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단상

실전도 배울 것이 그득하지만, 마음과 머리로 배워야 할 것도 참으로나 많다. 읽자 느끼자 배우자.

아래 글은 (제가) 부끄럽게도 저와 같은 필명의 푸디(foodi2)를 사용하시는 황교익님의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꼭 한번씩 읽어보세요 - 최소한 빨간색으로 표시한 부분이라도. 황교익님의 해당 블로그 포스트 링크는 http://foodi2.blog.me/30128375451입니다.

고기와 관련한 몇 가지 상념 (김영수)

 

특이한 직업, 축산물 등급판정사

 

축산물 등급판정사는 도축한 소, 돼지 도체를 육량, 육질에 따라 등급을 날인하고 기록하는 일을 한다. 축산법에 근거해 생긴 지 10년도 안되니 비교적 새 직종이고, 실제 근무 인원수가 200여명으로 한정되어 있으며 지방의 외진 도축장에 파견 근무를 하니 희귀한 직업이라는 말이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겉모양에 치우쳐 생각할수록 세상은 서로 고립되어 보이기 마련이다. 국내에서 2000년도에 도축한 소의 99.5%, 돼지 89%가 등급판정사의 손을 거쳐 식탁에 오른 사실을 돌이켜 볼 때, 부지불식간에 세상은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이 틀림없다.

 

세상의 이치가 풀 한 포기의 존재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에 동조하는 나는, 금을 찾아 엘도라도를 향하지 않고 연금술을 익혀 생활주변을 금덩이로 만들려는 야심가다. 도축장에 들어오는 가축들을 맞이하다 보면 소위 혐오시설인 도축장에서 생산된 고기가 귀하고 귀한 입으로 들어가는 모순도 목격하기도 하고, 떨어지는 소, 돼지값을 푸념하는 생산농가를 통해 허리띠 졸라매는 서민들의 신음을 들을 수도 있다. 요즘은 광우병이다, 구제역이다 지구촌과 발맞추고 있다. 부분과 전체의 오묘한 일치에 맛들인 나로서는 축산물등급판정사라는 직업이 남들처럼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다.

 

고기는 물의 과학

 

일본에서 물을 연구하는 한 과학자의 물 결정연구 발표가 장안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떠다놓은 물을 사랑한다고 반복해서 애정표현을 하면 하트모양의 결정으로 배열되고, 증오한다고 욕하면 결정이 흩어져 버린다고 하니, 푸른 물의 별, 지구의 생명을 잉태한 장본인답다. 사람이 90%정도의 수분으로 태어났다가 차츰 줄어 60%대로 최후를 맞는 걸 생각하니 인생이 흐르는 물과 같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하다. 흔하다는 이유만으로 공기의 중요성을 모르듯 물의 막강한 영향력을 잊고 살고 있다. 식품 속의 수분 변화와 상태가 식품의 품질에 결정적이란 사실이 가끔 나의 망각을 일깨우고 있다. 고기의 유통, 보관, 조리의 기본 원리가 고기 속의 수분을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이다. 수분의 조화에 따라 냉장육, 냉동육, 숙성육, 고급육, 저급육 등으로 편이 갈린다.

 

대부분의 물질은 얼어서 고체가 되면 부피가 줄고 비중이 높아지는데 물은 신비하게도 부피가 커지면서 가벼워진다. 지구상이 온통 얼음으로 뒤덮어도 물에 가라앉지 않고 떠서 물아래 생물에게 보온 담요 역할을 해서 생물이 얼어죽는 사태를 묵묵히 막고 있는 역할도 하지만 고기 속의 근육세포 내에서도 품질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언 고기(냉동육)에 있어서는 보존 기간을 늘리는 대신 조직을 파괴하여 품질을 저하시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얼 때는 표시가 안 나는데, 일단 조리를 위해 녹이는 순간 깨진 병에서 새는 음료수처럼 수분(육즙)이 흘러나와 각종 영양분이 손실되고 씹는 맛이 푸석한 저급 고기가 된다. 고기를 냉동시킬 때도 급속히 온도를 하강시켜야 얼음 알갱이의 크기를 최소화하여 근육조직이 덜 손상돼서 녹일 때 고기조직의 손상도 최소화할 수 있다. 녹일 때는 정반대로 최대한 얼음이 천천히 풀리도록 인내심을 가져야 손실을 줄일 수 있다.

 

얼음이 고기 조직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미생물도 번식하지 못하는 0℃근처의 찬물에서, 단백질 자체가 자기분해 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고기의 숙성이다. 운반이나 도축시에 스트레스를 받은 가축도 근육 속의 수분변화로 육질이 결정된다. 스트레스 받은 고기는 도축 후에 수분이 흘러나와 희멀건 색으로 물렁해지거나(돼지의 PSE육) 흑갈색으로 마르는(소의 DFD육) 저급육이 된다. 신선도와 고기의 씹는 맛을 좌우하는 것도 다름아닌 고기 속의 수분 함량(보수력)이다. 어느 한우 고급육 생산 농가의 사육자가 높은 등급 생산 출현율 비결을 귀뜸한 적이 있다. 심한 일교차와 먹이는 물이란다.

 

한우가 국제 경쟁력이 있을까

 

지금은 은퇴한 저명한 금속공학 박사님께서 우리 나라의 세계최초 금속활자의 가치를 모르는 국내의 척박한 문화수준을 한탄한 적이 있다. 금속의 물리적 특성상 금속활자 본이 균열이나 뒤틀림, 부식 없이 제조되고 인쇄의 압력을 이겨내는 기술은 그 당시나 지금이나 과학의 총결산이라고 한다. 또한 문화적 욕구(문화의 대량생산)에 의해 자생되었으니 그 정신적 깊이는 과학 기술력에 비할 수 없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도자기와 함께 활자술을 약탈해 갔던 일본은 비약적인 정신문화의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 우리 나라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창조국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물증이 부족하여 사회적 소산이 아니라 우연적 시도이고 실패한 인쇄술이라 판결돼 세계에서 공인받지 못한 상태다.

