가 다르다. 때문에 이 커피의 이름은 네키스이지만 앞의 이티오피아 시다모는 이 원두가 재배된 곳을 알려준다. 

한잔한잔 정성으로 내리는 핸드드립 추출을 위해 원두가 갈리자 달콤한 커피향이 순식간에 번져왔다. 그리고 사장님의 입이 떡 벌어지는 드립법. 시작하시기 전에 추출법은 원두에 따라 다르게 결정하시는지 등등 내가 아는 용어를 총동원해 여쭤보니 원추형 동드립퍼를 사용하는 오랜 기간에 거쳐 직접 개발하신 드립법. 아으 난 언제 저런 내공이......

열사람이나 되는 많은 인원이 다 핸드드립으로 마시려니 조금 시간이 걸렸다. 네분이 드시고 드디어 내 차례. 이미 마시기 전에 사장님의 설명과 다른 분들의 소감을 들었지만 내가 과연 이 진하다는 커피에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단순히 그냥 쓰다고만 느끼지 않을까 잠시 걱정이 되었다. 아직은 가벼운 이르가체프가 내 입맛엔 더 맞던데 말이지. 

긴 기다림 후 드디어 내 차례. 잔이 참 은은하니 곱다.

한모금을 입에 머금은 순간, 정말 깜짝. 놀랐다. 순식간이지만 분명하고 화려한 맛의 향연. 자몽, 레몬의 신맛으로 시작해 좀 더 싱그러운 꽃향기로 바뀌고, 마무리는 달콤하고 깔끔한 초콜렛과 약간의 고소한 카라멜향.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이렇게 즐거울 수가 있다니!

맛있는 커피는 온도변화에 따른 맛의 변화를 느끼는 것도 매우 재밌다. 맛없는 커피는 식어버리면 정말 먹을 수가 없는데, 오히려 맛있는 커피는 약간 미지근하게 즐기는 것이 더 좋을 정도로 달달함과 신맛등이 확 살아난다. 그렇지만 이 커피는 너무 맛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온도가 되기 전에 다 마셔버림 꺄아.

한잔 마시고 가득 취해 있는데 두번째 커피가 있단다. 아 맞다 원래 게이샤 테이스팅 하러 온 것이었지. Duh.

두번째로 맛볼 커피는 파나마 에스마랄다 게이샤 (Panama Esmeralda Geisha).
SCA (Specialty Coffee Association), 즉 스페셜티 커피 위원회에서 무려 백점이란 어마어마한 점수를 받은 "게이샤" 원두는 남미 파나마의 에스마랄다에서 재배되는 원두. 어딘지 전혀 감이 안 오시는 분들을 위해 다시 지도 삽입. 

이번에 권대옥 바리스타의 지인이 경매에 성공한 노고로 한국에 들어온 이 원두는 무려 영국 왕실에까지 납품되었다 한다. 경매에 실패한 왕실 직원들, 짤렸을지도 모르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하며 드립 준비. 진짜 우리가 대신 마셔도 되는 건지 약간 미안했음 으흐흐. 

아까보단 좀 더 밝은 원두의 색. 역시 내려지는 커피의 색도 좀 더 연한 붉은 갈색이었다. 역시 침을 삼키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음..................

커피에게 스폿라이트를 내주는 깨끗하고 정갈한 하얀 잔.  

게이샤는 네키스와 완전히 달랐다. 조금 더 차분하고 무게있는, 거기에 쥬스처럼 신맛이 강하면서도 끝에 이어지는 단맛. 커피원두는 보통 로스팅을 진하게 하면 할수록 쓴맛이 진해지는데 이 원두는 연하게 로스팅을 했다고는 믿기 힘들정도로 강했다. 거기에 군고구마 향도 나면서 굉장히 정돈된, 그러나 강하고 깊은 맛을 선사했다. 아까 너무 빨리 마셔버려서 이번에는 일부러 쉬어가며 조금 천천히. 

