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단상


얼마전 서울에 불어닥친 초강력 한파는 정말 대단했다. 조금이라도 살이 노출되거나 두겹 이하로 입은 곳은 칼바람이 그대로 느껴졌고 주변에서도 안면마비와 콧물고드름의 고통을 호소하는 경험담이 즐비했다. 난 강남역에서 같이 걸어가던 지인이 갑자기 코피가 터지는 바람에 호러영화까지 찍었다. 매섭게 추운날은 나가기 전 콧속 모세혈관 준비운동을 잊지 말자 -_-

이렇게 추울때는 정말 캘리포니아 LA나 동남아의 사계절 따뜻한 날씨가 부럽기도 하지만, 동남아에서 한달 놀고 온 후 느낀 건 역시 사계절이 좋다는 거다. 게다가 추울 때 먹어야 그 맛이 배가 되는 소위 '겨울철' 음식. 뜨뜻한 오뎅탕과 정종이나 봉지채 품에 안고 가면 몸까지 덥혀주는 군고구마를  30도의 무더운 날씨에 먹는다고 상상해보라. 땀난다. 

자글자글


예전 겨울철에 놀이동산에 놀러가면 꼭 사먹던 간식 한가지는 호떡이었다. 빳빳한 종이에 싸서 건네진 갓 구운 호떡을 먹다 보면 뜨거운 설탕물에 입천장이 데기도 하고 손이 끈적거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폭신한 반죽과 달콤한 시럽의 조화는 절대 뿌리칠 수 없던 유혹이었다. 

그러나 어째 점점 찾아보기가 힘들어지는 호떡 트럭때문에 맛있는 호떡을 먹은지 몇년여. 얼마전 친구들이 집에 놀러왔을 때 디저트 메뉴를 고민하다가 옛 추억을 되살려 둘러앉아 호떡을 부쳐먹기로 했다. 기름냄새에 머리가 살짝 지끈거리긴 했으나 결과는 대만족. 그 후 한 2주째 이틀이 멀다 하고 계속 부쳐먹는 중이다 으흐흐. 

달콤한 홈메이드 호떡

일반 크기 호떡으로 약 15개 분량
정윤정님의 레시피에서 약간 수정

중/강력분 3컵 (380g)
찹쌀가루 1컵 (g 업데이트 예정)
전분 1/2컵 (60g)
탈지분유 1/4컵 (3큰술)
설탕 2큰술
소금 2작은술
생이스트 1작은술 (드라이는 2작은술)

버터 1/4컵 (55g), 실온
뜨뜻한 물 1.5컵 + 알파

제빵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기본 발효빵 성공하기 시리즈 먼저 필독!

가루류를 훌훌 섞어준 후(주의: 이스트와 설탕/소금이 직접 닿지 않도록 따로 먼저 밀가루와 섞어준다) 물을 부어 살짝 질척한 느낌이 날 정도로 반죽을 한다. 손을 써서 먼저 하기 보다는 나무주걱이나 스패츌라로 먼저 치대주는 것이 손에 덜 들러붙는다. 

어느 정도 치대지면 밀가루를 살짝 뿌리고 반죽을 엎어 버터를 섞어가며 잘 치대준다. 일반 발효빵처럼 글루텐 형성이 완벽히 될 필요는 없으나 어느정도 매끈해질때까지는 치대준다. 

땅콩은 필수.


반죽 부피 두배 기준으로 1차 발효가 완료되는 동안 소를 만들어 놓는다. 소의 기본 재료갈색 설탕 2/3컵, 다진 땅콩 1/2컵, 시나몬(계피) 약간, 그리고 꿀 두큰술 정도이다(빚을 때 소가 너무 날라다니지 않게). 여기에 호두 다진 것, 코코아 가루, 다진 말린 대추, 등등등 넣고 싶은 것 아무거나. 


발효가 다 되면 반죽을 큰 달걀만한 크기로 띄어서 소를 넣고 동그랗게 빚는다. 이때 우후훗 욕심내서 소를 와장창 넣으면 부칠 때 다 터져나오니 적당~히.

빚어가며 바로바로 양면을 노릇하게 구워준다. 먼저 넉넉히 기름을 둘러 후라이팬을 중-강불로 달군 후 반죽을 올려 한면을 살짝 익힌다. 그리고 뒤집어 호떡누르개나 머그잔 등 넓적한 도구로 꾸욱 눌러준다. 이렇게 해야 호떡이 마구 달라붙지 않는다. 물론 누르개에 기름칠 살짝 해 주면 더 좋고.

유난히 추운 겨울이지만 홈메이드 호떡으로 따뜻하게 보내시길!

ps. 호떡누르개가 필요한데 믿었던 다이소마저 없다. 인사동 거리를 지나치다 호떡가게를 보고 물어보려다 참았음. 어디 가면 살 수 있나요? -_- 인터넷에서 파는 건 영 허접해보여서...