 

그에 반해, 독일의 구텐베르그 금속활자는 마을 전체를 유적지로 만들어 자국 문화와 근대 중화학 공업의 자부심으로 승화되어 강국독일이 되었다는데 그 박사님은 울분을 느끼고 군사 정부의 유력 인사들과 정부관계자에게 문화재 발굴을 건의했는데, 한마디로 묵살당했다고 한다. 마침 아는 일본인이 임진왜란 때 약탈해간 조선의 여러 금속활자 유물과 자료의 정보를 약속했었는데 이런 한국 정부의 반응을 전하자 그 일본인은 한국의 문화인식 수준에 혀를 끌끌 차며 없었던 일로 되돌렸다 한다. 한 푸대의 비료와 한 푼의 엔화가 아쉬운데 지난날의 쇳덩어리들이 대수냐는 위정자들의 생각을 시대 탓으로 돌리기엔 너무나 안타까운 순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과거의 위정자들의 흘러간 얘기가 아니다. 가치관이 온통 돈이나 물질로 집중되어 문화를 통한 행복을 즐기는 것에 낯설어하는 세태는 현재의 일반인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3차 산업 즉, 서비스업이라고 영역을 따로 분류하던 시대는 옛일이 되어서 특정 영역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예술, 영화, 서비스, 소프트웨어 등 인간의 모든 정신 활동을 문화라 통칭하고 있다. 세상은 무형적인 가치에 점점 더 열광하고 있다. 이미 문화의 세기가 도래했다는 호언이 더 이상 과장은 아니다. 장사가 물건을 파는 게 아니고 사람의 마음을 사는 거라 했다. 사람이 고기를 먹을 때는 자동차가 기름을 마시듯 위장으로 퍼붓는 것이 아니다. 조리기술과 전통이 있고 마주 앉아 먹는 분위기가 있으며 그것을 즐기는 인간의 정신이 동반되는 법이다. 에펠탑에서 마시는 포도주나 남산에서 마시는 포도주나 같은 상표 같은 원액임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그 큰 차이에서 문화의 힘을 볼 수 있다.

 

그러면 한우의 상품가치는 과연 어느 정도인가. 소고기의 맛을 좌우하는 올레인산(단일 불포화지방산의 일종)의 함량이 외국산 소보다 월등한 한우는 체구가 작아 고기가 부드럽다(체중과 초원에서 방목하는 운동량과 고기의 근섬유의 두께는 비례함). 온도차가 큰 지역의 사과가 맛있듯이 뚜렷한 사계절은 가축의 생체에도 큰 영향을 미쳐, 영양이 부족한 혹독한 겨울을 견디기 위해 뼈와 고기에 영양저장능력을 극대화시킨다. 뼈에서 뽀얀 국물이 나고, 등심의 근내지방도를 측정하는 등급판정에서 높은 등급을 얻을 수 있는 사육조건이 된다. 특히 일하는 소 출신인 한우의 뼈는 수입상들이 대체할 수 없는 귀중한 품목으로 양질의 무기질 공급원으로써 우리 나라 탕국 문화의 근간을 이룰 정도로 명성이 높다. 내장 요리는 신선도가 맛을 좌우하기 때문에 저가의 수입 냉동제품은 설움을 피할 수 없다.

 

경제논리에서는 원가가 낮은 쪽으로 부가 흘렀지만, 앞으로의 지구촌은 문화(심미적, 예술적)가치가 척도가 되어 (심미안)깊은 문화 쪽으로 기울어질 건 뻔하다. 생산 원가가 유일한 경쟁력이라는 생각은 옷의 가격이 옷의 크기나 무게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는 고집과 같다. 고기 가격이 저울의 눈금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생각은 서양 장사꾼들에게 세뇌당한 후유증이 아닌가 한다. 패스트푸드와 저가의 대량생산이 시대의 주류이지만 유일한 방법이 아니며 오히려 고급요리에 격이 맞는 고급육으로서 한우가 차별화될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한우의 국제 경쟁력은 한우생산 농가의 생산원가 경쟁력보다 외국인이 동경할 만한 우리 음식문화의 수준에 달려 있다.

 

문제와 해답은 오묘하게도 항상 내부에 서로 등을 맞대고 있다. 한식이라고 있지만 적어도 식육요리에 관한 한 초근목피 시절의 궁중요리, 부패방지를 위한 탕이나 장조림 등의 방부요리, 저급인 육질을 보완하기 위한 불고기 등의 양념요리 위주다. 최근 인삼 등을 곁들인 보양요리도 본 적이 있지만 고기의 특성을 최대로 살리는 냉장, 숙성과 고급 부분육 판매라는 요즘 유통관행에도 훨씬 못 미친다. 나는 한우를 지키자는 구호가 못마땅한데, 한국인만의 음식과 한국인의 문화로만 제한하려는 국수주의적 발상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

 

맛은 세계인의 언어이다. 세계인의 입맛을 겨냥한 한우 특유의 요리와 문화를 개발해서 ‘원산지 한국’이란 상표가 따라다니게끔 하는 것이 진정한 한식이 아닐까 한다. 일본 화우(和牛)의 고급육 특성을 살려 발빠르게 소고기 샤브샤브란 음식을 만든 일본을 감정적으로만 지지고 볶을 일이 아니다. 온 국토를 문화유적지로 만들려는 유럽선진국은 과분한 언감생심일지라도, 내 기억으로 제작 원가 20달러도 안 되는 트로피로 아카데미상을 만들어 몇 곱절 비싸게 영화를 팔아먹는 미국의 상술이 부럽기까지 하다. 조금 더 급진적인 요리의 전사들이 필요하다고 본다.