평소에 가벼운 커피를 즐겨마시던 나로서는 이렇게 강한 커피들을 마지막 한모금까지 즐겁게 마셨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다. 거기다 이날은 커피세계를 비롯해 얼마나 앞으로 배울 것이 많은지, 얼마나 더
겸손해져야 하는지 새삼 느끼게 된 날이다. 주최해 주신 팻투바하님부터 같이 참가하신 다양한 분들,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해주신 권사장님까지, 진심으로 감사한 인연들. 


ps. 전공을 정말 뭘 해야할지 갈팡질팡이다. 아예 커피로 올인? 제빵? 제과? 시작은 그냥 요리? 으악!


우리는 어릴적부터 먹을 때 도구를 쓰는 훈련을 받아온다. 나 초등학교 다닐때에도 젓가락으로 1분안에 콩 30개 집어옮기기등의 시험이 있었고,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인도 영화 '블랙'에서도 '야만인처럼' 밥을 먹는 소녀에게 포크 등을 사용해 밥을 먹는 습관을 들이며 해내었을때 감격한다. 손으로 음식을 먹는 곳은 아직 인도같은 '후진국'이며, 으레 화장실에서도 손을 사용한다고 어딘가에서 들은 얘기를 떠울리며 킥킥들 대기 일쑤.

그런데, 어떤 도구보다 다루기가 쉽고 다재다능한 손이 언제부터 음식을 먹을 땐 불결하고 교양없는 도구로 인식되었을까? 


포크스러운 도구가 처음 음식을 먹을 때 사용된 기록은 400 A.D. 무렵 터키에서라고 한다. 그 후 점차 식탁에서의 사용이 늘긴 했으나, 몇몇의 부자들만 사용을 했었고, 10세기 무렵 유럽으로 건너와 17세기가 되어야 그 사용이 점차 퍼졌다. 처음 포크가 소개되었을 때에는 신이 주신 손가락에 대한 모독이라는 반발도 있었고, 남성들은 너무 여성스럽다 해서 사용을 거부한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무려 19세기가 되어서야 포크 사용이 대중화가 되었고, 한국에서 젓가락이 처음 사용된 것은 약 1,800년전으로, 결국 오늘처럼 식탁에서 먹는 도구들이 대중적으로 사용된 것은 얼마 안되었단 얘기다. 

우리도 다 이렇게 즐겁게 먹었었던 시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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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음식을 먹는 행위는 몇배이상으로 더 '찐한' 경험을 가져다준다. 방금 쪄낸 따끈한 왕만두의 열기가 손을 타고 전해지고, 손가락 끝으로 느껴지는 폭신함은 입에 넣기도 전에 설레임을 가져다 준다. 치토스를 한 봉지 다 먹고 난 후 손가락에 바알갛게 묻어있는 시즈닝을 쪽 빨아먹을 때의 느낌. 생크림에 손가락을 푹 찔러 핥아먹는 느낌. 차갑고 딱딱한 촉감의 포크로 찍어먹는 것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는 몸으로 느끼는 맛이다. 피자 썰어먹는 분들, 얇은 화덕피자는 제발 손으로 먹어보라. 야들야들 손가락위에서 늘어지는 따뜻한 반죽의 느낌, 죽죽 늘어지는 치즈를 손으로 끊어먹으면서 마지막에 손에 슬쩍 묻은 토마토소스 핥아먹기. 피자의 맛을 두배로 느낄 수 있다. 

중국 꾸이지엔에서 먹은 민물가재 요리. 장갑을 껴도 손이 얼얼할 정도로 
맵지만 손으로 느껴지는 열기덕분에 그 매운맛을 더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그 외에도 손의 사용은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초밥을 먹을 때 한번 손으로 먹어보라. 젓가락으로 비틀비틀 초밥을 집어올리다 간장에 풍덩 빠뜨려버리는 사고를 예방하기도 하지만, 체온이 미묘하나 초밥을 제일 먹기 적합한 온도로 유지해준다. 엄지, 검지, 중지를 사용해 가볍게 쥐고!

아프리카의 이티오피아에서는 커다란 접시를 가운데 놓고 여럿이 음식을 나눠먹으며, 위 사진의 Injera(인제라)라고 불리는 이티오피아의 얇고 폭신한 빵 종류를 넓게 펴 담은 후 그 위에 다양한 음식을 담고 싸 먹는 것이다. 