연말에 초등학교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할 일이 있었다. 고심하다 고른 저녁 메뉴테마는 분식. 백원짜리를 모아모아 하교길에 몰려가 입가에 뻘겋게 떡볶이 국물을 뭍혀가며 먹고 뜨겁고 짭짤한 오뎅국물로 매운 입안을 달래던 추억을 빼놓고 초등학교 생활을 얘기할 수 없기에. 

어묵탕. 꽃게 빠꼼. 역시 냉동은 맛없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 사회에 나와도 분식은 여전히 특별한 음식으로 남았다. 학원이 끝나고 집에 가는 늦은 추운밤이던, 늦게까지 친구들과 술 한잔을 하다 기분좋게 취해 집에 들어가던 새벽길이던, 출출한 속과 시린 손을 달래는 힘을 갖고 있는 떡볶이 트럭은 없어선 안될 존재이다. 이렇게 떡볶이가 우리나라의 음식 및 소셜문화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보니 국제화 전략까지 세우면서 한국의 대표음식으로 마케팅되고 있는 요즘.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떡볶이가 널리 전파되고 사랑받게 된 기반인 포장마차와 트럭은 홀대받고 있다. 

베트남의 반미(bánh mỳ) 스탠드.

작년 G20이 열리기 얼마 전, 일하다가 급 출출해져 뭘 먹을까 팀원들과 얘기하다 회사에 있는 수많은 간식을 제치고 테헤란로변에 있는 떡볶이 트럭으로 달려갔다. 늦은 오후 다들 출출할 시간인지 이미 트럭주변은 바글바글 했고, 우리처럼 포장을 해 가려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다 우리 차례가 와서 주문을 하려는 차, 마침 떡볶이가 다 떨어졌다. 언제 오면 있냐고 물어보니 조금 있다 단속이 나온다고 오늘은 일찍 접고 들어간다는 아주머니. 아쉬운 대로 김말이와 순대 등을 포장해 사무실에 들어오니 인기폭발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까 단속나온다며 씁쓸해 하던 아주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물론 포장마차에서 위생을 기대할 수는 없으며 삐까번쩍한 고급스런 인테리어도 아니고, 불법영업도 많지만 간간히 들려오는 무대포 불법철거 뉴스는 마음을 무겁게 한다.

길거리 음식은 단순히 값싼 음식이나 불량식품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길거리 음식은 다양한 형태와 문화로 존재한다. 조금 지켜보고 있노라면 다르면서도 참 비슷한 풍경이 많다. 호빵 서너개가 담긴 김이 서린 비닐봉지를 들고 사무실로 뛰어가는 베이징의 직장인들이나 바게트로 만든 베트남식 샌드위치인 '반미'를 오토바이에 매달고 가는 호치민 시의 사람들을 보다보면 영락없이 서울의 아침 출근길, 분주한 토스트 트럭의 모습이 떠오른다. 인도에서는 오후의 간식으로 한국의 분식처럼 찻(chaat) 스탠드가 큰 인기를 누리며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2010년 겨울, 베이징 길거리의 토스트(?) 리어카.


이렇게 길거리 음식은 마케팅과 국제화로 포장되지 않은, 현지인들과 그들의 문화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매력적인 창구이다. 게다가 국민들에게도 옛날 추억부터 일상생활의 별식까지 아우르는 소중한 공간. 그런데 하나의 문화로 잘 다스려나가기 보다는 단순히 지저분하고 '외국인들이 보기에 안 좋다'라는 이유를 앞세워 밀어버리는 사태가 아쉬울 뿐이다. 



며칠전부터 읽기 시작한 Eating Animals라는 책. 이 책을 읽기 전에 고기를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도 그럴 생각이 없다. 아니 그러지 않아도 될거라면서 애써 버티고 있다. 그런데 아까 아침에 볼만한 영화를 뒤져보다 미국에서 히트한 나탈리 포트만의 블랙스완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갑자기 나탈리 포트만의 필모그래피가 궁금해졌다. 그녀의 위키피디아 페이지를 읽기 시작했다. 채식주의자란다. 아니, 였단다. 근데 Eating Animals를 읽고 유제품 등 일체 동물성 제품을 섭취하지 않는 Vegan이 되었단다. 순간 덜컹, 했다. 헉, 역시 이 책은 고기 먹는 것에 대한 정당화에 도움을 주지 않는구나. 에이, 그래도 나만의 이유가 있음 되겠지 하고 창을 닫았다.

카페에 가서 책 몇장을 더 읽었다. 어업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물론 참치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참치를 잡을 때 같이 잡혀 죽는 생물의 종류는 책의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마침 카페는 참치횟집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건 뭐, 어떻게 봐도 돌아갈 수가 없다. 그렇지만 내 머릿속에는 두 가지 초이스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아예 안 먹던가, 그냥 무시하던가. 마침 저자가 말한다. 왜 이 이슈에 관해서는 사람들은 항상 두 가지 초이스만을 떠올리는가. 책을 덮어버리고 남은 커피를 음미는 커녕 원샷한 후 카페를 나섰다. 서비스로 준 쿠키는 무슨 맛인지 잘 기억이 나질 않고 커피는 썼다. 