 

신선과 부패, 그 사이 (숙성육 Ⅰ)

 

축산물 등급판정사 수습직원으로 도축장에 견학 갔다가 소가 도축되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죽음을 예감했는지 큰 눈을 희번득거리다, 드디어 이마에 날카로운 총소리와 함께 육중한 덩치가 둔탁하게 주저앉고 말았다. 소는 죽었다. 그러나 배를 가르자 제각기 꿈틀대고 박동하고 있는 오장육부와 근육을 보고 있으니 무엇이 죽었다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모든 자연물에 생명력이 있다는 범신(汎神)론이나 물활(物活)론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았다. 뼈에서 분리된 고기 덩어리는 근육의 기능을 잃었으므로 죽어야 한다. 그러나 근육세포는 사람의 고정관념을 아랑곳 않고 외부의 침입 세포와 팽팽히 겨루고 있는 상태다. 균형이 기울어 침입자들이 번성하기 시작해야 비로소 근육세포의 죽음 즉, 부패가 시작되고 만다. 자연의 입장에서 죽음이란 건 단지 상대적이다. 단지 형태만 달리해 순환하는 것뿐인데 인간은 이런 저런 편애로 생사를 가르고 있는지 모른다. 생과 사(부패) 그 사이에 숙성의 존재가 그 증거다.

 

생체외부의 유해 세균 오염과 번식(부패)을 차단하여 유산균 등의 유익한 미생물을 성장시키거나, 아예 모든 미생물 번식을 저지하여 자체 붕괴된 단백질을 만들어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기술이 육류의 숙성이다(전문용어로 ‘단백질의 자기소화 과정’이라 한다). 김장김치를 비롯한 장류, 젓갈, 과실주, 짚으로 썩힌 홍어를 비롯해 둘러보면 숙성식품은 의외로 널리 애용되고 있다. 소나 돼지고기, 우유 등 가축 육류의 숙성을 제외하면 우리 나라는 숙성식품의 종주국으로서 손색이 없다. 주식이 육류인 서양인들의 지혜가 건너온 우유숙성식품인 치즈가 의심 없이 할인점에 쌓여있듯, 냉장시설이 발달된 요즘, 소, 돼지고기의 숙성육이 한국에서 대중화는 시간문제다.

 

한우가 호텔 레스토랑에서 문전박대 당하던 이유(숙성육 Ⅱ)

 

고급 호텔 레스토랑에서 부드러운 소고기 스테이크 재료로 하나같이 수입육 등심과 안심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입 소고기 중에 고급 부위인 등심과 안심은 외국(원산지)에서 0℃ 전후로 냉장 진공 포장되어 비행기로 공수되는 동안 자동 숙성돼서 국내에 반입되거나, 국내에 수입된 냉동 고급부위를 녹여 가공해서 숙성 처리하여 조리된다. 한우가 수입육보다 육질이 고급이지만 고급요리인 스테이크에 부적합하다는 예전에 호텔 측의 이유는, 한우의 육질 규격이 고르지 못하고 유통과정의 위생이 불량하고 냉장 기술이 부족해 숙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육류의 숙성은 보이지 않는 미생물과의 싸움이다. 유통과정에서 일정 수준이상 미생물이 오염된 고기는 미생물이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해서 숙성되지 않고(정확히 말해 매우 짧은 시간 동안만 숙성) 부패되어 버린다. 도축에서 발골, 포장, 판매 등 모든 유통단계에서 미생물의 오염(전문용어로 미생물의 초기 오염도라 함)을 막는 위생관리가 핵심이다. 미생물의 생육을 막으면서 고기를 얼리지 않기 위해 보통 0℃ 전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저온숙성 냉장기술과 오염을 막고 지방의 산패를 방지하기 위해 진공포장이 필요하다. 이중 하나라도 소홀히 되면 마치 과실주가 익지 못하고 식초가 되거나 썩는 것처럼 된다. 이처럼 식품가공 기술이 망라되고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숙성육을 고집하는 이유는 미생물의 도움 없이 카뎁신이라는 자체 효소의 작용으로 단백질이 자기 소화되어 육질이 부드러우며, 새로운 풍미를 내고, 소화가 잘되는 고부가가치 고급식품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축산물 등급판정제도가 정착되어 등급별, 부위별 구매가 성행하고 있다. ‘위해요소중점관리제도(HACCP)’가 국책 사업으로 시행되면서 식품위생이 선진국 수준에 달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얼리지 않는 고기(냉장육)가 선호되면서 냉장기술도 급격히 발전됐다. 실제 숙성육을 이용하는 앞서가는 업소들도 늘고 있다. 수입육보다 한 수위인 한우 고급육으로 고급 숙성 요리가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숙성육=수입육’ 고정관념도 깨질 만한데 호텔 레스토랑에서는 기존의 이유를 고집하고 있다. 고급음식점에서 조리재료원가의 비중이 미미한 것을 고려할 때, 고급재료(한우)로 만든 고급음식이 고가로 고급식당에 오르지 못한 것은 아무리 뒤집어 생각해보아도 사람들 탓이 아닌가 한다. 최고급 스테이크를 먹으러 호텔 레스토랑에 간 고객이 한우보다 하등 재료로 조리한 스테이크의 연유를 다그치지 않고, 신기(神技)를 가진 최고의 조리사들이 최고급 재료로 개발한 최고급 스테이크를 권하지 않는 것이, 나는 못내 섭섭하다.