<출처 - http://www.flickr.com/photos/mississippi_snopes>
<출처 - http://www.flickr.com/photos/joshie_woshie>

이때 한입크기로 인제라에 잘 싸서 상대방을 먹여주는 의식을 Gursha(굴샤)라 부르는데, 이는 상대방에 대한 존경과 친절을 의미한다 한다. 한마디로 누군가에게 손으로 음식을 직접 먹여주는 행위가 매우 소중하고 중요한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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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손으로 먹는 것은 후진만화가 아닌 감각과 감성을 일깨워 주는 문화적이고 과학적인 행위이다. 서울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손으로 파스타 먹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어느 식당이던 기회가 있을 땐 최대한 손을 사용해보라. 새우튀김의 바삭한 표면도 느껴보고, 빵이 나오면 손으로 죽 찢어서 냄새도 맡아보고. 소스 손가락에 슬쩍 찍어 맛도 보고. 손에 묻히고, 교양 없어 보이고 이런 거 신경쓰지 말고 손끝부터 음식을 진정으로 느끼며, 옆 사람과 정도 나누며 푹 음미해보길 바란다. 물론 손은 깨끗이 씻은 후에!

ps. 우리집에서도 어제 월남쌈을 해서 가운데 큰 그릇을 두고 서로 누가 더 
맛있게 쌌느니 자랑도 하고, 오손도손 서로 싸 주기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냄.


내가 커피를 처음 접했던 건 초등학교 때였다. 우리 외갓집 식구들은 매주 일요일마다 외할머니댁에 모여 점심을 먹었는데, 마무리는 꼭 설탕과 프림이 들어간 진한 믹스커피 한잔씩이었다. 물론 어른이 아니라는 이유로 내 잔을 따로 받지는 못했지만, 어른들이 챙겨드시는 이 갈색의 음료수의 맛이 너무 궁금한 나는 엄마에게 슬슬 졸라서 한모금씩 얻어마시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커피"를 내 돈주고 사마시기 시작했던 건 고등학교 때 스타벅스가 한창 유행할 때였다. 시골 산꼭대기 기숙사학교에 지내던 내 친구들과 나는 일주일에 한번씩만 다운타운에 나갈 수 있었고, 스타벅스에서 달디단 프라푸치노와 카라멜 마끼아또를 손에 들고 우리가 벌써 멋진 대도시의 대학생이 된 것처럼 분위기를 내곤 했다. 


"쓰디쓴" 원두커피를 처음 접했던 것 유학생활 중 잠시 한국에 들어와 있을 때였다. 한동안 커피를 배우시던 엄마를 좇아 따라간 곳은 청담동의 커피미학. 너무나 다양한 커피잔들과 기구들, 그리고 나를 압도했던 그윽하면서도 강한 커피향기. 엄마가 커피를 배울 때 나는 옆 의자에 걸터앉아 그 신기한 광경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도 세잔의 다른 커피를 얻어마셨으나 입안에 느껴지는 맛은 씁쓸함밖에 없었다. 

대학교 진학 후 언제부턴가 나는 커피를 끊기로 결심했다. 아마 카페인에 대한 우려와 커피 한잔이면 아프리카 어린이들 몇십명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등의 캠페인으로 의한 커피는 사치다, 라는 아이디어 때문이었던 듯. 그렇게 3년 넘게 커피를 마시지 않다가, 커피 중독인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커피를 다시 마시게 되고, 커피머신이 바로 옆자리에 있는 회사에 취직해 일하다 보니 다시 one-cup-a-day로 전환. 그렇지만 여전히 커피를 맛으로 먹기보단 잠깨려고 마시기 일쑤.


어느 주말, 친구가 나를 홍대에 있는 한 커피집으로 끌고 갔다. 커피와 사람들이라는 커피전문점. 무뚝뚝하게 생긴 아저씨분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분주하게 커피를 내리고 계셨고, 말로만 듣던 사이폰 등 다양한 기구가 즐비했다. 메뉴에는 원산지별로 표기된 커피종류들이 빼곡했고, 난 친구가 골라주는대로 한잔을 시켰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내 앞에 심플한 블랙커피 한잔이 놓여졌고, 난 별 생각없이 커피잔을 입에다 갖다대었다. 