운동을 하러 갔다. 새해의 목표인 하프마라톤을 위해 이번 주부터 꾸준히 조깅을 하기로 시작했다. 하프마라톤은 20여킬로미터. 한 2킬로미터를 뛰었는데 젠장, 너무 힘들다. 몇달동안 운동부족으로 둔하고 찌뿌둥한 내 몸이 답답하다. 무슨 마라톤은 마라톤, 갑자기 짜증이 난다. 그냥 살던대로 살자, 라는 생각이 치밀어 오른다. 그냥 슬쩍 취소하고 싶기도 하다. 

저녁 밥상에는 김치찌개가 올라왔다. 돼지고기가 들어간. 요새 읽고 있는 육식에 관한 책이 재밌다고 말을 꺼내본다. 그렇지만 아무도 말이 없다. 침묵이 이어진다. 찌개 한 숟갈을 입으로 가져갔다. 김치와 돼지기름의 조합은 역시 환상궁합이다. 틀어놓은 티비에서는 구제역 뉴스가 나오고 있다. 현재까지 살처분 된 가축은 백만마리가 넘었단다. 백만마리가 도대체 얼만지,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지 감도 안 온다.

컴퓨터 앞에 앉아 이번 주말부터 시작할 살사 수업에 대한 내용을 읽어본다. 페이스북도 하고, 다음뷰도 보고, 뉴욕타임즈보도 보고, 싸이도 가보고, 그러다 트위터에 가니 구제역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기사를 제대로 보기 시작하니 그 심각성이 갑자기 확 와닿으며 걱정이 된다. 구제역이 뭔지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봤다. 대강만 읽어도 이런 스케일의 상황에서 살처분이 최우선이 아니라는 걸 알겠다. 한숨이 나온다.

뉴스를 더 찾아보다가 돼지들이 생매장 되는 사진을 봤다. 누구는 미국 소고기와 관련된 음모설을 재기한다. 왠지 그럴싸하다. 공무원 중에 구제역 근무 때문에 과로사한 사람도 있댄다. 일손이 모자라고 예방접종을 한다 해도 사후처리가 중요하단다. 대만은 실제로 구제역 때문에, 사후처리 부족으로 양돈업이 싸그리 망했단다. 어후 답답하고 걱정된다. 갑자기 뭘 해야 할 것만 할 것 같다. 달려가서 도와? 어떻게 마술로 뿅 하면 구제역을 없앨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진짜 좋겠다란 간절함까지 느껴졌다.

그러다 김치찌개 생각에 갑자기 화가 났다. 먼나라 얘기도 아니고, 같은 한국이란 작은 나라안에 있으면서 우리집 저녁 밥상과 신음하고 있는 농가가 이렇게 단절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가 막혔다. 이건 진짜 말도 안된다. 농가에서 돼지들이 어떻게 길러지고 도살되고가 문제가 아니라, 저쪽에서는 지옥중의 지옥인데, 우리는 정말 무덤덤하게 찌개를 입에 넣고 있고, 마트에서는 활발하게 해피하게 돼지고기가 팔리고 있다. 그리고 인터넷 창을 닫고 잠에 들면, 난 또 이런 감정들을 잠시 누르고 잊은채 내일 살사 수업을 들으러 가겠지. 추가 : 내 친구가 물었다. 이럴 때일수록 더 사주는 게 농가를 도와주는 거 아니니? 그 측면만 보면 그렇겠지만, 내 요지는 '단절'이다. 우리 집이 돼지고기를 저녁밥상에 올린 이유는 농민들이 아니다. 그리고 수입 돼지고기를 50% 싸게 팔면, 구제역 상관없이 여전히 팔릴텐데? 롯데마트의 통큰갈비가 백톤이 팔렸대매.

이쪽 산업에 대해 더 알고 배우고 나의 소신을 세우기 위해 독서를 시작했건만, 갑자기 힘이 쭉 빠졌다. 그냥 살던 대로 살까? 내가 채식을 한다면 뭐야? 왜? 야 됐다, 라는 반응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여기서 덮어버리면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터인데 말이다. 근데 왜 채식을 하면 나는 이상하고 까다로운 사람이 되는 걸까? 친구한테 이 책을 읽고 있다고 얘기하니 채식할라고? 야 하지마~란다. 왜? 왜? 왜?

잠시 침대에 누웠다. 머리 맡에 붙여져 있는 나의 바이블인 "칡과 커피"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이 절단된 선들을 잇고 이어주는 것이 내 삶의 목표이자 즐거움이었지. 마라톤도 고기 이슈도, 우선 달려보자. 그나저나 이 이찬웅님이란 분은 도대체 어떤 분이길래 나한테 이렇게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글을 쓰셨는지, 만나뵙고 인사나 드리고 싶다.

ps. 제발 구제역의 후폭풍이 우려만큼 심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물론 머리아프고 가슴아픈 뉴스를 접하기 싫은 내 이기심이 더 큰 이유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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