 

고기색의 변신도 무죄

 

쌍둥이도 세대 차가 난다는 요즘, 변해서 튀지 못하면 식물인간 취급을 받는다. 재미나게도 고기의 색깔도 시대를 탄다는 것이다. 냉동유통 시대에는 고기가 밝은 붉은 색일수록 신선하고 검은 색으로 가까이 갈수록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것이 주부 상식이었다. 예전에 정육점에서는 조명을 붉게 해서 붉은 색으로 위장하거나, 심지어 소에 물을 먹여 고기도 밝은 붉은 색을 띠게 하고 고기 무게도 늘리려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요즘같이 랩포장이나 진공포장이 등장한 냉장유통시대에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보통 신선한 쇠고기는 선명한 붉은 색(선홍색)을 띠고 돼지고기는 이보다 연한 붉은 색(담홍색)을 띤다. 그러나 공기(산소)중의 노출정도에 따라 고기는 분홍색에서 검붉은 색까지 변화무쌍하다. 다소 전문적으로 설명하자면, 고기의 붉은 색은 순전히 피 속의 미오글로빈이라는 철을 함유한 성분 때문인데 공기중의 산소와 결합해서 철이 녹스는 것처럼 붉은 색을 띠는 것이다. 접촉하는 산소의 양이 많아질수록 고기는 밝은 붉은 색을 띠고 랩 등으로 산소를 차단하면 검붉은 색이다가 다시 포장을 벗겨서 산소를 접하면 본래의 붉은 색으로 돌아간다.

 

식육문화가 발달하면서 앞으로의 유통체계는 동네 정육점을 벗어나, 등급과 중량별로 개별 진공 포장된 제품을 파는 슈퍼마켓이나 할인점으로 옮겨갈 것이 확실해지고 있다. 거기에다 고급육으로 겉이 마르고 끈적하며 거무티티한 색의 숙성육이 등장하기 시작하면 검은 육색의 고기는 표준육색이 될지도 모른다. 단, 예나 지금이나 돼지고기나 소고기가 조금이라도 녹색을 띤다면 부패한 증거로 미련 없이 내다 버려야 한다.
 

사람에 있어서 변화란 단지 시대를 따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교훈을 던져준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 주부수기가 떠오른다.

 

그 주부는 큰 탄광회사의 자재과에 근무하는 남자와 결혼해서 쇼핑을 즐기며 왕비 못지 않게 수년을 살아왔는데, 어느 날 남편 회사 자재과에 전화를 하게 되었단다. 몇 년을 근무하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회사에 찾아갔는데, 이빨과 눈만 하얗게 드러난 검은 얼굴의 광부들이 굴속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화이트칼라인 남편에 으쓱하며 스쳐 지나가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 자세히 보니 다름 아닌 자기 남편이었단다. 남편 모르게 집으로 돌아왔는데 두 다리가 공중에서 허우적거리는 느낌이랬다. 부창부수라 했던가. 더 대단한 것은, 처가와 자신을 속인 남편을 다그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도 그 주부는 남편이 하루하루 목숨걸고 번 돈을 흥청망청 쓰던 자신이 너무나 밉고 화가 났다고 했다. 남편의 자존심이 상할까봐 모르는 척하고 이를 악물고 생활 전선에서 고군분투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가게까지 마련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수년 전 탄광회사를 퇴직한 남편은 자기 마누라가 자신이 광부였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 주부가 남편의 검은 얼굴을 보는 순간, 아마도 모든 생각과 가치관 끝의 아득한 낭떠러지 밑으로 빨려 가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아, 이쯤 돼야 비로소 변화를 언급할 수 있지 않겠는가. 변화 역시 내면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이 든다. 앞뒤로 누울 자리를 보고, 손익 분기점을 점검하고, 남들의 반응과 환호를 상상하고, 후대의 자손까지 염려하는 속 깊은 고려와 발전하는 자신을 대견스러워 하며 변화를 음미하던 습관이, 그 주부 이야기 앞에서 아련한 신기루 같다.

 

그놈의 구제역, 광우병

 

한산한 암자에 참선을 하러 갔는데도 내 직업을 알아보는 사람들은 고기를 먹어도 되느냐며 대중매체에서 떠벌려 놓은 평결을 종결지으라고 안달이다. 정부가 발표한 것 이상 모르고, 죽을 사람은 어떻게든 죽지 않겠느냐고 준비한 너스레를 떤다. 시원치 않은 내 답변 뒤에는 채식하는 소를 고기 먹여 키워서 자연을 거스른 천벌이라고 이구 동성으로 혀를 찬다. 사실 나는 이때부터 기름을 부어 국가의 문제에서 인류의 문제로 화제를 번지게 한다. 식품의 유전자 조작을 시작하여, 식품 첨가물, 잔류농약 등 “천벌”들을 부추긴다. 자국의 이익을 내세워 광우병의 실체를 쉬쉬하다가 한방 먹은 유럽 언론들의 반성을, 한국의 언론들은 긴급 수입(?)하여 국내 발생 여부의 확인도 없이 동물사료 수입과 급여를 근거로 자랑스럽게 특종을 삼았다. 생산자 단체로부터 손해배상을 위협받자 급히 국가의 이익으로 논조를 바꾸고 입다물고 있어 카멜레온 성격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줏대도 지조도 없고 시청률과 구독률 상승을 위해 지역감정에 무임승차하고 충격보도를 일삼으며 정치권력의 편입과정으로 변질된 제도 언론이라고 통째로 싸잡기에는 미안하기도 하고 무리가 따르지만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솔직한 나의 강박관념이다.

 

천연 생균을 죽여서 만들지 않고 유전자 조작으로 저가 대량 생산된 요즘의 백신들이 아이들의 천식과 알레르기, 각종 난치병, 불치병의 원인이 된다는 연구발표를 신문 구석에서 찾아냈다. 돈벌이에 혈안이 된 사람들이 조작하는 마음이 문제이지 사실 유전자가 무슨 죄가 있는가. 떨어지는 기존의 대량생산의 이익률을 만회하기 위한 일명 “바이오 산업”의 대량 생산의 부작용은 굴뚝산업의 환경공해와 같은 저항도 거치지 않고 실험실에서 인체로 직접 침투할 거란 수많은 학자들의 경고가 무시되고 있다. 벤처다 뭐다 과학자들마저 돈벌이로 내몰리는 본격적인 자본주의 시대. 일반대중들은 생체 실험의 마루타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나는 정녕 비관주의자인가.

 

재료의 계절

요리단상 l 2012. 1. 14. 14:37
Seasonality라는 컨셉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건데, 계절성, 하니 어감이 좀 이상해서...