어라, 이 좋은 향기. 한모금을 얼른 넘겼다. 대형커피점에서 으레 아메리카노에 입을 데이기 일쑤여서 아차 하는 순간, 너무나 기분좋은 따끈한 온도의 커피가 상쾌하게 입안으로 퍼졌다. 저절로 씩 미소가 지어지는 이 만족감. 마지막 한모금까지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커피를 마셨다. 

그 후 나는 "좋은" 커피, 즉 커피를 정말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정성을 들여 다룬 커피를 찾아다니게 되었다. 결국 여러곳을 돌아다니다가 핸드드립 기물까지 사는 만행(?)을 저지름.


사고 나서 계속 물따르기 연습만 하다가 어제 드디어 단골집인 가배두림의 사장님과 바리스타님의 날카로운 시선아래 실제 원두를 놓고 처음 물을 내려봤다. 그런데 완전 긴장했는지 가늘게 물줄기를 정가운데에 내려야 하는데 1cm 넘는 굵은 물줄기 콸콸. 직접 물이 닿아서는 안되는 필터에 막 부어주고. 주전자를 돌릴 때마다 물줄기는 삐뚤빼뚤, 확확 튀어나갈때마다 "어이쿠!" "어이쿠!" 하고 추임새 넣어주시는 사장님과 바리스타님. 

땀났다.

사장님이 내려주신 은근한 신맛과 군고구마향은 찾기 힘들고 쓴맛과 레몬처럼 시디신 시큼함이 느껴졌다. 집에 가서 원두값 아깝지 않을때까지 연습하라는 숙제. 마침 원하는 원두가 떨어져 로스팅 과정을 구경할 좋은 기회가 생겼다.

우선 생두 구경하기. 살짝의 비릿함.

원두 중에는 결점두라 하여 구멍이 나거나, 깨지거나 등등의 골라내줘야 하는 녀석들이 있다. 손으로 하나하나 봐가며 우선 이런 아이들을 찾는 작업을 해준다.

오른쪽 하단에 보면 찌그러진 녀석이 보이시나? 

예쁜 아이들을 골라 로스팅 준비 완료! 참고로 아래 저 빤듯하니 예쁜 원두는 브라질 산토스. 위에 나온 원두는 탄자니아 킬라만자로. 모양, 색, 크기 등에 다 차이가 조금씩, 혹은 눈에 확 띌 정도로 있다.

예열된 로스터에 원두를 쏟아붓는다. 작은 창으로 색이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중간에 몇 알씩 빼보아 정확한 색과 향기 확인.

자, 이제 푸릇푸릇한 원두가 깊은 갈색으로 변하는 과정 잠시 감상.

로스팅이 다 되었으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입구를 열어 와르르 투하!

로스터 옆에 달린 유리병에는 생두에 붙어있던 은피라는 얇은 막들이 벗겨져 가득하다. 왼쪽은 로스팅 시작하기 전 비어있는 유리병. 원두들이 로스팅이 되며 열이 가해져 팽창할때 이 은피들이 벗겨진다. 한마디로 원두가 허물벗는 작업이랄까 -.-?


너무나 예쁘게 볶아진 원두.

로스팅 날짜를 표기한 병에 소복히 담겨진다.

연습용 원두를 갈아주시는 사장님. 원두값 해야할텐데 흑흑.

집에 와서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연습해보기로 했다. 물을 끓이고, 필터를 접고, 서버와 컵을 데워놓고. 사온 원두를 필터에 정확히 20g을 담아주었다. 심호흡을 하고 물을 따르기 시작했는데, 아까 한 연습때문인지 좀 더 안정적으로 물줄기가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흥분하면 또 막나갈까봐 애써 진정하며 추출완료. 

맛은 아까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었다. 쓰거나 시거나 튀는 맛보다는 전체적으로 좀 더 균형이 맞으며 부드러운 느낌. 그러나 초반에 필터에 물이 조금 직접 닿았더니 살짝 싱거운. 속상했지만 역시 요리와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내공을 그대로 보여주는, 운이나 잔꾀가 통하지 않는 정직함에 안도했다. 그래야 정진해서 열심히 하고 그만큼 더 보람을 느낄테니 말이다! :)


