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단상


연말에 초등학교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할 일이 있었다. 고심하다 고른 저녁 메뉴테마는 분식. 백원짜리를 모아모아 하교길에 몰려가 입가에 뻘겋게 떡볶이 국물을 뭍혀가며 먹고 뜨겁고 짭짤한 오뎅국물로 매운 입안을 달래던 추억을 빼놓고 초등학교 생활을 얘기할 수 없기에. 

어묵탕. 꽃게 빠꼼. 역시 냉동은 맛없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 사회에 나와도 분식은 여전히 특별한 음식으로 남았다. 학원이 끝나고 집에 가는 늦은 추운밤이던, 늦게까지 친구들과 술 한잔을 하다 기분좋게 취해 집에 들어가던 새벽길이던, 출출한 속과 시린 손을 달래는 힘을 갖고 있는 떡볶이 트럭은 없어선 안될 존재이다. 이렇게 떡볶이가 우리나라의 음식 및 소셜문화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보니 국제화 전략까지 세우면서 한국의 대표음식으로 마케팅되고 있는 요즘.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떡볶이가 널리 전파되고 사랑받게 된 기반인 포장마차와 트럭은 홀대받고 있다. 

베트남의 반미(bánh mỳ) 스탠드.

작년 G20이 열리기 얼마 전, 일하다가 급 출출해져 뭘 먹을까 팀원들과 얘기하다 회사에 있는 수많은 간식을 제치고 테헤란로변에 있는 떡볶이 트럭으로 달려갔다. 늦은 오후 다들 출출할 시간인지 이미 트럭주변은 바글바글 했고, 우리처럼 포장을 해 가려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다 우리 차례가 와서 주문을 하려는 차, 마침 떡볶이가 다 떨어졌다. 언제 오면 있냐고 물어보니 조금 있다 단속이 나온다고 오늘은 일찍 접고 들어간다는 아주머니. 아쉬운 대로 김말이와 순대 등을 포장해 사무실에 들어오니 인기폭발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까 단속나온다며 씁쓸해 하던 아주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물론 포장마차에서 위생을 기대할 수는 없으며 삐까번쩍한 고급스런 인테리어도 아니고, 불법영업도 많지만 간간히 들려오는 무대포 불법철거 뉴스는 마음을 무겁게 한다.

길거리 음식은 단순히 값싼 음식이나 불량식품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길거리 음식은 다양한 형태와 문화로 존재한다. 조금 지켜보고 있노라면 다르면서도 참 비슷한 풍경이 많다. 호빵 서너개가 담긴 김이 서린 비닐봉지를 들고 사무실로 뛰어가는 베이징의 직장인들이나 바게트로 만든 베트남식 샌드위치인 '반미'를 오토바이에 매달고 가는 호치민 시의 사람들을 보다보면 영락없이 서울의 아침 출근길, 분주한 토스트 트럭의 모습이 떠오른다. 인도에서는 오후의 간식으로 한국의 분식처럼 찻(chaat) 스탠드가 큰 인기를 누리며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2010년 겨울, 베이징 길거리의 토스트(?) 리어카.


이렇게 길거리 음식은 마케팅과 국제화로 포장되지 않은, 현지인들과 그들의 문화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매력적인 창구이다. 게다가 국민들에게도 옛날 추억부터 일상생활의 별식까지 아우르는 소중한 공간. 그런데 하나의 문화로 잘 다스려나가기 보다는 단순히 지저분하고 '외국인들이 보기에 안 좋다'라는 이유를 앞세워 밀어버리는 사태가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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