여튼 요새 미국에서 큰 유행중인 컨셉중 하나는 seasonal ingredients, 즉 계절음식, 계절재료이다. 재배와 저장 기술, 그리고 나라간의 수출입으로 인해 일년내내 볼 수 있는 농산물이 참으로 많아졌는데, 계절을 거슬러 재배한 과채소 대신 제철농산물만을 사용하는 아이디어다. 이 시스템에는 여러 장점들이 있다.


1. 우선 추운 날씨에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토마토보다는 뜨거운 한여름에 수확한 제철토마토가 값이 더 저렴하다. 수확량도 많고, 재배에 들어가는 비용이 더 적다.

2. "계절"이라는 것은 특정지역에만 적용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계절재료를 사용한다는 것은 바로 그 지역에서 나는 재료를 보통 얘기한다. 즉 운반하는데 사용되는 에너지가 훨씬 적다 = 환경적으로 더 이롭다.

3. 많은 농산물들은 재료들이 제대로 익기 전에 수확이 된다. 제일 큰 이유 중 하나는 잘 익은 과채소들은 장거리여행중 생채기가 나거나 썩을 확률이 매우 높아지며, 이는 바로 손실이기 때문. 그래서 나중에 인위적인 방법으로 익히거나......아니면 덜 익은 상태로 그냥 판매가 된다. 자고로 맛이 없다. 반대로 짧은 거리만을 이동하고 상대적으로 적은 물량을 생산하는 근처 농장들은 억지로 미리 수확할 필요가 없다. 


리옹 지역의 계절재료 가이드 <출처 - http://www.guardian.co.uk/>

무엇보다 이 계절재료의 컨셉은 음식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삶의 리듬에 들어맞는다. 유명하디 유명한 셰프 Daniel Boulud는 Letters to A Young Chef라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저술한다:

"Although we live in an age when you can pretty much get any ingredient you want each year round, for most of our history on this planet we have evolved to be hungry for foods in their season."

"Spring is the wakening earth, summer its sweet season, fall a time of ripeness. All of us, not just chefs, can't help but think this way. Seen in this light, ingredients connect us in the most basic way of the rhythm of the planet."


간략히 번역하자면, 요즘엔 웬만한 재료는 계절과 상관없이 365일 구할 수 있지만 인류 대부분의 역사를 보면 우리는 항상 제철음식을 원해왔으며, 봄은 생명이 깨어나는 계절, 여름은 성장의 계절, 가을은 여무는 계절이라는 것은 요리사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다. (한국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일수록 더하겠지만)

보스턴의 로컬 마켓. 겨울시즌이다. <출처 - http://www.boston.com/>

나는 이 문구를 읽고 무릎을 탁 쳤다. 요새야 일년내내 원하는 반찬을 먹기가 쉽지만, 길고 추운 겨울이후에 봄날씨와 벛꽃이 더 향긋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제철음식도 제철에 먹어야 더욱 더 그 기쁨과 맛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재료의 "철"에 둔감한 시대에 태어나고 살아온 나는 아직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여름의 복숭아, 봄나물 몇가지 정도가 거의 다라 공부중이다. 그리고 슈퍼에 가기보다는 근처 로컬 farmers 마켓을 이용중. 한달에 한번만 가도 매달 바뀌는 농산물들을 보며 공부가 된다. 

가장 큰 어려움은... 항상 원하는 재료를 구하는 편리함에 길들여지고 제한된 재료를 가지고 질리지 않게 다양한 요리를 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것. 저번에는 근처 농장 구경갔다가 당근, 고구마, 파스닙(parsnip), 감자를 왕창 가지고 와서 구워먹고 튀겨먹고 볶아먹고 삶아먹고 아주 난리를 치는 중 ㅋㅋ






 최근 제일 맛있게 먹은 건 오븐에 구워먹은 버전.

재료의 환상궁합

요리단상 l 2012. 1. 8. 10:02
재료들의 궁합을 맛과 전통/문화면에서 잘 이해하는 게 중요한데, Flavor Bible이나 Culinary Artistry란 책을 보다 보면 "Match made in heaven"이란 표현을 쓴다. 천생연분이란 얘기.

그 중 하나는 돼지와 김치 아닐까?(김치를 하나의 재료로 볼 순 없지만) 난 삼겹살보다 같은 불판에 굽는 김치와 마늘이 더 별미라 생각한다. 가끔 고깃집에서 종업원분이 불판 갈아주면서 애써 정성스레 구워놓은 마늘편이나 김치를 훅 가져가버릴때가 있는데 그럴때마다 가슴이 찢어짐.

오늘 저녁은 남은 김치 쫑쫑 썰어서 마늘편이랑 돼지기름에 슉 볶아 찬밥 투하. 돼지기름은 예전에 베이컨 구우며 남겨두었던 것. 여기에 진짜 삼겹살 몇 점과 참기름 살짝만 있었다면... 깻잎도... 


ps. 계란후라이 실력 좀 늘었다고 방심하다 노른자가 터졌다. ㅜㅜ 

초등학생 때였나, 친구와 친구 부모님과 스키장을 가던 어느 겨울날, 스키장 근처 한 밥집에 들어갔다. 나로썬 처음 접해보는 우거지국. 그 구수한 된장과 은은하게 느껴지는 배춧잎의 달달함이란...

이제 영하권에 접어들며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된 한 주, 우거지국 생각에 눈물지새다 갑자기 우거지와 시래기의 차이점이 궁금해졌다. 우선 사전적 의미부터.(출처는 네이트 국어사전)

우거지
[명사]
1. 푸성귀를 다듬을 때에 골라 놓은 겉대. 
2. 김장이나 젓갈 따위의 맨 위에 덮여 있는 품질이 낮은 부분. 

시래기
[명사]무청이나 배추의 잎을 말린 것. 새끼 따위로 엮어 말려서 보관하다가 볶거나 국을 끓이는 데 쓴다.