그나저나 내가 핸드드립에 빠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필터에 담긴 저 반짝거리는 젖은 커피가루. 물을 소복히 부어 거품이 일어나다 부드럽게 사그라지며 물이 빠질 때 마치 바닷가에 있는 착각이 든다. 모래사장에 맨발로 서 있으면 파도가 들어왔다 거품이 일며 부드럽게 물이 빠지며 모래가 반짝거리는 풍경, 딱 그 느낌.  저렇게 검은 모래도 어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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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은 말복에다가 정말 정말 더웠으나 이벤트 당첨되신 분들에게 선물을 얼른 보내드려야 하기에 일을 크게 벌인 자신을 2초 원망하고 주말 베이킹에 돌입했다. 원래는 두세가지만 만들려 했으나 메뉴를 짜다보니 내 결단력 부족으로 여섯가지 아래로 줄이는데 실패. 한번에 세가지 정도는 만들어봤어도 여섯가지는 처음이라 막상 팔을 걷어부치면서도 설마 할 수 있을까, 했는데 어라, 하다보니 부엌 초토화 시키지 않고 대강 잘 끝냈다.

그리고 물론 대량생산 이후에 돌릴때의 뿌듯함과 즐거움. 항상 베이킹 선물을 할 때마다 느끼지만 아무리 많이 한다고 해도 포장할때면 너무나 부족한 느낌. 여튼 아직 배울 것이 더 많은 부족한 실력이지만 대신 유정란, 유기농 과일, 특히 국내생산 제품을 많이 사용하려 애썼다. 일회용품 포장대신 계속 사용하실 수 있는 플라스틱 박스에 포장하고. 당첨되신 분들중에는 혜라님처럼 푸드스타일리스트도 계셔서 부족한 면을 메꾸려 재료도 더 세심히 고르고 위생에도 더 신경쓰게 된 것 같다. 다행히 맘 먹은대로 다들 괜찮게 완성되었고 나 자신도 하면서 또 많이 배운 주말.

아 이렇게 자꾸 주절주절 쓰니 무슨 초등학생 때 일기쓰는 기분...그럼 토요일과 일요일의 현장스케치 사진 고고!

제대로 하는 법을 참고해 더욱 더 깨끗하게 제스트 준비.

레몬바를 위한 버터와 설탕도 크림화 하고.
CIA의 교과서를 참고로 하니 역시나 잘 됨.

준비된 레몬제스트와 민둥민둥해진 레몬들.

1차 굽기가 완료된 비스코티 반죽. 팬 옆으로 마구 흘러넘침 -.- 

식히는 동안 짜준 딸기머랭 반죽 작업. 날씨가 더워 초스피드로 짰더니 모양이 들쭉날쭉.

식은 비스코티 자르기. 아몬드 듬뿍. 잠깐 일렬로 세워놓고 찰칵!

2차 굽기 완료된 녀석들. 오렌지를 넣었더니 색이 오렌지스러운(아 표현력 부족)

밤새 온도에서 저온으로 말려진 딸기 머랭. 역시 아침햇살이 색이 이쁘다는.

가또쇼콜라 응용해 본 녹차화이트브라우니. 저 뽀얀 흰자 으크크.

Before 앤드 After. 거칠어진 피부? -.- 
흰자 열심히 올렸더니 아주 빠방히 잘 부풀어줬다!

녹차가 구워지는 동안 가또 쇼콜라도 반죽. 돌려돌려 잘 섞어주기.

역시나 푹 꺼짐. 아 보들보들. 

지인이 뉴욕 MoMA에서 사다준 초깜찍발랄 거품기. 이번에 처음 써 봤는데 아주 좋음!

피넛버터 바나나 쿠키. 포크로 자국내주는 것이 포인트 ;)

포장하려 포개놓은 쿠키들. 잠깐 한 컷.

이건 고소하고 부드러운 버터 크러스트와 상큼한 레몬 커스터드가 잘 어울리는 레몬 바. 
레몬이 다섯개나 들어갔어요!

포장하는 와중 한 컷.

이렇게 포장되어 오늘 아침에 다다다 배달!

바빴지만 베이킹에 푹 빠질 수 있었던 정말정말 즐겁고 행복했던 주말! 블로그 놀러와 주시는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곧 다시 이벤트할 기회를 마련하겠습니다 :D

ps. 그나저나 난 편의점에 그렇게 편한 택배서비스가 있는 줄 절대 모르고 있었다. 완전 강추.


