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단상

며칠 전 레스쁘아에서 스테이크를 다시 먹을 기회가 있었다. 반뼘은 되어보이는 정말 두툼한 안심. 잘라보니 겉은 거의 바삭할 정도의 진한 갈색이지만 중앙은 루비를 연상시키는 선홍빛. 멋진 그라데이션의 제대로 미디엄레어(개인적으로 제일 맛있다고 생각하는 굽기). 

<이미지 출처 - Google Image Search>

그런데 스테이크는 도대체 언제 원하는 상태가 되었는지 알까? 온도계를 찔러보자니 육즙이 새고(폼도 안나고) 시간을 재는 건 재료와 크기, 두께, 팬의 온도 등등등등 변수가 너무 많아 불가능하고. 제일 많이 이용되는 방법은 바로 핑거테스트(finger test). 한마디로 손으로 눌러 고기의 푹신함을 테스트하는 것. 그렇지만 사실 어느 정도 익은 후에는 그 차이가 매우 미세해 연습에 연습을 통해 정말 고기와 친해져야지만 미디엄레어와 미디엄의 차이를 날렵히 찝어낼 수가 있다. 

심지어 이런 차트도. 실제 해보면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Google Image Search>

주방에서 기구보다는 사람의 감각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더 빠르기도 하고, 많은 변수들에 의해 그때그때 다른 온도나 간으로 맞춰야 할때도 있고. 무엇보다 고기의 푹신함의 정도, 소스가 흐르는 정도, 데친 숙주의 투명한 정도, 반죽의 말랑한 정도, 이걸 잴 수 있는 도구는 손가락 감각 외에는 없지 않는가? 매뉴얼을 만든다 하더라도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스펙트럼은 약간 말랑, 살짝 말랑, 상당히 말랑, 꽤 말랑, 아주 말랑, 심하게 말랑, 너무 말랑..........이 정도. 거기다가 결국 추가 묘사가 들어간다 하더라도 잘 익은 토마토, 지점토 반죽 등 이전에 손으로 만져본 적이 있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심지어 미국 요리학교 CIA의 Pardus 셰프가 실제 클래스에서 새우를 삶는 것에 대해 강의하는 동영상을 보자. 새우를 너무 뜨거운 물에 삶으면 고무처럼 단단해지기 때문에 좀 더 낮은 온도의 물에서 포칭(poaching)을 시키는데, 이때 적절한 물 온도를 맞추는 방법은 온도계가 아닌 ouch-hot 방법. 손가락을 담갔을 때 화상을 입거나 으 뜨거운데가 아닌, 앗 뜨거!의 느낌이 와야 적절한 온도란다. 으핫.

이런 "감"이 필요한 요리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요리는 감각이 있어야만 한다는데, 여기서 말하는 "감"은 타고난 것이 아닌 무수한 반복을 통해서 몸에 쌓이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김연아가 태어났을 때부터 점프를 잘 뛴 것이 아니라 연습을 통해 적절한 타이밍과 파워 등의 "감"이 몸에 밴 것처럼 말이다. 인간의 감각은 놀랄만큼의 적응력과 발달능력이 있기 때문에 결국 훈련시키기 나름이다. 사실 이것은 처음부터 거창하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평소에 쓰는 맛소금 대신 천일염을 사왔는데, 평소와 동량을 썼더니 싱거워 양을 늘려 간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재료와 음식에 내 몸이 반응하는 교감의 시작이다. 요리를 하면 할수록 이 "감"들이 몸에 조금씩 조금씩 쌓이는데, 어느 순간 예전보다 작은 차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발전해가는 그 즐거움이란!

ps. 난 개인적으로 제일 오래한 작업이 빵 반죽인데, 처음 밀가루와 물을 섞을때 손가락을 꽉꽉 찔러주며 반죽 제일 내부의 습도를 체크하며 치대게 된다. 손가락 끝으로 마른 정도를 느끼며 밀가루와 교감(...)을 하게 되는데 이때 가끔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들이 새(?)를 탈때 서로 안테나(?)를 붙이는 장면이 생각난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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