우거지와 시래기 둘 다 김장할 때 나오는 여분의 이파리들을 사용하는 것. 시래기를 말리기 전 삶는지 않는지는 좀 더 알아봐야 하겠고... 우거지는 2번 정의에 나오듯이 염장된 배춧잎인데, 냉장기술이 없던 옛날, 김치를 독에 보관했고, 추가적인 보관효과를 위해 소금을 두둑히 덮어두었다. 그런데 김치 바로 위에 소금을 얹으면 수분이 많은 김치에 그대로 일부 녹아내리고 염도가 컨트롤이 안되니 배추 겉잎으로 먼저 덮고 그 위에 소금을 올렸단다. 근데 김장 다 먹고 다면 이 겉잎들만 남는데, 소금으로 인해 자연히 염장이 되고 이를 물에 헹궈 요리에 사용.

요새처럼 딤채까지 있는 시대에는 굳이 우거지가 필요없기에 일부러 겉잎을 따로 모아 데치고 염장해서 우거지를 만들기도 하지만, 이렇게 버리는 이파리 하나 없이 몽땅 유용하게 쓰는 선조들의 지혜에 다시 한 번 감탄 'ㅁ' 

ps. 관련해서 에피소드 하나. 얼마전 수업에서 한 셰프가 데쳐 벗긴 토마토의 껍질을 멋진 가니쉬로 변신시키는 팁을 알려줬다. 왕짠돌이 프랑스 셰프가 가르쳐 준거라며 ㅋㅋㅋ 벗긴 토마토 껍질을 섭씨 120-30도의 아주 낮은 온도에서 서서히 말리면 투명한 다홍 유리조각처럼 멋드러지게 된다 :) "쓰레기"를 예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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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현상이지만, 요새처럼 인생 통틀어 이렇게 음식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먹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재밌는 게, 더 많이 알게 되면 될수록 한식에 대한 탐구심과 향수병이 커지는 거다. 

딱 1년전(신기하다 -ㅁ-) 내가 하고 싶은 요리는? 이란 포스팅을 올렸었다. 문화에 너무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조리기법과 재료사용을 하고 싶으며, 그렇지만 퓨전음식이란 간판을 달기는 싫은 그런 요리. 그렇지만 요새 슬슬 한식의 발전에 이바지해보자, 라는 무모한(?) 도전정신이 들고 있다. 

바로 그 계기는 맨하탄에서 시작.

크리스마스라 친구네 가족과 함께 보내기로 했는데 정신없어서 가져갈 파이도 못 만들었고, 에라 뉴욕 들렸다 가니 그냥 사가자는 계획. 이왕이면 한국적인 걸 사가는 게 좋을 것 같아 한인타운(정확히 하면 한인거리;)에 들렸는데.................참 암담했다. 뭐 완전 전통화과나 떡은 어차피 서울에도 때깔만 좋은 녀석들이 많으니 녹차롤케잌정도에서 쇼부를 볼 예정이었다. 그런데 차마 "PARIS BAGUETTE"가 찍혀있는 녹차롤을 사갈 수는 없었다.(이건 나중에 별개 포스팅으로 분개할 예정이지만 파리바게트 뉴욕점의 존재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물론 그들은 크리스마스라고 미리 주문받아 전날 열심히 대량생산한 케잌들을 번호표 받고 배분하는 중이었음) 

랩 씌운 스티로폼 포장의 떡(쌀 성분도 의심)을 사갈수도 없고, 그나마 한국스러운 이름의 고려당에서 파는 빵들은.....................................

누가 가스불과 후라이팬만 빌려줘도 깨강정스러운 것이라도 만들어 갔을터인데 ㅜㅜ

여튼 그때 랩포장떡과 전통화과 사이의 갭을 절실히 깨닫고 미국에서 뭐 해볼까, 하는 중, 한국정부의 진부하고도 진부한 한심한 한식 세계화 관련 글들을 읽으며 깨달았다. 한국에도 맛있는 한국음식이 없는 걸 말이다. 뭐 널리고 널린 백반집과 고깃집들, 비싼 고급한정식 집들은 많아도 정작 정말 좋은 재료와 정성으로 한식의 발전을 도모하는 음식점이 몇군데나 있던가? 

이태원에서 이스트빌리지 운영하고 계신 권셰프님의 블로그를 읽다보면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절히 느껴진다. 점점 빠른 서비스와 자극적인 맛을 찾고, 건조면+캔토마토+냉동해산물+조미료는 거뜬히 2만원 이상 지불하면서 칼국수가 만원이라면 생난리를 칠 소비자들과 기반이 흔들리고 계속 악재가 겹치는 한국 농업. 깔끔한 인테리어에 들어왔다가 메뉴가 한식인 걸 보고 나가는 손님들이 있는 문화에서 요리사들 몇명이 혼자 아둥바둥하며 발전을 도모하기에는 역부족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모든 문화에는 혁명이 있었고 그걸 이끈 사람은 항상 소수의 개개인이었지 않은가? 우후훗 

전체적인 한식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먹거리에 대한 의식과 서포트, 요리사들의 현대적인 식재료와 조리법 연구, 정부의 식재료 유통과 개선에 대한 노력과 서포트(요새는 거꾸로 가지만 ㅜㅜ)가 모두 맞물려야겠지만... 한국에도 코리안버전 모더니스트 쿠진과(번역말고) 딘앤딜루카 대신 한국식재료로 꽉꽉 채운 이탤리(Eataly)같은 곳이 생기는 그날까지!!!

ps. 이 자리를 빌어 내 인생 평생 미원 한 톨 없이 밥해주신 우리 엄마와 생전 손수 순대를 빚어주신 함경도 출신 우리 노할머니께 진심으로 감사를. 덕분에 제 입맛은 썩지 않았어요 ㅠㅠ
 
벌써 2012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보통 이맘때쯤이면 "한것도 별로 없는데 벌써 연말이야~" 하는데, 2011년은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정말 바쁘게 지내왔기 때문에 끝자락에 얻은 짧은 겨울방학의 휴식이 얼마나 달콤한지! *-_-*

한가지 크게 아쉬운 점은 참 많은 얘깃거리들에도 불구하고 블로그/트위터 등으로 제대로 공유 못한 것. 한번 글 올릴때마다 줄 띄우기까지 디테일하게 챙겨야하는 이놈의 성격때문에 캐주얼하게 올리는데 스트레스를 받는다. 물론 주방에서도 이런 성격이 항상 도움이 되진 않는다. 고로 내년의 목표는 블로그도 요리도 좀 더 가벼운 마인드로!