이전 포스팅을 하면서 한두번 언급했던 글이 하나 있는데, 저번 바나나에 관해 쓰다가 나의 부족한 글솜씨로는 못 미더워 이 참에 이찬웅님이 한겨레 21에 게재하신 칼럼 <칡과 커피>라는 글의 전문을 공유해 드린다. 내가 여태까지 살면서 읽어왔던 글들 중 법륜스님의 주례사와 함께 제일 아끼는 또 하나의 글인데, 처음 읽고 난 후 내 삶의 방향을 깨닫게 된, 매우 소중한 글이다. 

그럼, ENJOY!

칡과 커피

이찬웅 프랑스 리옹고등사범학교 철학박사과정
(한겨레 21 2009년 8월 3일자, page 96)

아버지의 전근을 따라 입학했던 초등학교는 산속 작은 학교였다. 조그마한 학생들이 걸어서 등교했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오기도 했고, 산속에 나 있는 작은 길들을 헤치고 오기도 했다. 엄청나게 먼 길을 걸어서 오는 친구도 있었다. 소풍날 오전 내내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저기가 우리 동네라고 누군가 말해 깜짝 놀랐다.

감성은 지성과 대립하지 않는다

한번은 친구들한테서 학교 뒷산에 가는데 따라오라는 ‘초대’를 받았다. 예닐곱 명쯤 익숙한 자세로 나뭇잎을 살피면서 산속으로 올랐다. 그러다가 멈춰서서, 들고 온 곡괭이로 뭔가 캐내기 시작했다. 땅속에도 씹을 만한 게 자란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칡이었다. 어떤 칡은 그냥 버렸다. 칡에도 종류가 있는데, 씹으면 정말 밥맛이 나는 밥칡이 있고, 딱딱하기만 한 나무칡이 있다는 것이었다. 신기한 것은, 친구들은 겉모양만 보고도 단번에 그것들을 구분해내는 것이었다. 몇 번을 더 따라다니면서, 나도 그걸 구분해보려고 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그것은 쉽게 얻어지는 능력이 아니었다. 그 능력 덕택에 친구들은 나뭇잎에서 땅 밑으로 이어지는 선을 감각하고 있었다.

감각은 우주를 구성하는 많은 선들을 따라가게 하는 능력이다. 그 점에서 감성은 지성과 대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필요로 하며, 서로의 도움을 받아 그 선을 추적하게 한다. 감성이 멈춘 곳에서 지성은 감성을 실어나른다. 예를 들어 선물받은 초콜릿은 그저 달콤할 뿐이지만, 그 맛이 실제로 어떻게 얻어지는지는 ‘초콜릿은 천국의 맛이겠죠’와 같은 기사 덕분에 알게 된다. 초콜릿이 이제 마냥 달콤하지 않다면, 그것은 그것에 연결돼 있는 선들을 타고 새로운 진동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맛의 이름은 이제 ‘달콤하기도 하고 쓰기도 하고’쯤 될까. 그 맛을 느낀다면 뭔가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협력 안에서 감성이 지성보다 우월한 것은, 그것이 ‘지금 바로 여기’의 경험에 와닿는 선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각만으로 그 선을 충분히 추적할 수는 없지만, 감각이 없다면 시작조차 할 수 없다. 감성에는 취향의 정교화와 다양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그 자체로 좋다기보다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 안에서 좋은 출발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예민한 감성을 갖지 않는다면, 20년 전에 읽은 책으로 여전히 세계를 설명하는 지성의 나태함에 빠지기 쉽다. 결국 문제는 감성과 지성 사이의 대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감성과 좋은 지성을 함께 갖는 데 있다.