그 동안 사진을 너무 못 올려서.. 오늘 몇 장 투척.

존슨웨일즈는 1년 3학기 제도인데, 한학기당 5개의 수업을 듣는다. 그러나 동시에 5개가 아니라 시리즈식으로 한번에 하나씩. 그래서 9일마다 새로운 수업을 듣는데 매일 퀴즈에 요리실습에 과제에 기말 실기필기까지. 그렇게 9일을 마치고 나면 완전히 기어를 바꿔 새로운 수업과 새로운 셰프와 또 9일을 보낸다. 요리 > 제빵 > 요리나 음료 > 요리 > 서비스 뭐 이런 식으로 수업이 나가면 정신이 진짜 없다. 유니폼도 다른 거 입어줘야 하고. 참, 상당히 엄격한 유니폼 규정때문에 다림질의 고수가 되어가고 있다 푸훗 -_- 

여튼 잡설이 길었고, 아래는 실기 시험의 예. 9일간 배운 주 요리방법(튀기거나 볶거나 굽거나 등등)중 셰프가 정해주는 아이템으로 메인을 요리하고 탄수화물, 야채, 소스 등은 알아서 플레이팅 한 다음에 심사를 받는다. 로드아일랜드의 법에 따라 아무리 손을 열심히 씻어도 마지막에는 장갑을 끼고 작업을 해야 하는 덕분에 적응하느라 애먹었다.

로스팅한 양고기와 민트/고수/아보카도 소스 + 레드와인 jus + 스페니쉬밥/들러리 야채


머릿속의 비주얼은 정말 고상했는데 반의반만큼도 생각만큼 나와주지 않은...
삶고 팬에 구운 돼지고기와 콘/망고/토마토 샐러드 + 그린빈 


간장양념에 재웠다가 튀겨낸 두부와 볶음밥/야채 + 생강citrus glaze


집에서 펌킨 브레드푸딩 해 먹다가 갑자기 삘 받아서 -_-;


몇가지 기본 칵테일 만드는 것도 배운다. 외워서 12분내에 12가지 만들기가 기말실기시험. 

바게트와 다른 기본 빵 몇가지도 배우는데 정말 물+밀가루+소금+이스트로
얼마나 맛있는 빵이 만들어지는지!?!? 깜짝 

위생시험도 무사히 통과해서 앞으로 3년간은 유효한 자격증. 
 공부하는데 외울게 너무 많아 머리 터지는 줄. 


그리고 로컬 신문에도 빼꼼 등장했다 으흐흐...
가운데는 우리 잘생기고 젊은 셰프님. 나보다 고작 4살 위지만 경력은 15년 -_- 


 내년에는 짦막하지만 더 자주 다양한 얘기 들려드리도록 노력하겠다. 따뜻한 시간들과 맛있는 음식들로 가득찬 연말 되시길 :)
 
얼마전 Culinary Artistry라는 책을 읽다 인상깊은 차트를 발견했다. 단순히 생업인지, 숙련된 기술자인지, 혹은 예술가인지로 요리사들을 세 부류로 나눠 비교하는 차트였다. 각 부류의 목적, 가격, 요리하는 주된 재료 등등으로 비교하고 있었는데, 그 중 제일 와닿는 항목은 자극되는 감각의 가짓수였다. 첫번째와 두번째 부류는 오감에 그치는데 반해, 세번째 부류인 예술가들은 그 이상의 식스센스를 자극한다는 의견. 먹었을 때 그 음식의 비주얼, 촉감, 맛 등을 뛰어넘어 그 이상의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고 느끼게 하는 그런 요리 말이다. 

미국 동부는 며칠전부터 날카로운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나무들도 불긋게 물들기 시작했고. 안 그래도 요새 자주드는 집생각에 한국음식이 너무 먹고 싶었는데, 날씨가 추워지니 순두부 생각이 간절해졌다. 근처 한식당에서 부들부들하고 얼큰한 순두부 한숟갈을 입에 떠넣는 순간, 따뜻한 스프나 커피로는 절대 풀리지 않던 추위가 한순간에 녹아내렸다. 서울에 대한 그리움도 따뜻하게 위로가 되는 느낌이었다. 

미국에서 소울푸드(Soul Food)의 사전적/공식적인 의미는 남부 흑인 커뮤니티의 특정 음식들을 아우르는 요리이다. 그렇지만 속어로 순두부처럼 마음을 달래주는 음식들을 소울푸드라고 통칭해서 부르기도 한다. Comfort Food라는 용어를 쓰기도 하고.

 이전 내가 하고 싶은 요리에 관한 포스팅에서 언급했지만, 싱가포르의 한 식당에서 먹은 디저트가 무척이나 감동적이어서 불러달라 한 셰프는 "I'm glad it touched your soul."라는 표현을 썼다. 그 뒤로 나는 이렇게 제 6의 감각, 소울, 감정등을 일깨우는 요리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식당을 나서서도, 몇년이 지나도 가끔 한번씩 떠오르는 그런 맛. 이제 나에게 '소울푸드'라는 용어는 그런 모든 음식을 의미한다.