커피는 브라질·콜롬비아 어느 고장의 것이다. 뛰어난 감성은 그곳에 가닿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은 것은 상품화 때문이다. 상품화는 이익을 내기 위해 선을 분절한다. 재배와 소비는 직접 연결되지 않고, 농장·하청·착취·수입·유통·광고·판매·할인 등으로 조각난 단계를 거쳐 연결된다. 원두커피를 매장 테이블에 늘어놓고 원주민들의 사진을 원용하면서 조각난 선을 상상적으로 연결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실제가 아니다. 분절된 연쇄의 끝에 대도시가 있고, 도시는 상품의 출력 단자로 포위된다. 그에 맞춰 소비자의 감각은 입력에 반응하는 단말기에 가까워진다. 이런 경우 단말기가 아무리 정교해지고 복잡해지더라도, 그것은 감성의 수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상품화의 조각, 산속의 등굣길

감성은 지성만큼이나 개체에서 세계로 뻗어나가는 능력이다. 좋은 감성은 입 안에서 커피의 열두 가지 맛을 식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뭇잎을 뒤지며 칡의 종류를 구분했던 친구들의 능력 속에 있다. 산속으로 나 있는 기나긴 등굣길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처럼, 좋은 감성은 지성의 도움을 통해 분절된 세계의 선을 복원해나가는 데 있다. 오늘날 그것은 특별히 어렵다.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치타마냥 저렇게 진한 갈색의 반점이 다다닥 박힌 바나나를 보면 난 본능적으로 오븐 돌릴 생각을 한다. 우리 회사에 들어오는 바나나들도 가끔 제때 먹히지 못해 치타로 변신하는데, 항상 쇼핑백에 가득담아 집에 가져오기 일쑤. 지하철을 타고 오는 내내 달콤한 냄새가 날 정도로 강력한 향기의 파워를 자랑하는 바나나, 다양한 영양소에 요리며 베이킹이며 즐거운 응용이 가능한 훌륭한 지구의 선물인데, 주변에 먹기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

얼마전 화제가 된 법원 판결이 있었는데, 바나나 등 다양한 과일유통기업인 Dole 회사 소유의 남미 바나나 농장에서 일한 직원 둘이 농장에서 사용되는 농약때문에 불임이 되었다는 2007년 판결을 얼마전 7월 판사가 무효로 하며 뒤엎은 것이다. 서로 증인을 매수했다는 등의 소문과 함께 진상규명에 서로 열을 올리는 상황인데, 이는 그동안 바나나 농장과 농약에 대한 수많은 논란과 소문들이 아직까지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가끔씩 주변에서 바나나는 수확후 방부제에 담가 놓는다던가, 농약 범벅을 해 수입한다는 등의 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려 바나나를 먹는데에 불안감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바나나 뿐 아니라, 세계 농산물 시장이 점점 글로벌화 되면서, 내가 먹고 있는 과일이나 채소가 어느 원산지에서 어떤 농작 및 유통과정을 거치는지 쉽게 알기가 어렵게 되었다. 게다가 소비자들이 기대하는 상품은 모양과 크기가 동일하고, 상한 구석 절대 없는 완벽한 사과 한 상자이기 때문에 슈퍼나 과일가게에 도착하기 전까지 상당히 많은 '제조'과정을 거치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대해 소비자들은 대부분 무지하며, 사과 한 쪽을 깎아먹을 때 머릿속에 그려지는 장면은 나무에 실하게 영글은 큼직하고 빨간 사과, 농협 광고에서나 볼만한 땀방울 쭉 씽긋 미소를 지어주시는 농부 아저씨의 웃는 얼굴 정도가 대부분일 것이다. 우리 농산물을 사랑해요! 라는 구호를 외치는 랜덤한 마스코트 하나와 뒤로 울려퍼지는 신나는 빠밤바 노래 등은 보너스.

농사가 즐거워요 으흐흐
<출처 - http://www.npc.gov.cn>

대신 이런 장면들을 상상해봤나? 고요한 사과나무들 옆으로 가끔 웅웅대며 차들이 왔다갔다 하고, 농약이 칙 뿌려지고, 사과가 나뭇잎과 흙 등 이물질이 뭍은 채로 공장으로 실려가 커다란 물탱크에 담겨 둥실둥실 떠다니고,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차디찬 금속 기계들을 통해 크기가 걸러지고 포장이 된다. 

2005년 Our Daily Bread라는 제목의 독일 영화가 하나 출시되었다. 아무 나레이션 없이 조용히, 말없이 세계 곳곳의 농장, 식품 회사등을 지켜본다. 이 영화가 얘기하려자 하는 포인트는 딱 하나, 이것이 당신이 상상하던 모습인가? 아래 이미지들을 보면 따뜻한 농부의 미소는 커녕 차가움과 이질감만이 가득하다.

<출처 - http://30gms.com>

우리가 이질감을 느끼는 이유는 익숙하지 않고 상상하지 못했던 장면들이기 때문이다. 필리핀에서 무럭무럭 노랗게 익은 바나나들이 주렁주렁 달린 울창한 숲과 원숭이들(응?), 그리고 수확된 다음날 한국에 오겠거니, 라는 막연한 컨셉을 가지고 있는 것이 대부분. 때문에 바나나가 들어오는데 농약 한 가득 뿌린다더라, 시퍼런 날것 상태로 수확해 나중에 가스로 익힌다더라, 하는 얘기를 들으면 놀라 어머머,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먹으면 안되겠네! 라는 감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인터넷이 정보의 주요 유통경로가 되면서 극단적인 정보들이 많이 돌아다니며, 이를 무조건 다 믿어서는 곤란하다. 바나나 농장이 농약을 사용하는 것은 사실이다(많은 농산물처럼). 그리고 15일여간의 기간을 거쳐 수입되면 에틸렌이란 가스로 노랗게 익힌다. 그렇지만 국제기관이나 각 나라에는 계속해서 시정해 나가는 수입 농산물 농약 허용치 등의 법도 엄연히 존재한다. 재배국가에서 농약에 풍덩 담그던 말던 무조건 수입이 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이 기준치들은 대충 때려 적어넣은 숫자들이 아니라 실험과 테스트들이 반영된 수치이다(참고로 에틸렌은 농약이 아니라 일반 과일들이 자연적으로 내뿜는 가스의 하나). 그리고 바나나농장의 환경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나가려는 기관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뭐, 여튼저튼 농약이 조금이라도 사용되는 농산물은 절대 금하고 바나나를 안 먹기로 결심했다 치자.그렇지만 사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살고 있다면 서울 근교로 옮기고 먹거리에 좀 더 의연해지는 것이 그대의 100년살기 목표에 더 좋을 수도 있다. 또한 그대의 육체적 건강 외에도 바나나 한 개와 엮인 '나비효과'는 그 이상이다. 바나나 농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건강. 그들의 경제적 독립. 바나나 농작과 유통이 지구의 환경에 미치는 영향. 

단순히 농약사용이나 유전자조작을 했다는 말에 어머나! 할 것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먹거리 그 이상으로 농작과 유통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뉴스와 관련 기관들의 업데이트에 귀를 기울이고 좀 더 배우려는 이성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나 소비자 한 사람의 선택은 모여모여 큰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결론? 바나나농장 근로자들을 위해 농약 사용이 지속적으로 줄었으면 좋겠고 나는 바나나를 너무 사랑하고 이왕이면 제주바나나로 계속 섭취예정. 그대의 선택은?

계속 바나나를 드실 분들은 아래 나의 막강레시피인 설겆이가 필요없는 바나나 브레드 레시피 참고!


사실 뭐 설거지는 나온다만, 믹싱보울 단 한개! 그렇다! 단 한개만 필요하고 크림화나 휘핑도 필요없고 거기다 맛도 포기하지 않은 최고의 레시피! 

바나나 3-4개 
녹인 버터 1/3컵
설탕 3/4컵
달걀 1개
바닐라 1 teaspoon
베이킹소다 1 teaspoon
소금 1/2 teaspoon
시나몬, 넛멕, 클로브 등 약간씩 기호에 맞춰
중력분이나 박력분 180g (1 1/2컵)
  • 섭씨 180도로 예열. 
  • 믹싱보울에 바나나를 으깬다. 여기에 버터를 넣는다. 여기에 설탕, 달걀, 바닐라와 향신료 넣고 섞는다. 여기에 베이킹 소다와 소금을 넣고 섞는다. 마지막으로 밀가루를 넣고 섞어준다. 견과류나 초콜렛칩 넣고 싶으면 마지막에 스르륵. 
    *요약 버전 : 바나나 + 버터 + 설탕/달걀/바닐라/향신료 + 베이킹소다/소금 + 밀가루
  • 원하는 틀에 넣고 찔러봐서 묻어나오지 않을때까지 구워준다.

아 진짜 심각하게 간단하지 않은가? 미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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