아직까지 내 뇌리에 강렬히 남아있는 소울푸드들(순서는 지금 그냥 떠오르는 대로):

- 파리에서 유명하다는 생 카라멜을 사러 한 캔디샵에 들렀다 샘플로 시식한 초콜렛을 씌운 아몬드. 보통 초콜렛 등을 씌우면 아몬드가 약간 눅눅한 느낌이던데 그 아몬드는 완벽히 바삭했고 입에 잔여물 따위는 남지 않았다. 너무나 가벼우면서도 온갖 다양한 맛의 조화와 고소함.....
- 르 알라스카에 견과류 잔뜩 올라간 브리오슈 종류의 빵을 먹다 씹은 아몬드. 한참 여운에 취했었다. 알맞게 토스팅 된 견과류는 생 견과류에 비할 바가 못된다. 아직 이에 비할 아몬드를 먹은 기억이...
- 안효주 주방장님이 쥐어준 솜사탕 같던 아나고(붕장어) 초밥. 으어어어...
- 파리 길거리를 걷다 사먹은 살짝 차가운 바게트와 브리치즈 샌드위치 한 입. 밀가루/소금/물의 간단하지만 성스러운 조합의 결과물. 완벽한 소금간과 바삭하지만 쫄깃한 크러스트와 부드럽고 달기까지 한 속살..............파리 보내주세요 엉엉
- 파올로데마리아에서 먹은 헤이즐넛 케익과 아직까지 정체를 모르는 달달한 와인향의 소스.
- 레스쁘아의 안심 스테이크를 가르는 순간. 보석같다는 표현 이외에 설명할 길이. 물론 거기에 풍겨오는 향기까지. 추가로 레스쁘아의 어니언슾. 아프거나 춥거나 숙취가 심할 때 만병통치약.
- 샌프란시스코에서 잘 가던 중국베이커리. 바베큐 양념의 돼지고기 들어간 찐빵류의 빵을 자주 사먹었는데 한번은 내가 들린 딱 그 순간 막 구워져 나오고 있었다. 빵집을 나오면서 한입 베어무는 순간 달달한 양념과 함께 풍겨오는 은근한 청주의 향기. 거기에 부드럽게 씹히는 돼지고기. 남자친구 것까지 두개 샀는데 집에 오면서 두개 다 먹어버렸다. -_-
- 샌프란시스코 어딘가에서 먹은 일본된장양념의 생선구이. 겉면은 파삭하고 속살은 정말 부들부들.아주 따끈했던 기억도 강렬하다.
- 인도에서 먹었던 도사(dosa). 커리/감자와 바삭하게 구워진 도사의 조합은 안 먹어본 사람은 절대 알수가 없다.
- 박찬일 셰프님의 홍대 라꼼마에서 먹은 식전빵. 손에서의 온도와 느낌, 맛까지 생생하다 아주 그냥. 
- 지금은 없는 이태원 봉에보의 토마토 샤베트. 토마토의 맛이 완전히 전해지면서도 토마토의 채소스러움을 (뭐 과일이라 따질수도 있겠지만)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훌륭한 저녁 먹고 후식으로 과일 두쪽 나왔을 때의 허무함이나 부족함도 전혀. 완전 충족. 
- 중국에서 먹은 새우볶음. 특히 같이 볶아진 오이. 오이는 생으로 먹는 게 제일 맛있다는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 예전 대학다닐때 근처 사과 농장 갔다가 아무 생각없이 한입 베어문 작은 사과. 그래도 한국사과가 제일 맛있다는 얘길 들으면 난 속으로 그 때 그 사과를 생각하며 혼자 웃는다.

아 밤 열두신데 배고파서 그만 써야겠다 -_-.
1. 예상했지만 학교 다니면서 좋은 점은 여태까지 알음알음 주워들은 정보들의 갭이 싹 메꿔지는 거다. 여태까지 녹차와 홍차에 대해 어렴풋이만 알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같은 식물의 잎이고 녹차에서 홍차잎이 되려면 좀 더 오래 발효를 시킨다는 것. 그리고 순수 "차"만을 고집하는 purist의 입장에서는 카모마일, 장미차등은 차가 아님. 

2. 그저께부터 베이킹 수업을 듣고 있는데 드디어 베이킹 소다와 파우더에 대한 정리가 완벽히 되었다. 인터넷에 보면 소다는 옆으로 부풀고 파우더는 위로 부푼다는 등 별 가지가지 썰이 돌아다니는데 결국 베이킹 소다는 알칼리성이라 산(acid)성 물질이 반죽에 있어야만 반응해 부풀고, 베이킹 파우더는 베이킹 소다에 acid를 따로 첨가해 반죽하면서 액체에 섞이면 반응하는 것. 첨가되는 acid 종류와 갯수 등에 따라 베이킹 파우더도 종류별로 나뉨. 간단히 정리하면 베이킹 파우더는 재료에 상관없이 편하게 쓸수 있는 베이킹 소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3. 수업 강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는 학생들이 생긴다. 근데 왜 이 학교는 처음부터 학생들을 전혀 걸러내질 않을까? 현장경험과 에세이 등을 요구하는 다른 많은 요리학교들과 달리 딸랑 성적과 점수만 챙기는 모습이 사실 탐탁치 않았는데, 역시나 별 생각없이 그냥 한번 요리학교에 와 본 학생들이 많다. 어제 한 선배가 말하길 50%만 전공에 남는다는데, 진짜일까? -_-

4. 먹고 싶은 한국 음식(순서 상관없음): 순두부, 곱창 + 간 + 구운 마늘 + 부추 + 소주 한잔, 엄마표 고등어조림(무 필수!), 순대볶음, 명이나물에 보리밥(꺄으), 닭강정, 인절미, 적절히 달달한 비빔냉면 + 반숙달걀 + 육수 + 절인 오이무침. 덴장! ㅜㅜ

5. 구운 마늘 (생마늘 껍질채로 분리해서 + 올리브 오일 @ 섭씨 180도 3-40분) 너무 좋다. 한자리에서 스무알도 먹을 수 있음.

6. 요새 너무 잘 먹어서 오늘 한 7-8km 뛰어줬다.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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